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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해군기지를 둘러싼 갈등이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정부와 보수 진영에서는 '국익론'을 앞세워 밀어붙이기식 공사를 강행하고 있고, 이에 맞선 반대 진영의 저항도 거세지고 있다. 특히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이념 논쟁으로까지 번지는 양상이다. 우리 사회의 문제 해결 역량이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그렇다면 제주해군기지 건설이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감수할 만큼 '국익'으로서의 가치가 있는 것일까? 거꾸로 대한민국 국익을 위태롭게 할 가능성은 과연 없는 것일까? 네 차례에 걸쳐 게재될 심층분석에서는 이러한 의문을 진단해보고, 합리적인 대안을 찾아보고자 한다. [편집자말]
노무현 정부 당시 제주 해군기지를 추진할 때 내세운 최대 명분은 '우리의 해양수송로 보호'였다. 2005년 해군 측은 "제주도 남쪽 해상로는 원유수입량의 90% 이상, 수출물동량의 60%가 지나가는 수송로"라며 "제주 남쪽에서 인도네시아 말라카 해협으로 이어지는 원유와 수출입 물자 등의 해상수송로를 보호하는 최남쪽 전초기지로서 화순항 건설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했다.

2007년 5월, 제주 강정마을을 해군기지 부지로 결정할 때에도 '우리나라가 도입하는 원유의 99.8%, 곡물 100%, 원자재의 100%가 운송되지만 수시로 해적의 위협에 노출돼 있는 말라카 해협 등에서 비상사태가 발생할 경우 지원 함정을 긴급 투입할 수 있는 지리적 이점을 고려했다'는 설명이 있었다.

'말라카 해협이 15일 이상 봉쇄될 경우 우리 국가경제가 마비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제주 해군기지를 거점으로 한 해군의 안정적인 해상교통로 확보는 국가 생존을 위해서도 필수적이라는 것'이라는 분석도 존재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22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취임 4주년을 맞아 내외신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12일 서울 양재동 서울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 한국신문방송 편집인협회 초청 대통령과 편집·보도국장 토론회에서 "북한이 지금 가장 반대하는 것이 제주해군기지, 한미FTA"라며 "제주기지가 북한을 대응하기 위해 하는 것은 아니다. 제주기지는 글로벌한 입장에서 안보 플러스 경제하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문제를 갖고 반대하는데 대해선 정부도 입장을 분명히 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진은 지난 2월 22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취임 4주년을 맞아 내외신 기자회견 모습.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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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노무현 정부의 판단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은 "옳은 판단을 했다"고 높이 평가했다. 이 대통령은 3월 9일 중앙부처 국장·과장과의 대화에서 "우리가 소말리아에 배가 1년에 500척 드나드는 것을 보호하기 위해 함정이 가 있는 것 아닌가"라며 이렇게 강조했다.

"제주해협에서 약 50만 척이 움직이는데 세계 각국의 배가 움직인다. 중국도, 일본도. 그럼 그걸 무방비 상태로 있느냐. 진해기지, 평택기지에서 가려면 전속도로 가도 8시간이 걸린다. 그 동안 해상에서 무슨 일 벌어질지 모르는데 어떻게 될 것인가. 그런 고민을 그 당시 한 거 같다. 그래서 굉장히 (노무현 정부가) 옳은 판단을 했다고 하는 거다."

말라카 해협 해적, 이미 사라졌다

 해군이 구럼비 바위 지역의 발파를 시작한 7일 오전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포구에서 한 시민이 해군기지 건설 중단을 요구하며 깃발을 흔들어 보이고 있다.
 해군이 구럼비 바위 지역의 발파를 시작한 지난 7일 오전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포구에서 한 시민이 해군기지 건설 중단을 요구하며 깃발을 흔들어 보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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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점이 있다. 해군기지 건설의 최대 명분 중 하나였던 말라카 해협 해적 퇴치가 이미 이뤄졌다는 점이다. 인도양과 태평양을 연결하는 말라카 해협의 물동량은 세계 무역량의 40%를 차지할 정도로 세계 해상 무역의 중심지이다. 또한 해협의 최소 폭이 2.7km에 불과하고 많은 섬들이 있어 해적 근거지로는 최상의 조건을 갖고 있다. 국제해사기구에 따르면, 2004년 해적의 조직적 공격은 38건에 달했고, 2005년 영국의 보험사들은 이 해협을 사실상의 전시 지역으로 분류하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 말라카 해협의 해적 활동은 사실상 사라졌다. 국토해양부가 2011년 11월 1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말라카 해협에서의 해적 피해는 2007년 4건, 2008년과 2009년 2건, 2010년 1건, 그리고 2011년 9월까지는 1건도 없었던 것으로 나와 있다. 이들 수치는 모든 나라의 피해 발생 상황을 나타낸 것으로 최근 한국 선박이 말라카 해협에서 공격을 당했다는 보고는 없다.

