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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전 조선은 자전거의 나라였다. 자전거는 자동차 등 다른 교통수단을 압도했을 뿐만 아니라 통근, 통학, 업무, 레저 등 여러 분야에 두루두루 쓰였다. 그 시대 자전거문화는 어땠을까. 역사는 반복된다는데 앞으로 다가올 자전거 시대에 비슷한 모습으로 재현되진 않을까. 그 시절 그 풍경 속으로 들어가 본다...<기자 주>

일제강점기, 자전거 세금 둘러싸고 목소리 높아

 자전거에 세금을 매긴다는 상상을 해본적 있는가. 지금이야 동화속 얘기같지만 자전거가 주교통수단이던 일제강점기 자전거를 타는 사람은 세금을 내야 했다.(사진은 중국 상하이)
 자전거에 세금을 매긴다는 상상을 해본적 있는가. 지금이야 동화속 얘기같지만 자전거가 주교통수단이던 일제강점기 자전거를 타는 사람은 세금을 내야 했다.(사진은 중국 상하이)
ⓒ 김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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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7월 1일 중국 정부는 자전거와 전동자전거 등 비엔진 차량에 대해 세금을 매기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자전거에 무슨 세금이냐고 깜짝 놀랄지 모르지만 중국의 자전거 세금 역사는 꽤 길다.

1951년 자전거 번호판에 세금을 매기기 시작했고 1986년부터는 자전거 사용 세금을 매겼다. 이후 자전거는 자동차와 똑같이 등록비를 내고 매년 세금을 내는 식으로 관리됐다.  1994년경 북경 자전거 사용자들은 등록비 20원에 매년 4원 정도를 세금으로 냈다.

이 세금이 없어지자, 자전거 사용자들 중 고마워할 이들이 많았다. 중국은 자전거 대수가 4억 7천만 대(중국자전거협회)로 전 세계 자전거 가운데 절반 정도가 해당되니 세금감면으로 인해 혜택을 입는 사람은 꽤 많았다.

천문학적인 인플레로 유명한 짐바브웨도 자전거에 세금을 매긴다. 짐바브웨 정부는 <헤럴드> 1997년 1월 14일자에 개와 자전거를 허가한다는 공고를 실었다. 두발자전거의 1년 세금은 20짐바브웨달러(미국돈 약 2달러), 세발자전거는 30짐바브웨달러였다.

그런데 멀리 갈 것 없이 일제강점기 경성에서도 자전거 세금을 둘러싼 갈등이 상당했다.

"전조선자전거업대표자대회를 작 8일 오전 10시부터 장곡천정상공회의소에 열고 조선에 잇서서 자전거는 일반민중의 일상생활에 성실히 필요한 필수품으로서 전조선에 사용되어 잇는 자전거수효가 20만대에 달하는데 이에 자전거세를 징수한다는 것은 불가하다 하여 자전거세 철페긔성회를 조직하고 다음의 결의를 하야 당국에 진정키로 하얏다. 결의문 자전거의 사회적급경제적 중요성에 감하야 자전차세의 철폐를 기함 우를 결의함. 소화 육년 십일월 팔일 전조선자전차세철폐기성회."-동아일보(1931년 11월 10일)

1920년대 사회분위기는 자동차 세금은 올리고 자전거 세금은 낮추자였다. 당시 국내엔 자동차와 자전거를 만들 수 있는 기술 수준이 없어 대부분을 수입했다. 정부는 이들 제품이 수입품이니만큼 세금을 매겨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자동차는 가진 자들이 과시용으로 타는  경우가 많아 사치품이라는 데는 대체로 의견이 일치했다. 하지만 자전거는 상업과 농업활동에 주로 쓰였기 때문에 사치품과는 거리가 멀다는 게 자전거업계의 주장이었다. 게다가 서민들이 많이 이용했기 때문에 자전거업자들의 자전거 세금 반감 요구는 꽤 힘을 얻었다.

