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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전 조선은 자전거의 나라였다. 자동차 등 다른 교통수단을 압도했을 뿐만 아니라 통근, 통학, 업무, 레저 등 여러 분야에 두루두루 쓰였다. 그 시대 자전거문화는 어땠을까. 역사는 반복된다는데 앞으로 다가올 자전거시대에 비슷한 모습으로 재현되진 않을까. 그 시절 그 풍경 속으로 들어가본다. <기자 주>

한때는 아주 흔하게 볼 수 있었던 우편배달 자전거. 지금은 공식적으로는 우편배달용 자전거는 사라졌다. 영화 <인어공주>의 한 장면.
 한때는 아주 흔하게 볼 수 있었던 우편배달 자전거. 지금은 공식적으로는 우편배달용 자전거는 사라졌다. 영화 <인어공주>의 한 장면.
ⓒ 영화 <인어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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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어공주>는 자전거로 우편배달을 하는 집배원(박해일)과 해녀(전도연)가 주인공이다. 어촌 마을에 사는 해녀 아가씨는 가끔씩 들르는 집배원 총각을 만날 때마다 가슴이 설렌다.

꼭 <인어공주> 속 해녀가 아니더라도 몇 십 년 전까지 자전거로 우편배달을 하는 모습은 흔히 볼 수 있었다. 시골길에선 저 멀리서 자전거를 몰고 오는 우편배달부를 볼 수 있었고, 도시에서도 집 앞에 자전거를 대고 벨을 누르는 우편배달부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가쁜 숨을 내쉬며 문을 두드린 배달부를 보면 어머니들은 냉수라도 한 그릇 대접했고, 읍내에 나갈 일이 없었던 할머니들은 배달부에게 다른 동네 근황을 묻곤 했다.

만화가 김동화는 <빨간 자전거>에서 이런 모습을 담았다. 마음씨 좋은 우편배달부는 같은 방향이면 태워달라는 아가씨를 뒤에 태우고 시골길을 달린다. 홀아비가 연모하는 과부에게 보내는 꽃을 전달하기도 한다. 사람이 그리워 매일 우편배달 자전거가 지나갈 때마다 밖을 서성이는 어르신에게 "오늘은 편지가 없다"고 말을 건넨다. 그리고 이장댁 누렁이가 숫송아지 낳은 소식이며 읍내 보건소에 여 선생님이 왔다는 소식 등을 전한다.

물론 이런 모습은 영화나 드라마, 또는 낡은 사진 속에서만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지금 과연 자전거 우편배달은 완전히 사라진 것일까. 우리나라에서 자전거 우편배달은 언제 시작된 것일까.

1920년 체신국, 우편물 배달용 자전거를 사다

김동화가 그린 만화 <빨간 자전거>. 우편배달부가 주인공이다.
 김동화가 그린 만화 <빨간 자전거>. 우편배달부가 주인공이다.
ⓒ 행복한만화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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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90여 년 전이다. 1920년 체신국은 우편물배달용 자전거를 산다. 시험 삼아 실시해볼 요량이었다. 이 땅에 신식 우편제도가 들어온 게 1884년이니 36년 만에 우편배달부들은 자전거를 타고 우편업무를 보는 시대를 겪게 됐다.

당시 경성 시내 우편국은 늘어나는 우편물 때문에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1920년 6월 경성우편국 발송 기준 우편물 현황을 보면 특종우편이 2만6855개, 소포는 7634개로 한 해 전에 비해 각각 3248개, 2917개가 늘었다. 우편배달부를 늘리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좀 더 빠른 수단이 필요했다. 우편국에서 자전거를 주목한 건 괜찮은 판단이었다.

시험결과는 괜찮았던 모양이다. 1921년 경성국 광화문국 용산국 등 경성 시내 우편국들이 자전거로 우편국을 수집하기 시작한다. 자전거는 10대. 대부분 자전거는 1관(3.75kg)을 실을 있으며, 가장 튼튼한 제품은 16관(60kg)까지 실을 수 있었다.

