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는 '2012 2월22일상' 수상자로 구태우 김성수 김정현 김혜원 손우정 신경호 신광태 오창균 정미경 조정훈 최병성 한경미 총 12명의 시민기자를 선정했습니다. '2월22일상'은 한 해 동안 꾸준히 좋은 기사를 쓴 시민기자에게 주어지는 상입니다. 

시상식은 2012년 2월 17일 <오마이뉴스> 상암동 사무실에서 치러집니다. '2012 2월22일상' 수상자에게는 상패와 상금 50만원을 드립니다. 이 자리에서는 '2011 올해의 뉴스게릴라상'과 '2011 특별상', '2011 올해의 기사상', 시민기자 명예의 전당 시상식도 함께 열립니다. 수상하신 모든 분들께 축하인사 드립니다. <편집자말>

"날카로운 비판의식과 용기 가진 기자 되길"

[2012년 2월22일상] 반부패·입양문제 전문, 김성수 시민기자

 

김성수(52) 기자는 <씨알의소리> 편집위원으로, 반부패와 입양아에 대한 기사를 전문으로 써왔다. 김 기자가 올해 쓴 기사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기사로 꼽은 것은 캐나다인 베이커교수의 인터뷰 기사다. <"전두환 종신형 받고 지금도 감옥에 있어야">라는 기사는 포털사이트에 올라 댓글이 3000개나 달리는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그 반응에 김 기자 본인도 많이 놀랐다. 전두환은 군사 쿠데타로 무고한 시민을 학살해 스스로 대통령이 되었다. 그는 종신형을 받고 감옥에 있어야 하는데, 국민혈세로 경호비용을 지불하니 분노가 치밀었다고 한다.

 

김 기자가 시민기자가 된 것은 2008년. 진실화해위원회 근무 당시 캄보디아 유엔전범재판소와 킬링필드 지역으로 출장을 다녀온 뒤 그 느낌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서 <오마이뉴스>에 가입했다. 그때 쓴 첫 기사는 <'킬링필드'의 나라 캄보디아를 다녀오다>이다. 하지만 공무원 신분이라서 자기검열에서 자유롭지는 못했다.

 

그가 가장 보람을 느꼈던 순간은 언제일까?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말을 실감했던 적이 있다. 2010년 자신이 쓴, <"제주 4.3은 폭동. 광주 5.18은 민중반란" 이영조 진실위위원장의 기막힌 역사인식> 기사로 인해 국무총리가 국회에 나와서 머리 숙여 사과를 하는 장면을 보았을 때다. 골방에서 쓴 글이 사회를 조금이라도 변화시키는 것을 볼 때 그 보람은 이 세상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임을 느꼈다고 한다.

 

김 기자는 "한 가지 사건에는 최소한 세 가지 이상의 사실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하나는 강자가 본 사실이고 또 하나는 '중립'이라는 이름의 겁쟁이가 본 사실, 제일 중요한 시각은 약자나 피해자가 본 사실이다. 사회가 약자를 어떻게 대우해주느냐가 그 나라의 수준이고 국격이라 확신한단다.

 

김 기자는 피해자를 위한 따뜻한 시각과 강자에 대항한 날카로운 비판의식과 용기를 가진 기자가 되길 나와 같은 초보기자에게 요청했다. 김 기자의 이야기를 들으니 쉽지 않은 길이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 남편, 절대로 '폐경남' 아닙니다"

[2012년 2월22일상] 2월22일상까지 탐낸 욕심쟁이(?), 김혜원 시민기자

 

"내심 탐을 내던 상이라 그런지 '올해의 뉴스게릴라상'을 받은 것보다 더 행복합니다."

 

김혜원(51) 기자, 참 욕심도 많다. 2004년과 2005년 연속으로 '올해의 뉴스게릴라상'을 받고 2006년엔 '명예의숲 으뜸상'까지 받았으면서, 못 받아 본 상이란 이유로 '2월22일상'까지 욕심 내고 있었단다. 정말 나 같은 '초짜' 기자는 그저 부러울 뿐이다.

 

어떤 상이든 좋으니 상 한 번 받아보는 게 소원인 초보 시민기자들에게 한마디 해달라 하니 너무 뻔한 답이 돌아온다.

 

"대부분의 기자들이 초반 서너 달 열심히 하다가 배치나 조회 등에서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느 순간 포기해버리거든요. 저는 2년 넘게 매주 한 꼭지의 기사를 썼습니다."

