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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해군기지를 둘러싼 갈등이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정부와 보수 진영에서는 '국익론'을 앞세워 밀어붙이기식 공사를 강행하고 있고, 이에 맞선 반대 진영의 저항도 거세지고 있다. 특히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이념 논쟁으로까지 번지는 양상이다. 우리 사회의 문제 해결 역량이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그렇다면 제주해군기지 건설이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감수할 만큼 '국익'으로서의 가치가 있는 것일까? 거꾸로 대한민국 국익을 위태롭게 할 가능성은 과연 없는 것일까? 네 차례에 걸쳐 게재될 심층분석에서는 이러한 의문을 진단해보고, 합리적인 대안을 찾아보고자 한다. [편집자말]
제주해군기지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증폭되고 있는 가운데, 중국이 이어도 관할권을 주장하고 나서 상황이 더욱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다.

3월 12일자 <조선일보>는 '한국 左派, 이어도 바다도 중국에 떼주자 할 텐가'라는 선정적인 제목을 달고는 "몇 년 안에 강정마을 앞바다에 중국 항모전단이 모습을 보일 것이다. 지금 강정마을에서 기지 건설 반대 굿을 하는 좌파는 그때는 이어도를 중국에 떼주자 할 셈인가"라고 제주해군기지 반대 진영을 매도했다. <중앙일보>도 "중국이 이어도까지 넘보고 있는 마당에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고 주장했다.

<조선일보> 12일자 1면(위)과 사설(아래)
 <조선일보> 12일자 1면(위)과 사설(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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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문제가 잘 보여주듯, 영토와 주권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대단히 민감한 문제다. 적지 않은 사람들은 이어도를 영토로 간주하고 있고, 그래서 제주해군기지 건설이 반드시 필요하다고도 여긴다. 통합진보당의 심상정 공동대표가 '이어도는 섬이 아니라 암초'라고 말했다가, 보수 진영의 공세에 시달리고 있는 것도 이어도 문제의 민감성을 잘 보여준다.

잘 알려진 것처럼, 정부와 해군이 제주해군기지 건설의 가장 큰 명분 가운데 하나로 내세우고 있는 것이 바로 이어도 보호다. 해군기지 건설 사업의 책임자인 해군 전력기획 참모부장 구옥희 소장이 지난해 8월 <중앙선데이>와 한 인터뷰에서 "이어도에서 석유가 터졌다고 생각해보라. 중국·일본이 가만 있겠나. 그런데 제주도에 기지를 둔 우리 기동 전단이 항상 이어도를 초계하고 있다면 누가 뭐라고 하겠나"라고 말한 바 있다.

또한 국방부는 향후 5년간 6조5천억 원을 투입해 '이어도-독도 함대' 창설에 나설 계획이다. 이지스함 2척을 비롯한 구축함 4척, 초계함과 잠수함 각각 1척 등 모두 10척으로 함대를 구성해 영유권 수호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함대가 창설되면 2015년 완공 예정인 제주해군기지를 모항으로 사용한다는 방침이다. 

그렇다면 제주해군기지가 건설되어 해군이 이어도 인근 수역에서 초계 활동을 벌이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과연 정부와 해군의 주장처럼 우리의 해양 주권을 굳건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올까? 아니면 중국의 거센 반발을 초래해 이어도 근해가 분쟁 수역화되고 한국의 안보와 경제를 위태롭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할까?

이어도는 '섬이 아니라 수중 암초'

제주해군기지를 이용한 이어도 초계 활동의 타당성을 따져보기에 앞서 이어도 문제의 기본적인 특징부터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선 이어도는 섬이 아니라 '수중 암초'이기 때문에 영토나 영해 문제가 될 수 없다. 지난해 7월 이어도 인근 수역에서 한중간의 외교 마찰이 빚어졌을 때, 외통부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어도는 섬이 아닌, 수중 암초이기 때문에 영토나 영해문제가 될 수 없다. 한·중 양국은 이어도가 영토분쟁 지역이 아니라는 점에 합의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3월 12일 언론사 편집국장과의 간담회에서 "이어도 문제는 근본적으로 이해해 주셔야 할 것은 '영토 분쟁은 아니다'"라며 "수심 아래, 해면 4~5미터 아래에 있기 때문에 영토라 할 순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에 따라 이어도를 '영토'로 부르면서 진보 진영에 대한 공세의 빌미로 삼는 것은 객관적인 사실에도 부합하지 않는 정략적 공세에 불과하다. 이러한 지적이 이어도를 포기해도 좋다는 취지가 아님은 물론이다. 객관적 사실조차 무시한 색깔론과 과잉 대응이 남남갈등과 중국과의 마찰을 야기해, 이어도 문제의 합리적인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는 점을 지적하기 위함이다.

이어도 문제의 근원은 이 암초가 한국과 중국이 주장하는 배타적경제수역(EEZ) 안에 있다는 데에 있다. 유엔해양법협약에 따르면, 각 국가는 연안 바깥 200해리까지 EEZ를 설정할 수 있다. 이에 따라 한국과 중국은 1996년에 이 협약을 비준하고는 200해리의 EEZ를 선포했다.

