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방영된 MBC <우리들의 일밤-나는 가수다>(이하 <나가수>)는 현재 <나가수>가 처한 위기의 실체를 여실히 보여준 한 회였다. 강호동이 물러났음에도 KBS 2TV <해피선데이-1박2일>을 따라잡기는커녕 오히려 SBS <일요일이 좋다-서바이벌 오디션 K팝 스타>에게 따라 잡히고 있는 <나가수>의 조급함이 드러난 것이다.

우선 예상하지 못한 '산울림 스페셜'을 보자. 물론 산울림이 스페셜을 꾸밀만한 존재가 아니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문제는 그 시점이다. 혹자가 이미 <나가수>의 '조용필 스페셜'을 너무 이르다고 지적했듯이, 이번 '산울림 스페셜' 역시 이른 감이 있다. 매번 똑같은 형식으로 시청자를 대할 수밖에 없는 <나가수>에 'OOO 스페셜'은 적기에 써야 하는 특별한 이벤트다. 하지만 <나가수>는 방송 100회 특집도 아닌, 어중간한 시점에 남발했다. 

조급해진 <나는 가수다>의 무리수

<나가수>의 '산울림 스페셜' 너무 일찍 쓴 감이 있다

▲ <나가수>의 '산울림 스페셜' 너무 일찍 쓴 감이 있다 ⓒ MBC


제작진이 이 같은 이벤트를 뛰어넘을 수 있는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계속 가지고 있다면 별문제가 없겠지만 현실적으로 그와 같은 이벤트가 쉽지 않음을 고려할 때 이번 '산울림 스페셜'은 너무 일찍 써버린 카드임이 분명하다. 결국 '산울림 스페셜'은 제작진이 요즘 <나가수>의 답보 상태에 대해 꽤 많은 고민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 분명한 증거일 뿐이다.

그러나 '산울림 스페셜' 시기에 관한 논란은 애교일 뿐이다. 제작진의 조급증은 이를 넘어 더 큰 문제를 불러일으켰다. 바로 가수 적우의 자질 논란이다.

제작진은 처음 적우를 투입시키며 단 한 가지 생각만 했을 것이다. 바로 드라마. 그들은 <나가수>가 재야의 고수를 재발견하는데 있어서도 순 역할을 한다고 주장하지만, 결국 그들이 노린 건 무명 가수의 혜성 같은 등장과 그로 인한 가슴 찡한 드라마의 탄생이었을 것이다. 얼마나 매력적인 이야기인가. 실력은 있지만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가수가 <나가수>를 통해 인생역전의 꿈을 이룬다니. 게다가 이미 우리는 임재범을 통해 드라마의 힘을 확인하지 않았던가.

첫 번째 경연에서는 제작진의 의도가 통한 듯했다. 적우가 우려를 딛고 자신의 허스키한 음색으로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극의 전조는 중간평가에서 드러났다. 산울림의 곡을 받아 재해석해 짧게 부르는 중간평가에서 적우는 기대보다 못한 편곡과 노래를 보여줬고, 동료 가수들은 그런 적우에게 7위를 안겼다.

<나가수>의 적우 이번 주 공연이 관건이 될 것이다

▲ <나가수>의 적우 이번 주 공연이 관건이 될 것이다 ⓒ MBC


그리고 지난 경연,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새 가수 프리미엄과 무명 가수의 드라마가 걷히고 나니 적우에게 온갖 혹평이 쏟아진 것이다. 그전에 우리가 들어왔던 소위 '나가수급'이라 부르기 어려울 정도의 어정쩡한 곡해석과 편곡, 그리고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음색. 개인적으로는 적우의 노래를 들으며 미사리 카페촌을 떠올렸다. 전성기가 지난 가수가 흘러간 옛 추억을 되새기고자 찾아온 관객들을 위해 노래를 부르는 그 카페촌이 연상된 것이다.

물론 다음 두 차례 남은 공연에서 적우가 또 실망을 안겨줄지, 아니면 제작진의 기대에 부응해 줄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다음 경연에서도 적우가 다른 가수들과 비교하여 모자란 실력을 보여준다면 적우의 캐스팅은 제작진의 조급함이 프로그램에 어떤 큰 해를 끼치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될 것이다.

