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기사의 꽃, '공항패션'을 하고 싶은데, 공항에 갈 시간이 없습니다. 패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패션을 모릅니다. 꼭 오뜨쿠뛰르와 쁘레따뽀르떼의 런웨이 위에서만 패션이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우리를 경악하게 만드는 '앗' 아이템이지만 캐릭터를 가장 잘 표현해주는 패션, 종종 그 해 S/S·F/W 컬렉션의 트렌드는 벗어나지만 웃음을 주는 패션, 이를 '공황패션'이라 부르기로 합니다. [편집자말]
 '2012 일본 프로야구' 지바 롯데와 니혼햄 파이터스의 경기가 있었던 25일 사다코가 시쿠자로 나섰다. 사다코는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일본 영화 <링>의 원혼이다.

'2012 일본 프로야구' 지바 롯데와 니혼햄 파이터스의 경기가 있었던 25일 사다코가 시쿠자로 나섰다. 사다코는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일본 영화 <링>의 원혼이다. ⓒ 유튜브 동영상 갈무리


1999년 TV 브라운관에서 힘겹게 기어 나오던 그녀를 잊지 못한다. 우물에서 올라온 <링>의 사다코는 각기 춤을 추며 기어와 브라운관 밖으로 나왔다. TV 속의 TV에서 나온 그녀가 이쪽 TV 밖으로도 나올 것 같은 공포가 엄습했다.

브라운관이 대거 사라지고 대형 LCD TV가 보편화한 2012년, 사다코가 기어 나오기에 더 자유로운 환경이 되어서일까. 지난 25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12 일본 프로야구' 지바 롯데와 니혼햄 파이터스의 경기장에 사다코가 출현했다. 이날 시구자로서 마운드 위에 오른 사다코는 개봉 예정인 영화 <사다코 3D: 죽음의 동영상> 홍보차 등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다코의 시구 패션은 '원혼'으로서 충실하면서도, 심플한 스타일로 완성됐다. 습도가 높은 우물 안에서도 오랫동안 '단벌' 착용할 수 있는 순면 감촉의 롱드레스 '소복'이 옷의 전부다. 여기에 일본의 거센 '샤기컷' 바람에도 꿋꿋이 숱을 치지 않고 막 기른 헤어스타일로 수줍은 얼굴을 감췄다. 아직은 쌀쌀한 날씨에 보온성을 높이는 밝은 색상의 레깅스도 돋보였다. 

또 다른 의미의 '개념 시구'

기어 나올 줄 알았던 사다코는 뜻밖에 손에 글러브까지 낀 채 덤덤하게 걸어 나왔다. 마운드 위에 선 그녀는 포수와 사인을 주고받으며 두어 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다가 합의를 본 듯 끄덕였다. 긴 머리 때문에 앞이 보일지 의심스러웠지만 힘껏 노바운드로 공을 던졌다.

 사다코는 포수와 사인을 주고받고 공을 던진 후에 앞으로 고꾸라지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사다코는 포수와 사인을 주고받고 공을 던진 후에 앞으로 고꾸라지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 유튜브 동영상 갈무리


그리고 바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영화 <링>대로라면, 사다코를 보고 공포를 이기지 못한 사람들이 쓰러져야 마땅한데 반대가 됐다. 사다코는 경기장 관계자의 부축을 받으며 퇴장했다.

야구 경기가 시작되기 전에 유명 인사가 공을 던지는 시구 행사는 일종의 쇼에 가깝다. 우리나라에서는 '시구 패션'이라고 할 정도로 시구자의 의상에 관심이 집중되곤 한다. 여성 연예인들이 노출이 심한 의상을 입고 격렬하게 공을 던지는 순간을 포착한 사진들은 '시구 노출'이라는 검색어로 화제가 된다. 물론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언젠가부터 치마나 하이힐을 신고 나와 공을 던지는 '시늉'만 하는 스타의 시구가 눈총을 받으면서, 역으로 투수로서의 복장을 갖추거나 '제대로' 던지는 시구자에게 '개념 시구'라는 호칭이 붙기 시작했다. 국내 야구팬들이 홍수아에게 '홍드로'라는 별명을 선사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홍수아의 시구 당시 팔꿈치가 꺾이는 투구 폼을 두고, 야구팬들은 마치 전직 메이저리그 투수 페드로 마르티네즈와 흡사하다고 극찬했다.

일본 사다코의 등장은 다른 의미의 개념 시구를 보는 것 같았다. '시구 패션'이니 하는 말로 여자 스타들의 노출을 부각시켜 온 식상해진 시구판에 신선함을 불어넣는, '쇼'로서의 개념 시구다. <링>의 한 장면을 패러디한 주성치 주연의 영화 <천왕지왕 2000>에서 사다코의 엉덩이가 TV에 끼였을 때처럼, 두려운 대상의 희화화는 색다른 묘미를 줬다.

사다코의 등장에 국내 야구팬들도 호의적이다. 누리꾼들은 "최초의 귀신 시구자다" "3D 기술에 힘입어 스크린 밖으로 나온 것인가?" "그녀는 호러와 개그에 모두 능통하다"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3D로 눈앞에서 각기 춤을 출 사다코는 웃음기 싹 뺄 테니까.

 개봉예정인 일본 영화 <사다코 3D: 죽음의 동영상>에서의 사다코

개봉예정인 일본 영화 <사다코 3D: 죽음의 동영상>에서의 사다코 ⓒ 오퍼스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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