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국가대표팀 사령탑으로 선임된 최강희 감독

새 국가대표팀 사령탑으로 선임된 최강희 감독 ⓒ 전북 현대 모터스


표류하던 축구대표팀의 지휘봉은 결국 최강희(51) 감독에게로 돌아왔다. 조광래 감독의 갑작스러운 경질 이후 혼란을 거듭하던 대표팀 감독 선임 문제는 2주만에 매듭지어지며 내년 2월 쿠웨이트와의 아시아 최종예선 3차전을 대비한 총력전 체제로 전환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최 감독의 선임 역시 깔끔하지 못한 뒷맛을 남긴다. 최 감독의 능력이나 인품의 문제가 아니다. 최 감독은 최근 3년간 소속팀 전북을 두 차례나 K리그 정상으로 이끌었고, ACL(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우승도 경험했다. 경력만 놓고보면 현재 K리그 지도자 중에서 최 감독보다 앞서가는 인물도 찾기 힘들다.

그러나 조 감독의 경질 과정이 그러했듯이, 이번에도 문제는 '절차'였다. 현재 조 감독의 경질을 통해 축구대표팀 감독직의 권위와 명예는 심각하게 훼손당한 상태다. 축구협회는 기술위원회의 논의를 거치지도 않고 실체가 불분명한 일부 고위층의 밀실행정만으로 조 감독에게서 지휘봉을 빼앗으며 거센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래놓고서는 불과 2주도 안 되어 다시 최 감독을 대표팀 감독으로 끌어오는 모양새 역시 각종 의문 부호가 붙는 것은 마찬가지다.

축구협회의 뿌리깊은 'K리그 무시' 그대로 드러난 최강희 감독 차출

최 감독의 A대표팀 차출은 축구협회의 뿌리깊은 'K리그 무시'와도 관련이 깊다. 최 감독은 일찌감치 대표팀 사령탑 후보로 여러 차례 거론되었으나 전북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내며 줄곧 고사 의사를 밝혀온 인물이다. 그런 인물이 갑자기 감독직을 수락하는 것으로 마음을 바꾸기까지는 적지않은 외압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밖에 없다.

축구협회는 그동안 국제대회가 다가오고 자신들이 다급한 상황에 놓일 때마다 '대승적 차원'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K리그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해왔다. '감독 빼가기'도 그중 하나다. 2007년 A대표팀과 올림픽팀을 겸임하던 핌 베어벡 감독이 사임하고 후임 외국인 사령탑 선정에 난항을 겪자, 축구협회는 시간에 쫓겨 부랴부랴 K리그 감독들을 대타로 내세웠다. 전남을 이끌던 허정무 감독은 A대표팀 사령탑에 올랐고, 박성화 감독은 부산을 맡은지 단 2주만에 올림픽팀 사령탑으로 말을 갈아타야 했다.

허정무 감독이 남아공월드컵 16강으로 성공적인 결과를 끌어냈음에도 재계약 여부를 놓고 뜨뜻미지근한 행보를 보이다가 결국 여론의 비판에 부담을 느낀 허 감독이 먼저 재계약을 포기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후임으로 조광래 감독이 선임되었지만, 마땅한 사람이 없으니 이리저리 반응을 찔러보다가 그나마 자원한 조 감독의 손을 마지못해 들어준 것에 불과했다. 적어도 국내파 감독 중에서 2002년 히딩크 감독이나 2006년 아드보카트를 영입할 때처럼 극진한 대우를 받으며 명예롭게 추대된 인물은 아무도 없었다. 결국 이런 과정들은 국내파 감독들의 위상을 마땅한 외국인 감독이 없을 때 대타로나 생각할 수 있는 만만한 인물로 취급한 것이다.

이번에도 축구협회는 조광래 감독의 일방적인 경질로 세간 비난 여론이 높아지자 현실성도 없는 외국인 감독 카드를 꺼내들며 여론을 무마하려 들었다. 하지만 결국 처음부터 우선 순위는 최강희 감독을 두고 꾸준히 회유작업을 거듭해왔음이 이번 감독선임을 통하여 그대로 드러났다. 각종 비용이나 조건문제로 외국인 감독선임이 어려웠음을 감안하면, 결국 최 감독을 선임한 가장 큰 이유는 '만만한 K리그 감독'이었기 때문이다.

A대표팀 감독직, 좀 더 명례롭게 추대되는 절차 있어야

A대표팀 감독직은 국내 모든 축구지도자들의 꿈꾸는 로망이다. 그 권위에 걸맞게 감독직에 오르는 과정도 좀 더 명예롭게 추대되는 절차가 있어야 했다. 하지만 이번 감독교체를 둘러싼 일련의 해프닝을 통하여 축구협회는 A대표팀 감독직을 고용불안에 떠는 비정규직이자, 언제든 축협 고위층의 비위를 거스르면 팽당할 수 있는 독배가 든 자리로 만들어버렸다.

이쯤되면 과연 누구를 위한 감독선임인지 알 수 없다. 팬들이나 축구계가 아닌 자신들의 책임을 대신 떠맡아 희생해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아내는 것이 과연 한국축구를 위한 대승적 차원의 결정일까.

최 감독은 현재 사지에 내몰린 장수와도 같다. 이번 사태를 통하여 대표팀 운영의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야 할 기술위원회가 사실상 유명무실해졌다는 것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황보관 기술위원장은 조 감독 경질과정에서 그저 고위층의 의사를 전달하는 거수기에 불과했으며, 최 감독을 선임하는 과정이나 심지어 정확한 계약기간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촌극을 연출했다. 전임 조 감독은 자신의 재임기간 기술위원회의 지원이 전혀 쓸모 없는 수준이었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더구나 지금은 최 감독을 억지로 대표팀 자리에 앉혔던 축협의 고위층이라는 존재들이, 조 감독을 희생양으로 만들어냈듯 언제든 최 감독 역시 똑같은 처지에 내몰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만일 최강희호가 쿠웨이트전을 뜷고 첫 관문을 통과한다 할지라도 최종예선에서 고전하거나 만족스러운 모습을 보이지 못할 경우, 언제든 한국축구의 위기 혹은 본선경쟁력을 핑계로 감독을 갈아치울 수도 있다. 이쯤되면 최 감독의 운명이 애처롭게 느껴질 정도다. 과연 최 감독은 2014년 브라질월드컵까지 완주할 수 있을 것인가.

축구 최강희 축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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