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반은 남자, 또 반은 여자. 여성이 없었다면 남성은 탄생할 수 있었까? 시대는 더 이상 여성을 수동적인 존재로 보지 않는다. 앞으론 오히려 남성보다 더 적극적인 여성상이 부각될 것이다. 그런 그들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불편한 일이 많이 생길 것임이 분명하다. 그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방법은 여성의 시선으로 세상보기. 그리고 여기, 그 시선이 되어 바라볼 수 있는 작품들, 여성의 시선을 통해 세상을 관찰한 작품들이 있다. 벌써 14회를 맞이한 서울국제여성영화제(4월19일~26일)가 일곱빛깔 무지개를 향해 닻을 올렸기 때문이다.

보면 설레이고 행복해지는 일곱빛깔 무지개

1. 빛의 여행 - 강연하(한국, 2011, 99분)

영화제의 매력은 뭐니뭐니해도 월드프리미어작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단편 <수진들에게>로 다수의 사람들에게 눈도장을 콕 찍은 26살의 여성 감독 강연하가 제작을 시작한 지 1년만에 자신의 장편 데뷔작을 들고 영화제를 방문한다.

26살의 '빛나'는 동거하던 남자친구가 비밀스럽게 떠난 후 시간이 지난 소포에 담긴 영상 속 공간을 찾아 떠나는 여행에서 정말 '빛'이 될 수 있을까? 데뷔작에서 맞볼 수 있는 패기보다는 감독이 이야기하려는 주제를 향한 뚝심이 보이는 근래 보기드문 사려깊은 작품임이 분명하다.

 26살, 여성감독 강연하의 장편 데뷔작 <빛의 여행>

26살, 여성감독 강연하의 장편 데뷔작 <빛의 여행> ⓒ Lotus 필름


2. 트위기 - 엠마누엘 밀레(프랑스, 2011, 79분)

<트위기>는 이제 20살이 된 사라의 이야기다. 20살하면 떠오는 단어가 무수히 많지만 사라는 오직 두 가지 고민때문에 흔들린다. 의도하지 않게 가지게 된 아기와 임시직에서 새롭게 꿈을 키워나가려는 욕망.

둘 중에 하나는 반드시 포기해야 하는 이 어려운 고민은 20살 성인된 소녀가 감당하기엔 벅찰 뿐이다. 한국에서도 아기를 가진 직업여성, 비정규직여성근로자들이 힘든 삶을 살고 있는데, 유럽에서는 이런 고민을 어떻게 감당하고 해결할지 궁금해 진다.

 20살 된 소녀의 고민을 그림 <트위기>

20살 된 소녀의 고민을 그림 <트위기> ⓒ 서울국제여성영화제


3. 11 여기에 살아 - 가샤 쿄코(일본, 2011, 90분)

정치적인 혼돈으로 가득한 한국처럼 일본에 대두되는 핵심적 과제는 재난화에 대한 대비와 해결이다. 이제 1년 정도가 지난 3·11 지진 사태 이후 재해를 극복해 나가는 이들의 모습과 생존과정이 이 다큐멘터리에 담겼다.

영화는 겉은 휘황찬란하지만 위태로운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일본인, 그 중에서도 여성들의 이야기를 심도있게 관찰한다. 아픔을 함께 공유할 수는 없겠지만 인간 내면의 목소리에 귀기울여 볼 여지는 있다.

4. 깔깔깔 희망버스 - 이수정(한국, 2012, 85분)

희망버스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나 역시 지인 중 희망버스에 직접 참여한 사람이 있을 정도로 희망버스는 지난해부터 이슈의 중심에 있었다. 하지만 거기에 참여하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사람들을 태우고 한진중공업 근로자로 대변되는 노동자를 응원하기 위해 떠나는 버스는 그것이 옳고 그름을 떠나, 우리가 그것에 참여해야 하는지 아닌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카메라는 거짓과 진실 중에 진실에 치우쳐 있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한 응원버스, 희망버스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한 응원버스, 희망버스 ⓒ 서울국제여성영화제


5. 혜화, - 민용근(한국, 2010, 108분)

이미 여러 영화제에서 공개된 <혜화, 동>을 다시 본다는 것은 그닥 새로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해보면 다시 한 번 제대로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제한된 상영공간에서만 관객들을 만났기 때문에 몇번이나 재상영된다고 해도 새로운 관객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열려 있다.

영화의 제목에서 풍겨지는 것처럼 혜화(여주인공)와 동(그녀의 아들) 사이의 긴 간격을 매우는 쉼표는 이 영화에 혜화의 한숨처럼 의미심장하다. 영화 말미에 브로콜리 너마저의 '앵콜요청금지'를 듣는 순간에는 영화를 보던 누구나 혜화가 되어 쌓아만 놓았던 감정들을 풀어헤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6. 간지들의 하루 - 이숙경(한국, 2012,85분)

학교에 다니지 않아도, 가족과 함께 있지 않아도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은 많다. '간지 작살'을 꿈꾸는 소녀들도 마찬가지다. <어떤 개인 날>로 이혼여성의 모습을 그렸던 이숙경 감독이 스스로 큰 바다로 헤엄쳐 나와서 다른 건 다 무시당해도 간지만은 남겨두고 싶은 10대 소녀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카메라에 담았을지 궁금하다. 그녀의 극영화처럼 결코 실망시키지 않을 거라는 기대감이 있다.

 간지 작살 소녀들

간지 작살 소녀들 ⓒ 서울국제여성영화제


7. 스카이랩 - 줄리델피(프랑스, 2011, 113분)

<블루> <비포선라이즈> <비포선셋> 줄리델피가 보여주는 근사한 가족만찬으로의 초대이다. 가족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일어나는 끊임없는 수다와 끝과 끝을 오고가는 대화를 통해서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일깨운다. 줄리델피가 직접 출연해서 더 보고 싶게 만드는 작품이지만 연출자로서 그녀의 역량을 판단해 볼 수 있는 기회 역시 얻을 수 있다.

하나하나 고유의 빛을 가지면서 자기의 모습을 드러내는 일곱빛깔 무지개처럼 일곱 작품 모두 개성을 가지고 있다. 더불어 영화제가 아니면 쉽게 만날 수 없는 작품들이다. 그 영화들을 보기 위해 영화제가 열리는 신촌과 송파, 대방역 등을 거닐 당신 혹은 여성, 남성이라는 존재를 생각하면 문득 흐뭇해진다. 무지개를 보기 위해 움직일 시간이 다가왔다. 자 오늘부터 1주일은 다른 건 잠시 잊고, 마음껏 무지개를 향해 달려가보자.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간지들의 하루 빛의 여행 혜화, 동 깔깔깔 희망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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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전주국제영화제 관객평론가 2008 시네마디지털서울 관객심사단 2009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 관객심사단 2010 부산국제영화제 시민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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