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선수들에게 어떤 상대보다도 가장 두려운 적은 바로 '부상'이다. 몸이 재산인 프로선수들에게 부상으로 가진 실력을 다 보여주지 못하거나 아예 경기에 나서지 못하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일은 없다. 한 시대를 풍미할만한 재능을 타고 났음에도 부상 때문에 가진 잠재력을 다 보여주지못하고 사라지는 천재들도 수두룩하다.

 KCC의 개막전 승리를 이끈 하승진

하승진 선수. ⓒ KBL

전주 KCC의 최장신센터 하승진에게도 부상이란 농구인생 내내 따라다니는 그림자와도 같은 존재다.

하승진은 지난 18일 창원실내체육관에서 벌어진 창원 LG와 원정경기 도중 골밑 몸싸움을 벌이다 넘어져 오른쪽 발목을 다쳤다. 넘어지면서 130kg가 넘는 거대한 체중을 견디지 못하고 발목이 안쪽으로 크게 꺾인 하승진은 극심한 고통을 호소했고, 결국 스스로 일어나지 못한 채 병원으로 실려갔다. 만일 앞으로 넘어지기라도 했다면 무릎까지 꺾일수도 있었던 아찔한 순간이었다.

정확한 부상 정도는 아직 알 수 없지만 농구계에서는 하승진이 당분간 장기결장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최악의 경우, 남은 정규시즌 경기 출전이 불투명해질 수도 있다. 상위권 진입을 노리던 KCC로서는 하승진이 전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만큼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

KBL 4년차 하승진, 데뷔 이후 한 번도 풀타임 소화한 적 없어

공교롭게도 하승진은 매년 부상으로 신음하고 있다. 올해 KBL 4년차가 되는 하승진이지만 데뷔 시즌부터 온전히 풀타임을 소화한 경우는 한 차례도 없었고, 부상 때문에 항상 10경기 이상을 결장하곤 했다. 특히 올해도 이미 지난 12월 어깨부상으로 8경기를 결장한 바 있다. 최근에야 다시 부상을 털고 복귀하여 이제 컨디션을 좀 끌어올리던 시점에 또다시 장기간의 재활을 요구하는 부상을 당했으니 마음이 갑갑할 수밖에 없다. 하승진은 올시즌 32경기에 나서 평균 12.9점, 9.7리바운드, 1.5블록슛을 기록 중이었다.

KCC에게는 하승진이 입단한 2008년 이후 항상 슬로우 스타터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시즌 초반에는 항상 저조하다가 전력이 제 궤도에 오르는 타이밍이 오래 걸린다는 의미다. 그런데 이것은 알고 보면 하승진의 컨디션이 올라오는 시점과 일치한다. KCC는 지난 세 시즌간 늘 하승진이 부상이나 컨디션 난조로 부진했던 시즌 초반에는 팀성적도 저조하다가 후반 들어 제 위용을 회복하곤 했다. KCC는 지난 3년 연속 정규시즌에는 3위에 그쳤으나 플레이오프에서는 매년 챔피언전에 진출하여 두 번의 우승을 차지했다.

KCC가 정규시즌 4위에 그치고 있음에도 플레이오프만 가면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히는 것은 하승진의 존재 때문이다. 그러나 올 시즌도 벌써 5라운드에 접어든 현재 하승진이 만일 부상이 악화되어 잔여 시즌 출장이 어려워지거나 복귀해도 정상 컨디션이 아니라면 KCC의 2연패 전망은 어두워진다.

팀성적도 성적이지만 하승진을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잦은 부상에 대한 세간의 곱지 않은 시선이다. 하승진은 '다른 선수들도 항상 부상을 당하는데 유독 나만 이슈가 되는 것 같다'며 서운한 감정을 토로한다. 그만큼 하승진이 주목받는 스타 선수이자 팀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반증이다.

221cm의 거구인 하승진은 다른 선수들보다 반사신경이 늦는 데다 골밑에서 거친 몸싸움을 펼쳐야 하는 포지션이다 보니, 항상 부상의 위험에 많이 노출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하승진은 프로에서 장기 시즌을 치르고 비시즌에는 항상 대표팀에 발탁되어 국제대회에 나서야하면서 온전히 쉴 틈이 없었다. 부상을 참고 국제대회에 나갔을 때는 기대에 못 미치는 활약으로 '국내용'이라는 비판을 받으며 패배의 책임을 뒤집어쓰기 일쑤였다.

부상 자체보다 더딘 성장이 걱정... 프로선수라면 자기관리 능력 중요

많은 이들이 지적하는 것은 부상 자체보다 하승진의 더딘 성장이다. 프로선수라면 부상을 되도록 당하지 않는 것도 자기관리의 능력이다. 하승진은 사실 기술보다는 타고난 신체조건과 힘으로 승부하는 선수다. 신체접촉이 많아지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부상위험도 높아진다. 정말 아쉬운 것은 부상도 잦지만, 그 이후에 회복속도가 너무 느리고 그런 악순환을 반복하다 보면 기량이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원점에서 머물고 있다는 점이다.

거구의 선수라고 해서 항상 부상에 노출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멀리 볼 것도 없이 서장훈이나 김주성 같은 선배들만 해도 뛰어난 기량만큼이나 꾸준한 자기관리로 오랫동안 장수했다는 점은 하승진이 본받아야 할 대목이다. 하승진 이전에 국내 최장신 선수였던 서장훈이 신체조건을 앞세워 키로만 승부하는 선수였다면 지금같이 장수할 수 있었을까. 그가 프로농구 최초의 1만 득점을 올릴 수 있었던 것도 그만큼 오랜 시간 뛰기도 했지만, 일단 부상없이 많은 경기에 꾸준히 나설 수 있는 자기관리와 다양한 득점루트를 개발하기 위한 기술적 노력이 뒷받침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승진도 이제 어느덧 20대 후반에 접어든다. 어린 선수도 아니고 언제까지 부상이나 불운만을 탓할 수는 없다. 국내에서 타고난 신체조건으로 경기를 장악할 수는 있지만 단지 거기에만 머물러서는 발전이 없다. 부상을 참고 뛰는 미담보다, 부상의 악순환에서 탈피하며 자신의 구를 좀더 업그레이드 시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하승진 농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