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G@

2차 대전을 담은 300억 영화와 대작 블록버스터의 틈바구니속에 3000만 원을 들여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가 호기롭게 도전을 선언했다. 화려한 상업영화들과 같은 시기 개봉해 위축될 만도 하지만 작은 다큐의 열의는 주눅이 들지 않았다.

거대 배급사를 앞세워 수백 개의 스크린을 장악한, 스타 감독과 배우의 상업영화에 비하면 열 개도 안 되는 상영관에서 퐁당퐁당 상영을 해야 하는 처지가 애처롭게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영화를 만든 감독의 열정은 대작 블록버스터 상업영화에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다. 그들이 담은 것은 영화보다 더한 현실의 잔혹사면서, 이웃들의 아픔에 대한 위로를 담고 있어서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과 같은 개봉전쟁에서 그나마 위안은 다큐영화는 8명의 감독(경순, 김태일, 권효, 양동규, 정윤석, 최하동하, 최진성, 홍형숙)이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 그것도 꽤나 이름 있고 뛰어난 작품들을 만들었던 감독들이란 점에서 기대감이 커진다. 8명의 다윗이 다큐를 통해 던지는 세상을 향한 돌팔매질은 그만큼 매서울 것을 예고하고 있다. 

영화에 대한 기대는 비단 역량 있는 감독들이 만들었기 때문만이 아니다. 푼돈으로 영화를 지원한 사람들과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재능을 기부해 영화에 힘을 모았고, 거대 권력과 맞선 영화 속 내용이 지금도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바로 지금 남쪽 끝 섬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야기다.

8명의 감독에게 부여된 100일 간의 미션

@IMG@

제주 강정마을의 해군기지 반대 투쟁이야기를 다룬 <잼다큐강정>이 22일 개봉한다. 제주 강정은 부산 한진중공업과 함께 올 한해 주요 이슈 중 하나였다. 해군기지 건설을 밀어붙이는 정부 앞에 주민들이 처절하게 저항했고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한진중공업은 해결됐지만 강정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언제 끝날지 모를 만큼 기약이 없다. 그 싸움의 한복판에 다큐 영화감독들이 뛰어들었다. 국가 권력과 주민들의 갈등과 대치가 있는 현장에서 카메라는 영화감독들이 연대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였다. 

지난여름, 8명의 다큐 감독들이 즉흥적으로 개입하기로 한 것은 급박하게 돌아가는 충돌 상황 때문이었다. 현장의 상황을 제대로 전해야겠다는 마음이 그들을 움직였다.

첨예한 갈등의 현장에 가까이 다가가 발 빠르게 대응하는 것은 다큐멘터리의 매력이자 의무. 대립이 격화되는 과정에서 다큐감독들은 그 역할에 충실했다. 강정마을 다큐멘터리의 시작이었다. 

'정해진 규칙 없이 즉흥적으로 이뤄지는 연주'를 뜻하는 재즈 용어 잼(JAM)은 영화의 제작방식으로 차용됐다. 영화감독들은 각자의 시선으로 마을의 이야기를 알리기 위한 작업에 들어간다. 정해진 시간은 100일, 유일한 무기는 단출한 카메라, 제작비는 사회적 제작단 이름으로 모금됐다. 시간이 흐를수록 갈등은 더욱 심해지는 상황, 100일 간의 미션은 성공적으로 마쳐질 수 있을까?

<잼다큐강정>은 그 결과물이다. 짧은 시간과 열악한 환경에서 8명의 감독들은 강정마을의 현재를 다채롭게 담아냈다. 강정의 현실을 알리기 위한 그들의 고군분투는 강정 마을과 주민들을 다양한 시선으로 잡았고, 그들의 싸움을 세세하게 보여준다. 

8편의 옴니버스 작품이 모여 1편의 다큐가 완성됐다. 주제도 제 각각이다. 감독들의 시선도 다르다. 그러나 강정의 현재를 보기에는 충분하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담았고, 평화를 기원하는 간절함이 담겨 있다.

마을 사람들의 고뇌와 해군기지 건설이 강행되면서 만들어 낸 공동체의 살벌한 풍경도 담겨 있다. 최고의 다큐멘터리 감독들이 모여 만든 작품답게 다양한 스펙트럼이 하나의 영화 속에서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강정에 대한 8개의 시선이 주는 매력은 특별하다.

"해군기지 생기면 지역 경제 발전? 철원 경제 쩔겠다!"

@IMG@@IMG@

배를 타고 강정을 찾는 사람들, 단식농성을 하고 있던 영화평론가, 해군기지 건설을 막기 위해 주민들이 바닷가에서 펼치는 공사 선박과의 격렬한 몸싸움은 강정의 절박한 상황을 박진감 있게 고스란히 전달한다.

어느 날 갑자기 해군기지 소용돌이에 말린 마을 사람들의 탄식과 넋두리를 들려주면서 감독은 마을 사람들의 심정을 전달한다. 자신의 어린 아들이 어른이 돼서도 해풍을 이겨낸 구럼비 바위를 볼 수 있기를 바라기도 하는데, 강정을 바라보는 감독의 작은 소망이다. 