 

"배치에 신경 쓰지 말고 그저 쓰는 것을 즐기며 꾸준히 써보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란다.

 

나도 뜨끔하다. 시민기자 가입하고 몇 개월 지나 기사 올리기에 뜸했던 시간이 나에게도 있던 것 같다. 속을 뻔히 들킨 것 같아 얼굴이 다 화끈거린다.

 

김 기자는 올해 가장 기억에 남는 기사로 <"연봉 6억 목사의 치부 어찌하오리까">를 꼽았다. 이 기사는 당시 큰 반향을 일으켜, '6억 목사'가 포털사이트 검색어 순위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이 사건은 목사가 사임서를 제출해서 해결될 듯했지만, 1년 가까이 지난 지금 교회가 명예훼손을 이유로 김 기자에게 3억 원의 민사소송을 걸어서 현재 재판 중이다. 마음고생도 많이 했다는데 빨리 해결이 되었으면 좋겠다.

 

시민기자가 되어서 가장 보람을 느꼈던 순간은 언제일까? "가족과 생이별하고 암으로 죽어갈 처지에 있던 필리핀 이주여성(아멜리아)을 돕고 싶다고 1700만 원이 넘는 좋은 기사 원고료가 답지하던 순간"이었다(기사 보기 : <"나무꾼과 선녀처럼 살고 싶었어요">). 그밖에도 "작은 제도적 문제들이 기사 송고 후 시정되었을 때 소름 끼치는 보람을 느낀"단다.

 

재미있는 기사 뒷이야기를 부탁했더니 <"까칠해진 우리 남편... 폐경이랍니다"> 기사 때문에 남편과 부부싸움 할 뻔한 이야기를 꺼낸다. 가족들이 가족 팔아서 기사 쓰지 말라고 했는데 남편에게 '폐경남'이란 별명까지 붙여주었으니 남편이 화가 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지금도 남편이 자신은 폐경남이 아니라고 꼭 밝혀달라고 했단다.

 

"김혜원 기자 남편, 절대로 폐경남 아닙니다. 이 자리를 통해서 제가 밝힙니다."

 

 

"<오마이뉴스>는 세상과 소통하는 통로"

[2012년 2월22일상] 시각장애인 대표기자, 신경호 시민기자

 

신경호(44) 기자는 1급 시각장애인이다. 그 사실을 알고 신 기자가 어떻게 기사를 쓰는지 궁금했다. 신 기자는 화면을 읽어주는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아서 기사를 쓰고 있단다.

 

지난 7월, 지하철에서 한 여성이 안내견의 도움을 받는 시각장애인에게 막말을 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이 알려지면서 시각장애인에게 막말을 한 여성을 질책하는 여론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신 기자는 그런 편견을 가진 사람도 보듬어보고 싶어서 <무개념 아줌마 개소리 한번 들어보실래요>라는 기사를 썼다.

 

기사를 읽고 나서 나 역시 안내견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음을 알게 되었다. 안내견은 시각장애인을 안내할 때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래서 안내견들이 몸이 안 좋은 경우도 많고 수명도 짧다고 한다. 주변에서 안내견에게 우호적인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 기자는 지금 <오마이뉴스>에 '안내견 뭉치와 로봇친구 또또'라는 제목의 동화를 연재 중이다. 현재 5회까지 연재되었다. 이 글을 읽고 자란 아이들이 안내견이나 시각장애인에 대해 깊이 이해하게 된다면 더 없이 좋은 일일 것이다.

 

지난 8월, 신 기자는 <안내견인데... 신성한 국회라 동물은 안 된다고?> 기사를 쓰기 위해 일본 중의회에 취재차 전화를 했다. 안내견의 국회 출입을 묻는 신 기자의 질문에 중의회 관계자는 "그건 당연히 가능한 것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다. 한국의 사법부, 입법부와 반응이 전혀 달라서 놀랐단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되는 기사가 많아져서 하루 빨리 우리나라도 좋아졌으면 좋겠다.

 

신 기자는 2004년 <오마이뉴스>와 '여행박사'가 주최한 '장애인에게 여행의 자유를'이란 행사에 참여해 일본 여행을 공짜로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시민기자로 가입을 했다. 처음에는 기사를 쓸 용기가 없었는데 우연히 기사를 쓰게 되었다고 한다.

