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완득이'에서 완득이의 엄마로 나오는 배우 이자스민이 8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스타에서 다문화가정과 배우로서의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 <완득이>에서 완득이의 엄마로 나오는 배우 이자스민이 8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스타에서 다문화가정과 배우로서의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한국은 아직 멀었구나 생각했어요. <의형제>를 찍은 장훈 감독님 인터뷰를 보면서 느낀 거죠. 영화에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이 나오잖아요. 전문가들이 참여한 모니터 시사회에서 외국인들 모습을 큰 화면에서 보는 게 부담스럽다는 말이 나오더라고요. 아니 할리우드 영화는 외계인도 나오고 괴물도 나오고 귀신도 나오는데 외국인이 나오는 게 왜 부담스러운지 이해가 안 가더라고요. 서운했죠."

이젠 '완득이 엄마'로 더 유명해진 배우 이자스민은 한국영화가 그동안 묘사했던 이주 노동자들을 떠올렸다. <의형제>(2010)에 이은 두 번째 영화 출연인 <완득이>에서도 그는 몰래 도망나온 이주 노동자 역할을 했다. 한국 사회에 사는 그들이 전부 이렇게 어렵고 부정적인 모습은 아니기에 출연 제의를 받고 고민했다는 이자스민이었다.

이자스민이 바라본 한국 영화 속 이주 노동자의 모습은?

분명 한국 영화 속 이주노동자들의 모습은 아직까지 동정의 대상이다. 비루한 차림과 고된 환경 속에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존재로 그려졌던 것이다. 실제 이들의 모습에 미루어 볼 때 다소 왜곡된 시선임은 분명했다. "이주 노동자 중에 배운 사람들이 진짜 많거든요"라면서 서운함을 표현하면서도 그가 <완득이>를 출연했던 이유는 바로 '변화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의형제> 이후에 <방가방가>였나요? 한국은 아직 멀었다 생각할 때 그런 영화가 인기를 끌고 이번 <완득이>까지, 1년이라는 짧은 기간 안에 이런 영화들이 나왔잖아요. 분명 변하고 있구나 생각했어요. 특히 이번에 <완득이>가 잘되는 모습을 보면서 출연을 망설였다는 게 후회될 정도로 기뻤어요.

영화 시사회를 제 아들·딸과 같이 봤는데 끝나고 딸이 달려오면서 '엄마, 오빠가 울었어!'라면서 이르더라고요. 아들의 말에 더 놀랐죠. '엄마, 그런 상황에 안 울면 사람도 아니에요!'라고 말하더군요. 그때 '<완득이>가 잘 되든 못 되든 난 목표를 달성했다'고 생각했어요. 아들의 마음도 움직였잖아요."

 영화 '완득이'에서 완득이의 엄마로 나오는 배우 이자스민이 8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스타를 방문, 다문화가정과 배우로서의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인터뷰 내내 밝은 모습으로 생각을 전하는 배우 이자스민의 모습이었다. ⓒ 이정민



이자스민은 아들과 함께 대본을 읽으며 영화 작업에 임해왔다. 앞뒤 내용과 대사까지 외울 정도로 누구보다 영화의 흐름을 잘 알고 있는 아들이 운 셈이다. 이자스민은 "아들이 우는 모습에 스스로 영화에 대한 걱정을 덜어도 될 것 같았다"고 전했다.

한편으로 영화가 다문화 가정에 대한 문제를 깊이 있게 담아내진 못한 것 같다는 공세적인 질문을 던졌다. 그는 "현재는 한국 사회가 다문화를 받아들이는 단계라고 생각한다"며 웃으며 답했다. 이자스민은 "다음 작품에 조금 더 깊게 하면 된다"면서 "단계를 무시하고 갑자기 깊어지면 놀라거나 거부반응이 일어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또한 "감독님이 부담스럽지 않게 현재를 <완득이>에 잘 담아낸 것 같다'"며 나름의 생각을 전하기도 했다.

