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

누군가를 위로해 마음을 편하게 한다는 말이 어떤 이들에겐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단어로 쓰인다. 일제 점령기, 전선으로 끌려가 일본 군인의 성노예 생활을 강요당한 여성을 우리는 '일본군 위안부'라고 부른다. (실은 일본인 입장에서의 '위안부'보다 '성노예'라는 강제성을 담은 용어가 맞다. 흔히 쓰이는 '종군 위안부' 역시 자발적인 의미가 내포돼 있어 맞지 않은 표현이다.)

<소녀이야기> 포스터 애니메이션 <소녀이야기>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들의 증언을 토대로 만들어진 단편 애니메이션이다. 청강문화산업대학교 김준기 겸임교수가 연출을 맡았으며, 그가 가르치고 있는 청강대 학생들이 제작에 참여했다.

▲ <소녀이야기> 포스터 애니메이션 <소녀이야기>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들의 증언을 토대로 만들어진 단편 애니메이션이다. 청강문화산업대학교 김준기 겸임교수가 연출을 맡았으며, 그가 가르치고 있는 청강대 학생들이 제작에 참여했다. ⓒ 김준기


<소녀이야기>는 일본군 위안부 여성들의 증언을 토대로 한 단편 애니메이션으로, 3D 캐릭터에 이제는 할머니가 된 그들의 실제 육성을 입혔다. 청강문화산업대학교 애니메이션과 겸임교수이자 2003년 <인생>이라는 단편 애니메이션으로 주목을 받은 김준기 감독이 연출했으며, 청강대 학생들이 제작에 참여했다.

김준기 감독은 "1991년, 김학순 할머니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위안부 피해 사실을 공개 증언한 것이 내내 가슴에 남아 있었다"고 회상했다. 과제처럼 품고 있던 이야기는 2008년에서야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었다. 11분가량의 애니메이션을 완성하기까지 무려 3년이 걸렸다.

 김준기 감독의 애니메이션 <소녀 이야기>

김준기 감독의 애니메이션 <소녀 이야기> ⓒ 김준기


애니메이션으로 재연된 정서운 할머니의 증언

"숫자도 헤아릴 수 없고 토요일 일요일에는 말도 못해. 줄을 서 가지고 옷도 안 벗고. 아이고, 그 말을 어디다 다 할꼬."

소녀들의 몸은 욕망의 분출구 같았다. 누워 있는 몸 위로, 짧은 순간 남자의 얼굴이 여럿 바뀌었다. 그보다 끔찍한 것은 바깥에 줄지어 있는 남자들의 행렬이다. 그들은 배설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소녀는 14살이었다.

<소녀이야기>에 목소리를 빌려준 정서운 할머니는 1937년 일본군에 의해 주재소에 갇힌 아버지를 풀어주겠다는 동네 이장의 말에 속아 위안부로 끌려갔다. 아버지는 주재소에서 돌아가셨고, 소녀는 인도네시아에서 8년간 능욕을 당해야 했다.

"작품을 만들기 위해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 갔는데, 처음에는 반기지 않았어요. 너무 많은 사람들이 다큐멘터리를 만들겠다고 할머니들을 찾아왔던 모양이에요. 다들 취지는 좋았겠지만, 아무래도 상처가 될 수 있는 문제니까요.

위안부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낮은 목소리>의 변영주 감독님은 여성이고 굉장히 오랫동안 접촉했기 때문에 할머니들이 마음을 열었지만, 저는 남자로서 조심스럽더라고요. 그래서 할머니들을 직접적으로 만나기보다, 기존에 녹음된 음성을 사용하기로 했죠."

김준기 감독은 자신이 만들 작품을 설명하기 위해 4분 분량의 파일럿 영상을 1년 동안 만들었다. 이를 본 할머니들이 마음을 놓으면서, 정대협은 그에게 여러 증언 자료를 제공해줬다. 그 중 정서운 김복동 할머니의 증언을 교차 편집하기로 했지만, 오랜 시간과 만만찮은 제작비가 드는 애니메이션 제작 여건상 정서운 할머니의 사연만 그릴 수밖에 없었다.