그런데 이어도는 제주 마라도에서 약 80해리, 중국 퉁다오에서 약 133해리 떨어져 있다. 한국은 이어도가 우리 연안에서 훨씬 가깝기 때문에 우리의 EEZ에 포함된다고 주장한다. 반면 중국은 유엔해양법이 수심 200m까지인 대륙붕에 대해서도 배타적 권리를 주장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자국의 대륙붕과 연결되어 있는 이어도는 자신의 관할해역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중국은 연안의 길이와 인구의 차이를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양측이 주장하는 EEZ가 겹치는 경우에 유엔해양법은 협상을 통해 EEZ 경계선을 획정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양국 정부는 1990년대부터 16차례에 걸쳐 국장급 실무 협상을 벌이고 있지만, 이렇다 할 성과는 없는 상태다.

이어도 문제의 민감성은 지리경제적, 지정학적 측면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이어도 인근 해저에 상당량의 원유와 천연가스가 매장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자원 쟁탈전의 성격도 띠고 있다. 또한 미국과 중국의 동아시아 해양 패권 경쟁이 가시화되면서 전략적 요충지인 제주 남방해역과 동중국해, 그리고 서해의 군사적 민감성도 높아지고 있다.

중국, 이어도 대응 수위 높이는 이유

해군이 구럼비 바위 지역의 발파를 이틀째 강행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8일 오후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구 해군기지 공사현장 앞에서 마을 주민들과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제주 해군기지의 백지화를 촉구하며 행진을 벌이고 있다.
 해군이 구럼비 바위 지역의 발파를 이틀째 강행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8일 오후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구 해군기지 공사현장 앞에서 마을 주민들과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제주 해군기지의 백지화를 촉구하며 행진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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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할 점은 최근 몇 년간 이어도에 대한 중국의 대응 수위가 눈에 띄게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에너지 수요를 감당할 새로운 에너지원 확보, 자국의 해양 수송로 보호, 점증하는 미국과의 동아시아 해양 패권 경쟁에 대한 대비책 등 국가전략적 차원의 의도가 내포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주목할 점은 한국의 제주해군기지 건설에 대한 맞대응의 성격도 있어 보인다는 것이다. 중국은 1996년 이어도를 포함한 배타적경제수역을 발표했지만, 대응 수위는 그리 높지 않았었다. 2003년 한국이 이어도에 해양과학기지를 건설할 때에도 외교적 항의 수준에 그쳤었다. 그러나 2007년 이후에는 대응의 수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해 12월 국가해양국 산하기구 사이트를 통해 이어도를 '쑤옌자오(蘇巖礁)'라고 부르면서 자국의 관할해역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한국이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공식 결정한 직후였다.

제주해군기지 건설이 본격 시작된 지난해 여름부터 중국의 이어도에 대한 대응 수위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7월에는 이어도 인근에서 인양 작업을 벌이던 우리 선박에게 철수를 요구한 바 있고, 12월에는 3천톤급 순시선을 투입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올해 3월 3일에는 "이어도가 중국 관할해역에 있으며 감시선과 항공기를 통한 정기순찰 범위에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중국이 이처럼 대응 수위를 높이고 있는 데에는 한국과의 EEZ 획정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는 의도와 함께, 제주해군기지에 대한 견제의 의미도 내포된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로 위에서 언급한 중국의 일련의 행태는 한국 정부가 해군기지 건설을 강행해온 것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

또한 중국의 한 관변학자는 제주해군기지 문제가 국제적 이슈로 급부상한 지난해 9월, <환구시보>와 그 영문판인 <Global Times>에 "오늘날 한국은 중국인 관광을 통해 돈을 버는 동시에 그 관광객들의 고국을 무력을 통해 위협하려고 한다"며 "우리는 한국으로 하여금 이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필자가 지난해 10월 하순 미국 워싱턴에서 만난 중국의 안보 전문가 역시 "중국은 한국을 적대할 의도가 없는데, 왜 한국이 제주도에 해군기지를 건설하려고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한 바 있다. 

문제는 보수 진영이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제주해군기지 반대 진영을 매도하기 위해 앞으로도 '중국위협론'을 계속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지난해 8월 중국의 첫 항공모함 바랴크호가 해상 시운전에 들어갔을 때, 그리고 최근 중국이 이어도에 대한 정기 순찰 입장을 밝혔을 때에도, 보수 진영은 이를 근거로 제주해군기지 건설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주장은 물론이고 이를 반대하는 진보 세력에 대한 정치 공세를 강화해왔다. 앞으로 중국이 이어도에 감시선을 파견하는 등에 행동에 나설 때마다 '중국위협론'을 통한 '진보 진영 때리기'가 더욱 기승을 부릴 것임을 예고해주는 대목이다.

