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기 빛나는 천상의 빛처럼... 눈물이 주룩 주룩

아인슈타인, 레오나르도 다빈치, 토머스 에디슨, 피카소. 이 사람들의 공통점은 당대를 주름 잡았던 유명한 과학자나 예술가였다는 것 말고도 하나가 더 있다. 그것은 심각한 난독증 환자였다는 것이다.

어떻게 글을 잘 읽지 못하는 데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 그것은 그들 곁엔 항상 난독증을 앓고 있음에도 그것을 뛰어넘을 만한 재능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주었던 사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난독증에 걸렸다고 해도 모두 다 유명해지라는 법이 없고,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숨겨진 재능은 자신이 갈고 닦아 가야 하고 무엇보다 중요나 것은 그것을 일찍 발굴해 내어서 키워줄 조력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들 곁에 그런 사람들이 없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재능들은 맘 속에서 사그라질 것이다. 하지만 조력자를 만나는 것이란, 그만한 조력자가 되기란 결코 만만한 일은 아니다는 것을 누구나가 알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난 훌쩍일 수밖에 없었다. 극장 안에서 영화를 보며 자주 울기도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오랜만에 흘리는 '주룩주룩'의 눈물이다. 감동은 꼭 영화의 작품성이나 흥미도에 따라 비례하지는 않는다. 남들이 '어떻게 저 영화를 보고 눈물이 나와?'라고 말한다 해도 내가 그 영화의 감동에 휩싸이게 되면 어쩔 수가 없다.

 세상은 오색찬란한 만화경

세상은 오색찬란한 만화경 ⓒ 엣나인 필름


인도의 국민배우 아미르 칸이 연출한 <지상의 별처럼>이 꼭 나에게는 그런 영화였다. 가족이나 친구, 주변 사람들에게 관심 받지 못했던 이샨이라는 어린 아이가 새로운 선생님의 따뜻한 관심과 배려로 자신의 숨겨진 재능을 발견하게 된다는 스토리는 어떻게 보면 뻔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한번 더 이야기하지만 감동의 유무는 개인마다 다 다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그것은 대상(내가 바라보는 영화)에 대한 보는 이의 감정에 대한 동요에서 기인한다.

나에게 이 눈물의 의미는 분명 참회일 것이다. 돌이킬 수 없는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그리고 돌아보려 해도 되돌릴 수 없는 과거의 내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재생된다. 그런 후, 무심코 스크린을 바라보고 있는데 소용돌이치듯 감정이 복받친다. 그 순간부터 그냥 이 영화는 내게는 나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 

그래 그 순간부터이다. 이샨이 침묵하게 되는 그 순간부터 난 마치 내가 죄를 지은 사람마냥 어디론가 숨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그 속에 등장하는 이샨의 부모님이 나였고, 이샨을 이해하지 못하는 선생님이 곧 나였다. 현장에서 아이들을 지도하다 보면 이샨 같은 친구들이 한 반에 몇 명씩은 분명히 존재한다.

때로 교사는 그들이 ADHD 증후군이 아닌지 의심해 보거나 특수아 심사를 받아 보는 것은 어떤지 부모님께 건의하기도 한다. 잘하려고 노력해 봐도 어느 순간 한계를 경험하고 나면 지레 포기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요새처럼 온갖 잡무에 시달리는 현장에서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다.

그런데 부끄러운 것은 그렇게 바쁘다는 핑계로 '지상의 별처럼' 빛나야 할 아이들을 돌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수업시간에 목청을 높이며 수업과 관련없이 방해를 하는 아이, 평가지를 받으면 알 수 없는 글씨로 답을 써내려갔는데 정작 맞은 것은 별로 없는 아이, 수업은 제쳐 놓고 낙서와 입 벌리며 허공 바라보기에 정신줄을 놓아둔 아이까지 교실 내에는 별의별 학생들이 있다. 하지만 난 몇 번이나 그들을 이해해 보려고 노력했을까? 몇 번이나 그들과 대화해 보려고 시도했었을까? 그럴려는 마음은 가지고 있기나 했을까?

