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삼산월드체육관에서는 5위 인천 전자랜드와 10위 서울 삼성의 맞대결이 펼쳐졌다. 5위 전자랜드는 용병 힐이 부상으로 엔트리에서 제외 됐기에, 이승준과 클라크라는 센터진을 보유한 삼성의 우위가 예상된 경기였다. 더군다나 전자랜드는 승리에 대한 동기부여까지 딱히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지만 결과는 전자랜드의 88:73 완승으로 끝났다. 1쿼터부터 전자랜드는 27:18로 크게 앞서 나갔고, 단 한 번도 추격다운 추격을 허용하지 않으며 손쉽게 승리를 거뒀다. 

 

서울 삼성의 김상준 감독은 전자랜드와의 경기에 앞서, 이런 인터뷰를 남겼다.

 

"시즌 초중반에 연패를 당할 때와 지금의 경기력은 확실히 다르다. 선수들이 크게 자신감을 갖고 적극적으로 플레이하고 있다. 어이없는 턴오버가 크게 줄었다. 다음 시즌에 대한 희망이 보인다."

 

김상준 감독이 봤다는 그 '희망'이란 단어는, 전자랜드전이 시작됨과 동시에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서울 삼성의 턴오버 하나 하나는 모두가 '어이없는' 턴오버였고, 연패를 당하던 그 때와 전혀 다를 바 없는 경기력이 쏟아져 나왔다.

 

또한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는 선수들의 모습도 찾아볼 수 없었다. 선수들은 나태한 모습으로 일관했고, 그들의 얼굴에는 짜증이 가득했다. 조직력과 기술적인 문제 등을 떠나서, 선수들의 정신력과 태도 자체가 문제였던 서울 삼성이었다. 김승현의 자유투 시도와 5반칙 퇴장은 서울 삼성의 현실을 여과 없이 보여준 대목이었다.

 

지난 19일 용병이 나오지 않은 SK에게 87:91로 패했던 서울 삼성. 21일 부산 KT와의 경기에서도 사실상 용병의 비중이 없었던 KT에게 80:77의 신승을 거뒀었다. 그리고 이번 전자랜드전에서도 용병이 빠진, 그리고 2진급 선수들에게 풍부한 기회를 제공한 전자랜드에게 73:88로 대패했다.

 

삼성은 전자랜드전까지 3경기 연속으로 상대팀들과의 1.5군 or 2군급 선수들과 맞대결을 펼친 것이다. 평균 25.6점을 기록하고 있는, 나이를 거꾸로 먹고 있는 클라크라는 용병을 데리고 있음에도, 용병 없이 경기를 치르는 팀들보다 못한 경기력을 보였다.

 

 김승현을 수비하는 강혁

김승현을 수비하는 강혁 ⓒ KBL

 

서울 삼성의 더욱 암울한 현실을 보여주는 대목은, 현재의 멤버를 사실상 주전 멤버로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이규섭이 부상에서 복귀함으로써, 김승현-이시준-이규섭-이승준-클라크라는 주전 멤버가 구성됐다. 유일하게 빠져있는 멤버는 부상으로 시즌 아웃된 이정석뿐이다.

 

그렇지만 삼성은 이정석의 공백을 크게 느낄 수 없었다. 기존에 빠른 스피드와 수비력만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들었던 이시준이, 이번 시즌을 통해 공격력에서도 상당한 발전을 보였기 때문이다. 주전 이정석과 이시준의 차이가 공격력뿐이라 볼 수 있었기에, 현 시점에서 두 선수의 차이는 크지 않다.

 

시즌 초중반에는 부상 선수가 많아서 좋은 경기를 펼칠 수가 없다고 말했던 김상준 감독. 하지만 현재 서울 삼성의 주전 라인업에는 전 국가대표 3명이 포함 되어 있다. 이제는 선수가 없다는 핑계는 댈 수가 없다.

 

대학 무대에서 최고의 지도자라 불렸던 감독과 화려한 주전 라인업이 갖춰졌음에도 불구하고, 시즌 초중반과 비교해서 전혀 달라진 것이 없는 서울 삼성. 과연 무엇이 문제일까?

 

전자랜드전은 서울 삼성의 가장 큰 문제점을 명확히 보여준 경기였다. 김승현과 이승준 등 팀을 이끄는 스타급 선수들은 감독의 통제에서 자유로운 모습을 보였으며, 김상준 감독은 그 선수들에게 제대로 쓴소리도 못하는 듯했다.

 

과거 중앙대 감독 시절에는 오세근, 김선형, 함누리 등 순종적인 선수들만을 이끌어 왔기에, 김상준 감독의 착한 리더십의 문제점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현재의 삼성이란 팀에는 너무나도 잘난 선수들이 많다. 김상준 감독의 착한 소리, 좋은 소리를 귀담아 듣고 있는 선수가 없는 것이다.

 

 슛을 시도하는 이승준

슛을 시도하는 이승준 ⓒ KBL

 

가끔은 호통이, 가끔은 꾸지람이 칭찬보다 더 좋은 약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김상준 감독은 스타급 선수들에게 그런 소리를 전혀 못 꺼내고 있다. 감독이 카리스마를 보이지 못하자, 스타급 선수들은 그 나름대로, 후보급 선수들은 자신들 나름대로 개개인의 성적 챙기기에 바쁘다. 이것이 서울 삼성의 현주소다.

 

감독도, 선수들 중에서도 리더가 없는 서울 삼성에는 팀의 구심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지난해까지 주장으로 팀을 이끌었던, KBL에서 2대2 플레이에 가장 능한 강혁은 쫓겨나듯이 전자랜드로 떠났다. 기량을 떠나서 팀의 중심 역할을 맡았던 그가 떠나자, 삼성은 너도 나도 모두 구심점이 되어 버렸다.

 

감독의 리더십이 변화 되거나, 선수단에서 확실한 캡틴 역할을 할 수 있는 선수가 나와야만 하는 삼성이다. 지금과 같은 모습이라면, 다음 시즌에도 삼성에게 '희망'은 없다. 감독과 선수가 서로 믿음을 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시간만 흘러가게 되는 것이다.

 

오는 25일에는 서울 삼성 썬더스의 창단 34주년 기념 경기가 열린다. 그리고 그 경기에서 삼성 선수단은 과거 실업 삼성전자 시절의 유니폼을 입게 된다. 또한 삼성의 고위급 간부들과 과거 레전드 출신들이 경기장에 방문하며, 경기 시작 직전에는 김현준 농구 장학금 전달식이 진행될 예정이다.

 

삼성전자 농구단을 이끌었던 전설의 슈터 고 김현준 코치는 현재의 삼성 농구단을 바라보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삼성의 창단 34주년 기념 경기 상대는 4위 전주 KCC다. KCC는 용병 왓킨스가 정상적으로 출장할 예정이며, 하승진도 건재하다. 전자랜드전에서의 경기력이 다시금 재현된다면, 그들의 기념 경기는 엄청난 악몽이 될 수도 있다. 삼성전자 시절의 유니폼이 부끄럽지 않도록, 감독부터 선수까지 하나가 돼서 '팀'을 위해 뛰는 삼성 선수단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12.02.24 15:42 ⓒ 2012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김상준 김승현 이승준 서울삼성 전자랜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스포츠를 사랑하는 분들과 소중한 소통을 나누고 싶습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