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기사에는 영화 줄거리가 들어 있습니다.

약혼자가 오토바이에 치여 숨진다. 다친 순간 분명 살아있는 것을 알았지만 가해자인 소년은 다시 한 번 그를 치여 끝내 숨지게 만든다. 약혼녀인 다혜는 선처를 구하는 소년의 부모를 보며, 또한 소년의 앞날을 생각해서 그리고 분명 세상 떠난 약혼자도 그러기를 원할 거라 믿으며 탄원서를 쓴다.

다큐멘터리 PD였던 그녀는 직장을 그만두고 용서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사건의 피해자와 그 가족들을 만나 촬영을 시작한다. 그러던 중 알게 된 약혼자를 죽게 만든 아이의 소식. 용서를 해준 자신의 바람과 기대대로 착하게 살기는커녕 그후 친구를 살해해 소년원에 가있다는 것. 큰 충격과 혼란에 빠진다.

영화 <오늘>  포스터

▲ 영화 <오늘> 포스터 ⓒ 포시즌스카이컴퍼니


자기가 그때 용서를 해주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제대로 벌을 받았더라면 그 아이의 친구가 그렇게 죽지는 않았으리라는 생각에 죽은 아이 아버지를 찾아가 죄송하다며 눈물을 흘리고, 용서에 대해 처음부터 다시 짚어본다. 용서란 무엇이며, 과연 용서는 누가할 수 있는 것인지, 우리가 누군가에게 용서를 강요할 수 있는 것인지.

영화의 한 축을 이루는 것은 다혜와 한집에 살게 된,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는 친구 여동생 지민이다. 모든 부모는 자식을 사랑한다는 굳센 믿음으로 지민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는 다혜. 물론 그 배경에는 어린 시절 이혼한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와 그리움이 있지만, 지민이 더 이상 물러설 곳 없이 구석으로 몰리는데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친다.

영화를 보면서 나는 소설과 영화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모은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생각했다. 특히 영화가 많은 관객을 모으면서 사형제도 반대에 대한 의견이 뜨겁게 몰아쳤던 것도 기억이 났다. 그런 현상을 보면서 졸저 <유 경의 죽음준비학교(궁리, 2008)>에 '아무런 배려와 위로도 받지 못하고 시들어 가다 : 범죄 피해로 아파하는 남겨진 사람들'이라는 소제목으로 이런 글을 썼었다.

...죽음으로만 내가 저지른 죽음을 갚을 수 있고, 죽음으로만 유가족들의 아픔을 씻어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혹시라도 우리가 가해자의 인권과 존엄에 집중하고 있을 때, 저 구석에서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아무런 배려와 위로도 받지 못하고 시들어가는 건 아닌지 살펴볼 일이다...

...왜 내 남편을, 아내를, 자식을 잃어야 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어 힘들어하는 이들이 어찌 남일까. 그들이 유난히 운이 없고 일진이 사나워 당한 일이 아니며, 딱하다고 혀 한 번 차고 돌아설 일이 아니다. 아무런 잘못도 없이 피해를 입었고, 어떤 노력을 할지라도 피해를 당하기 이전의 삶으로는 도저히 돌아갈 수 없는 그들을 우리는 어떻게 도울 것인가...

영화 <오늘>의 한 장면  피해자 가족인 두 사람이 용서에 대해 이야기한다...

▲ 영화 <오늘>의 한 장면 피해자 가족인 두 사람이 용서에 대해 이야기한다... ⓒ 포시즌스카이컴퍼니


영화 상영 후 가진 감독과의 대화에서 이정향 감독은 "오래 전 '용서도 때론 죄가 된다'는 어떤 외국 사람이 쓴 칼럼을 읽고 시나리오 작업에만 6년 정도 걸렸다. 우리가 가짜 용서를 강요하는 것은 아닌지, 그것이 범죄와 재범의 악순환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었고, 그러면서 살인 피해자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싶었다"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영화 제목인 <오늘>에 대한 의미를 묻는 관객의 질문에는 이렇게 답했다.

영화 <오늘>을 만든 이정향 감독  관객과의 대화

▲ 영화 <오늘>을 만든 이정향 감독 관객과의 대화 ⓒ 유경

"피해자들은 평생 잊지 못한다. 벗어날 수도 없다. 그러나 가해자에 대한 증오와 저주로만 살다보면 자신의 삶이 황폐해진다. 그래서 '힘들겠지만 오늘 하루만이라도 당신을 위한 삶을 사십시오. 그래야 사건 이전의 삶과 조금이나마 비슷해지지 않겠습니까' 하는 뜻의 제목이다."

또한 "모든 범죄의 밑바탕에는 가정 폭력이 있다고 본다. 그 폭력이 자기 자신에게 향해 죄책감으로 나타나거나,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게 되고, 그것도 아니면 부모에게 직접 복수하는 형태로 나타난다"며, "우리가 다른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읽을 줄 아는 '공감'의 능력을 통해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타인도 소중히 여겼으면 좋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는 "피해자의 마음에 공감해서 함부로 용서를 강요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고 마무리했다.      

내가 진행하는 죽음준비교육 프로그램에는 '용서와 화해와 감사'라는 제목의 시간이 들어있다. 물론 일상 속에서 겪고 만난 일과 사람을 두고 이야기하고 글로 적어보는 것이긴 하지만, '용서'라는 단어가 그렇게 쉽게 입에 올릴 단어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함부로 입에 담지 말아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한 사람의 죽음, 그것도 무고한 죽음 앞에서 그무엇도 가벼이 이야기할 수 없지만, 특히 용서는 이 영화를 통해 단어 이상의 깊이와 무게로 내 가슴 속에 새겨졌다. 고마운 일이다.

덧붙이는 글 영화 <오늘(2011)> (감독 : 이정향 / 출연 : 송혜교, 남지현, 송창의, 기태영 등) * 제14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상영작
오늘 범죄 피해자 용서 화해 이정향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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