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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아하니 여러분들이 저 벽에 붙어 있는 쥐들 때문에 죽을 지경인 모양인데
자, 방귀송으로 확실하게 쓸어 버리자구."

오나가나 쥐가 문제다. 12월 22일, 종로구 신문로의 전시공간 에무를 찾았을 때, 제1회<바보제>에 오르는 연극 <바보여신의 일장연설>의 주연을 맡고 있는 김영종(56)씨는 방귀송을 부르며 연습에 몰입하고 있었다. 의상과 표정연기만 보면 틀림없는 연극배우 스타일인 그는 사실 무대와는 거리가 먼 이력의 소유자다.

<헤이, 바보예찬>의 저자 김영종씨가 직접 주연을 맡은 연극 <바보여신의 일장연설>이 12월 28일 종로구 신문로의 전시공간 에무에서 막을 올린다.
▲ 지식인나부랭이는 가라! <헤이, 바보예찬>의 저자 김영종씨가 직접 주연을 맡은 연극 <바보여신의 일장연설>이 12월 28일 종로구 신문로의 전시공간 에무에서 막을 올린다.
ⓒ 최진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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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 출판사 사장 시절엔 <논리야 놀자>(1992), <임꺽정> 등의 문제작을 기획 출판했다. 또 1998년에 한국고대사를 다룬 역사소설 <빛의 바다>를 쓰면서 작가의 길로 나선 이후 <티벳에서 온 편지> 등을 발간했다. 이후 2004년에는 <난곡이야기>라는 사진집을 내고, 사진작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처럼 주로 출판계를 무대로 활동하던 김영종 작가가 이번에는 연극배우로 변신했다. 12월 28일 에무에서 열리는 제1회 <바보제>에 선보이는 연극 <바보 여신의 일장연설>(헤이, 바보극단)의 주연배우로 나선 것이다. 2010년에는 <헤이, 바보예찬>을 펴내면서 스스로 바보주의의 전도사를 자임하고 나선 김영종 작가에게 세상을 바꾸는 바보이야기에 대해 들어보았다.

- 작가가 연극을 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원래 광대 기질이 있나?
"배우를 구하지 못해 직접 나서게 됐다. 누구에게나 광대의 피가 흐른다. TV에서 소개되는 야생 부족들의 축제 모습을 보면 모두가 광대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 현대인들의 잃어버린 영역이 아닌가 싶다."

- 무엇이 현대인들에게 광대 기질을 빼앗아 버렸다고 보나?
"이성이다. 학자들은 인간을 지혜가 있는 사람, 이성적인 사고능력을 뜻하는 호모사피엔스로 규정했다. 이는 인간을 좁은 틀에 한정지은 것이다. 이성적이지 않으면 바보, 원시인, 미개인으로 무시해 버리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 배우수업을 따로 한 적이 있나?
"없다. 10여 년 전부터 이성보다는 감성을 중시하는 연습은 했다. 보통 오버 액션을 부정적으로 보는데 나는 오버하며 살려고 애썼다. 광대에게는 겸손보다는 오버가 어울린다."

- 광대와 바보는 일맥상통한 말인가? 왜 바보에 관심을 갖게 됐나?
"<바보제>에 나오는 바보의 전형적 기질이 광대다. 십여 년 전부터 너나 할 것 없이 사람들이 자기 내부의 감독관의 감시 속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서 벗어나려 애쓰다 보니 이성이란 감독관에 의해 계몽과 퇴치의 대상이 된 바보가 웅크리고 앉아 있는 것을 보게 됐다. 바로 이 죽어가는 바보를 살려내야 하는 것이다. 강화도 작업실 뒷산의 박달나무 아래 흐르는 샘물을 삼년 동안 마시며 바보를 살려달라고 빌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늘을 나는 수백 마리의 새떼를 보며 나도 새가 된 것 같은 자유로움을 맛봤다. 그 순간 몸 안에서 생명감이 솟구치는 걸 느꼈다."

이성과 유토피아, 인텔리 거부하는 바보주의

- 연극 <바보제> 대본의 모체라 할 수 있는 <헤이, 바보예찬>에서 주요 비판이 이성, 유토피아에 맞춰져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이성은 인간을 감독하고 있고, 유토피아는 현재적 삶의 즐거움과 낙천성을 빼앗아 버렸다. 현대인의 삶은 미래의 희망을 담보 잡혀 빌린 돈으로 살아가는 빚쟁이 인생과 같다. 인간은 이성의 감독과 어디에도 없는 유토피아의 유혹에서 벗어나 현재의 삶에서 기쁘고 자유롭게 살아야 한다."

