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킥> 속 고영욱은 몇 년 째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가난한 고시생이다. 그런 그가 미모의 여교사 박하선과 연애를 한다는 설정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반응이 많았다.

<하이킥> 속 고영욱은 몇 년 째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가난한 고시생이다. 그런 그가 미모의 여교사 박하선과 연애를 한다는 설정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반응이 많았다. ⓒ MBC


미모까지 갖춘 고등학교 여교사와 가진 것이라고는 '찌질한' 자존심밖에 없는 10년차 공무원 준비생의 만남. 결혼정보회사 등급 기준으로 최상위 등급과 최하위 등급의 있을 수 없는 결합이다. 오직 MBC 일일시트콤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이하 <하이킥>)에서만 가능한 러브라인이다.

거기에다가 10년차 공무원을 준비한다는 고영욱은(물론 극 중의 고영욱을 말하는 것이다) 결코 호감을 줄 정도로 잘생기지도 않았다. 차라리 박하선 을 몰래 짝사랑하는 윤지석(서지석 분)이 고영욱에 비해서 조건도 좋고, 얼굴도 잘 생겼다. 또 밀어붙이기 식으로 자신의 사랑을 강요하는 영욱의 작업방식은 알콩달콩한 러브라인을 원하는 시청자들에게 반발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당사자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자신만의 의지로 기어코 상대방을 내 사람으로 만드는 과정은 한국 드라마에서 종종 보여온 패턴이다. 다만, 그 주체가 여성 시청자들이 한 눈에 반할 정도로 잘생기고 매력적이고 돈까지 많기에 '적극적인 애정공세'라고 멋지게 포장되어 있을 뿐이다. 반면 영욱은 돈 많고 잘생긴 '실땅님'이긴 커녕, 자신의 미래조차 확실하지 않은 고시생이다. 그런 그가 자신의 분수도 모르고 미모의 여교사를 막무가내로 쟁취했으니, 당연히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이 많을 법하다.

사랑 앞에 돌아선 영욱, 씁쓸한 우리의 자화상

 결국 <하이킥> 속 고영욱은 시험 준비를 위해 박하선에게 이별을 통보하고 떠났다.

결국 <하이킥> 속 고영욱은 시험 준비를 위해 박하선에게 이별을 통보하고 떠났다. ⓒ MBC



터놓고 말하자. 영욱과 같은 처지의 가난한 고시생이 애정공세를 펼친다면, 그 마음을 따뜻하게 받아줄 한국 여성은 많지 않다. 그나마 영욱의 구애가 사랑이라고 믿을 만큼 순진하고 착한 하선이기 때문에 용케 여자친구가 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연애는 <하이킥> 시청자들에게 열띤 지지를 받기는 커녕, 빨리 헤어지라는 악플(?)만 받았다.

시청자들의 냉담한 반응이 <하이킥> 제작진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졌을까? 12일 방송분에서 영욱은 시험에 전념하기 위해 하선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그동안 이들의 교제를 탐탁지 않게 생각했던 시청자들에게는 희소식이다. <하이킥> 속에서도, <하이킥> 바깥 세상 속에서도 이들의 사랑은 이뤄질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고등학교 때 힘들게 공부하고, 어렵게 대학을 갔음에도 몇 년 동안 트레이닝복 하나로 버티면서 '9급 공무원 되기'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고영욱과 같은 청춘들이 더 늘어난 상황이다. 그들 앞에 놓인 유일한 길은 한눈 팔지 말고 남들보다 더 공부하여, 하루라도 빨리 합격하는 것이다. 청춘이라면 당연히 할 수 있는 사랑도, 그들에게는 사치다. <하이킥> 이야기로 돌아와서, 고용불안정에 시달리는 지금의 사회에서 청춘을 고스란히 시험에 바친 영욱에게 해줄 만한 말도 오직 "하선을 잊고 어서 빨리 합격해서 공무원이 되어라"다.

이를 영욱을 위한 덕담이라고 애써 위안하면서, 마치 사회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서글퍼지는 시청자. 눈물을 머금고 하선을 포기한 채 절로 들어가는 영욱. 날이 갈수록 얼어붙는 취업 시장에 자신의 솔직한 감정 앞에서도 주눅 드는 것을 당연하게 여겨야 하는 씁쓸한 청춘의 자화상이다. 부디 힘겹게 마음을 다잡은 영욱이 꼭 공무원이 되어, 스스로에게는 물론 무모한 사랑을 하였다고 자신을 비웃는 이들 앞에서 당당해지길 바랄 뿐이다.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 하이킥 고영욱 박하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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