이어도 문제, 정상회담에서 다뤄라

한중 양국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상황에서 이어도 해법을 찾기란 쉽지 않다. 이명박 정부 출범이후 대북정책, 한미동맹,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 탈북자 문제 등을 둘러싸고 양국 관계가 크게 틀어졌다는 점도 이어도 문제의 외교적 해결을 어렵게 하는 배경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해군과 안보 전문가들, 그리고 보수 언론들은 제주해군기지에 기동 전단을 배치해 이어도 초계 활동을 벌이는 것이 중국의 위협에 대처할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안보는 상대가 있는 게임'이다. 우리 측에서 먼저 합의되지 않은 수역에 해군을 투입해 초계 활동에 나선다면, 중국이 군사적으로 맞대응에 나설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고 이어도 문제는 외교 갈등을 넘어 군사 분쟁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 

만약 한국이 먼저 이어도 인근에 해군 함정을 보내 초계 활동에 나선다면, 중국이 강력한 맞대응을 선택할 것으로 보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한국과 EEZ 설정 협상이 마무리되지 않는 상태에서 한국 해군이 중국이 주장하는 EEZ로 들어오는 것 자체를 '주권 침해'로 간주할 것이기 때문이다.

해군의 구럼비 해안 폭파 강행을 앞둔 지난 7일 오전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마을 해군기지 공사장 정문 앞에서 마을 주민들과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화약 운반 차량의 이동을 저지하기 위해 경찰들과 대치를 벌이고 있다.
 해군의 구럼비 해안 폭파 강행을 앞둔 지난 7일 오전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마을 해군기지 공사장 정문 앞에서 마을 주민들과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화약 운반 차량의 이동을 저지하기 위해 경찰들과 대치를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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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는 중국이 한국 해군의 이어도 초계 활동을 눈 감을 경우, 남중국해의 난사 군도나 동중국해의 센카쿠 열도(중국명: 다오위다오) 분쟁과 관련해서도 잘못된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고 판단할 것이기 때문이다. 세력권이 넓게 퍼져 있는 강대국은 어느 한 지역에서의 후퇴가 다른 지역에서의 대결을 초래할 것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러한 분석이 적실성을 띤다면, 제주해군기지를 건설해 이어도 초계 활동에 나서는 것은 '미래의 불확실한 위협'을 '확실한 위협'으로 만드는 극히 어리석고도 위험한 선택이 될 것이다. 양국 해군이 이어도를 사이에 두고 대치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그 외교적, 안보적, 경제적 손실은 감당하기 힘든 수준으로 치달을 수 있다.

양국 내에서는 반중-반한 감정이 고조될 것은 불보듯 뻔하다. 한국이 먼저 군함을 보내 발생한 상황에서는 국제여론이 우리에게 우호적으로 조성될 것으로 기대하는 것도 쉽지 않다. 중국이 이미 미국 및 일본과 합친 것보다 더 큰 한국의 최대 무역 상대국이 된 상황이라는 점에서 경제적 피해도 우려된다. 중국 정부는 일본을 굴복시키는데 사용한 희토류 수출 중단이나 한국에 대한 여행 금지 조치 등 경제적 보복에 나설 수도 있다. 또한 한중 해군 대치가 남북관계 불안과 조우할 경우, 서해의 안보 불안도 증폭될 수 있다.

냉정하게 볼 때, 한국이 이러한 상황을 계속 버티기도 힘들다. 아마도 미래의 한국 정부는 어떤 정부가 되었든, 해군 함정을 철수시켜 사태를 수습하려 할 것이다. 이는 곧 이어도를 포함한 EEZ 획정을 둘러싼 협상력의 저하로도 이어지고 만다.

결국 이어도 문제의 해법은 군사적 대응보다는 능동적인 협상을 통해 EEZ 합의에 도달하는 것에 두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장급에게 협상을 맡겨둘 것이 아니라, 정상회담 등 최고위 수준으로 협상틀을 격상해야 한다. 양국 정부가 이명박-후진타오 정상회담을 추진하고 있는 만큼, 이 회담을 통해 "상호 만족할 수 있는 방법으로 EEZ 협상을 조속히 마무리하기 위해 고위급 회담을 열기"로 합의하는 것도 적극 고려할 필요가 있다. 때마침 중국 외교부도 3월 12일 이어도는 "중국과 한국의 EEZ이 중첩되는 지역"이라며 "쌍방이 담판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려해볼 만한 타협책으로는 중국으로부터 한국의 EEZ에 이어도가 포함되는 것을 동의받는 대신에, 한-중 양국, 혹은 한-중-일 3국이 공동으로 원유와 천연가스를 조사·개발하는 방안에 합의하는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현실적으로 양국이 EEZ에 합의하지 않는 한, 어떤 나라도 이어도 인근의 해저 자원을 손에 넣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도 중요하다. 
이어도를 지킬 수 있는 힘, 그건 제주해군기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외교력에 있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정욱식 기자는 평화네트워크(www.peacekorea.org) 대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그:#강정마을, #제주해군기지, #이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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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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