고 정서운 할머니의 목소리가 입혀진 캐릭터 <소녀이야기>는 위안부 피해 여성들의 증언 중 고 정서운 할머니의 사연을 선택했다. 정서운 할머니는 1991년 위안부 피해 사실을 공개한 이후, 꾸준히 관련 문제를 위한 활동을 해오다가 2004년 작고했다.

▲ 고 정서운 할머니의 목소리가 입혀진 캐릭터 <소녀이야기>는 위안부 피해 여성들의 증언 중 고 정서운 할머니의 사연을 선택했다. 정서운 할머니는 1991년 위안부 피해 사실을 공개한 이후, 꾸준히 관련 문제를 위한 활동을 해오다가 2004년 작고했다. ⓒ 김준기


"할머니 목소리와 캐릭터 입모양 맞추기, 가장 중요했다"

3D 캐릭터를 빌려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생각보다 자연스럽다. 살을 에는 기억을 토해내는 게 힘겨운 듯, 잦은 한숨이 섞인 정서운 할머니의 목소리와 캐릭터의 '립싱크'는 완벽하게 맞아 떨어졌다. 김 감독은 "무엇보다 입모양을 맞추는 것이 중요했다"고 설명했다. 어설픈 작화는 할머니들의 '진짜' 이야기를 '가짜'처럼 보이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할머니의 기억을 제대로 재연해내기 위해 자료 수집에도 적지 않은 시간을 할애했다. 이를 테면, 할머니를 위안부로 데려가려고 이장이 "'센닌바리' 공장에 가는 것"이라고 둘러대는 장면에서 센닌바리(천인침: 전쟁에 참전한 사람의 무운장구를 빌기 위해 흰 천에 붉은 실로 천 명이 한땀씩 꿰매어 만든 일종의 부적)를 그려내기 위해 실물을 한참 찾아야 했다. 

극 중 일본 군인의 목소리는 일본 배우 요시무라 켄이치가 맡았다. 드라마 <제중원>과 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 등에 출연했던 그는 "이런 역할 해도 괜찮겠냐"는 감독의 조심스런 물음에 흔쾌히 "상관없다"고 했단다. 오히려 그는 "명성황후를 살해하는 나쁜 역할도 여러 번 해봤다"고 감독을 안심(?)시켰다. 심지어 감독이 한국어로 대사를 적어오는 바람에 1시간 넘게 끙끙대며 일본어 번역까지 직접 했다고.

다만 그의 대사에는 한국어 자막이 없다. 당시 할머니가 일본어를 잘 못 알아들었을 때의 생경함을 진짜처럼 표현하기 위해서다. 여기에는 "가만히 있어!"라고 내지르는 소리부터 "그러니까 삿쿠(콘돔)를 쓰란 말이야"라고 노닥거리는 군인들의 대화 등이 담겨 있다.    

무엇보다 고심한 건, 역시 소녀들이 능욕을 당하는 장면이다. 감독은 영화 <피고인>과 <천상의 릴리아>처럼 강간 피해 여성의 눈으로 남성들의 추악함을 바라보는 식으로 표현하고자 했지만, 할머니들이 받을 상처를 우려해 수위를 조절했다. 폭력을 고발하기 위해 폭력을 표현해야 하는 영화가 가지는 고민인 셈이다. 

 김준기 감독은 일본군에 의해 소녀들이 능욕을 당하는 장면을 피해자의 시각에서 강하게 표현하고자 했으나, 할머니들이 입을 상처를 우려해 "수위를 조절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김준기 감독은 일본군에 의해 소녀들이 능욕을 당하는 장면을 피해자의 시각에서 강하게 표현하고자 했으나, 할머니들이 입을 상처를 우려해 "수위를 조절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 김준기


위안부 문제를 키운 것은 못난 아버지, 국가

김준기 감독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여러 증언집과 자료를 읽으며 "'할머니도 여성'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고 말했다. 역사의, 전쟁의 희생양이기 이전에 강간의 치욕을 견뎌내야 했던 여성의 고통은 감히 가늠하기 어렵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위안부 여성들을 위한 박물관을 서대문 형무소가 있던 지금 독립공원 내에 건립하기로 했는데, 유공단체들 반대로 짓지 못했어요. 어떻게 독립운동가들을 위한 성지에 더러운 역사를 들여놓느냐는 거죠. '화냥년'이란 말도 있었어요. 나라의 힘이 없어서 우리의 어머니와 딸, 여동생과 누이가 끌려간 건데, 이걸 누구의 잘못으로 돌려요. 굉장히 슬픈 일이에요."