- <헤이, 바보예찬>은 중세의 인문학자인 에라스무스의 <우신예찬>을 패러디한 것이라 밝혔고, 전시공간 이름도 '에무'라 지었는데, 특별히 에라스무스에 주목한 이유는?
"나는 학자를 무자비하게 비판한 에라스무스에 공감한다. 그에 따르면 라틴어로 학자는 악마와 같은 뜻이라고 한다."

- 에라스무스를 스승으로 받드나?
"에라스무스를 좋아하지만 나는 스피노자의 추종자라 할 수 있다. 신에 취한 무신론자라 불리는 스피노자의 저서 <에티카>(기하학적 순서로 증명된 윤리학)가 애니미즘의 현대화를 이루는데 사상적 자양분이 될 수 있다고 본다."

- 학문과 인텔리를 비판하는 작가에게서 아이러니컬하게도 현학적인 느낌이 난다.
"칸트가 '수단으로 삼으면서 목적을 지향한다'는 말을 했는데, 현재로서는 제도권 학문을 비판하기 위해서 학문이 수단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필요악이라고나 할까. 현실 속에서 바보의 삶이 어렵기에 예술로 발언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바보제>를 기획한 김영종 작가는 <너희들의 유토피아>에서 전문가들이 장악한 언론메커니즘에게 맞서기 위해선 유언비어, 헛소리, 노가리, 허풍, 우스개로 말의 아수라장을 만들어야 함을 강조한다. 나꼼수처럼.
▲ 유언비어로 맞서자 <바보제>를 기획한 김영종 작가는 <너희들의 유토피아>에서 전문가들이 장악한 언론메커니즘에게 맞서기 위해선 유언비어, 헛소리, 노가리, 허풍, 우스개로 말의 아수라장을 만들어야 함을 강조한다. 나꼼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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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보제>를 기획할 때 영향 받은 것은 무엇인가?
"세계적인 신학자인 하비콕스가 쓴 <바보제>에서 영감을 얻었다. <바보제>를 보면 바보를 왕으로 세운 뒤, 신분질서를 파괴하고 뒤엎는 장면이 나온다. 그것은 중세시대에 유행한 축제이기도 했다. 하비콕스는 광대 그리스도, 즉 디오니소스적 그리스도를 예수의 진정한 모습이라고 말한다."

사회경제적 파괴를 넘어선 자연주의적 순환 지향

- 연극 대본을 보면 쥐, FTA, 가카라는 정치적인 표현들이 등장한다. 바보는 현실 참여적 인간형이라 할 수 있나?
"해학과 풍자를 즐기는 바보와 광대는 생리적으로 현실 비판적이다. 그런데 바보제를 통해 추구하는 것은 사회경제적, 계급적인 변화와 파괴뿐만 아니라 자연주의적 순환을 지향한다. 진보세력도 이성, 역사주의 속에 매몰되어 있다고 본다. 결국은 자본주의 체제 안의 저항인 것이다. 바보는 이를 넘어서는 근본적 저항을 추구한다."

- 바보주의가 지향하는 근본적 저항은 무엇인가?
"바보주의는 역사 안의 자본주의에 저항하면서 동시에 역사 밖을 지향해야 한다. 예를 들어 철거민 투쟁할 때 적절한 보상을 중심에 둔다면 역사 안의 운동이고, 이해관계를 넘어서는 세계관, 이를테면 '집은 우주다'와 같은 생각에 기초해서 싸운다면 역사 밖의 투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바보가 지향하는 사회는 무엇인가?
"바보는 인본주의가 아닌 자연주의를 지향한다. 자연주의는 신학적으로는 애니미즘, 철학적으로는 영원한 순환을 바탕에 깔고 있다. 바보가 꿈꾸는 것은 유토피아가 아니라 기쁨이 넘치는 현재다. 나의 '오래된 미래'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사회라 할 수 있다."

- 감성을 중시하는데, 바보주의의 바탕에 깔린 미학관은 무엇인가?
"생명감을 중시하는 애니미즘적 미학이라 할 수 있다. 애니미즘이란 정령과 같은 초자연적인 힘이 만물에 깃들어 있다고 믿는 원시신앙이다. 애니미즘 미학은 자아를 벗어나 타자와의 만남을 강조한다. 애니미즘적 예술에서는 타자 즉 만물 속에서 신을 만나고, 접신하는 것이 중요한데, 영화 <아바타>(2009)의 나비족들이 '영원한 나무'를 둘러싸고 제의를 벌이는 장면 속에서 그 모습을 찾을 수 있다."

