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제주해군기지를 둘러싼 갈등이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정부와 보수 진영에서는 '국익론'을 앞세워 밀어붙이기식 공사를 강행하고 있고, 이에 맞선 반대 진영의 저항도 거세지고 있다. 특히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이념 논쟁으로까지 번지는 양상이다. 우리 사회의 문제 해결 역량이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그렇다면 제주해군기지 건설이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감수할 만큼 '국익'으로서의 가치가 있는 것일까? 거꾸로 대한민국 국익을 위태롭게 할 가능성은 과연 없는 것일까? 네 차례에 걸쳐 게재될 심층분석에서는 이러한 의문을 진단해보고, 합리적인 대안을 찾아보고자 한다. [편집자말]
13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뉴욕 주재 한국총영사관 앞에서 열린 '구럼비 바위 장례식' 모습이다.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국제 캠페인 '세이브 제주 아일랜드 뉴욕지부가 주최한 이날 행사에는 제주와 평화를 사랑하는 교민, 미국 내 환경·평화운동가 등 20여 명이 참여했다.
 13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뉴욕 주재 한국총영사관 앞에서 열린 '구럼비 바위 장례식' 모습이다.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국제 캠페인 '세이브 제주 아일랜드 뉴욕지부가 주최한 이날 행사에는 제주와 평화를 사랑하는 교민, 미국 내 환경·평화운동가 등 20여 명이 참여했다.
ⓒ 최경준

관련사진보기


제주해군기지를 둘러싼 논란이 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미국 펜타곤이 주목할 만한 계획을 내놓았다. 아시아-태평양에 항공모함을 추가로 배치해 5척에서 6척으로 늘리고, 현재 52%인 아태 지역의 해군력을 60%까지 늘리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이는 미국의 대중국 포위·봉쇄 전략이 강화될 것임을 예고해주는 대목으로, 제주해군기지가 한국의 전략적 자산이 아니라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더욱 높여주고 있다.

미국 국방부 부장관인 애슈턴 카터는 지난 8일 스위스에서 열린 방위산업체 회의에서 이러한 계획이 중국을 겨냥한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 "미국은 지난 60년간 아태 지역에서 분쟁 예방 역할을 해왔다"며 "우리는 그러한 역할을 계속하고 우리의 투자가 그러한 목적에 부합하기를 원한다"고 답했다.

그는 또한 육군과 해병대의 순환 배치 계획을 설명하면서 "아태 지역에서 우리의 군대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늘어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전했다.

다음 날인 9일 기자회견에 나선 리언 파네타 국방장관의 발언은 더욱 주목을 끈다. 그는 주한미군이 "한국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할 뿐만 아니라, 미국이 아태 지역에 항상 군사력을 유지할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군사력"이라며, 주한미군의 목적이 중국 견제를 포함한 '지역적 역할'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SOFA, 전략적 유연성 그리고 한미 전략동맹

제주해군기지는 1차적으로는 한국의 해군기지다. 그러나 미국이 제주해군기지를 사용하고 싶으면 사용할 수 있다는 것도 한미관계의 냉엄한 현실이다. 김관진 국방장관도 작년 7월 "올 수 있으면 오겠지만 미국 항모가 (제주기지에) 들어올 것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제주해군기지가 건설되면 왜 미국이 사용할 가능성이 높은지 하나하나씩 따져보자.

먼저 한미동맹의 법적·제도적 문제다. 국방부는 "SOFA 규정상 미군이 우리 시설을 활용하려면 관련 정부, 외교통상부의 승인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주둔군지위협정(SOFA)에는 "(미국의) 선박과 항공기는 대한민국의 어떠한 항구나 또는 비행장에도 입항료 또는 착륙료를 부담하지 아니하고 출입할 수 있다"고 나와 있고, 이를 실증하듯 한미동맹 역사상 미국이 한국에 군사력을 유출입하는데 사전 '승인'을 받은 사례는 없다.

더구나 노무현 정부 때 한미 간에 합의된 '전략적 유연성'과 이명박 정부가 추진해온 '한미 전략동맹'은 제주해군기지가 미 해군의 기지로도 이용될 수 있다는 우려를 더욱 부채질한다. 전략적 유연성은 주한미군의 해외 차출, 해외 주둔 미군의 한국으로의 유입 및 경유를 위한 것으로 그 핵심적인 목적은 중국에 대한 군사적 견제와 봉쇄에 있다.

