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링컵 1골. 12월 출장시간 0분….

이는 프리미어리그에 막 데뷔한 어느 어린 선수의 성적이 아니다.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주장이며, 한국과 아시아를 대표하는 스트라이커인 박주영이 기록하고 있는 초라한 시즌 성적이다.

 아스널에서 훈련하는 박주영

아스널에서 훈련하는 박주영 ⓒ Arsenal Korea


지난 여름 프랑스 리그1에서 강등당한 AS모나코를 떠나 전 리그 우승팀인 릴의 오퍼를 무시하면서까지 택했던 아스널 행. 쉽지는 않아아 보였지만 그래도 가능성은 있어 보였다.

프랑스 리그에서 어느 정도 검증된 실력 (특히 후방 지원이 전무했던 마지막 시즌의 고분분투)과 팀을 대표하는 핵심 선수들의 이탈을 막지 못해 생긴 아스널의 심각한 전력 누수, 무엇보다 동일 포지션 내에 경쟁자들과 비교했을 때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는 평가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시즌이 중간 기점을 돌고 있는 지금, 상황은 어떠한가? 한마디로 절망적이다. 박주영과 같이 영입된 선수들이 충분히 많은 시간을 보장받으며 팀의 중심 혹은 일정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대신 박주영은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는 상황이다.

시즌 전 많은 이들이 판 페르시의 '건강'과 '기복'을 우려했지만 그들의 우려를 비웃듯이 중요한 경기마다 골을 터트리며 그 어느 때보다도 폭발적인 시즌을 보내고 있다. 10년째 유망주인 월콧 또한 판 페르시와 좋은 호흡을 보이고 있다.

박주영이 매경기 라인업에서 제외될 때마다 1월 출장을 위한 준비 과정이라고 주장하던 웽거 감독의 말과는 달리 제르비뉴와 샤막이 아프리카네이션스컵으로 자리를 비우자마자 아스날의 레전드인 앙리가 복귀를 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 또 하나의 유망주인 챔버레인까지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상황이라, 아스널 스쿼드 안에서 대한민국 대표팀 주장의 자리는 점점 찾아보기가 힘들다.

거기에 아프리카네이션스컵에서 조기탈락한 모로코 덕분에 또다른 경쟁자인 샤막까지 복귀하게 된 상황에서 박주영의 근황은 경기장이 아닌 기성용의 트위터에서 찾아보는 게 더욱 빠르게 될지도 모르겠다.

박주영은 프리미어리그를 '관람'하러 간 게 아니다

이런 와중에 설기현의 전 소속팀인 풀럼에서 박주영 임대에 관해 아스널에 문의하였다. 그러나 아스널의 대답은 "노(NO)"다.  

풀럼이 어떤 팀인가. 얼마 전 감독과 불화로 팀의 간판 공격수 자모라의 이적이 확실시됨에 따라 마침 공격수 자리에 전력누수가 불가피한 상황인데다가, 감독은 또 누구란 말인가. 우리에게 그토록 친숙한 욜 감독(과거 토트넘 시절에 이영표를, 아약스 시절에 석현준을 영입한 감독)이 아닌가.

아스널이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풀럼과 박주영의 궁합은 일단 뒤에 생각하더라도 분명 최소한 지금보다는 훨씬 많은 시간을 그라운드 안에서 보장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도대체 언제인지 모를 웽거의 박주영 실전 투입시기 때문에 이는 물거품이 돼버렸다.

사실 박주영의 시간은 그리 넉넉치 못하다. 그는 여유롭게 하나씩 배우고 적응해나갈 수 있는 20살, 21살짜리 유망주가 아닐 뿐더러, 그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군입대 문제로 유럽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은 더더욱 얼마 남지 않았다.

더불어 그는 한국 국가대표팀 주장이자 붙박이 주전 공격수이다. 월드컵 예선이 쉽게 풀리고 있지 않은 현실과 사령탑 교체라는 좋지 않은 분위기 속에서 주장으로서 최상의 컨디션과 경기감각을 유지함으로써 침체되어 있을 대표팀 분위기를 쇄신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야만 한다.

또한 대표팀에, 해외파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주던 감독은 없어지고 실리를 추구하는 새로운 감독이 부임한 이상, 주장이 아닌 대표팀의 일원으로서의 자격 또한 컨디션과 결과로 재검증 받아야만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쉬워보이지만은 않는 게 사실이다.

실제 웽거 감독이 구상하는 아스널의 미래에 박주영의 자리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박주영에게 그때까지 참고 기다릴 만한 여유가 있을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봐야만 한다. 또한 박주영 개인으로서도 참고 인내하면 언젠가 기회가 온다는 구태의연한 마인드보다는, 과감히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스스로 찾는 능동적인 자세가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만약 지금같이, 아스널 전 경기를 가장 박진감 넘치는 자리인 구단 벤치에서 관람해야만 하는, 마치 시즌권을 가진 팬 정도의 위치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는 2년 후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주장 완장을 차고 원톱 공격수 자리에 서서 활약하는 이동국의 모습을 상무 내무반 TV로 봐야만 하는 상황이 오지 않을 것이라 장담할 수 없다.

박주영은 프리미어리그를 관람을 하러 간 것이 아니다. 하루빨리 그가 프리미어리그 잔디 위에서 기도 세리머니를 하는 모습을 보고 싶을 뿐이다.

박주영 아스널 ARSENAL 프리미어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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