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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전 조선은 자전거의 나라였다. 자동차 등 다른 교통수단을 압도했을 뿐만 아니라 통근, 통학, 업무, 레저 등 여러 분야에 두루두루 쓰였다. 그 시대 자전거 문화는 어땠을까. 역사는 반복된다는데 앞으로 다가올 자전거시대에 비슷한 모습으로 재현되진 않을까. 그 시절 그 풍경 속으로 들어가본다. - 기자 말

2006년 서울에 선 보인 생쥐 모양 자전거 택시

독일과 프랑스, 일본, 러시아 등에서 운행중인 관광용 자전거택시. 1992년 첫 선을 보였고, 지금 달리는 모델은 1997년 만들어진 제품이다.
 독일과 프랑스, 일본, 러시아 등에서 운행중인 관광용 자전거택시. 1992년 첫 선을 보였고, 지금 달리는 모델은 1997년 만들어진 제품이다.
ⓒ 벨로택시(www.velotaxi.com) 누리집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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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서울 시내에 자전거 택시가 등장했다. 생쥐 모양을 한 이 희한한 자전거는 대번에 화제가 됐다. 독일에서 건너온 자전거의 이름은 벨로택시(velotaxi). 1997년, 독일 베를린에서 다임러크라이슬러 설계담당이었던 루드거 마츠제브스키가 고안했으며, 독일에서는 컬트플리처(Cult Flitzers·가볍게 날아다니는 장난감이라는 뜻)라고 불린다.

자전거 택시는 미국 뉴욕을 비롯해 일본 도쿄, 핀란드 헬싱키, 독일 베를린, 프랑스 리옹, 호주 시드니, 러시아 모스크바 등 여러 나라에서 운행 중이다. 벨로택시는 PVC로 만들어져 가벼운데다 모양이 예뻐 관광용으로 주로 쓰인다. 운전자 포함 세 명이 탈 수 있으며 시속 10~15km 정도 속도를 낸다. 오르막길에 대비해 전동 모터가 달린 자전거도 있다. 1992년 유럽에서 선을 보인 페디캡(pedicab)에 이은 신형 모델이다.

이 귀여운 자전거에 사람들은 "새롭다" "신기하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등잔 밑이 어두웠다. 이미 오래전 우린 아주 가까이에서 자전거 택시를 직접 타봤거나, 영화를 통해서 봤기 때문. 벨로택시도 페디캡도 넘보지 못할 자전거 택시의 대부가 있으니 바로 동남아시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시클로와 릭샤다.

사람들은 동남아시아 여행을 다녀온 이들이나 영화 <시클로> 덕분에 이 '오래된 탈 것'을 잘 안다. 베트남에서 볼 수 있는 시클로(Cyclo), 인도와 방글라데시에서 운행 중인 사이클 릭샤(Cycle-rickshaw)는 자전거 택시라는 점은 같지만 모양은 정반대다. 시클로는 승객이 앞에 타는 반면, 사이클 릭샤는 반대로 승객이 뒤에 탄다.

시클로 형태의 자전거택시. 사진은 중국.
 시클로 형태의 자전거택시. 사진은 중국.
ⓒ 김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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릭샤는 사람이 손으로 끄는 인력거를 뜻하는 일본말 력차(力車)가 변한 말이다. 릭샤는 사람이 끄는 릭샤(인력거), 자전거를 개량한 사이클 릭샤, 오토바이를 개량한 오토 릭샤로 나뉜다. 오토 릭샤는 흔히 '툭툭'이라고 부른다.

유럽에서 자전거 택시가 1990년대 선을 보인 반면, 동남아시아산 자전거 택시는 1940년대생이니 나이로 따지면 할아버지뻘이다. 1940년경 방글라데시에서 릭샤가 가장 먼저 등장했다. 현재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에는 30만 대가 넘는 릭샤가 있다고 한다(여기서 릭샤는 자전거 개량형인 사이클 릭샤와 오토바이 개량형인 오토 릭샤를 포함한 말이다). 인도 델리에는 몇십만 대의 릭샤가 남아 있다.

자전거 택시 역사에서 동남아시아 지역을 첫손에 꼽는 데는 무리가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도 그 시절 자전거 택시가 선을 보여 경성 시내를 발칵 뒤집기도 했다. 이름하여 인동차(人動車)다.