제작진 역시 중간평가 이후 불안해진 듯하다. 지난 방송에는 기존과 달리 새 가수 박완규를 미리 공개했는데, 이는 아마도 시청자의 기대감을 증폭시켜 위기를 벗어나려는 하나의 방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의도가 현재의 위기를 벗어나게 해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나는 가수다>가 살아남는 법

그렇다면 과연 <나가수>는 조급증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아이러니하게도 그 해답은 지난 11일 방영된 <나가수>에 들어 있었다. 비록 1등은 T.O.P를 내세운 거미가 차지했지만 2, 3위를 차지한 자우림과 윤민수에게서 <나가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다시 한 번 읽게 된 것이다.


<나가수>의 자우림 실험과 도전, 그게 자우림이다

▲ <나가수>의 자우림 실험과 도전, 그게 자우림이다 ⓒ MBC


우선 자우림을 보자. 자우림은 산울림의 '내 마음의 주단을 깔고'를 재해석했는데 노래에 큰 변화를 주는 듯하면서도 원곡이 가지고 있는 느낌을 그대로 살리며 청중들에게 감동을 줬다. 원곡에 대한 청중의 향수를 만족시키는 동시에, 자우림에게서 기대하는 세련미와 현장의 역동성을 보여준 것이다.

나도 모르게 터지는 "역시 자우림"이라는 탄성. 자우림의 무대를 보며 그들이 절대 탈락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들의 다양한 실험 정신과 도전 의식, 그리고 하나의 노래를 두고 치열하게 고민한 흔적 때문이었다. 많은 청중은 자우림이 등장하면 그들이 어떤 노래를 들려줄지 가늠하지 못할 만큼 기대를 하게 되고, 이 기대 심리가 그들에 대한 평가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것이다.

자우림으로 대변되는 <나가수>의 다양성과 역동성. 결국 이는 앞서 밝힌 바 있는 <나가수>가 지향해야 할 방향이다. 물론 적우의 캐스팅과 같은 드라마도 <나가수>의 한 축이 될 수 있지만, 음악 프로그램이라면 지속적인 인기와 존재가치는 음악에서 찾아야 한다.

새로운 다크호스 이제야 <나가수>에 안착한 듯 한 윤민수

▲ 새로운 다크호스 이제야 <나가수>에 안착한 듯 한 윤민수 ⓒ MBC


이번 공연에서 또 한 명 주목할 만했던 가수는 바로 윤민수였다. 처음 등장할 때는 엄청난 성량과 우는 듯한 절절한 목소리로 인기를 끌었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같은 패턴의 노래가 계속되자 청중평가단의 차가운 시선과 함께 하위권에서 맴돌며 언제 탈락할 지가 관건이 되었던 그 윤민수 말이다.

그랬던 윤민수가 변했다. 지난주에는 '빗속의 여인'을 재해석해 자신의 틀을 깨는 데 성공하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산울림의 '나 어떡해'를 재해석하여 자신의 방식대로 전혀 다른 노래를 들려줌으로써 많은 이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나가수>에서 요청되는 실험정신과 도전의식, 그리고 새로운 곡해석의 치열함이 제대로 발현되기 시작한 것이다.

<나가수>의 인순이 디너쇼 분위기를 지울 수 없다

▲ <나가수>의 인순이 디너쇼 분위기를 지울 수 없다 ⓒ MBC


그런 윤민수를 보고 있자니 하위권에서 지리멸렬하다 '재즈카페', '가시나무'를 부르며 <나가수>에 완벽하게 안착한 자우림이 오버랩됐다. 자우림에게서 박정현을 본 이후 자우림은 <나가수>의 기대주가 되었는데, 자우림을 떠올리게 한 윤민수는 <나가수>의 기대주가 될 수 있을까?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보면, 지난주 방영된 <나가수>의 최대 이변이라 할 수 있는 인순이의 탈락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명예졸업을 할 것 같았던, 절대 탈락하지 않을 것 같았던 인순이였건만, <나가수>에서의 그녀는 다른 가수들보다 비교적 안일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인순이가 보여준 무대들을 떠올려보자. 물론 그 나이에 그만한 열정을 지니고 후배들과 함께한다는 것 자체는 대단한 일이지만, 엄격히 그녀의 공연만을 본다면 그것은 인순이가 그동안 디너쇼에서 항상 보여왔던 모습이었다. 도전곡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없었던 것이다. 특히 산울림의 '청춘'은 처절하게 쓸쓸한 원곡의 분위기를 지운 채, 너무 쉽게 소위 <나가수> 용으로 곡을 편곡했다. <나가수>를 너무 쉽게 본 것이다. 

어쨌든 인순이가 나갔다. <나가수>의 제작진으로서는 또 다른 전설 혹은 드라마가 필요한 시점이다. 부디 조급해하지 말길 바란다.

나는 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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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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