이처럼 한 때 '해적의 소굴'로 악명이 높았던 말라카 해협의 해적이 사실상 사라진 데에는 국제공조체계가 힘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합뉴스> 2011년 1월 25일 치 보도에 따르면, 말라카 해협의 연안국들과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16개국이 해적정보공유센터를 설립해 정보 공유 및 합동 순찰 등 공조 체계를 구축한 것이 주효했다. 이와 관련해 국토해양부의 한 관계자는 "말라카 해협의 경우 역내 국가 간 공조체제가 구축되면서 해적들이 근거지를 상실, 소말리아 해적같은 조직적 해적들이 모습을 감췄다"고 말했다.

이러한 현실은 노무현 정부 때 해군기지 사업을 추진했던 가장 큰 문제 가운데 하나가 해결됐고, 이에 따라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할 사유가 또 하나 늘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남방해역, 봉쇄당할 위험 있는가

 해군이 구럼비 바위 지역의 발파를 이틀째 강행하고 있는 가운데, 8일 오후 제주도 서귀포시 제주 해군기지 건설현장 해상에서 시공사가 평탄화 작업을 하기 위해 모래를 투하하고 있다.
 해군이 구럼비 바위 지역의 발파를 이틀째 강행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8일 오후 제주도 서귀포시 제주 해군기지 건설현장 해상에서 시공사가 평탄화 작업을 하기 위해 모래를 투하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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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카 해협에서 해적의 위협이 사라졌더라도, 주변국에 의해 우리의 해양 수송로가 위협받거나 봉쇄당하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제주 해군기지를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다. 남방해역이 우리의 생명선에 해당하는 만큼, 일본과 중국의 '미래의 불확실한 위협'에 대처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 역시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일단 건국 이래로 우리의 남방해역에서 군사적 분쟁이 발생한 적은 없다. 또한 현재에도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서둘러야 할 만큼 심각한 군사적 위협도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과거와 현재에 위협이 없다고 해서 미래에도 위협이 없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미래의 불확실한 위협'에 대비한다는 명분으로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강행할 경우, 오히려 불확실한 위협을 확실한 위협으로 만들 우려는 없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현실적으로 일본이 우리 선박에 군사적 위해를 가하거나 우리의 해양 수송로를 봉쇄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일본 헌법 9조에는 "국권의 발동에 의거한 전쟁 및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의 행사는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는 영구히 이를 포기한다"고 명시돼 있다. 비록 평화헌법의 취지가 많이 퇴색된 것은 사실이지만, 일본이 먼저 한국의 남방해역에 군사적 위협을 가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일각에서는 독도 문제를 거론하지만, 이 문제는 군사 갈등이라기보다는 외교 갈등의 성격이 짙고, 정부와 군당국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울릉도에 해군기지를 확장을 추진하는 등 대비책도 세워두고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중국위협론'을 거론한다. 실제로 중국은 급속한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군사력도 대폭 강화하고 있고, 최근에는 항공모함 건조 등 해군력 증강에도 상당한 공을 들이고 있다. 특히 한국과는 이어도 문제를 놓고 갈등하고 있다.

중국이 한국의 해양 수송로를 포함한 남방해역에 군사적 위협을 가할 가능성이 있는 시나리오로는 이어도 인근에서의 군사적 충돌 발생, 미국과 중국의 무력 갈등 발생시 한국이 미국을 지원할 경우 등을 떠올려 볼 수 있다. 이 두 가지 문제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제주해군기지 건설의 위험성은 바로 여기에서 연유한다.

해군의 계획대로 제주해군기지를 만들어 이어도에 대한 초계 활동에 나서면, 우리에게 최악의 시나리오, 즉 이어도 인근 수역에서의 한-중 해군 대치와 이에 따른 양국 관계의 파탄은 피하기 어려워진다. 미군이 중국과의 무력 갈등시 제주 해군기지를 사용하려고 할 경우에도 마찬가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하여, 제주 해군기지는 미래에 있을 수도 있는 해양 안보 불안을 해소해주는 '소화기'가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의 안보와 경제를 위험에 빠뜨리는 '인화물질'이 될 위험이 있다. 우리의 해양 안보를 위해 건설한다는 제주 해군기지가 거꾸로 우리의 생명줄을 옥죄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정부가 진정 제주 해군기지 사업이 해양 수송로 보호를 비롯한 한국의 국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면 이러한 우려에 대해 납득할 만한 설명부터 내놓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 정욱식 기자는 평화네트워크 대표입니다.

다음에 이어질 글은 '이어도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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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를 맡고 있는 정욱식입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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