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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2011 올해의 뉴스게릴라상' 수상자로 강인규 김용국 윤근혁 기자를 선정했습니다. '올해의 뉴스게릴라상'은 한 해 동안 최고의 활동을 펼친 시민기자에게 주어지는 상입니다.

시상식은 2012년 2월 17일 <오마이뉴스> 상암동 사무실에서 치러집니다. '올해의 뉴스게릴라상' 수상자에게는 상패와 상금 100만원, 그리고 부상으로 아이패드를 드립니다. 이 자리에서는 '2012 2월22일상'과 '2011 특별상', '2011 올해의 기사상', 시민기자 명예의 전당 시상식도 함께 열립니다. 수상하신 모든 분들께 축하인사 드립니다. [편집자말]
사람에게는 각기 어울리는 옷이 있다. 물론 같은 사람이라 해도 장소에 따라 어울리는 옷이 달라질 수 있는데, 강인규 기자는 양복과 캐쥬얼이 모두 어울리는 드문 사람이다. 물론 평상시에 그는 청바지에 남방을 입고 학생들을 향해 조근조근하게 이야기하는, 괜찮은 교수일 것 같다.

그런 그가 배 아프게도 다시 <오마이뉴스> 2011년 '올해의 뉴스게릴라'에 선정됐다. 2008년에 이어 두 번째 수상이다. 사실 이런 수상소식보다 더 부러운 것은 그가 최근에 쓴 기사들이 모두 '오름'에 올랐다는 점이다. 쓴 기사 중에 더러 '생나무'도 있는 나로서는 무척 부러운 일이다.

강인규 기자
 강인규 기자
ⓒ 강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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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에 있는 나에게 <오마이뉴스> 편집부에서 "강인규 기자를 인터뷰할 수 있느냐"는 요청이 왔다. 나는 주저없이 "하겠다"고 답했다. 지난 16일, 서울 지하철 1호선 종각역 3번출구에서 그를 기다리며 설렘에 빠졌다. 오랜만에 톤 굵은 그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세상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역시, 그는 굵직한 가방을 메고, 청바지 차림으로 나타났다.

사실 내가 강 기자를 본 것은 두세 번에 지나지 않는다. 2006년 인천 영종도에서 열린 <오마이뉴스> 세계시민기자포럼이 처음이다. 당시 각국에서 활동하는 시민기자들이 모였는데, 강 기자와 나는 해외통신원으로 참가했고 그 자리에서 첫 인사를 했다.

강인규 기자는 당시 내가 발의해서 만든 '삼합주'를 기억했다. 삼합주는 바이주(빼갈) 반 소주잔, 와인 반 글라스, 맥주 한 컵을 순서대로 마시는 주법이다. 그때는 재미삼아 시작했는데, 무척 '악명'이 높았다. 강 기자는 당시 술자리에서 앉은 채 졸던 내 모습도 상세히 기억했다.

삼합주 의기투합, 벌써 5년이 지났네

그로부터 벌써 5년이 흘렀다. 먼저, 남들은 한 번도 받기 어려운 '올해의 뉴스게릴라상'을 두 번이나 받게된 소감이 어떠냐고 물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다작하는 스타일이 아니기 때문에 기대도 안 했다는 거다. (그는 올 한해 15편 가량의 글을 썼다. 대부분 오마이뉴스 꼭대기에 걸렸다)

그동안 강 기자의 기사를 읽을 때마다 나는 '대자적 존재'라는 단어를 자주 떠올렸다. 대자적 존재는 어떤 일을 바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비판적으로 사고해 인식하는 존재를 일컫는다. 

강 기자가 그동안 <오마이뉴스>에 연재한 '미국 문화 읽기'나 '뉴미디어 기획' 같은 장기 기획 기사를 보자. 그는 일관되게 우리를 조정하려 드는 자본이나 권력과 긴장을 유지하면서, 그들의 부조리를 비판할 때는 날카로운 칼끝을 겨눈다. 이 탓에 나는 그의 사상적 스승이 놈 촘스키 교수가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그는 의외로 스승인 '존 피스크'(John fiske)를 사숙했다고 말했다. 피스크는 세상에 쏟아지는 텍스트(각종 정보)를 사회문화적 맥락 속에서 분석하고, 그 속에서 변화와 저항의 희망을 읽어내는 매스미디어 이론가다. 영문학을 전공했지만 매스컴으로 전공을 분화했고, 지금은 뉴미디어 쪽에 집중하는 그가 사숙하기에 꼭 맞는 문화이론가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매스컴을 전공한다고 글쓰기가 저절로 되는 건 아니다. 그가 어떻게 <오마이뉴스> '올해의 뉴스게릴라'를 두 번 수상하는 내공을 갖게 됐을까. 그는 기사를 쉽게 쓰지 않는다고 고백했다.