그런데 참여정부는 미국 군사력의 유출입과 관련해 '사전 협의'를 명시하는 데 실패했다. 자국 군사력의 운용에 타국이 간섭하는 것에 대한 미국의 체질적인 거부감 때문이었다.

미중 간에 군사 충돌 발생 시 미국이 한국을 발진 기지나 중간 기지로 삼으면, 한중관계는 파탄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러한 잠재적 위험을 바로잡았어야 할 이명박 정부는 혹을 하나 더 붙이고 말았다. '한미 전략동맹'이 바로 그것이다. 미국은 전략동맹의 목적이 중국을 겨냥한 것임을 분명히 했고, MB 정부도 이에 맞장구를 쳐줬다. 중국이 한미동맹을 "냉전시대의 유물"이라고 강력히 반발한 것도 이러한 점이 반영된 것이다.

미국의 대중국 봉쇄 전략의 구체적 양상

8일 오후 제주도 서귀포시 제주 해군기지 건설현장 해상에서 시공사 관계자들이 케이슨(방파제 축조용 사각 콘크리트 구조물)을 투하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8일 오후 제주도 서귀포시 제주 해군기지 건설현장 해상에서 시공사 관계자들이 케이슨(방파제 축조용 사각 콘크리트 구조물)을 투하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태평양 세력"을 자임하면서 중국 봉쇄 수위를 높이고 있는 미국 군사 전략의 변화를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다. 전략적 중심축을 대서양 및 중동에서 아시아-태평양으로 옮기기로 한 미국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해군력의 60%를 아태 지역에 집중시키고 있다. 이와 관련해 주목되는 것은 크게 네 가지다.

첫째는 아시아에 추가적인 기지와 시설, 그리고 기항지를 확보해 미 해군의 접근 능력 및 신속성과 기동성을 대폭 강화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미국은 지역해양안보구상(RMSI)과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등을 주도하면서 동맹·우방국들을 미국의 해양 전략에 포섭하려고 하고 있다.

2011년 6월 로버트 게이츠 당시 미 국방장관이 "앞으로 미군은 아시아에서 기항지를 늘리고 다수 국가와의 다국적 훈련도 확대할 것"이라고 말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둘째는 미국의 동아시아 동맹 전략이 양자 동맹에서 중국 포위를 겨냥한 다자간 동맹으로 전환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미국은 자국을 중심으로 한국-일본-호주-인도를 연결하고 동남아 국가들과의 군사협력 강화에 공을 들이고 있다. 그런데 "뼛속까지 친미·친일"이라던 MB 정부는 한미 전략동맹과 함께 한일 군사협력을 추진함으로서, 미국의 의도에 적극 부응하고 있다.

셋째는 미국의 '신냉전 전쟁 계획'으로 일컬어지는 '공해전(空海戰, Air-Sea Battle)' 개념이다. 미국이 작년 11월 공식 발표한 공해전 개념은 미 공군, 해군, 해병대가 합동 전력을 구축해 중국의 '거부 전략(denial strategy, 미국이 중국의 세력권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차단하는 전략)'을 무력화하고, 아태 지역에서 미국의 "접근의 자유(freedom of access)"를 유지·강화하겠다는 목적에서 나온 것이다.

넷째는 미국이 미사일방어체제(MD)의 핵심을 이지스함에 스탠다드 미사일(SM)-3 계열의 미사일을 장착하는 이지스탄도미사일방어체제(ABMD)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2011년까지 21척의 이지스함을 MD용으로 개량한 미국은 2016년까지 이 함정의 숫자를 41척으로 늘린다는 방침이다. 미국이 해군력의 60%를 아태 지역에 집중하기로 한 만큼, 41척 가운데 30척 안팎은 이 지역에 배치될 것이 확실하다.

MD 참여 계획 없다? 미국 생각은 다르다

MD 문제는 보다 상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부시는 물론이고 오바마 행정부도 MD를 군사 패권주의의 핵심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펜타곤은 "미국의 아시아 기지가 중국의 탄도미사일에 더욱 취약해지고 있다"며, MD를 핵심적인 군비 투자 우선 대상으로 삼고 있다.