그래! 솔직하게 말해보자. 남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교사는 쉬운 직업이 아니다. 초등학교는 더욱더 편해 보일 수도 있지만 천직이 아닌 이상은 몇 번이나 좌절에 빠지기도 한다. 업무는 물밀 듯이 밀려오고, 행사는 한 달에도 수십 건이 있다. 뭐 좀 하려고 하면 수업, 뭐 좀 하려고 하면 회의와 상담이 신호도 주지 않고 기다리고 있다. 제출할 서류는 왜 이렇게 또 많은지 정작 수업준비는 뒷전인 경우가 많다. 무엇보다 우리의 대상은 애정에 목말라 하는 어린아이들이다. 핑계를 대자면 끝이 없다. 

이런데도 한 반에 30여 명의 학생들의 학생지도까지 담임교사가 도맡아서 해야 한다. 관심을 준다 준다 해도 어쩌다 보면 나도 모르게 최선을 다할 수 없게 되는 경우가 생기게 마련이다. 내가 가르친 학생들 중에서 이샨 같은 학생이 없었을 리는 없다. 6학년이 되도 알파벳은커녕 한글도 제대로 쓸 줄 모르는 아이들을 보며 저 아이가 크면 어떻게 될까 한숨 먼저 나왔던 적도 있었다. 더불어 새학년이 되면 제발 부진학생이 우리 반에 조금만 들어왔으면 바랐던 때도 있었다.

 어느 순간 말없이 혼자가 되는 이샨

어느 순간 말없이 혼자가 되는 이샨 ⓒ 엣나인 필름


하지만 난 어쩔 수 없이 보잘 것 없는 사람이다. 그렇게 많은 핑계를 가지고 있지만 그것들을 이겨내려고 하지 않았다. 조그만 다르게 생각하고, 시간을 아껴 더 노력하지 않았다. 아마 그럴 때마다 별들은 하나, 둘씩 내 눈 앞에서 빛을 잃고 사라져 갔을 것이다. 그렇다. <지상의 별처럼>을 보며 흘리는 눈물은 참회의 눈물인 것이다. 나의 현재까지, 지난 날들에 대한 고백과 용서의 눈물이다. 앞으로도 그러지 않으리란 법은 없지만 그래도 더 나아지려고 노력하려는 마음들이 서로 눈에서 엉켜 주룩주룩 볼로, 입술로 흐르는 것이다.

오색찬란한 만화경

미술 선생님은 말을 하지 않으려는 이샨에게 다가간다. 그리고 그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부모님과 다른 선생님들이 그냥 지나쳤던 이샨의 글에 대한 어려움을 알아내고 그것이 곧 '난독증'임을 발견한다. 어렵게 먼저 그는 부모님에게 다가가 말을 하고, 이샨을 진심으로 돌봐줄 것을 당부한다.

이샨이 미술 선생님을 만나기 전까지 다른 사람들이 그를 이해하지 못했던 것은 당연해 보인다. 인도도 한국과 다를 바 없이 성적이 중요시 되고 상대평가보다는 절대평가의 제도 아래 학생들이 분주히 공부해야 하는 구조이다. 각자의 소질과 능력이 인정받는 것보다 소수의 영재들이 칭찬을 받는다. 제도가 변화하지 않은 이상 선생님들의 노력은 물거품으로 끝날 때가 많다. 모두 이샨이 난독증임을 눈치채지 못했던 것은 이샨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교육제도 모두의 책임이다.

그런 병을 앓고 있는 것을 인지도 하지 못하면서 특수아는 특수아대로 따로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순된 교육의 현실을 아미르 칸은 이 영화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세상엔 다양한 색깔을 가진 어린이들이 있는데 학교는 그 색깔이 오직 '아름다움'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 색깔을 바라는 것 같다. 그리고 자녀의 부모와 선생님들은 그 '아름다움'을 가진 학생을 만들기 위해서 부단히도 뛰어간다. 결국 끝에 만나게 되는 것은 그 '아름다움' 때문에 어딘가에 숨어야 하는 쪽빛들. 그들도 모두 별들인데도 우린 잘 알지 못한다. 그들이 본래 초롱초롱 밝게 빛나는 별들이었는지.

