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집단 어버이연합의 이규일(79) 수석지부장(오른쪽)의 아들은 진보적인 색을 가진 젊은이, 진보 집단 자식연합의 김남훈(39) 프로레슬러(왼쪽)의 아버지는 보수적인 색을 가진 중년이라는 공감 가능한 공통점이 있었다.

보수 집단 어버이연합의 이규일(79) 수석지부장(오른쪽)의 아들은 진보적인 색을 가진 젊은이, 진보 집단 자식연합의 김남훈(39) 프로레슬러(왼쪽)의 아버지는 보수적인 색을 가진 중년이라는 공감 가능한 공통점이 있었다. ⓒ SBS


물과 기름이 만났다. 어버이연합과 자식연합, 서울대 82학번 동기지만 각각 진보와 보수로 다른 길을 걷는 조국 서울대 교수와 원희룡 한나라당 의원, 회사의 보스와 말단 직원, 그리고 타의에 의해 섞일 수 없었던 남한의 청년과 북한의 청년까지. '소통'을 할 수 없었던 우리 사회의 양극의 사람들이 '소통'을 주제로 기획한 SBS 다큐멘터리 <만사소통>으로 모였다.

소통은 쉽지 않았다. 자식연합의 김남훈 프로레슬러는 "설마 카메라 앞에서 때리지 않겠지?"라고 걱정했고, 어버이연합의 할아버지는 자식연합의 젊은이를 "빨갱이!"라고 꾸짖으며 자리를 떠났다. 분장하고 말단 직원으로 위장 취업한 사장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직원들은 그 앞에서 "윗분들이 현장에 한 번도 안 온다"고 쓴소리를 했고, 사장의 얼굴은 굳어갔다. 원희룡 의원은 조국 교수에게 "재수 없다"며 웃었고, 조국 교수는 "차라리 욕을 하라"고 응대했다. 북한의 국가대표 정대세 선수는 남한의 차두리 선수에게 "'간 대머리야'라고 말하는 건 무슨 CF냐'고 물었다. 불통에서 비롯되는 난감하고 당황스러운 상황은 웃음이 날 정도로 그로테스크하다. 

 올해 4월부터 출연자 섭외를 맡은 <만사소통>의 이진주 작가는 위장취업할 회사 사장들을 섭외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제작진은 이러한 형식을 통해 카메라 앞에서 회사의 속살을 어디까지 들여다볼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올해 4월부터 출연자 섭외를 맡은 <만사소통>의 이진주 작가는 위장취업할 회사 사장들을 섭외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제작진은 이러한 형식을 통해 카메라 앞에서 회사의 속살을 어디까지 들여다볼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 SBS


"각 집단의 변화보다 눈을 맞추고 이야기하는 시도가 중요"

<만사소통>은 SBS가 2009년부터 신년특집으로 마련해 온 '나는 한국인이다'의 세 번째 시리즈다. 박기홍 CP(책임 프로듀서)는 프로그램의 기획에 대해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소통하는 문화를 만들고자 하는 거창한 마음으로 시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3부작 <만사소통>은 크게 소통이라는 넓은 주제를 '말을 건넨다'라는 콘셉트로 다룬 프롤로그 격의 1부와 영국 <언더커버보스>처럼 사장이 말단직원으로 위장 취업하는 2부, 우리 사회의 진보와 보수라고 할 수 있는 집단과 개인이 토론하는 3부로 나뉜다.

사실상 짧은 시간 내에 불통의 골이 깊은 두 집단을 소통할 수 있게 하기란 어려운 일. 특히나 미리 공개된 영상에서 어버이연합과 자식연합의 만남은 대화 자체가 불가능해 보였다. 연출을 맡은 정철원 PD는 "첫 만남은 파토가 났지만, 그 중 서로 만남을 지속하고자 한 어버이연합의 이규일(79) 수석지부장과 자식연합의 김남훈(39) 프로레슬러를 후속 취재했고, 정서적인 교감은 이뤄졌다"고 말했다. 이외에 조국 교수와 원희룡 의원 등 보수와 진보를 대표하는 집단이나 개인의 만남을 준비한 <만사소통>은 이들의 변화를 담기보다 소통을 하려는 시도와 각각의 진정성을 담는 것에 주안점을 두고 있었다.

 원희룡 한나라당 의원(왼쪽)과 조국 서울대 교수는 서울대학교 법학과 82학번 동기이자 친한 친구였지만 지금은 보수정당 국회의원화 진보 지식인으로 각자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원희룡 한나라당 의원(왼쪽)과 조국 서울대 교수는 서울대학교 법학과 82학번 동기이자 친한 친구였지만 지금은 보수정당 국회의원화 진보 지식인으로 각자 다른 길을 걷고 있다. ⓒ SBS


프로그램의 형식과 출연자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만사소통>은 시사토론프로그램에서처럼 거창하게 '소통'이라는 담론을 논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2008년 촛불집회 때부터 '명박산성'으로 불거진 정부의 소통 불능과 같은 큰 주제로 접근하기보다, 다큐멘터리의 호흡으로 시청자마다 반응이 다를 수 있는 우리 주위의 소통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어떤 결론을 내고자 하는 토론이 아닌 자연스러운 소통이기 때문에 카메라는 진행자로 개입할 수 없다. 이에 대해 많이 고민했다는 정철원 PD는 "최대한 개입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야기 나누는 것을 보고 싶었다"며 "무엇보다 소통할 수 없었던 양쪽이 눈을 마주치고 이야기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변화의 계기를 만들어준 것 같다"라고 말했다.

SBS 신년특집 다큐멘터리 3부작 <만사소통>은 2012년 1월 1일 오후 11시 '1부-지금 말해도 될까요?'를 시작으로 8일 '2부-계급장을 떼라', 15일 '3부-적과의 동침'을 방송한다. 내레이션은 1년간의 독일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김C가 맡았다.      

만사소통 어버이연합 자식연합 조국 원희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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