 

어떻게 하면 2월22일상을 받을 수 있을지 물었더니 "본인만의 전문영역이 필요하다"고 한다. 본인이 평소 관심있는 부분에 전문적 지식을 갖추고 기사화한다면 좋은 기사를 쓸 수 있을 것이란다. 신 기자 본인도 아직은 부족하다고 생각하며 늘 노력하겠다고 한다.

 

그가 시민기자가 되어 가장 보람을 느낀 순간은 언제일까? 시청각장애인 조영찬씨를 비롯해 시청각중복장애인을 소개한 기사(<"듣지도 보지도 못하지만 공부할 수 있어요">)를 통해 중복장애인의 존재를 세상에 알렸을 때가 가장 보람이 있었고 한다.

 

신 기자는 성인이 되어 시각장애가 오면서 세상과 단절한 채 보낸 기간도 있었다. 그러다가 화면을 읽어 주는 프로그램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세상과 소통하게 되었다. 신 기자에게 <오마이뉴스>는 세상과 소통하는 통로이다.

 

 

"나도 지역에서 필요한 사람이라 느낄 때 보람"

[2012년 2월22일상] 강원도 화천 '소식통', 신광태 시민기자

 

강원도 화천군 관련 기사가 많다. 누가 <오마이뉴스>에 화천 기사를 계속 올리는 걸까? 알고보니 이번 2월22일상 주인공인 신광태(51) 기자다. 신 기자는 화천군청에서 홍보를 담당하는 공무원이란다. 그런데 화천은 어디 있는 걸까? 화천은 춘천 북쪽에 있는데, 이외수 작가가 사는 '감성마을'로 유명한 곳이다.

 

신 기자가 시민기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는 뭘까? 군청의 홍보일을 하면서 언론사에 보도자료를 돌릴 일이 많았다. 그런데 가끔 기사가 잘못 보도되는 경우가 있었다. 정말 이런 일이 생기면 신 기자는 막말로 '환장'했단다. 차라리 본인이 직접 기사를 쓰고 트위터를 통해 알리면 좋겠다 생각해서 시민기자 활동을 하게 되었다.

 

신 기자는 올해 가장 기억에 남는 기사로는, 올해 1월 첫 기사로 쓴 <영하 20도, 밤새 구제역과 사투... 언제 끝나려나>를 꼽았다. 이 기사는 구제역 차단을 위해 공무원들이 현장에서 밤샘 근무를 하며 고생을 하는 것을 알리기 위해 썼는데, 포털사이트에서도 인기를 끌었다. 덕분에 신 기자는 칭찬도 많이 들었단다.

 

그리고 <막내 죽음, 8년간 어머님을 속였습니다>라는 기사는 오마이뉴스를 비롯해 포털사이트에서 1천여 건의 댓글이 올라올 정도로 독자들의 가슴을 아프게 한 내용이었다. 이 기사를 읽으면서 나도 내내 가슴이 아팠다. 신 기자는 시민기자가 되고 나서 마을 이장이나 주민들이 취재 요청을 할 때 '나도 지역에서 필요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큰 보람을 느낀단다.

 

신 기자가 사는 화천에선 겨울이면 산천어축제를 비롯한 여러 겨울축제가 열린다. 내가 화천의 산천어축제를 아는 것도 그가 열심히 홍보를 해준 덕분이다. 신 기자의 트위터 팔로어는 7만이 넘는다. 웬만한 유명 정치인보다 팔로어 수가 더 많다. 정말 대단하다. 이렇게 열심히 홍보 일을 하는 공무원이 또 있을까? 앞으로도 신 기자의 멋진 활동을 기대한다.

 

 

"내 기사도 10%는 생나무... 사는이야기부터 써보라"

[2012년 2월22일상] 구수한 도시농부, 오창균 시민기자

 

'생태텃밭강사'라는 낯선 단어로 자신을 소개하는 오창균(43) 기자. 오창균 기자는 현재 '인천도시농업네트워크'에 소속되어 일반인을 상대로 생태텃밭 농사교육을 하고 있다. 시민기자가 된 지 올해로 11년. 그동안 꾸준하게 생태와 환경, 귀농에 대한 기사를 <오마이뉴스>에 올리고 있다.

 

오 기자는 올해 가장 기억에 남는 기사로 홍익대 청소 노동자 농성장을 방문한 뒤에 쓴 두 편의 기사를 꼽았다. 오 기자의 어머니도 대학교 청소 노동자로 10년을 넘게 일하다가 1997년 비정규직 제도가 생기면서 그만두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홍대 방문 후에 쓴 <대학교 청소부 엄마, 왜 난 피해 다녔을까><"밥값 300원 장난해? 떡꼬치 한 개 값이잖어"> 두 편의 기사는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썼단다.

