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코비치의 결승전 진출 소식을 알리고 있는 대회 공식 누리집(australianopen.com) 첫 화면

조코비치의 결승전 진출 소식을 알리고 있는 대회 공식 누리집(australianopen.com) 첫 화면 ⓒ australianopen.com


먼저 지친 기색을 드러낸 것은 노박 조코비치(세르비아)였다. 콧물도 훌쩍거렸고 발목도 휘청거리며 쓰러질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냥 주저앉을 그가 아니었다. 뒤를 이어 두 번째 세 번째 세트를 내리 따내며 역전승의 기회를 잡았던 앤디 머리(영국)가 마지막 세트에서 휘청거렸다. 5시간 가까이 진행된 명승부는 보는 이들을 더 애타게 했다.

디펜딩 챔피언 노박 조코비치는 27일(한국 시각) 호주 멜버른 파크에 있는 로드 레이버 아레나에서 벌어진 2012 호주 오픈 테니스대회 남자단식 준결승 두 번째 경기에서 4번 시드의 앤디 머리에게 3-2(6-3, 3-6, 6-7, 6-1, 7-5)로 짜릿한 역전승을 거두며 결승에 진출했다. 라파엘 나달(2번 시드, 스페인)과 최고의 자리를 놓고 겨루게 됐다.

쉽게 예측하기 힘든 스트로크 싸움

첫 세트 네 번째 게임, 조코비치에게 행운이 찾아왔다. 30:40 상황을 만든 것도 조코비치로서는 잘한 일이지만 바로 브레이크 포인트 기회에서 공을 잡은 머리의 더블 폴트가 나왔다. 첫 세트의 균형은 그렇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후 첫 세트의 양상은 보는 이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머리와 조코비치가 이후 자신의 서브 게임을 허무하게 상대에게 내준 것. 특히, 앤디 머리는 귀중한 전환점을 마련했지만, 곧바로 자신의 서브 게임에서 러브 게임을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그러니 첫 세트의 주인은 더 말할 필요가 없게 됐다.

두 번째 세트, 앤디 머리의 대반격이 시작됐다. 1-2로 뒤진 상태에서 시작한 네 번째 게임부터 내리 세 게임을 따내는 기염을 토한 것. 이렇게 점수판을 4-2로 만들어놓은 앤디 머리는 또 한 번 멜버른의 밤하늘을 쳐다보며 원망의 표정을 지었다. 충분히 가져올 수 있었던 자신의 서브 게임을 듀스 끝에 조코비치에게 빼앗긴 것이다. 5-2와 4-3의 차이는 세트를 넘어 전체 경기의 운명을 달라지게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스트로크 싸움이 시작됐다. 조코비치가 서브권을 쥐고 있던 여덟 번째 게임, 0:30으로 머리가 기선을 제압한 상태에서 세 번째 공이 무려 41차례나 네트를 넘나들었다. 거기서 한숨을 돌린 것은 조코비치였다. 머리의 두 손 백핸드 받아치기가 네트를 넘지 못한 것이었다. 하지만 머리는 끈질긴 수비로 조코비치를 조급하게 만들어 또 하나의 브레이크 포인트를 만들었다. 5-3으로 두 번째 세트를 눈앞에 뒀다.

두 번째 세트 곳곳에서 지친 기색이 보였던 노박 조코비치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아홉 번째 게임에 매달렸지만, 위닝샷을 때려 넣는 집중력이 아쉬웠다. 15:40으로 두 개의 브레이크 포인트 기회가 왔지만, 이를 살려내지 못했다. 이렇게 세트 스코어 1-1이 되자 결승행 길목이 더 좁아지는 듯했다.

흔들리는 챔피언

세 번째 세트의 첫 서브는 조코비치가 넣었다. 하지만 그의 몸 상태가 조금 이상해 보일 정도로 돌아서는 동작이 불편해 보였다. 이 틈을 타 앤디 머리는 조코비치를 많이 뛰게 만들며 좀처럼 물러나지 않았다. 무려 18분이나 걸린 이 첫 게임에서 조코비치는 서브 에이스로 정말 어렵게 게임을 끝냈다.

아무래도 감기에 걸린 듯, 조코비치는 콧물을 훌쩍거리며 숨을 몰아쉴 때가 많았다. 경기 중에도 미소를 자주 보였던 조코비치의 안색이 심상치 않았다. 발목도 불편해 보였고, 좌우로 움직이는 스텝도 불안정해 보였다. 조코비치의 서브 게임을 따내는 앤디 머리의 스매싱이 내리꽂히는 순간, 조코비치는 라켓을 지팡이 삼아 몸을 지탱하고 있었다.

매우 중요하다고 하는 일곱 번째 게임, 첫 서브를 195km/h 에이스로 시작한 조코비치는 하늘을 쳐다보며 힘을 모았다. 이후 조코비치는 199km/h짜리 에이스를 또 하나 꽂아넣으며 한껏 기세를 올렸다. 무너질 것 같았던 조코비치는 그렇게 되살아났다.

그래도 랠리가 길어질수록 불리한 것은 조코비치였다. 실제 기록상으로도 10~20구 이상 스트로크 싸움이 계속됐을 때, 포인트를 따낸 비율은 앤디 머리가 압도적으로 높았다. 거기서 갈림길이 생겼다. 세 번째 세트 열한 번째 게임, 조코비치는 자신이 서브를 넣었지만 랠리가 길게 이어졌을 때는 재미를 보지 못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앤디 머리는 상대 서브 게임을 어렵게 따낸 뒤에 자신의 서브 게임에서 그 기운을 이어가지 못했다. 첫 세트에 이어 이번에도 여지없이 그 증세가 나타났다. 더구나 더블 폴트까지 저질렀으니 탓할 곳도 없었다.