김 감독은 해결되지 않은 위안부 문제를 "일본과 한국 정치인의 과오"로 여겼다. 그는 일본이 사과는 커녕 큰소리칠 수 있도록 한국 정부가 여지를 줬다며, '김종필-오히라 각서'라 불리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을 언급했다. (보상금 규모를 결정한 것으로 알려진 이 협정 때문에 오랫동안 일본은 식민지 배상이 종결됐다고 주장할 수 있었다) 김 감독은 "딸이 강간을 당했는데, 못난 아버지가 범죄자로부터 보상금을 받아온 격"이라고 일갈했다.

하지만 관객이 분노를 느끼길 바라냐는 질문에 그는 "분노보다, 제대로 알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것이 한국 사람이라면 다 알고 있지만 '안타깝다'는 감상 이상으로 이어지지 못하곤 하는, 이 오래된 이야기를 다시 또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그는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노력해야 하는지를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동양이 아니었다면, 할머니들의 공개 증언이 좀 더 쉬웠을까요? 그래도 이제는 위안부 피해 여성이 떳떳할 수 있을 정도로 대중들의 의식이나 분위기가 바뀐 것 같아요. 하지만 문제는 너무 늦었다는 거죠."

<소녀이야기> 속 정서운 할머니는 이미 2004년 돌아가신 고인이다. 현재 생존해 있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는 고작 60여명. 그마저도 위안부 생활 당시 겪은 고초로 인한 후유증과 고령으로, 해가 다르게 그 수가 줄고 있다. 이제 우리에게 이야기를 들려줄 '소녀들'의 시간은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

단편 애니메이션 <환>으로
<소녀이야기>에서 못 다한 이야기한다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제1000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집회'에서 길원옥(84) 위안부 피해 할머니가 연대발언을 경청하며 눈물을 훔치고 있다.

작년 12월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제1000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집회'에서 길원옥(84) 위안부 피해 할머니가 연대발언을 경청하며 눈물을 훔치고 있다. ⓒ 유성호


김준기 감독은 <소녀이야기>를 만들며 못 다한 이야기를 위해 <환>이라는 단편 애니메이션을 기획 중이다. 역시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 도움을 얻은 <환>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살 특공대' 가미카제 대원이 된 한국인이 죽어서 야스쿠니 신사에 위패가 봉안된 사연을 그린다.

"A급 전범들의 위패도 있는 야스쿠니 신사를 일본 총리가 참배한다는 것은 '우리는 아직도 전쟁을 포기하지 못했다'는 표현이에요. 그 안에는 전쟁에 징용돼 억울하게 죽어간 한국인들도 2만여 명 정도 강제 합사돼 있는데, 정말 치욕적인 일이죠."

2년여 전부터 제작을 결심했다는 <환>은 3월 개강과 함께 청강대 학생들과 제작에 들어간다. 십여 분의 단편 애니메이션이지만, 예상 제작기간은 2년. 다시 지난하지만, 꼭 해야 하는 이야기를 시작할 참이다.

한편, 작년 서울독립영화제 등에서 선보였던 <소녀이야기>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를 통해 오프라인 상영을 여러 번 추진할 계획이다. 가깝게는, 3월 10일 동북아역사재단과 반크,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주최하는 삼일절기념 역사콘서트에서 볼 수 있다. 김준기 감독은 "올해 해외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 <소녀이야기>를 출품한 후, 내년쯤엔 일반 공개를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삼일절 소녀이야기 위안부 애니메이션 김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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