1939년 경성에 선보인 자전거 택시, 시민들 '깜짝'

1939년에 모습을 보였으니 시클로나 릭샤에 비해 뒤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빠른 감마저 든다. 세계 자전거 택시 역사를 쓴다면 우리나라의 인동차 또한 앞머리에 놓여야 할 것이다.

인동차는 당시 이와 같은 형태로 지붕이 있었다. 사진은 중국에서 운행중인 자전거택시.
 인동차는 당시 이와 같은 형태로 지붕이 있었다. 사진은 중국에서 운행중인 자전거택시.
ⓒ 김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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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8월 서울에 나타난 인동차는 자전거에 덮개를 씌운 승객용 짐차를 달았다. 릭샤나 시클로와는 전혀 다른 자전거 택시였다. 릭샤나 시클로, 최근 운행 중인 자전거 택시가 모두 세 바퀴인데 반해 인동차는 네 바퀴와 세 바퀴 두 종류가 있었다. 인동차는 뒤에 짐차를 다는 리어카식과 옆에 다는 싸이드카식으로 다시 나뉘었다.

여타 자전거 택시들이 모두 개조를 해서 짐칸과 자전거를 한 몸으로 만든 것과 달리, 기존 자전거에 짐칸을 살짝 걸친 것도 차이점. 승객을 태우고 다닐 때는 짐칸을 붙여서 운행하다가 승객이 없을 때는 짐칸을 떼서 자전거만 타고 다닐 수 있도록 한 것으로 보인다.

영업 방식은 지금 택시와 비슷하다. 1km를 1구획으로 정하고 처음 1구획은 30전, 이후 1구획이 늘어날 때마다 10전을 추가하는 방식이었다. 속도는 좋은 길에서 달리면 시속 16km 정도였다고 하니 그렇게 빠른 편은 아니었다.

천연덕스럽게 택시 흉내를 내고 다닌 이 자전거가 나온 이유는 기름 부족 때문. 항상 기름이 부족하게 되는 배경에는 수요 공급의 차이가 있는데, 당시 주원인은 전쟁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전쟁은 에너지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었는데, 유명한 경제학자인 제러미 러프킨은 <엔트로피>(1980)를 통해 일찍이 그 점을 지적한 바 있다.

"오늘날 미군은 미국 내에서 가장 큰 단일 에너지 소비기관이다. 연방정부의 에너지 예산 중 80% 이상이 국방부로 간다." 

평상시 에너지 소비량이 이 정도인데, 전쟁이 터지면 그 정도는 상상 이상이다. 일본은 1937년 7월 7일 루거우차오사건(蘆溝橋事件)을 조작하며 중일전쟁을 일으킨다. 전 아시아를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가는 대사건의 시작. 전쟁에 필요한 철을 만들기 위해 생필품을 녹이고, 병사들을 위해 먹을 것을 우선 전선으로 보내야 했다. 기름 또한 마찬가지. 민간용 차량보다는 군사용 차량이 우선이었다.

하지만 지금껏 해오던 경제생활을 안 할 수는 없는 노릇. 이때 인동차가 등장한 것이었다. 기름 한 방울 들이지 않고 오로지 사람 힘만으로 달리니 기름 부족을 겪는 정부에선 눈이 번쩍 뜨이는 도구였다. 문제는 이에 대한 법규가 없었다는 점. 정부는 인동차가 도로를 달리도록 하기 위해 부랴부랴 대책을 마련하며 법석을 떨었다.

인동차가 등장하기 한 해 전(1938)에는 목탄(숯)을 원료로 한 자동차가 등장해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도 했으니…. 어쨌든 궁하면 통하는 모양이다.

경제 성장하면서 자전거 택시는 찬밥 신세, 선진국에선?

자전거 행사 '발바리'에 나온 3인용 5륜 자전거. 자전거 2대에 붙이고, 다시 짐칸을 붙였다. 과거 인동차는 이처럼 자전거 뒤에 짐칸을 붙인 형태였는데, 짐칸은 사진처럼 지붕덮개가 있었다.
 자전거 행사 '발바리'에 나온 3인용 5륜 자전거. 자전거 2대에 붙이고, 다시 짐칸을 붙였다. 과거 인동차는 이처럼 자전거 뒤에 짐칸을 붙인 형태였는데, 짐칸은 사진처럼 지붕덮개가 있었다.
ⓒ 김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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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니 사람들은 궁지에 처하면 자전거를 불러내고, 위기에서 벗어나면 자전거를 내팽개친다. 자전거 택시는 한창 경제가 '쑥쑥' 커 나가는 인도와 베트남에서 이제 찬밥 신세다.

