붓방아를 오래도 찧었다. 노트북이니 '키보드방아'가 되려나. 왜냐면, 이 노트북 어딘가에 있을 반도체 때문이다. 초슬림, 초경량, 고성능을 자랑하는 삼성 노트북 안에 사람을 잡아먹은 괴물이 숨어있는 것 같아, 이 기계로 그들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조차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일종의 죄책감을 무릅쓰며 자판을 두들기는 이유는 두 권의 만화책을 소개하기 위해서다.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가 백혈병 등으로 사망한 노동자들의 비극이 담긴 만화, 김수박의 <사람 냄새: 삼성에 없는 단 한 가지>와 김성희의 <먼지 없는 방: 삼성반도체 공장의 비밀>이다.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려 사망한 노동자들을 그린 두 권의 만화, 김수박 작가의 <사람 냄새: 삼성에 없는 단 한 가지>와 김성희 작가의 <먼지 없는 방: 삼성반도체 공장의 비밀>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려 사망한 노동자들을 그린 두 권의 만화, 김수박 작가의 <사람 냄새: 삼성에 없는 단 한 가지>와 김성희 작가의 <먼지 없는 방: 삼성반도체 공장의 비밀> ⓒ 보리출판사


"꽃이 질 때쯤 되면 최고의 향이 나거든. 사람도 똑같애. 사람은 나이가 먹을수록, 늙을수록 사람 냄새가 나는 거야. 근데 사람 냄새라고는 요만큼도 없어. 자기 회사에서 사람들이 죽는데도 나 몰라라 하고 있잖아." (<사람 냄새> 중, 황상기 씨의 말)

먼저, 김수박의 <사람 냄새>는 2003년 열아홉의 나이로 삼성에 입사해 반도체 공장에서 근무하다 2007년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난 고 황유미 씨의 사연을 담고 있다. 직업병을 개인적인 질병으로 치부하고, 언론 보도와 산재 처리를 막았던 삼성과의 지난한 싸움을 아버지 황상기 씨의 증언으로 풀어 전한다. 아버지는 딸의 죽음을 나 몰라라 한 회사를 두고 "사람 냄새가 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김성희의 <먼지 없는 방>은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만난 남편을 백혈병으로 잃은 정애정 씨의 시선을 좇는다. 정 씨의 증언에 따라 상세히 묘사된 공정은 공장 노동자들이 매일같이 만지고 들이마신 약품들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알리고 있다. 하지만 정작 노동자들은 그 사실을 몰랐다. 방진복은 유해 약품으로부터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의 먼지로부터 반도체를 지키기 위해 입었다.

'사람 냄새' '먼지' 없이 성장한 회사와 반도체, 닮았다

 <먼지 없는 방>은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가 백혈병에 걸려 사망한 황민웅 씨의 사연을, 같은 공장에서 일한 그의 부인 정애정 씨의 시선으로 좇아 전하고 있다.

<먼지 없는 방>은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가 백혈병에 걸려 사망한 황민웅 씨의 사연을, 같은 공장에서 일한 그의 부인 정애정 씨의 시선으로 좇아 전하고 있다. ⓒ 보리출판사


두 만화책에는 삼성경제연구소의 수석연구원도 분석하지 못했을 '세계 일류 기업으로의 성장 비밀'이 담겨 있다. <먼지 없는 방>이 사람보다 제품의 안전에 맞춰진 반도체 공장 내부의 노동환경을 고발한다면, <사람 냄새>는 발병 노동자에 대한 삼성의 대응 방식을 폭로한다.

이를 보면서 삼성과 반도체가 닮아 있다는 걸 느낀다. 먼지 한 톨 허용하지 않는 반도체는 겉으로 '청정' 산업처럼 보이지만, 사람에게도 깨끗하지는 않다. '무노조'를 '신화'로 해석해온 삼성의 '눈 가리고 아웅' 역시 비슷한 맥락이다.

'사람 냄새'와 '먼지' 없이 성장한 이 놀라운 기업의 이야기를 오히려 '사람 사는 이야기'에 능통한 두 작가들의 말과 그림으로 전해 듣는 일은 좀 슬프다. 삼성과 사회가 외면하려고만 했던, 방진복 안에 가린 노동자의 얼굴을 맞닥뜨리는 것만으로도 먹먹해지는 순간이 온다. 두 작가가 참여한 만화 <내가 살던 용산>에서 사회가 테러리스트로 '퉁'쳤던 용산 참사 희생자들의 진짜 얼굴을 하나하나 만났을 때처럼.   

"이 뒷좌석이, 유미가 여기서 죽은 좌석이거든요." <사람 냄새>는 고 황유미 씨의 아버지 황상기 씨의 증언으로 이끌어 간다. 황유미 씨는 고교를 졸업하고 2003년 삼성반도체에 입사해, '클린룸'이라는 작업장에서 반도체 칩을 만드는 재료인 웨이퍼 가공 작업을 하다가 2년 반만에 백혈병을 얻었다. 유미 씨는 아버지가 운전하는 택시의 뒷좌석에서 숨을 거뒀다.

▲ "이 뒷좌석이, 유미가 여기서 죽은 좌석이거든요." <사람 냄새>는 고 황유미 씨의 아버지 황상기 씨의 증언으로 이끌어 간다. 황유미 씨는 고교를 졸업하고 2003년 삼성반도체에 입사해, '클린룸'이라는 작업장에서 반도체 칩을 만드는 재료인 웨이퍼 가공 작업을 하다가 2년 반만에 백혈병을 얻었다. 유미 씨는 아버지가 운전하는 택시의 뒷좌석에서 숨을 거뒀다. ⓒ 보리출판사


그래서 가장 무서운 것은 피해자와 언론의 입을 막은 삼성의 압력보다도 귀가 막힌 사회다. 뉴욕 타임스퀘어 전광판에 뜨는 로고만 봐도 애국심이 절로 생긴다는 국민 기업, 그 '큰 회사'가 그럴 리 없다는 이상한 믿음 말이다.

반도체 전자산업 직업병 피해자 수가 155명, 그 가운데 이미 사망한 사람이 62명, 삼성에서 일하다 직업병을 얻은 이는 138명에 이르는 2012년 현재 계속해서 방진복 안의 진실을 알려야 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근로복지공단은 지난 4월 10일, 삼성반도체 조립공장 등에서 근무한 여성 노동자 김 아무개씨(37)의 '혈소판 감소증 및 재생불량성 빈혈'을 처음 산업재해로 승인했다.

나머지 산재 신청자의 직업병과 죽음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삼성은 밑바닥 노동자에서부터 시작했을 일류 기업으로서의 성장을 차라리 부끄러워해야 할 것이다. '누군가의 가족'의 죽음에 제대로 된 답을 하지 못한다면, 삼성을 '또 하나의 가족'으로 인정할 수 없다.

사람 냄새 먼지 없는 방 김수박 김성희 삼성반도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