1920년대 후반부터 자전거업자들은 자전거 세금을 낮추기 위해 힘을 모으기 시작한다. 1928년 5월 2일 상인들 모임인 경성상의는 교통운수부회를 열어 자전거세와 부가세를 낮춰달라고 요구했다. 그와 함께 자전거 철도수송을 수하물처럼 해달라고 요청했다. 즉 철도에 자전거를 실을 때 따로 요금을 받지 말아 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1921년 자전거 한 대 세금은 4원

 자전거가 생활형으로 쓰이던 시절 자전거 모양. 앞등이 고정으로 달려있고, 앞바퀴에 자가발전기가 달려있으며, 녹슬지 않도록 페달부에는 덮개가 덮혀 있다. 다소 불안정한 지형에도 넘어지지 않도록 지지대는 지금과 같은 1자형이 아니라 삼각형 형태였다. 무엇보다 전체적으로 튼튼하고 짐을 충분히 실을 수 있는 게 특징. 그 시절 자전거 세금은 얼마였을까? (사진은 상주자전거박물관에 전시된 옛 자전거)
 자전거가 생활형으로 쓰이던 시절 자전거 모양. 앞등이 고정으로 달려있고, 앞바퀴에 자가발전기가 달려있으며, 녹슬지 않도록 페달부에는 덮개가 덮혀 있다. 다소 불안정한 지형에도 넘어지지 않도록 지지대는 지금과 같은 1자형이 아니라 삼각형 형태였다. 무엇보다 전체적으로 튼튼하고 짐을 충분히 실을 수 있는 게 특징. 그 시절 자전거 세금은 얼마였을까? (사진은 상주자전거박물관에 전시된 옛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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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조선의 대부분 지방의회에선 자전거 세금 문제를 다룬다. 그만큼 광범위한 관심사였고, 시급한 문제이기도 했다. 대세는 자전거 세금은 낮추거나 없애되 자동차세금은 올리자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자전거로 일하는 이들이 대부분 영세하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최근 카드 수수료를 낮춰달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소규모 자영업자들의 목소리가 오버랩된다. 의원들 입장에선 자전거세금은 적고 그 숫자는 많았기 때문에 여론 동향상 자전거쪽 목소리를 대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래도 자동차가 사치품이라는 인식도 한몫했다.

1925년 2월 경남도평의회 회의 도중 나온 질문 가운데 자전거와 원동기를 단 자전거의 세금 차이에 관한 건이 있었다.

1926년 1월 충남도평의회는 세금에 관한 건을 의결했다. 4월 1일부터 차종에 따라 세금을 달리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 전까지는 모두 똑같이 2원씩 매겼으나 앞으로는 원동기장치자전거는 3원, 일반자전거는 2원으로 금액이 달라진다. 자동자전거라 불린 오토바이는 객석이 있을 경우 8원, 없을 경우 5원으로 정해졌다.

1928년 경북도의회 이우진(선산) 의원은 자동차 세금은 올리고 짐수레와 자전거 세금은 없애자고 주장했다. 1929년 경기도평의회에선 자전거세금을 둘러싼 논쟁이 벌어졌다. 시흥 지역 의원 김태집은 자가용자동차세를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와 함께 경성의 전중이란 의원은 인력거와 자전거세는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10원도 안 되는 금액을 갖고 저리 다투다니"라고 할지 모르지만 당시는 1920년대다. 그때 80kg짜리 쌀 한 가마가 20원이었다. 지금으로 따지면 15만 원에 해당한다. 2원이라면 1만5천 원 정도. 헐값으로 보이지만 당시는 실업률이 높고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저임금 시대였다. 1920년대 초 조선인 노동자들의 한달 임금이 15원 정도에 불과했으니 당시 자전거세금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지방의회와 정부, 자전거세 낮추는 데 이견 없어