이와 관련해 주목할 것은 이명박 정부 들어 가속화되고 있는 한미 간의 MD 협력이다. 그동안 이명박 정부와 군 당국은 "한국은 미국 MD에 참여할 계획이 없다"는 점과 "제주해군기지는 MD와 무관하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총체적 진실은 MB 정부가 밀실에서 미국과 MD 협력을 가속화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2010년에는 미국과 해상 MD 훈련을 실시한 바 있고, 공동연구 약정까지 체결했다.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하듯 미국의 오바마 행정부는 한국을 일본, 호주 등과 함께 미국의 MD에 협력하고 있는 대표적인 국가로 분류해놓고 있다.

또한 MB 정부는 일본과도 군사정보협정 체결을 검토하고 있는데, 이 협정 체결의 핵심 대상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정보이다. 이러한 추세가 계속된다면 미국이 희망해온 한-미-일-호주로 이어지는 동아시아 MD 체제가 가속화될 우려가 크다.

더구나 한미 간에는 한국이 미국의 아시아 핵심 기지인 오키나와나 괌으로 향하는 탄도미사일을 요격하는 데 기여하는 방안까지 밀실에서 논의되고 있다. 그런데 제주 남방 해역은 오키나와와 괌으로 향하는 탄도미사일 요격을 시도할 수 있는 최적의 위치이다.

또한 앞서 말한 것처럼 미국은 ABMD를 비약적으로 늘릴 계획이다. 제주해군기지가 건설되면, 좁게는 한미간에, 넓게는 미국 주도의 동아시아 동맹 체제의 중요 기지가 될 공산이 커지게 되고, 그 핵심에는 MD가 자리잡게 될 것이라는 지적을 '반대를 위한 반대'로 묵살해서는 안 되는 까닭이다.

제주도의 지정학적 위치와 제주해군기지

해군이 구럼비 바위 지역의 발파를 이틀째 강행하고 있는 가운데, 8일 오후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구 해군기지 공사현장 앞에서 마을 주민들과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제주 해군기지의 백지화를 촉구하고 있다.
 해군이 구럼비 바위 지역의 발파를 이틀째 강행하고 있는 가운데, 8일 오후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구 해군기지 공사현장 앞에서 마을 주민들과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제주 해군기지의 백지화를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제주도가 지니고 있는 지정학적 특징을 보다 자세히 살펴볼 필요도 있다. 해군 측은 "미국은 이미 대만으로부터 330해리 떨어진 일본의 오키나와에 기지를 확보하고 있고, 제주에서 대만까지 560해리임을 고려할 때" 미국이 제주해군기지를 이용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오키나와에는 대부분 공군기지와 해병대 기지가 있지, 제주에 건설 중인 것과 같은 대규모 해군기지는 없다. 반면, 제주해군기지는 여러 척의 구축함과 잠수함, 그리고 항공모함 정박까지 가능한 규모로 설계되어 있다.

동아시아 지정학의 관점에서 볼 때, 제주해군기지가 '남중국해-대만해협-센카쿠열도(중국명 : 댜오위다오)를 포함한 동중국해-서해'로 이어지는 미-중 사이의 '갈등의 바다'의 요충지에 건설되고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미국의 대만 방어는 동아시아 전략의 핵심이고, 반대로 중국의 대만 통일은 국시(國是)에 해당된다. 센카쿠 열도가 미일동맹의 적용 범위에 포함된다는 것도 미국의 공식 입장이다.

미국은 2010년부터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에도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포격전을 거치면서 서해 역시 미중 패권 경쟁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과연 정부가 이와 같은 지정학적 민감성을 파악하고도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강행하고 있는지, 강한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모든 내용을 종합해볼 때, 미국은 제주해군기지가 건설되면 이용하고 싶은 강한 유혹을 느낄 것이다. 반면 현행 한미상호방위조약 및 SOFA, 그리고 전략적 유연성 등 한미동맹의 비대칭성을 고려할 때 한국이 이를 거부하기도 힘들 것이다.

더군다나 제주해군기지가 만들어지면 미국은 SOFA에 따라 사전 승인도 받을 필요가 없고, 입항료를 지불할 의무도 없다. 돈도 아낄 수 있고 번거로운 방문국지위협정도 별도로 체결할 필요가 없는데, 제주해군기지 사용을 마다할 이유가 과연 있겠는가?

덧붙이는 글 | 다음에 이어질 글은 '제주해군기지와 한국-미국-중국(하)'입니다. 정욱식 기자는 평화네트워크(www.peacekorea.org) 대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그:#제주해군기지, #강정마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