 

오 기자는 귀농하면 농사를 지으며 글을 쓸 계획이다. 그때를 대비해서 연습 삼아 시민기자가 되었다. 글쓰기는 노후대책으로도 좋다는 생각이 든다.

 

오 기자에게 다음 번 2월22일상을 노리는 초보 기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물었다.

 

"나는 정규학력이 초등학교 졸업이라서 교과 공부도 제대로 못했고, 글쓰기 수업을 받아 본 적도 없다. 때문에 그냥 마음 가는 대로 어떤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쓴 후 다듬는 편이다. 글쓰기가 어렵다면 자신의 주변 사는이야기부터 써보라고 권하고 싶다. 내가 쓴 기사도 10%는 생나무다."

 

오 기자는 <오마이뉴스>가 시골장터와 같다고 한다.

 

"비슷한 형편의 사람들이 모여서 물건을 사고 팔면서 덕담도 나누고 흥정도 하고 기분 나면 막걸릿잔 부딪히면서 정을 쌓듯이, 다양한 삶을 살고 있는 시민기자들의 이야기를 읽는 재미에 하루라도 안 들어오면 허전해지고, 근황이 뜸한 시민기자가 있으면 알지는 못하더라도 궁금증이 생기기도 해서, 나에게 <오마이뉴스>는 활력이 넘치는 시골장터와 같다."

 

정말 '도시농부'다운 구수한 답변이다.

 

 

"은둔형 외톨이이던 나, <오마이뉴스> 가입은 '변고'"

[2012년 2월22일상] 만능 이야기꾼, 정미경 시민기자

 

"선정 기준이, 내 경우만 놓고 보면 '잘 쓰는 시민기자'가 아니라 '더 노력해야 할 시민기자'인 것 같다. 괜히 자격 없는 내가 수상자 대열에 합류함으로써 <오마이뉴스> 수상자 선정 기준에 공정성 시비나 붙지 않을는지 걱정될 따름이다."

 

수상소감이 어찌 이리 겸손할까? 정미경(45) 기자는 책을 많이 읽는다. 주로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서 읽는다.

 

"도서관을 두 군데 정해 놓고 교차방문 한다. 그래야 한 도서관을 너무 자주 가지 않게 된다. 학자도 아니고 학생도 아니면서 매번 그렇게 많은 도서를 대출하는 것이 어쩐지 창피해서다."

 

책을 많이 읽으면서 글을 쓰니 정 기자는 필력이 좋다. 소재도 다양하다. 책을 별로 많이 읽지 않는 나는 정 기자의 이런 습관이 부럽다.

 

올해의 가장 기억에 남는 기사로 <내가 알고 있던 남편 이름, 진짜가 아니었어>를 꼽았다. 처음 내가 이 기사를 접했을 때는 정 기자 남편이 무슨 범법행위에 관계돼 있나 생각했다. 직접 기사를 읽어보니 문학청년이었던 남편의 필명을 처음 들은 아내의 이야기다. 이 기사를 올리고 정 기자는 인터넷 쪽지 한 장을 받았단다.

 

"흠, 제 생각에는 남편분이 살림하시고 사모님(정미경 기자)께서 글을 쓰시는 게 훨 빠를 듯.ㅋㅋ"

 

이 쪽지가 "흐트러진 가정의 질서를 통쾌하게 재편시켜 줬다"고 한다. 이 기사를 계기로 남편은 확고하게 절필을 선언했고, 이후 남편은 정 기자 '외조'에만 전념하기로 하고 본격적인 취재활동을 위해 카메라맨을 자청하며 카메라기기를 정비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정 기자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가 된 것은 2010년 11월. 계기는 무엇일까?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수준의 내가 십 년 동안 망설이다 <오마이뉴스>에 가입을 한 것은 일종의 변고였다. 사람들과 직접 대면하지 않아도 되는, 인터넷신문이라는 장점이 소심한 나를 <오마이뉴스>와 만나게 해준 것 같다."

 

정 기자는 마지막 인사말로 다음에 내가 상을 받으면 인터뷰 기사를 써주겠다고 했다. 고맙다. 이렇게 수상자들을 인터뷰하면서 비법도 전해 듣고 인터뷰 해줄 기자도 구했으니, 이제 상만 받으면 되는 걸까?


태그:#2월22일상, #시민기자, #오마이뉴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