우편국 측은 걸어서 다닐 때에 비해 우편물을 수집하는 데 평균 한 차례에 30분 정도 시간이 줄 것으로 예상했다. 당시 경성우편국 우편물 취집은 하루 7차례였으니, 1회 30분이라면 하루 3시간 30분이나 줄일 수 있었다. 최근 건강사이트 등에서 확인할 수 있는 에너지 소모량 기준에 따르면 자전거는 도보에 비해 칼로리 소모량이 1/3 정도다. 이것은 짐이 없는 상태 기준이다. 짐이 있는 상태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체력은 눈에 띄게 떨어진다. 당연히 작업능률도 나빠질 수밖에 없다. 우편배달 자전거는 보다 빠르게, 보다 쉽게, 보다 편하게 작업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전화교환수도 뽑았지만... 대세는 '자전거'

우편제도가 도입된 초창기 일일이 집을 돌아다니면서 우편을 전달한다는 건 보통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문패조차 없는 집이 많았고, 편지봉투에 주소를 제대로 못쓰는 이도 많았다. 그 시절 자전거는 우편업무의 효율성을 꽤 높여줬다. 사진은 1900년 무렵 우편배달부.
 우편제도가 도입된 초창기 일일이 집을 돌아다니면서 우편을 전달한다는 건 보통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문패조차 없는 집이 많았고, 편지봉투에 주소를 제대로 못쓰는 이도 많았다. 그 시절 자전거는 우편업무의 효율성을 꽤 높여줬다. 사진은 1900년 무렵 우편배달부.
ⓒ 한국콘텐츠진흥원&한국문화정책연구소&나우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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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에 이르면 경성국 우편배달자전거는 19대로 늘어난다. 일부에서는 자전거를 대신하는 시도들이 이뤄졌다. 전화는 우편업무를 혁명적으로 바꿀 수 있는 수단이었다. 1920년 4월 경성우편국은 일어가 능숙한 조선 여성을 처음으로 전화교환수로 뽑았다. 자격은 보통학교 졸업, 나이는 15~16세부터 23~24세까지였다.

걸림돌은 여성의 사회활동에 부정적인 사회인식이었다. 무엇보다 전화교환수는 종종 야근을 해야 했다. 해가 진 뒤 젊은 여성이 거리를 다니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분위기에서 우편국 측은 전전긍긍했다. 경성우편국은 야근하는 여성 교환수의 경우 우편국에서 퇴근하는 시간과 집에 도착하는 시간을 매일 기록하고 시간에 조금만 차이가 나도 조사하겠다고 부모를 안심시켰다. 즉, 퇴근 뒤 집이 아닌 다른 곳으로 샐 가능성을 없애는 조치였다.

1923년 7월경 인천우편국과 취인소(오늘날 증권거래소)를 오가는 업무를 자전거 대신 전화로 바꿨다. 1934년 1월 1일엔 전보배달 스피드서비스가 실시된다. 수신인이 전화가입을 한 경우 발신인이 발신할 때 전화송달을 지정하면 착신국소에서 전화로 수신인을 호출해 전문을 읽어서 보냈다. 자전거나 도보로 배달할 때보다 훨씬 빨라졌다. 대량우편물일 경우엔 자동차로 운반했다.

물론 특수한 경우였다. 자전거는 당시 가장 널리 쓰이는 교통수단이었다. 1922년 4월 당시 경성 시내 자동차는 136대. 그에 비해 자전거는 5600대가 넘었다. 인력거나 짐수레 등 다른 교통수단도 자전거에 비해선 그 숫자가 적었다. 자전거는 차체 무게에 비해 짐을 많이 실을 수 있고 어떤 길이라도 달릴 수 있어 효율성 좋은 교통수단이었다. 자전거 우편배달은 점차 증가했다. 문제는 도로 사정이었다.