마지막 미술 대회를 여는 장면은 아마도 아미르 칸이 가장 소중하게 다룬 부분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선생님도 아이들도 조건은 모두 똑같다. 흰 도화지에 물감과 크레파스, 하지만 그 도화지에 그려지는 것들은 하나도 같은 것이 없다. 카메라는 그 그림을 하나 하나 세심하게 비춘다. 마치 교실 한 명 한 명을 어루만지듯. 무수히 많은 종이엔 그 사람 각자의 모습이 있고 각자의 재능이 있다.

이것은 미술적 재능으로 따질 수 없는 사물을 보는 힘이고 자신의 감정 표출이다. 선생님은 선생님대로, 아이들은 아이대로, 특수아는 특수아대로, 글을 읽는데 어려움이 있는 아이는 그런대로 모두 자신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똑같이 그들을 바라볼 수 있을까? 카메라는 마지막에 이샨의 그림과 미술 선생님의 그림을 번갈아가며 보여준다.

 모두가 빛나는 한줄기의 빛처럼

모두가 빛나는 한줄기의 빛처럼 ⓒ 엣나인필름


이샨의 그림에는 남들이 가질 수 없는 이샨만의 자신만의 공간에 대한 애정이 들어 있다. 그는 대회를 위해서 그 누구보다 새벽부터 일어나 자신이 외로움을 달랬던 호수에가서 그때의 감정과 그 모습들을 마음에 담아와서 그림에 표현해 내었다. 그리고 미술 선생님의 그림에는 이샨이 있다. 아무도 그에게 난독증이라고 말하지 않았고 웃음거리밖에 되지 않았던 문제아 이샨은 그의 애정만큼이나 그림에서는 순진무구한 9살 소년의 모습이다. 그럼 심사위원은 둘의 그림 중 누구의 작품을 1등으로 뽑았을까?

그것은 어느 정도 기다려야만 해답을 알 수 있지만, 영화는 그 해답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세상은 그렇게 오색찬란한 만화경이다. 교육도 이와 같이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합당하는 것이어야 하는데, 나에게나 현장에서나 핑계에 가려져서 그것에 대한 진중하고 사려깊은 관심이 적다. 비단 이 영화를 보며 눈물을 흘린 것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이샨같은 아이의 문제에 대해 간과했던 사람들이라면 누구나가 마음 저리며 미술선생님과 이샨의 포옹에 박수했을 것이다.

땅의 모든 아이들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권하는 만화경

난 내 앞에서 기다리며 웃고 있을 학교의 아이들을 한 명, 한 명씩 생각해 보았다. 그들이 힘들어하는 것은 무엇일까? 너무나 좋아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려 보았다. 그러고 보니 나에게는 수십, 수백 개의 도화지가 있다. 도화지에는 웃고 떠드는 아이들이 있으며 무언가로 인해 스트레스 받고 힘들어하는 아이들이 있다. 그 도화지를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난 이샨과 미술선생님을 떠올릴 지 모르겠다. 한줄기 빛나는 천상의 빛처럼 도화지에서도 빛을 잃지 않는 아이들을 떠올리면서 말이다.

우리는 아이들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그 방법에서는 많이 서툴고 어려움을 가진 아이들을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난 이 영화를 이 땅의 모든 아이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 특히 나처럼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들이 볼 수 있게 된다면 더욱더 좋겠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는 상영이 끝났지만 인도영화의 붐으로 인해서인지 이 영화 역시 한 배급사를 통해서 수입되었기 때문에 조만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때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감동받았으면 한다.

지상의 별처럼 인도영화 아미르 칸 서울국제여성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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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전주국제영화제 관객평론가 2008 시네마디지털서울 관객심사단 2009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 관객심사단 2010 부산국제영화제 시민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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