한국에 온 지 17년, '엄마이자 배우' 이자스민은 강하다

이자스민은 누구보다도 하루를 꽉 채워 사는 이다. 일주일에 3회 정도 출근하는 시청 외국인 생활 지원과 일을 본업으로 하면서 각종 방송 인터뷰 및 게스트로 출연하고 있다. 인터뷰 당일에도 오전부터 오후 늦게까지 한국어 관련 강의를 종일 녹화하고 왔을 정도였다. 또한 이자스민은 '물방울 나눔회'라는 모임에서 다문화 가정 운동을 함께 하고 있기도 하다. 만들어진 지 벌써 3년이 된 물방울 나눔회는 '다문화 가정도 사회의 구성원'이라는 취지로 운영되고 있다.

"다문화 정책도, 지원도 다 필요하지만 인식개선이 제일 중요하죠.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려면 멀리 보더라도 10년, 20년은 봐야하는 거 아닌가요? 당장 성과를 봐야 한다는 분도 있지만 이 활동은 나를 위하는 게 아니라 다문화 2세대들을 위한 활동이라고 생각해요."

 영화 '완득이'에서 완득이의 엄마로 나오는 배우 이자스민이 8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스타를 방문, 다문화가정과 배우로서의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 이정민



한국인 남편을 따라 한국에 들어온 지 17년, 그 역시 처음 10년간은 지금의 활동을 엄두도 못 내던 평범한 이주 여성이었다. 사실 이자스민은 미스 필리핀 출신에 의학을 공부하던 재원이다. 그런 그가 낯선 나라에 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게 된 셈이다.

"'한국에선 박사들도 다 실업자'라는 말이 있잖아요. 모두 똑같이 어려운 조건이라 생각하면서 활동을 시작했죠. 처음엔 아들이 다니는 초등학교도 가기 싫었어요. 다들 외국인을 보는 시선이잖아요. 하지만 계속 찾아갔어요. 처음엔 '어! 외국인이다!'하는 반응이 어느새 '누구 엄마'로 되어 있더라고요."

편견을 몸으로 부딪치면서 타인의 시선만 탓하지 말고 스스로 더욱 적극적으로 마음을 열어야겠다는 것을 느낀 셈이다. 이후 그는 같은 이주민 여성들에게도 자녀의 학교에 자주 찾아가라고 권하기까지 했다고.

"갈등이라는 게 말이 통하나 안 통하나 다 있잖아요. 말이 통하는 한국 사람도 서로 싸우고 헤어지는데 다문화 가정도 그만큼 이해와 배려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다문화 가정의 남편들은 조금 더 인내심을 가졌으면 해요. 아내의 나라에 대해서도 배우고요. 문화차이라는 게 있으니까요. 무엇보다도 대화를 시도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대화를 포기하는 건 모든 걸 포기하는 겁니다. 침묵하는 집은 좋은 집이 아니거든요. 서로 싸우는 한이 있더라도 대화는 절대 포기 안 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아내들은 상처를 안 받았으면 좋겠어요. 문화가 달라 생길 수 있는 오해들이 있잖아요. 어떻게 하든 알려고 하는 자세가 있었으면 해요. '난 잘 모르니 됐어!'하는 분이 있는데 그럴수록 갈등은 더 자주 생기거든요."

배우이자 한 가정의 엄마인 이자스민이 우리 사회에서 같은 환경에 놓인 이들에게 던진 애정 어린 바람이자 부탁이었다.
 영화 '완득이'에서 완득이의 엄마로 나오는 배우 이자스민이 8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스타에서 다문화가정과 배우로서의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한국에 와서는 주로 대화 상대가 아이들이더라고요" 이자스민은 자녀들과 친구처럼 편하게 지내게 된 사연을 말하기도 했다. 아들은 자신의 여자친구를 스스럼없이 소개하기도 한다고. 아들에게도 딸에게도 이자스민은 쿨한 친구이자 따뜻한 엄마였다. ⓒ 이정민


이자스민 완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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