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더킹>이 성공을 거둔다면 영화 <쉬리> 이후 남남북녀의 사랑을 소재로 한영화·드라마 사상 첫 번째 흥행작 반열에 오른다.

드라마 <더킹>이 성공을 거둔다면 영화 <쉬리> 이후 남남북녀의 사랑을 소재로 한영화·드라마 사상 첫 번째 흥행작 반열에 오른다. ⓒ MBC


[기사수정 26일 오후 4시 52분]

<남남북녀>란 영화가 있었다. 남북정상회담 직후 남북화해 분위기 속에서 2002년 제작된 코미디 영화다. 남쪽 날라리 대학생과 북쪽 엘리트 여대생(심지어 이름이 각각 철수와 영희인 주인공은 조인성과 김사랑이 연기했다)이 서로 다른 문화적 환경을 딛고 사랑하게 되는 과정을 그렸다. 그러나 흥행과 작품성 양면에서 '망작'의 반열에 오른바 있다.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 <봄날>로 연기력을 인정받기 전, 조인성의 '흑역사'의 한페이지를 차지하는 이 <남남북녀> 외에도, 앳된 얼굴의 지성과 지금은 활동을 중단한 김현수의  <휘파람 공주>(심지어 여주인공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막내 딸이란 설정으로) 역시 '남남북녀'의 로맨스를 다룬 문제작(?) 중 한 편이었다.

그리고 2011년에 이어 올해 '남남북녀'의 사랑을 그린 KBS 2TV <스파이명월>과 종편 TV조선 <한반도>에 이어 MBC <더킹 투하츠>(이하 <더킹>)까지 당도했다는 건 사뭇 의미심장하다. 시청률 16%를 상회하며 출발한 <더킹>이 만약 시청률 20%를 넘어 훈훈하게 마무리된다면, <쉬리> 이후 남남북녀의 사랑을 소재로 한(북한 요원 김소연이 이병헌을 짝사랑한 <아이리스>를 제외하고) 영화·드라마 사상 첫 번째 흥행작으로 기록될 것이다.

그만큼 흥미로운 소재임에도 관객들이나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기 어려웠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2회까지 선보이며 뚜껑을 연  <더킹>는 그러한 가능성을 품고 있을까.

 <더킹 투하츠>의 연출은 드라마 <다모>를 연출한 이재규PD가 맡았다.

<더킹 투하츠>의 연출은 드라마 <다모>를 연출한 이재규PD가 맡았다. ⓒ MBC


매력적인 로맨틱코미디의 소재 '남남북녀'

"남북한의 정치적인 예민한 이야기가 아니라 오랫동안 다른 환경에서 자란 북한의 김항아와 남한의 이재하가 어떻게 서로에게 적응하는지가 중심이다."

<더킹 투하츠> 이재규 PD의 변이다. 그는 "통일에 대해 관심이 적은 요즘 젊은이들에게 언젠가 그런 시기가 왔을 때 서로를 존중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하며 편하게 접근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맞다. 안 그래도 '화성'과 '금성'의 차이만큼이나 먼 남녀의 감정적 거리를 확연히 보여줄 수 있는 소재가 '남남북녀' 아니겠는가. 반면 <쉬리>는 이 소재를 유일하게 정면으로, 비극적으로 다룬 작품이기도 했다. 일본을 위시해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라는 프리미엄이 배경이 해외 관객들에게 작용했음은 물론이다.

<킹투허츠>를 포함해 대개의 드라마나 영화들이 로맨틱코미디의 기운을 품었던 것은 이재규 PD의 설명처럼 분단으로 생긴 문화적 간극이야말로 남녀 주인공의 갈등을 시작부터 잉태할 수 있는 환상의 소재이기 때문일 터다.

<킹투허츠>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대한민국이 입헌군주제를 유지하고 있다는 발상은 <궁>과 <궁S>를 거치며 시청자들에게도 낯설지 않게 됐다. 여기에 왕자 이재하(이승기 분)와 김항아(하지원 분)이 군대에서 만나 사랑을 꽃피운다는 설정이야말로 남북 분단을 도드라지게 할 수밖에 없는 요소다.