세 번째 세트에만 78분이라는 시간이 흘러갈 무렵, 타이 브레이크 시스템이 작동됐다. 여기서는 앤디 머리의 스트로크가 코트 구석구석을 찔렀고, 마침내 위력적인 서브로 88분만에 세 번째 세트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이에 관중석의 이반 렌들 코치 앞에 앉아 있던 여자 친구가 환하게 웃으며 화답했다.

디펜딩 챔피언의 놀라운 집중력

네 번째 세트 첫 게임에서 서브권을 쥔 머리는 어이없는 스매싱 실수로 조코비치에게 두 개의 브레이크 포인트 기회를 내준 끝에 또 한 번 자신의 서브 게임을 잃었다. 조코비치가 벼랑 끝에서 탈출하려면 이 네 번째 세트 초반 기세를 휘어잡아야 했다.

거짓말처럼 흐름은 다시 조코비치 쪽으로 넘어왔다. 앤디 머리의 두 손 백핸드 받아치기가 흔들릴 때 조코비치의 빠른 위닝샷이 먹혀들었고, 점수는 4-0까지 벌어지고 말았다. 자신의 서브 게임으로 시작한 네 번째 세트를 마지막 세트로 만들 수 있었지만, 앤디 머리는 그 기회를 틀어쥐지 못했던 것이다.

1987년생 동갑내기로 생일이 일주일 빠른 앤디 머리도 지친 기색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겨우 25분 만에 끝났지만, 다시 힘을 내기 시작한 조코비치의 기세는 놀라웠다. 그래도 이 맞대결에서 6-1의 점수 차이는 뜻밖이었다.

경기 시작 후 3시간 45분이 지나서야 마지막 세트가 시작됐다. 진정한 승부의 갈림길은 여섯 번째 게임에서 짙게 드러났다. 서브권을 쥔 앤디 머리의 샷 실수가 눈에 띄었고, 조코비치의 집념이 빛났다. 조코비치는 높게 떠오른 머리의 받아치기를 향해 달려들며 힘찬 포핸드 크로스를 코트 반대쪽에 꽂아 넣은 뒤 포효했다. 재역전의 기회가 자신에게 찾아왔음을 직감했다.

여기서 게임 스코어 4-2를 만든 조코비치는 언제 지친 적이 있었냐는 듯 자신의 서브 게임을 멋지게 러브 게임으로 끝냈다. 유난히 커 보이는 숫자 '5'를 자신의 이름 옆에 아로새겼다.

그러나 명승부는 그냥 마무리되는 것이 아니었다. 앤디 머리는 놀라운 집중력으로 내리 세 게임을 따냈다. 5-5라는 살얼음판 게임 스코어는 자정을 훌쩍 넘긴 멜버른의 밤을 더욱 뜨겁게 만들었다.

이어진 조코비치의 서브 게임, 두 개의 브레이크 포인트 기회가 앤디 머리에게 찾아왔다. 이 기회는 하늘이 내려준 절호의 기회. 무너질 것 같았던 조코비치가 듀스를 만들며 다시 살아났다. 29개의 랠리가 이어진 스트로크 싸움 끝에 조코비치는 오른손 주먹으로 자신의 심장을 두드리며 관중들의 환호에 답했다. 절체절명의 위기를 강심장으로 이겨냈다는 뜻이었다.

열한 번째 게임에서 조코비치는 드라이브 발리로 자신의 서브 게임을 지켜내며 그 어느 때보다 큰 목소리를 내며 기운을 북돋았다. 이어진 앤디 머리의 서브 게임이 이 경기의 종착역이 됐다. 백핸드 스트로크가 길게 떨어져 조코비치에게 기회가 찾아왔고, 이어진 앤디 머리의 받아치기가 네트에 걸렸다. 두 개의 매치 포인트 기회가 조코비치에게 찾아왔고, 구석구석으로 공을 뿌려댄 그는 결국 네트 앞으로 달려들며 멋진 발리샷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바닥에 그대로 드러누운 노박 조코비치는 마치 우승 트로피를 받은 듯 크게 기뻐했다. 거짓말처럼 그의 얼굴 옆에서 나방이 날아올라 승리를 축하해주기도 했다. 그는 곧바로 일어나 동갑내기와 포옹을 나눈 뒤 다시 바닥에 무릎까지 꿇고 두 손을 치켜들며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

조코비치의 지친 몸이 29일 열리는 라파엘 나달과의 맞대결에서 얼마나 버텨줄지 궁금하다. 그래도 지난해 윔블던, US 오픈 결승전을 포함해 여섯 차례의 결승전 맞대결 기록에서 모두 승리를 기록한 것이 조코비치에게 유일한 위안이라고 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2012 호주 오픈 테니스대회 남자단식 준결승 두 번째 경기 결과 (이름 옆 숫자는 시드 번호)

노박 조코비치(1) 3-2[6-3, 3-6, 6-7{4TB7}, 6-1, 7-5] 앤디 머리(4)

- 결승전 일정(1월 29일 일요일 저녁) : 노박 조코비치(1) - 라파엘 나달(2)
노박 조코비치 앤디 머리 라파엘 나달 테니스 호주 오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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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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