씹고, 뜯고...고기 먹을 때만 쓰는 단어가 아닙니다. 음악도 고기처럼 먹을 수 있습니다. 음원, 라이브, 악기, 보컬 등을 각각 뜯다 보면, 어느새 맛있는 노래 한 곡을 다 먹게 됩니다. 하지만 포털 등에서 유용한 '개념 기사'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새롭고 의미 있는, 그럼으로써 함께 공감할 수 있는 글이 되길 바랍니다. 평범한 대학생 박종원 드림 [편집자말]
 1980년생 동갑내기 친구들로 구성된 밴드 넬(Nell)

1980년생 동갑내기 친구들로 구성된 밴드 넬(Nell) ⓒ www.nellhouse.com


4년 만에 컴백한 넬은 모두의 예상을 깼다. 그들이 선보인 사운드는 우리가 예측한 그 범주 밖에 있었다.

그들이 선보인 것은 인디 시절의 그 파괴적인 우울함도, 4집 앨범에서의 시리도록 밝은 사운드도 아니었다. 화려한 멜로디를 앞세운 스타일과도 거리가 있었다. 철저히 힘을 뺐다. 사운드나 보컬로 절규하거나 압도하려는 시도를 앞세우기보다 철저히 담백해지고자 한 모습이 짙게 느껴졌다. 

어쿠스틱 기타의 비중이 늘었고 넬 특유의 카랑카랑한 느낌의 전자기타 스트로크(기타 연주방식)는 앨범에서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다. 기타 자체의 사운드도 많이 둥글둥글해졌다. 우울한 느낌에 파괴력을 덧대줬던 다이내믹한 드럼 전개도 상당히 차분해진 느낌이다.

여기에 바이올린, 플루겔혼, 오보에 등의 클래식 악기를 배치해 포인트를 줬다. 물론 앨범 모두가 단조로운 어쿠스틱 스타일로 채워진 것은 아니다. 그들은 전작에서 시도한 일렉트로닉에도 충실한 모습을 보였다. 

 넬 5집 'Slip Away'

넬 5집 'Slip Away' ⓒ 로엔 엔터테인먼트


전작보다 훨씬 담백해진 음악

1번과 2번 트랙인 '디 엔딩'(the ending)과 '고'(go)는 모두 6분대의 차분한 곡이다. '디 엔딩'은 반복되는 기타 연주로, '고'는 반복되는 피아노 연주로 곡이 시작된다. 우울함이나 멜로디보다는 차분하고 안정적인 곡의 흐름이 '리스너'를 압도한다. 한 번만 듣고는 파악하기 어려운 곡들이다.

타이틀곡인 '그리고 남겨진 것들' 역시 1, 2번 트랙 스타일과 비슷하다. 김종완의 차분히 읊조리는 보컬에 곡 종반부에 바이올린 연주로 포인트를 주었다. 다만 이 세 곡 모두 이렇다 할 훅(후렴)이라는 것이 없기 때문에 멜로디를 즐겨듣는 '리스너'에게는 다소 지루한 트랙이 될 수도 있다.

5번 트랙인 '스탠딩 인 더 레인(standing in the rain)'은 이번 앨범 중 가장 멜로디가 화려하다. 묵직한 샘플 드럼에서 전작에서 선보인 일렉트로닉의 색채가 느껴진다. 더불어 기존 넬의 멜로디 전개가 친숙하게 다가온다. 전작이었던 5집의 스타일과 가장 근접한 노래라고 하면 이해가 빠를 것 같다. 가슴 벅찬 감정을 표현하는 김종완의 보컬이 압권이다.

8번 트랙인 클리프 퍼레이드(Cliff parade)는 지난 1월 20일 공개됐던 트레일러 영상에 담겼던 곡이다. 앨범 트랙 중에서 록음악의 색채를 가장 강하게 띤 곡이다. 잘게 쪼갠 드럼 연주는 앞으로 어떤 전개가 이어질지 기대를 심어준다. 이후 샤워 물줄기처럼 쏟아지는 강한 사운드의 기타리프와 펑펑 터지는 드럼은 자연스럽게 헤드뱅잉을 유도한다.

다이나믹한 사운드지만 한편으로는 상당히 안정적인 곡 전개가 이면에서 느껴진다. 그들의 메이저 데뷔 앨범 렛 잇 레인(Let It Rain)의 수록곡 '기생충'과 비교하면 그 차이를 더욱 명확히 느낄 수 있다.

 밴드 넬이 3년 만에 돌아온다. 넬은 군 입대를 이유로 2008년 이후 활동을 중단해 왔다.

넬은 군 입대를 이유로 2008년 이후 활동을 중단해 왔다 ⓒ 마스터플랜


불면의 우울함을 선사한 넬. 올 봄, 잠은 다 잤다

무엇보다 넬의 음반에서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국내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레코딩 질감이다. 실크처럼 곱고 섬세한 사운드의 질감은 넬의 최대 무기다.

녹음을 모두 완료해도 레코딩 질감이 원하는 만큼 나오지 않으면 수정작업 없이 녹음파일을 전부 폐기하는 걸로 악명 높은 그들은 이번 앨범에서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들은 이 앨범의 마스터링 작업을 스노 패트롤(Snow patrol), R.E.M과 함께 작업해온 존 데이비스와 함께 했다.

그동안 앨범에 대한 긴 설명을 했지만, 역시 넬의 매력은 그 특유의 우울함에 있다. 이제까지 넬의 작품들을 규정하는 데는 사실 그것 하나면 충분하다. 그들에게 우울함은 언제나 변함없는 벗이며 동반자다. 이번 앨범도 마찬가지다. 예전처럼 그 우울함이 파괴적이지 않다고, 사운드가 차분해졌다고 그들의 감성 자체가 바뀐 것은 아니다. 해석하는 방식이 조금 달라졌을 뿐.

그들은 어쩌면 여러 색깔의 우울함을 하나하나 그려나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기쁨이나 희열이 가진 감정의 색깔이 한 가지가 아니듯이 말이다. 이제까지 그들이 보여준 우울함이 눈물을 쏟아내고 술 한 잔 들이키게 만드는 비관적이 것이었다면, 지금의 우울함은 봄날에 어울리는, 설렘이 섞인 불면의 그것이 아닐까. 따뜻한 봄날, 잠을 이루지 못하는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넬

ⓒ 울림엔터테인먼트


SLIP AWAY 그리고 남겨진 것들 플루겔혼 존 데이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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