해맑은 아이들과의 수업을 통해 강정과 구럼비 바위의 소중함을 전해 주는 풍경은 정겹게 다가온다. 아이들의 시선으로 본 구럼비의 소중함에 공감하게 된다. 강정마을과 이웃한 바로 옆 마을에서 자란 제주출신 감독은 바다 속 자연의 소중함을 보여주며 해군기지 건설이 가져올 파괴를 염려한다.

"강정마을에 해군기지가 생기면 경제가 발전된대. 아 그러면 철원경제 쩔겠다. 63빌딩 수 십 개 들어섰다더라"며 너스레를 떠는 인디밴드의 만담은 웃음 한편으로 해군기지 건설을 통한 지역 경제 발전 논리가 얼마나 허구적인지를 비웃는다. 

해군기지 찬성 측과 반대 측 주민들이 각기 따로 이용하는 코사마트와 나들가게. 찬성과 반대로 갈린 형과 동생의 대치. 백구와 중덕이의 갈등 등은 우리사회 갈등의 축소판을 보는 느낌이다. 해군기지는 처참하게 마을 공동체를 파괴하고 있는 중이다.

해군출신 항공모함 프라모델 마니아이기도 한 젊은 감독은 기록 영상을 통해 한미군사동맹의 관점에서 분석을 시도한다. 장대비가 쏟아지던 날, 국방부 앞에서 국제무정부주의동맹 남조선지부 이름으로 펼치는 퍼포먼스는 무모하게 기지 건설을 강행하는 국방부에 대한 조롱이기도 하다.

강정마을과 연대하는 성미산 마을 주민들, 파괴되는 구럼비와 애니메이션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평화에 대한 간절한 마음, 제주 해군기지가 사실은 미국의 동북아 방어체제 일환임을 예리하게 짚어내는 분석 등 영화는 8개의 시선으로 우리가 알지 못했던 강정을 보여 준다. 영화가 끝나는 순간 강정에 대한 이해의 폭은 넓어질 수밖에 없다.

대작 상업영화와 경쟁 선언한 <잼다큐강정>의 패기

@IMG@@IMG@

제작을 총괄한 경순 감독은 지난 6일 개봉에 앞서 가진 언론시사회에서 "멀게는 대추리와 새만금 가깝게는 용산과 4대강 한진중공업의 문제까지 현재 대한민국은 어떤 일련의 흐름 속에 있는 것 같다"며 역사 속에서 영화인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고민했다고 말했다. 강정마을이 최대한 빠르게 많은 사람들과 공유되고, 그 뜨거운 에너지들이 또 다른 사람의 현장으로 퍼져 나가길 기대한다는 것이 <잼다큐강정>의 제작을 책임진 감독의 마음이었다. 

홍형숙 감독은 "희망을 기대하기 힘들어지는 시절, 어쩌면 마지막일이지도 모르는 강정 구럼비 마을의 모습을 보면서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서글픔으로 시작했다"며 "시대의 화두를 제시하는 것이 다큐멘터리의 중요한 역할이기에 응원가를 부르는 바람으로 만들었다"고 공동제작에 참여한 소감을 밝혔다. 

권효 감독은 "<잼다큐강정>을 통해 내가 속한 곳에서 내 주변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고민해 보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고, 정윤석 감독은 "국가가 한 개인이나 공동체를 파괴하는 과정을 여실히 증명하는 것이 강정마을"이라며 "영화가 주민들에게 작은 위로가 됐으면 한다"는 마음을 전했다.

지난 9월 DMZ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첫 선을 보인 <잼다큐강정>은 부산국제영화제와 최근 끝난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상영돼 관객들의 호평을 받았다. 멀리 지난 15일에는 뉴욕에서도 상영됐고, 개봉 하루 전인 21일 저녁에는 국회에서도 특별 상영된다. 

감독들의 바람처럼 주민들과 연대하기 위해 많은 관객들이 관심을 가져야 할 영화지만 <잼다큐강정>과 같은 독립영화가 상업영화와 경쟁하는 모습은 영화 속 강정마을 상황과 비슷하게도 보인다.

거대한 국가 권력에 맞서 강정마을 주민들이 처음에 외로운 싸움을 벌였듯 독과점 배급업체의 대작 영화가 대부분의 스크린을 차지하고 있는 현실에서 몇 개의 상영관에 영화를 거는 처지가 그렇다. 그럼에도 과감하게 같은 시기 개봉으로 블록버스터에 도전하는 모습은 불가능할 것 같았던 싸움을 이어오고 있는 강정주민들의 패기를 연상시킨다.

따라서 이 영화를 본다는 것은 단순한 영화 관람만이 아니다. 강정마을을 향한 의미있는 연대이자 그들을 향한 성원이다. 독립영화는 개봉 1주일이 관건이다. 관객이 어느 정도 들면 계속 이어지지만 많지 않으면 상영 횟수가 줄어든다. 자칫 강정마을의 소중한 이야기가 묻힐지도 모른다. 블록버스터와의 경쟁에 선 <잼다큐강정>에 힘을 실어줘야 하는 이유다.

강정마을 잼다큐강정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