이러한 배경에서 <킹투허츠>가 획득해야 할 것은 거부감이 들지 않을 정도의 리얼리티다. 1, 2회만 놓고 보다면 '홍자매' 홍진아 작가의 디테일은 분명 여타 '남남북녀' 소재의 텍스트들에 비해 진일보했다는 느낌이다.

 왕자 이재하(이승기 분)와 김항아(하지원 분)이 군대에서 만나 사랑을 꽃피운다는 설정이야말로 남북 분단을 도드라지게 할 수밖에 없는 요소다.

왕자 이재하(이승기 분)와 김항아(하지원 분)이 군대에서 만나 사랑을 꽃피운다는 설정이야말로 남북 분단을 도드라지게 할 수밖에 없는 요소다. ⓒ MBC


현실을 바탕으로 한 판타지, 성공이 보인다

"우리가 영국처럼 왕실 땅이 있는 것도, 일본처럼 하늘의 아들이다 떠받들어지는 것도 아니고 세금으로 먹고 사는 주제에. 그러니까 국민 세금 다 받아먹으면서 돈값을 좀 하자고. 너 별명 새로 생겼잖아, 노총각 민폐 왕자. 난 진짜 우리가 전쟁 걱정 없이 편하게, 남북이 이렇게 가까워졌다, 간섭하지 말라고 다른 나라에게 알리고 싶어."

대한민국 3대왕 이재강(이성민 분)이 동생 이재하에게 WOC(세계장교대회) 남북단일팀 대회 참가를 읍소하며 내뱉은 이 대사는 많은 부분을 시사한다. 입헌군주제의 왕이 기득권을 잡고 있는 정치세력에 비해 힘이 약하다는 설정은 흥미로운 지점이면서 드라마 상에서 이재하의 심리적 약점으로 기능하고 있다. 출발부터 <킹투허츠>는 완벽한 판타지로 시작하지 않겠다는, 상상가능한 판타지를 구축하겠다는 선언을 한 셈이다.

"우리는 21세기의 왕족이야.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 우린 그냥 허수아비라는 거야. 국민들은 통일, 관심도 없어. 걔들이 원하는 건 품위 있게 웃어주는 거야. 결국 우린 마네킹이야. 대한민국 공식지정 마네킹, 허수아비."

남북분단이라는 현실에 덧씌운 입헌군주제라는 상상력은 이렇게 충분히 설득력 있는 설정으로 출발했다. 시청자들이 1회에 호평을 보냈던 건 다소의 판타지가 이러한 리얼리티에 기반하고 있어서다. 물론 주요 이야기는 사랑일 터. 제작진의 숙제는 바람둥이 이재하와 이항아가 분단이라는 정치·문화장벽을 넘어 소통하고 갈등하고 사랑하게 되는 과정을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가 관건일 테니까.

<베토벤 바이러스>를 집필한 홍진아 작가의 재기넘치는 대사와 설정들도 여전하다. 서울에 도착한 이항아가 '현빈'을 연호하는 장면의 센스를 보자. 남과 북의 군인들이 첫 대면을 할 때, 심각하게 돌변하는 분이기 속에서 이재하의 심각한 얼굴은 또 어떠한가.

여기에 하지원과 이승기라는 당대 흥행메이커들의 연기는 합격점을 받았다. <뿌리깊은 나무>의 '가리온' 윤제문은 시작부터 강렬한 카리스마로 제대로된 악역으로서의 활약을 예고했다.

과연 2000년대 초반의 화해무드와 달리 남북의 대립이 거세진 현재의 분위기를 <더킹>은 어떻게 반영해 낼까. 시청률 16%로 출발한 <킹투하츠>는 과연 '남남북녀'의 사랑을 그려내 시청자들에게까지 사랑받는 최초의 드라마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

킹투허츠 이승기 하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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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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