- 작가의 저서 <너희들의 유토피아>에 대해 민중의 삶과 유리된 담론이고, 예술가 개인의 해방만을 지향한다, 자기 세계에 닫힌 자의 독백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광대는 혼자 놀지 않는다. 내가 <헤이, 바보예찬>에서 썼듯이 바보는 혼자서 힘을 낼 수 없다. 초식동물처럼 엄청나게 많이 모여서 맞서야 한다. 저잣거리 광장에서의 소통, 직접민주주의가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SNS의 역할이 기여하는 바가 크다. 그런데 목적의식적인 조직운동보다는 자연사적인 형성에 의한 연대를 선호하는 편이다. 조중동 불매운동, 광우병 쇠고기 촛불시위 때의 소비자주권운동 같은 게 그런 예다."

나꼼수와 전복의 유언비어

- 그런 세상을 이루는 데 <바보제>가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다고 보나?
"군사독재 시대에 비해 오늘날의 언론은 세련된 '합리성의 메카니즘'을 통해 통제를 내면화하고, 자기검열을 일상화 하고 있다. 그리고 팩트, 사실, 논리를 강조하는 전문가들의 목소리는 재미없고 무미건조하다. 교육받은 사람들일수록 논문투의 문어체 말투를 쓴다. 생화가 아닌 조화 같고 표준화된 공산품처럼 느껴진다. 말이 살아 있어야 사회가 살아있다.

근거를 생산하는 전문가들한테 쫄지 말고, 하고 싶은 말을 해야 말이 살아난다. 엘리트 전문가들은 그런 살아있는 말을 유언비어, 괴담이라고 억압한다. 현재성을 생명으로 하는 유언비어나 괴담은 세상을 뒤집는 헛소리다. 아니, 그런 누명을 쓰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헛소리가 합리성의 언론메커니즘을 상대로  비웃고, 농락하고, 꼬집고, 오리발 내밀고, 호언장담하면서 말의 축제를 벌여야 한다. 광대처럼. 바보제가 그런 축제의 불쏘시개가 되고자 한다."

자기 내부의 이성이라는 감독관의 감시로부터 자유롭게 살기 원하는 김영종 작가는 2004년부터 강화도에 머물며 저술 작업을 하고 있다. 염하강이 내려다 보이는 화도돈대 위에서.
▲ 미래보다는 현재의 기쁨을 자기 내부의 이성이라는 감독관의 감시로부터 자유롭게 살기 원하는 김영종 작가는 2004년부터 강화도에 머물며 저술 작업을 하고 있다. 염하강이 내려다 보이는 화도돈대 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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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찌 보면 현재의 언론 중에서 광대정신을 잘 살린 것이 나꼼수가 아닌가 싶다.
"나꼼수를 들으며 공감하는 바가 많다. 광대 같은 출연진, 재미 추구, 형식 파괴 등이 내가 추구하는 바와 흡사하다. <너희들의 유토피아>에서 유언비어의 사회학을 언급하면서 헛소리, 야부리, 노가리, 구라, 수다, 허풍, 우스개 따위로 말의 아수라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는데, 나꼼수가 그 전형이다."

- <바보제>와 함께 사진전 '우국충정의 ART와 AFTER ART(=FTA)'을 여는데, 이 또한 <바보제>에 포함되는 것인가?
"151명의 FTA 찬성의원과 이명박 대통령의 얼굴 사진, 그리고 성조기를 벽에 붙이고, FTA 주제음악과 영상을 함께 보여주는 전시회다. 사진 초상들을 움직이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라는 질문을 던지려고 한다. 바보는 FTA에 저항한다. 왜냐하면  FTA를 주도하는 것은 신자유주의라는 이론을 만든 전문가 집단, 학자, 엘리트들이기 때문이다."

김영종 작가는 2004년부터 강화도 남단 바닷가 여차리의 작업실에서 지내고 있다. 이성을 버리고 감성을 얻기 위해, 자연주의적 생명감을 체득하기 위해 그는  마니산 자락을 오르내리고, 강화갯벌에서 재생의 기운을 얻는다. "이성의 통제를 받는 자본주의적 인간형을 죽이고 거듭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바보가 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말하는 그가 <바보제>에서 관객을 향해 외칠 마지막 대사는 "바보가 되어 기쁨의 열매를 맺으라"는 것이다.

"기존의 가치가 죽어 없어지고
바보가 되어서 기쁨의 열매를 맺으라.
우리 모두 하나가 되어 이 우산 꼭대기에서 다시 만나길
그때 현재의 기쁨에 넘쳐 시간을 잊듯이 내 말도 잊으라."

덧붙이는 글 | 제1회 <바보제>를 무료로 관람하고, 뒤 이어 진행되는 바보제 축제에 동참하실 분들은http://blog.daum.net/emuspace 를 참조하세요.



태그:#김영종, #바보제, #에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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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에는 채식과 마라톤, 지금은 달마와 곤충이 핵심 단어. 2006년에 <뼈로 누운 신화>라는 시집을 자비로 펴냈는데, 10년 후에 또 한 권의 시집을 펴낼만한 꿈이 남아있기 바란다. 자비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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