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로 정치인들은 부고 제외하고 제 이름 석자가 등장하는 기사는 다 환영한다고 했다. 그리고 TV 토크쇼는 희귀성과 화제성을 두루 갖춰 시청률에 일조할 게스트들을 찾아 헤맨다. 그리고 '정치의 해'로 예고되고 있는 2012년 첫 주, 정치인과 예능의 만남이 줄줄이 이어졌다.

'고소' 강용석 의원이 tvN<화성인 바이러스> 출연이 예고되자 트위터가 들썩였다. 아니나 다를까 '고소 집착남'으로 출연, 김성주 아나운서에게 "아나운서를 그만 둔 후 왜 MBC를 고소하지 않았느냐"고 훈수를 뒀다. 이어 19대 총선에서 마포을 지역구의 결과는 막강한 인지도를 지닌 강용석인가 아닌가로 이미 대세는 결정됐다고 호언장담을 했다.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 위원장이 실로 오랜만에 예능 나들이를 한 SBS <힐링캠프>는 시청률이 급등했다. 안철수 교수를 형이라 부르는 방송인 김제동이 진행하는 이 예능토크쇼에서 프로그램에서 박근혜 위원장은 <나는 꼼수다>와 안철수 교수에 대한 생각을 꽤나 나이브하게 밝혔다. "젊은 세대와의 소통"이 중요해져서가 아니겠느냐고.

지금은 뒤안길로 사라진 오세훈 전 서울시장으로 대변되는 이미지 정치의 시대, TV 출연은 돈 한 푼 안 들이지 않고 인지도를 올릴 수 있는 두말할 나위 없는 홍보 수단이었다. 그리고 브라운관의 대세로 자리 잡은 예능에 박근혜와 강용석에 이어 <힐링캠프> 문재인 노무현 재단 이사장 편이 9일 방송된다. 이들은 과연 무엇을 얻었고, 또 얻어 갈 수 있을까.

잃을 것 없는 '고소' 강용석 선생의 이미지 재고 전략

 '고소집착남'으로 <화성인 바이러스>에 출연한 국회의원 강용석

'고소집착남'으로 <화성인 바이러스>에 출연한 국회의원 강용석 ⓒ tvN


장면 하나. 진행자 이경규가 물었다. "화성인 기질 때문에 손해를 보지 않나요?" 강용석 의원의 대답이 걸작이다. "아나운서 성희롱 이미지보다는 훨씬 낫죠." 이어 터지는 김구라의 어이없다는 웃음.

강용석 의원은 "드러눕고 '땡깡' 부리는 것보다 깔끔하게 고소한 번 하는 게 낫다"라는 논리를 펼쳤다. 그러니까 성희롱으로 형사 소송에 계류 중이고 또 무고한 개그맨 최효종을 고소한 그는 방송에서 진심 어린 '사과'는커녕 '할 말은 한다'는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바빠 보였다. 안철수 교수나 박원순 시장에 대한 고소건도 당당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떠올려 보라. 우리가 그의 정계 활동이나 의정 활동에 대해 도대체 아는 것이 무엇인지. 강용석의 <화성인 바이러스> 출연은 '정치인'이 자신의 이미지를 마음껏 부풀린 부적절한 예로 남을 전망이다.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사실 정치인들의 꿈이 뭐냐하면 무릎팍도사 나오는 게 꿈이에요, 완전 띄워주니까"라고 말한 강용석은 임무를 완수한 케이스다.

다행히 그를 어떻게 바라볼 것이냐 하는 안전장치는 제작진이 마련했다. <화성인 바이러스> 제작진은 자진해 출연을 요청했다는 강용석 의원을 자막을 통해 시종일관 어이없는 인간으로 묘사했다. '화성인' 출연자를 희화화하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화법이지만, 국회의원의 실소를 자아내는 발언들에 '뭐라니' '한 마디로 본인의 무죄 입증을 위해' '그걸 아는 사람이'란 자막으로 일관되게 '디스'를 일삼았다.

그리고 <힐링캠프>의 기계적인 중립이 위험한 이유

 <힐링캠프>에 출연한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 위원장

<힐링캠프>에 출연한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 위원장 ⓒ SBS


장면 둘. 박근혜 위원장이 어머니의 죽음을 안타깝게 회고하자 배경음악으로 '대니보이'가 흘러나온다. 아일랜드 민요로부터 유래된 '대니보이'는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위해 전투에 나가는 아들을 배웅하는 북아일랜드 어머니의 한이 서려있는 곡이기도 하다.

박근혜, 문재인의 캐스팅에 <힐링캠프> 제작진은 쾌거를 불렀을지 모를 일이다. 연출자 최영인 PD는 "정치인이냐 연예인이냐에 상관없이 현재 우리 사회가 주목하는 인사들을 초대했고, 나름의 형평성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박근혜·문재인 두 분을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주목할 것은 정치인이 아닌 "인간 박근혜를 주목하겠다"는 발언이다.

돌이켜보면, <무릎팍도사>의 경우 집요하게 날카로운 잽을 날리거나 카운터펀치 한 방을 던지고 난 뒤 훈훈하게 마무리를 짓는 형식을 취했었다. 한때 문제를 일으킨 연예인들이 단골으로 출연했던 이유다. 하지만 <힐링캠프>의 경우 스피드 퀴즈를 도입해 원론적인 질문을 단발적으로 던지고, '젊은 정치인'의 이미지를 구축해 주는데 머물렀다.

그리고서는 70년대 '퍼스트레이디'로서의 활동 등 결코 가치중립적일 수 없는 전직대통령과 연관된 일화를 듣는데 장시간을 할애함으로서 현대사의 한 장면을 한 개인의 아픈 역사로 치환시켜버렸다. '대니보이'가 흘러나오는 편집 기술을 통해 눈물을 훔친 장년층 시청자가 줄을 이었다는 후문이다.

정치사회 현안의 한복판에 선 박근혜-문재인에 대한 힐링?

첨예한 정치사회 현안의 복판에 선 인물을 데려다 도대체 무엇을 '힐링'하겠다는 의도일까. 그렇다면 문재인 이사장 편에서는 고 노무현 대통령과의 일화를 끌어올 것이 불을 보듯 빤하지 않나.

정치인의 예능 출연은 잘해야 얻는 것은 시청률이요, 잃는 것은 정치인의 이미지 개선에 복무하는 TV의 무능함을 확인시키는 일이다. 기계적 중립성에 함몰되어 버린 <힐링캠프>가 보여준 포맷은 환호와 원성을 기계적으로 보낼 각 지지자들의 정치 팬덤을 끌어오려는 전략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8일 방송된 MBC <시사매거진 2580> 출연한 안철수 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혁신, 혁신하는데, 선거철 말고 평소에 혁신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렇다. 정치인들이 토론이나 뉴스 말고 예능과 토크쇼에 자주 좀 출연하시라.

하지만 선거철의 이미지 재고를 위해서가 아니라 평소 비전과 철학을 국민들에게 전하기 위한 지속적인 소통 창구로 이용하시라. 그럴 때야 비로소 예능프로그램 또한 '정치인 모시기'나 '이미지 선전용'이란 오명을 벗을 수 있을 것이다. 

박근혜 강용석 문재인 힐링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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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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