"사실 내 기사는 분량이 긴 편인데, 일부러 늘이는 건 아니다. 어떤 주제 대해서 독자에게 생각의 기회를 주려면, 일정한 분량의 준비가 있어야 한다. 먼저 관심이 가는 주제 중 무얼 쓸지 고민하고, 자료 찾으며 공부를 한다. 글을 쓰면서 나 스스로 많이 배운다. 내 글의 첫 독자는 바로 나 자신이다. 오래 생각하고, 천천히 쓰면서 세상을 배운다. 글쓰기는 나에게는 제일 좋은 스승이다. <오마이뉴스>에 10년 쓰면서 많이 배웠고, 무엇보다 즐거웠다."

조회수 1,021,369회를 기록한 9월 21일자 기사 <주민등록번호 13자리의 무서운 진실>
 조회수 1,021,369회를 기록한 9월 21일자 기사 <주민등록번호 13자리의 무서운 진실>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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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2002년 4월, 미국에서 유학하며 처음으로 <오마이뉴스>에 글을 썼다. 주로 미국 문화나 영화, 미디어에 관한 글이었다. 그의 연재 '미국, 미국 문화읽기'는 책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로 묶였다. 그리고 현재 그는 '뉴미디어 기획'을 연재하고 있다.

"뉴미디어의 기술적인 측면보다 사회문화적인 측면에 더 관심이 있다. 모든 기술은 사회에서 태어나고 성장하고 소멸하는 사회적 산물이기 때문이다. 기술적 진보에 초점을 두면 신기술은 경외의 대상일 뿐이지만, 사회와 문화에 초점을 두면 분석, 비판, 예측이 가능해지고 기술 변화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 가야 할지 알 수 있게 된다. 기술을 통제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힘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사실은 그런 생각이 기술을 통제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영역으로 만든다. 기술은 오직 사람들의 행복에 봉사해야 한다."

경계를 뛰어넘는, 그것도 논리가 탄탄하고 내용이 풍부한 글쓰기. 도대체 이 힘은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강력한 신념과 정치적 의지? 물론 이런 것도 있을 터다. 하지만 그는 미술, 음악 등 예술을 이야기했다. 논리가 정연하고 예리한 강 기자의 글. 도대체 미술, 음악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사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 지금 공부하고 있는 뉴미디어도, 정치도 아니다. 미술과 음악을 제일 좋아한다. 고교 때까지 미술을 했었다. 후에 외국어에 과심이 생겨 영문학을 공부하고 현재 신문방송 쪽 일을 하고 있지만 말이다. 훗날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가 되면, 음악이나 미술에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 학자로서도 음악을 듣고 공연, 미술을 감상할 때 가장 큰 지적 자극을 받는다. 요즘 창의성이 한국사회의 화두지만, 사회 전체에 예술을 경시하는 모순적인 태도가 퍼져 있는 것을 본다. 예술만큼 창의적인 분야는 없다.

예술의 기능은 크게 두 가지다. 사람에게 즐거움과 현실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을 준다. 글쓰기도 똑같다. 미술이나, 음악 등 예술은 상상력으로 소통하고, 글쓰기는 언어로 소통한다. 글쓰기 역시 즐거워야 하고, 현실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을 줘야 한다. 그런 점에서 예술은 글쓰기에 많은 자극을 준다."

"미술과 음악이 내 글쓰기에 자극을 준다"

좋은 글쓰기를 위해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흔하다. 하지만 예술을 강조하는 경우는 드물다. 상상력과 감수성을 중시하는 이야기로 들린다.

이런 강 기자가 수직적이고 위계적인 문화가 강하다고 알려진 삼성 등 대기업에 비판적인 건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한국에는 애플에 우호(?)적이고 삼성에 비판적인 그의 글을 '모국 모독'으로 받아들이는 이들이 적지 않다. 또 '애플빠'라고 비난하는 이들도 있다.

"사실 내가 <오마이뉴스>에서 가장 많은 항의를 받는 기자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나는 큰 맥락에서 국가의 경계가 없이 미디어를 읽기 때문에 그런 비평에는 언제나 대응할 준비가 되어 있고 그래왔다. 또 사람을 '빠'와 '까'로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물론 삼성에게도 좋은 점이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 필요하고 중요한 것은 외부에서 '무엇을' 배울까 하는 점이다. '애플은 왜 비판하지 않느냐'는 지적이 있는데, 그것보다는 애플에게서 배울 점을 이야기하는 게 한국에 보탬이 된다고 생각한다."

(이밖에도 그는 "밤길 조심해라" 류의 댓글도 상당수 받았다고 말했다. 주로, 황우석 교수나 심형래, 한국 걸그룹에 비판적인 기사를 썼을 때 육두문자를 비롯한 격한 반응을 경험하게 된다고 한다.)

그는 <오마이뉴스>에서 받을 수 있는 상은 거의 받았다. 명예의 전당 '으뜸상'은 일찌감치 받았고, '올해의 뉴스게릴라'도 두 번째이니 더 오를 곳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에게 <오마이뉴스>는 가장 어울리는 옷이다. 사실 그의 필력을 아는 큰 매체에서 기고 제안이 왔지만 당연히 거절했다. "살아온 맥락에서 벗어난 글쓰기는 결국 영혼까지 구속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오마이뉴스> 내가 쓰고 싶은 주제에 대해서 분량, 방식 제한 없이 실어주는 유일한 매체다. 물론 <오마이뉴스>를 보고 기고를 요청한 곳이 있다. 그런데 <오마이뉴스>에 자유롭게 쓰다보니, 다른 곳에 쓰기가 불편하고 어렵더라."