베트남은 주 교통수단이 자전거에서 오토바이로 넘어간 상태다. 베트남 무역부 산하 산업정책전략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베트남에서 오토바이는 매년 200만 대씩 늘고 있다. 2020년이면 3500만 대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 오토바이가 늘면서 정부는 시클로를 오히려 교통을 방해하는 골칫거리로 여긴다. 베트남 정부는 2008년 1월 1일부터 관광용을 뺀 시클로 운행을 사실상 중단시켰다. 시클로가 도로를 막히게 하고, 교통사고를 증가시킨다는 이유에서다. 지금 호찌민시에는 시클로가 6만여 대, 하노이에는 2000대가 있다. 그리고 베트남에서는 매달 약 1000명이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릭샤의 나라 인도 정부 또한 마찬가지다. 인도에서는 사이클 릭샤보다 오토릭샤나 오토바이가 훨씬 인기다. 인도 전체 차량 등록 대수는 6700만 대, 그 중 71%인 4750만 대가 오토릭샤와 오토바이다. 정부에서는 사이클 릭샤를 규제하는 추세다. 인도 전체에서 순수한 사이클 릭샤가 남아 있는 곳은 콜카타(Calcutta·과거 캘커타)와 올드델리 정도다. 뉴델리에선 이미 사이클 릭샤를 보기 힘들다. 인도 웨스트벵갈주에서도 주 정부는 릭샤 끄는 일이 비인간적이라며 금지 방침을 세웠고, 콜카타 정부 또한 사이클 릭샤를 금지한다는 방침이다.

이미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나라들은 반대다. 자동차를 규제하고 자전거를 많이 타게 하려고 절치부심한다. 자전거 택시가 유행하는 나라들은 대부분 잘 사는 나라들이다. 우리나라도 자전거 택시 운행국 대열에 들어섰지만, 생각만큼 반응이 뜨겁지는 않다. 혹시 몸은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지만 마음은 여전히 후진국에 머물러 있기 때문은 아닐까.

50~60년대 경제가 어렵던 시절, 대한민국 정부는 '자전거를 타고 자동차를 타지 말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1960년대 초반엔 특히 그 열기가 강했다. 1960년 6월 27일 부흥부(지금의 경제기획원)는 관용차를 대폭 정리하고, 자동차를 대신할 수 있는 자전거 생산과 사용에 관한 조치를 강력히 추진한다는 내용의 유류기본대책을 차관회의에 상정했다. 민간차량 또한 일정 연식 이전 것은 아예 운전을 못 하게 했고, 각종 영업용 차량은 디젤차로 제한했다. 민간차량의 신규운행 불허에 택시운행 3부제(2일 운행 1일 휴일)까지 하기로 했으니 지금 같으면 대규모 민란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어쨌든 주머니가 넉넉해지면서 정부의 그 서슬 퍼른 엄포는 자취를 감췄고, 오히려 자동차 타기 장려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자전거 택시는 언제 그랬냐는 듯 기억 밖으로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70여년이 지난 지금, 다시 자전거 택시가 이 땅에 나타났다.

기름이 부족한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데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차이점은 기름 부족 때문에 당시는 자동차가 달릴 수 없었고, 지금은 자동차 타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는 점. 당시 자전거 택시는 자동차를 대신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는 게 다르다. 기름 고갈은 엄연한 사실이며 선진국은 미래를 대비하고, 개발도상국은 일단 갈 데까지 가 보자는 태도다.

선진국의 태도 또한 식민지에서 부를 쌓은 과거 일일랑 깡그리 잊고 자기 사정만 챙기는 게 얄밉기는 하지만, 개발도상국의 질주 또한 아슬아슬하기만 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과거 선진국들이 밟았던 길을 따라 갈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길을 개척할 것인가. 선택은 우리 손에 달려 있다.


태그:#자전거, #자전거택시, #인동차, #벨로택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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