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라이온즈가 통산 5번째 우승, 그리고 한국시리즈에서는 4번째 우승을 차지했다(1985년은 전·후기 통합 우승으로 한국시리즈가 열리지 않았다).

무엇보다 1987년에 삼성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해 선수와 코치, 그리고 감독으로 24년 동안 삼성 유니폼을 입었던 '순혈 삼성맨' 류중일 감독이 사령탑 부임 첫 해에 차지한 우승이라 그 감격은 더욱 컸을 터.

4승 1패. 그리고 두 번의 완봉승. 겉보기엔 가볍게 시리즈를 제압한 것 같지만, 삼성에게도 시리즈 내내 여러 차례의 고비와 결정적 장면들이 있었다. 그런 장면을 슬기롭게 넘겼기 때문에 삼성 라이온즈가 2011한국 프로야구의 챔피언에 등극할 수 있었던 것이다.

[1차전] 4이닝 무실점의 선발 투수를 5회에 강판?

 1차전 차우찬의 불펜 투입은 시리즈 분위기를 가져 오는 '야통의 결정적 한 수'였다.

1차전 차우찬의 불펜 투입은 시리즈 분위기를 가져 오는 '야통의 결정적 한 수'였다. ⓒ 삼성 라이온즈


삼성의 1차전 선발 투수는 외국인 투수 덕 매티스였다. 매티스는 라이언 가코의 대체 선수로 들어와 단 10경기 밖에 등판하지 않았지만, 5승 2패 평균자책점 2.52의 뛰어난 성적으로 삼성의 1선발로 낙점됐다.

특히 10번의 등판 중 무려 9번이나 6이닝 이상을 소화할 정도로 이닝이터로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매티스가 정규리그에서 5회를 넘기지 못하고 마운드를 내려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류중일 감독은 그런 매티스를 1차전에서 5회 시작과 동시에 과감하게 마운드에서 내렸다. 투구수는 단 59개에 불과했고 실점은 하지 않은 상태. 하지만 류중일 감독은 매티스의 공이 SK 타자들의 눈에 익숙해지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매티스 대신 등판한 투수는 좌완 파이어볼러 차우찬. 우완 기교파였던 매티스의 공에 익숙해 있던 SK 타자들은 차우찬이 던지는 강속구에 당황하기 시작했고, 3이닝 동안 단 한 개의 안타도 뽑아내지 못했다.

매티스로서는 다소 자존심이 상할 법도 한 강판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매티스와 차우찬은 합작 7이닝 무실점의 호투로 81.4%의 우승확률을 가져 올 수 있다는 1차전을 잡아 낼 수 있었다.

[2차전] 오승환의 돌직구에 밀린 안치용의 보내기 번트

 안치용은 팀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번트가 얼마나 어려운 건지 뼈저리게 깨달았을 것이다.

안치용은 팀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번트가 얼마나 어려운 건지 뼈저리게 깨달았을 것이다. ⓒ SK 와이번스

2차전의 흐름도 1차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삼성은 장원삼과 권오준, 안지만이 7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고, 6회말 배영섭의 2타점 적시타로 선취점을 뽑았다.

류중일 감독은 8회 '국노' 정현욱을 투입했다. 정현욱은 오승환을 제외하면 삼성 마운드에서 가장 무거운 공을 던지는 투수로 연투 능력은 대한민국 불펜투수 중 가장 뛰어나다.

하지만 20일을 쉬고 등판한 정현욱은 등판하자마자 박재상과 최정, 박정권에서 3연타를 맞고 강판 당하고 말았다. 류중일 감독은 무사 1, 2루의 역전 주자가 나가 있는 상태에서 오승환을 조기 투입했다.

타석에 선 '난세의 영웅' 안치용은 1차전에서도 3타수 1안타 1볼넷으로 제 몫을 다하며 괜찮은 타격감을 이어가던 중이었다, 하지만 한 점 차로 뒤진 8회 무사 1, 2루 상황, 그것도 투수가 오승환이라면 역시 보내기 번트가 정석이다.

오승환은 몸쪽 높은 공을 던졌다. 구속도 137km에 불과했다. 건드리지 않으면 당연히 볼이었다. 하지만 주자를 보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렸던 안치용은 번트를 강행했고 배트 윗부분을 맞은 공은 포수 뒤쪽으로 뜨고 말았다. 허무한 포수 파울플라이 아웃.

공교롭게도 2사 후 최동수의 안타가 나왔고 홈까지 파고 들던 최정은 이영욱의 멋진 송구에 걸려 아웃되고 말았다, 만약 안치용이 보내기 번트를 성공시켰다면 최동수의 안타는 최소 동점타가 됐을 것이고 오승환은 두 경기 만에 시리즈 첫 블론세이브를 기록했을 것이다.

[4차전] 바뀐 투수의 초구를 노리는 게 꼭 정답은 아니다

 안지만은 발군의  위기관리 능력으로 무사 1,3루를 무실점으로 막았다.

안지만은 발군의 위기관리 능력으로 무사 1,3루를 무실점으로 막았다. ⓒ 삼성 라이온즈


야구 경기의 오랜 불문율 중에 '바뀐 투수의 초구를 노려라'는 말이 있다. 새로 등판한 투수는 첫 타자와의 승부를 유리하게 가져가기 위해 초구부터 스트라이크를 던질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조건 초구를 노리는 게 좋은 결과를 가져 오는 것은 아니라는 교훈이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증명됐다. 공교롭게도 초구를 노렸다가 낭패를 본 선수는 '또' 안치용이다.

삼성은 29일에 열린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7회초 최형우의 홈런으로 5-1로 멀리 달아났다. 삼성 마운드의 높이를 생각하면 4점의 리드는 사실상 쐐기점이나 다름 없었다.

하지만 7회말 SK의 공격에서 대반전이 일어난다. 6회까지 호투하던 정인욱이 7회 들어 갑자기 흔들리면서 박재상에게 3점 홈런을 얻어 맞은 것이다. 순식간에 5-4의 한 점차 승부. 그리고 SK의 반격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최정은 정인욱을 강판시키는 안타를 때려 냈고, 이어 박정권이 권혁에게 안타를 때려 내면서 순식간에 무사 1, 3루라는 절호의 득점 기회를 맞았다. 노아웃에 동점 주자가 3루, 역전주자가 1루에 나간 상황.

삼성은 투수를 안지만으로 교체했고 타석에는 2차전 보내기 번트를 실패했던 안치용이 들어섰다. 안지만은 몸쪽에 바짝 붙는 속구를 던졌고 안치용은 '바뀐 투수의 초구를 노려라'는 불문률에 따라 힘차게 방망이를 휘둘렀다.

하지만 방망이는 공을 정확히 때려내지 못하고 빗맞은 타구는 3루수 조동찬의 글러브로 굴러 갔다. 런다운에 걸린 3루 주자 최정은 태그 아웃. 무사 1, 3루의 기회가 1사 1,2루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만약 안치용이 팀베팅에 능한 선수였다면 1, 2루 사이로 밀어치는 타격을 하려고 했을 것이고 몸쪽으로 꽉 차게 들어오는 안지만의 초구를 기다렸을지도 모른다. '바뀐 투수의 초구를 노려라'는 말만 생각하다가 '스트라이크 3개가 들어와야 아웃'이라는 야구 경기의 기본은 잠시 망각한 것이 아닐까.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삼성 라이온즈 SK 와이번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