그는 "대학시절 등굣길에 총여학생회 대자보를 읽으며 사회를 보는 눈을 얻었다"고 한다. <한겨레>에 연재된 정운영 선생이나 리영희 선생의 글을 보면서 글의 힘을 배웠다. 그리고 이제는 <오마이뉴스>를 대표하는 시민기자가 됐다. 여기서 한 가지가 궁금하다. 사실 요즘은 짧은 글쓰기가 특징인 SNS가 대세 아닌가. 강 기자는 계속 자신의 글쓰기를 고집할까?

"1년 반 정도 트위터 하다가 그만뒀다. 트위터를 쓰는 동안 <오마이뉴스>에 글을 잘 쓰지 못했다. 바쁘기도 했지만, 트위터의 짧은 글쓰기에 익숙해지면서 사고의 호흡도 짧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트위터를 그만두니 글쓰기가 시작되더라. 트위터의 짧은 글이든, 연애편지든, <오마이뉴스>에 쓰는 기사든, 글쓰기는 항상 저자를 변화시킨다. 피상적 글쓰기는 저자의 사고를 피상화한다. 상대를 깊이 생각하며 쓰는 편지는 읽는 이에게 감동을 줄 뿐 아니라, 쓰는 과정에서 저자에게 상대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을 준다. 글쓰기는 사고를 드러내는 과정이라기보다는 언어를 통해 사고를 재조직화하는 과정이다. 결과 못지 않게 과정이 중요하다. 오래 고민하고 정성 들여 글을 쓴 글에는 반드시 보상이 따른다. " 

앞으로도 계속 강인규 기자의 글을 <오마이뉴스>에서 볼 수 있을 듯하다. 미국 대학에서 뉴미디어를 가르치는 강 기자. 게다가 그는 펜실베이니아주립대(베런드 칼리지) 학교신문 지도교수로 일하고 있다. 그런 그에게 글쓰기를 고민하는 한국 대학생을 위한 조언을 부탁했다.

"SNS 짧은 글에 길들여지지 말라... 오래 생각하고 써야"

2010 세계시민기자포럼-심층보도와 모바일 저널리즘에서 '기술과 사회, 그리고 시민저널리즘의 미래'를 주제로 발표 중인 강인규 기자.
 2010 세계시민기자포럼-심층보도와 모바일 저널리즘에서 '기술과 사회, 그리고 시민저널리즘의 미래'를 주제로 발표 중인 강인규 기자.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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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국의 젊은 세대는 많이 힘들어 하고, 좌절하고 있다. 글쓰기를 한다면, 출발점은 바로 그 지점이어야 한다. 왜 힘든지, 더 힘들지 않게 살 방법은 없는지, 그리고 고통의 원인이 개인에게 있는지, 아니면 사회에게 있는지 등 그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러면 자신이 어떤 점을 보충하고 공부해야 하는지 보일 것이다. 또 가능하면 즐겁게 가야 한다. 암울하고 어렵지만 그 가운데서도 웃음을 찾는 노력이 중요하다. 그러면 자신도 즐겁고, 독자들도 즐거울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의 대학언론과 기성언론이 부러움과 부끄러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미국 대학언론의 철저한 편집권 독립 이야기였다.

"학생들이 만드는 신문에 학교가 개입하는 건 불가능하다. 나는 학교신문 지도교수 될 때부터 '절대로 신문 내용을 결정하거나 기사를 삭제하지 않겠다'고 계약서에 사인했다. 어떤 방식으로든 편집권에 개입할 수 없다. 학생기자가 가끔 조언을 구할 때가 있는데, 그때도 상당히 조심스럽다. 내가 발언한다고 해도 다른 학생들과 똑같은 비중으로 처리될 뿐이다. 지도교수가 신문 나오기 전에 기사를 읽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인쇄 전에는 읽지 않는다. 현재 미국 사회가 암울하지만, 이런 민주적 절차를 보면 희망이 보인다. 한국의 어떤 매체도 이런 편집권 독립을 못 갖는 게 현실 아닌가."

아, 그리고 이번 인터뷰 과정에서 강 기자와 의기투합한 게 있다. 한국 사회가 중국을 보는 눈이 얼마나 잘못됐는지, 그가 미국인들의 시각에서 다루기로 약속했다. 

그나 나나 99년에 타국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나는 예정에 없이 중국에서 2008년에 귀국했다. 반면에 강 기자는 지난해부터는 펜실베이니아 주립대에서 교수가 됐으니 한동안 미국에 머물게 될 것 같다. 하지만 <오마이뉴스>가 있으니 강인규 기자의 글은 언제나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매서운 삭풍이 부는 광화문에서의 인터뷰는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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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올해의뉴스게릴라, #강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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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케이아이테크놀로지 상무. 저서 <삶이 고달프면 헤세를 만나라>, <신중년이 온다>, <노마드 라이프>, <달콤한 중국> 등 17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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