 그 시절 자동차세는 올리고 자전거세는 점점 낮아졌다. 자전거는 서민용 생활수단, 자동차는 사치품이라는 인식이 강하던 시절이었다. 1987년초까지도 소형자동차는 사치품으로 여겨져 꽤 높은 특별소비세가 붙었으니 자동차가 흔한 탈 것이 된 것은 최근 일이다.(사진은 1980년대 초 출시된 포니픽업)
 그 시절 자동차세는 올리고 자전거세는 점점 낮아졌다. 자전거는 서민용 생활수단, 자동차는 사치품이라는 인식이 강하던 시절이었다. 1987년초까지도 소형자동차는 사치품으로 여겨져 꽤 높은 특별소비세가 붙었으니 자동차가 흔한 탈 것이 된 것은 최근 일이다.(사진은 1980년대 초 출시된 포니픽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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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4월 1일 경기도청은 차량세를 낮췄다. 동력이 없는 일반자전거는 2원에서 1원50전으로, 영업용인력거는 1원50전에서 1원으로, 짐을 싣는 우마차는 3원50전에서 2원50전으로, 짐수레는 2원에서 1원 50전으로 낮춘다는 내용이었다.

같은 해 경상남도 또한 차량세를 낮췄다. 1원으로, 이전에 비해 50전을 줄였다. 차량수가 얼마 되지 않는 인력거 세금은 없앴다. 같은 시기 평안남도 또한 차량세를 낮췄다. 자전거는 3원에서 1원80전으로 자동차(10인승 이상)는 40원에서 30원으로 낮췄다.

하지만 자전거로 먹고 사는 이들은 자전거세금을 줄이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했다. 배달을 해야 하는 식당을 비롯, 야채와 육류를 파는 가게, 신문사 지국, 납품업체 등 자전거로 먹고 사는 이들은 아예 세금을 없애는 게 목적이었다. 1931년 11월 14일 전조선자전거세철폐기성회의 평북지구가 평북도청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1932년 3월 19일 전북 이리읍은 신년도 예산관련 회의를 열고 자전거세금을 없애기로 결정했다. 회의결과는 만장일치. 1936년 3월 6일 충남도의회는 자전거차량세를 폐지하는 안건을 상정했다.

물론, 전체 흐름에 역행하는 시도도 있었다. 그해 전북도는 자전거에 달아 화물을 운반하는 리어카에 세금을 매기겠다고 발표했다. 군산상공조합과 수이입상조합은 강력하게 반발했다. 이미 자전거에 세금을 매기는 상황에서 리어카에까지 세금을 매기는 것은 2중과세라고 항의한 것.

이러한 갈등은 1930년대 말까지 이어졌다. 비록 자전거세금이 사라지는 추세였으나 완전히 사라지는 데는 꽤 시간이 걸렸다. 1939년에도 자전거 탈세를 빌미로 특별조사가 벌어졌으니 말이다.

"대전부에서는 현하 비상시국이 잇음에도 불구하고 일반대중은 여러 가지 묘한 방법으로서 탈세행동이 만흠을 통감하여오던중 그중에도 자전거의 탈세행동이 제일 심함을 착안하야 금월 1일부터서 오는 20일경까지 취체기간으로 하야 엄중히 감시하기로 하고 감찰이 없는 자전거와 그외에 탈세행동을 한다고 인정하는 자전거는 전부 송도리채 압수한다는데 감찰없는 자전거는 화를 면하기 위하야 곧 감찰신청을 하기를 바란다 한다."-동아일보(1939년 3월 9일)

어쨌든 자전거 세금은 점차 낮아졌고, 결국엔 사라졌다. 그와 함께 자전거시대도 서서히 막을 내리기 시작한다. 만약 그럴 일은 없겠지만 다시 자전거 세금을 부활한다면 자전거인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마 모르긴 몰라도 "더러워서 자전거 안 탄다"고 하지 않을까.

하지만 꼭 그렇게 볼 일만도 아니다. 지금이야 자전거의 교통수단분담률이 1% 안팎에 불과한 상황이지만 10%를 넘어가게 되면 세금 문제가 화두가 될지도 모른다. 그때가 되면 과연 의원들은 어떤 명분으로 세금 문제를 꺼낼 것인가. 역사는 다시 반복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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