경성 시내의 도로는 일간 이상의 도로가 이십만칠천구백사십팔 간으로 면적은 칠십오만사천 평인데 전 경성 면적 일천육십여만 평에 비례하면 겨우 칠'퍼센트'에 해당하여 현대 선진도시에서 도시 전 면적의 이 할 오 분 내지 삼 할을 이상으로 삼고 계획하는데 비교하여 보면 경성은 인구로 보나 면적으로 보나 외국 도시의 도로 삼분의 일에도 못 되는 현상으로 가위 무도로상태라 하여도 과언이 아니라 하며…. - <동아일보>(1928년 10월 2일)

1920년 우편업무에 처음 자전거가 쓰였지만 여전히 자전거는 경성과 대도시 우편업무 위주였다. 지방 우편배달부들은 우편물을 등에 짊어지고 힘들게 걸어 다녔다. 해방 직후인 1946년 1월 군정청 체신국은 지방우편국에 배달용 자전거가 없어 대책을 찾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때쯤 우편배달업무는 꽤 자리를 잡았던 모양이다. 1948년 12월 공보처가 시청 직원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우편배달은 신속합니까"란 질문에 "네"라고 응답한 답변은 80%에 이르렀다.

자전거 우편배달부, 다시 나타나지 않을까

자전거는 전차, 인력거, 자동차 등 여러 교통수단에 비해 이점이 많았다. 좁은 길이나 울퉁불퉁한 길도 쉽게 다닐 수 있고, 주차하기가 쉬우며 유지비는 매우 적었다. 이런 이유로 1920-30년대 자전거는 경성에서 가장 흔한 교통수단이었다.(사진은 일본에서 볼 수 있는 관광용 인력거)
 자전거는 전차, 인력거, 자동차 등 여러 교통수단에 비해 이점이 많았다. 좁은 길이나 울퉁불퉁한 길도 쉽게 다닐 수 있고, 주차하기가 쉬우며 유지비는 매우 적었다. 이런 이유로 1920-30년대 자전거는 경성에서 가장 흔한 교통수단이었다.(사진은 일본에서 볼 수 있는 관광용 인력거)
ⓒ 김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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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후로 세월이 흘렀고, 자전거는 오토바이로 바뀌었다. 이젠 그마저도 각종 전자우편물로 대체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말이다. 모든 최신 기술이 완벽하진 않다. 아니, 최신 기술과 최신 기술이 충돌하면서 오히려 이전만 못하게 되기도 한다. 근대도시의 할아버지라고 할 만한 뉴욕에서 여전히 자전거 배달이 인기를 끄는 이유다.

뉴욕의 교통난, 온라인 소매점들이 인터넷이라는 최첨단 기술을 이용해 주문을 받는다 해도 교통지옥으로 불리는 뉴욕 맨해튼의 교통혼잡 때문에 이를 제 시간에 배달할 수 없다. 이로 인해 자연스럽게 부각된 것이 원시적인 배달수단인 자전거. 80년대 호황을 누리다 팩스와 전자우편 등장으로 서류배달 수요가 줄어들어 사양길에 들어섰던 자전거 배달이 새로 각광받게 된 것이다. 뉴욕의 자전거 배달업체들은 최근 인터넷업체들에서 배달주문이 쇄도하자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26일자 뉴욕타임스지에 따르면 뉴욕시에는 현재 300여개 자전거 배달업체가 있으며 연간 7억 달러에 달하는 시장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 <매일경제>(1999년 12월 27일)

뉴욕이나 일본 몇몇 도시에선 여전히 자전거 배달업체들이 열심히 움직이고, 우리나라에서도 근래 몇몇 업체가 선을 보였다. 물론 낯설고 다소 신기한 구경거리일 뿐이다. 지금까지 상황만 보면.

기름 고갈이 눈앞에 다가온 지금, 각국 정부와 기업은 대체에너지를 찾고 에너지 효율을 높이기 위해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 마냥 뛰어다닌다. 전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깊고 외진 곳에서 기름을 퍼내고, 리터당 연비 100km 승용차도 곧 선을 보일 태세다. 그렇게 애를 쓰고서도 기름이 마침내 떨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지금은 한물간 것처럼, 또는 이미 지나간 추억인 것처럼 보이는 자전거 우편배달이 새로이 각광받진 않을까. 하긴 닥치기 전에는 웬만하면 바뀌지 않는 게 사람이니 이미 힘들고 느린 수단이 돼버린 자전거가 다시 우편업무에 쓰인다는 게 신화 속 영웅처럼 막연하긴 하다. 그러나 도시에서 도로 정체는 점점 심해지고 자전거 성능은 점점 좋아지고 있다. 자전거 우편배달부가 다시 나오지 않는다고 과연 우린 장담할 수 있을까.


태그:#자전거, #자전거우편배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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