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 버라이어티와 다큐에만 리얼리티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드라마 속 허구가 현실을 적나라하게 그려 놀랄 때가 있다.

31일 SBS 드라마 <샐러리맨 초한지>는 60여분 방송 시간의 팔 할을 극 중 해고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그렸다. 천하그룹이 적자를 면치 못하는 천하메디 공장을 폐쇄 조치하는 과정은 쌍용자동차와 한진중공업의 지난했던 싸움을 닮아 있었다.

물론 극본과 연출이 있고, 카메라가 개입하는 한 완벽한 실재를 구현할 수는 없다. 하지만 리얼리티는 현실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각에서부터 출발한다. 뉴스에서도 제대로 다루지 않는 해고 노동자들의 안간힘과 이를 짓누르는 권력의 힘을 보려는 의지는 허구의 틀을 넘어 진정성을 전달한다.

코믹터치 드라마가 담는 처참하게 웃긴 현실

 1월 31일 방송된 SBS 드라마 <샐러리맨 초한지>는 15.1%의 전국시청률(AGB닐슨미디어리서치)을 기록했다. 이는 자체 최고 시청률이다.

1월 31일 방송된 SBS 드라마 <샐러리맨 초한지>는 15.1%의 전국시청률(AGB닐슨미디어리서치)을 기록했다. 이는 자체 최고 시청률이다. ⓒ SBS


각목을 든 용역 업체 직원들이 들이닥쳐 노동자들을 진압하는 장면에서 우아한 왈츠가 흐른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천하그룹의 파티 장면으로 연결된다.

진짜 리얼리티는 공권력 비틀기에서 빛난다. 용역업체는 경찰 비호를 받으며 공장 안으로 투입됐다. 항우(정겨운 분)를 주축으로 한 사측과 경찰은 공장 내 물과 전기를 끊어놓고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전달할 때만 전기를 공급했다.

폭력으로 내몰린 이들을 깨부수는 결정적 무기는 분열이다. 퇴직금과 세 달치 월급을 주겠다는 제안에 일부는 투쟁을 포기했다.

애초에 공장의 구조조정을 하러 왔던 천하그룹 사원 유방(이범수 분)은 공장장이 비밀리에 신제품 개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이를 돕기로 한다. 항우 측에게 이 계획을 들키자, 아예 투쟁에 동참한 유방은 방송 기자의 카메라에 진시황 회장(이덕화 분)의 자서전을 들이대며 "기업이 곧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느냐"고 일갈한다.

뉴스로 이를 보고 있던 진 회장이 한다는 소리가 "그걸 내가 썼냐! 대필 작가가 썼지"라니. <샐러리맨 초한지>는 이렇게 치가 떨리는 현실과 코미디를 자연스럽게 넘나들며 강약을 조절한다. 거꾸로 생각해보면, 이런 코미디가 실상 대한민국의 현실이라는 무서운 결론에 다다른다. 

좌빨? 사람이 먹고 사는 문제, 상식의 문제

"나는 민주투사도, 뭣도 아니지만유" 이날 방송에서는 천하그룹이 자금 마련을 위해 적자가 나고 있는 천하메디 공장을 폐쇄 조치하는 과정을 다뤘다. 천하그룹의 사원인 유방(이범수 분)은 해고 노동자들의 편에 서서 투쟁했다.

▲ "나는 민주투사도, 뭣도 아니지만유" 이날 방송에서는 천하그룹이 자금 마련을 위해 적자가 나고 있는 천하메디 공장을 폐쇄 조치하는 과정을 다뤘다. 천하그룹의 사원인 유방(이범수 분)은 해고 노동자들의 편에 서서 투쟁했다. ⓒ SBS


"돈 못 벌어온다고 식구를 내다 버릴 수 없지 않느냐"며 노동자측의 입장을 대변하던 유방은 "나는 민주투사도, 뭣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천하그룹 진시황 회장의 외손녀로 곱게 자라 안하무인이던 여치(정려원 분)조차 정말 궁금하다는 듯이 "왜 저 사람들하고 대화를 안 해?"라며 회사 임원들에게 "공장 적자가 심한데 왜 여기 있는 사람들 월급은 자꾸 올라?"라고 물었다.

아무도 답하지 못했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소수의 안위를 위해 그럴 수밖에 없는 구린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유방과 여치의 말처럼, 이것은 좌파나 빨갱이가 아니라 사람이 먹고 사는 문제이며 상식의 문제다. 그래서 코믹터치를 표방하는 이 드라마가 현실을 그리는 방식은 차라리 드라마에 만날 나오는 신데렐라가 왕자를 만나는 이야기보다 사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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