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오후 서울 경복궁에서 열린 SBS 새 수목 드라마 <뿌리깊은나무> 공개현장및 기자간담회에서  세종대왕 '이도'역의 한석규가 취재진에게 포즈를 취하고 있다.

▲ 한석규 9일 오후 서울 경복궁에서 열린 SBS 새 수목 드라마 <뿌리깊은나무> 공개현장및 기자간담회에서 세종대왕 '이도'역의 한석규가 취재진에게 포즈를 취하고 있다. ⓒ 민원기

1400년대 조선이란 나라를 지배했던 세종 이도는 어떠한 인물이었을까? 이도야말로 태어날 때부터 금 수저를 물고 태어난 고귀한 혈통이었다. 1397년 조부인 태조 7년에 태어난 이도는 태조 이성계의 다섯 아들 이방원(정안대군)의 셋째아들이다.

성리학 국가에서 이도는 조선의 왕자로서 그리고 임금으로서 온갖 도덕과 예의를 달달 외울 정도로 익혀야만 했다. 그러나 SBS 수목드라마 <뿌리깊은 나무> 속의 이도는 품격 있는 언어생활과는 전혀 거리가 멀어 보인다. 궁녀들과 내시들이 있는 앞에서 "우라질"이라는 말을 쓰지 않나, 심지어는 "빌어먹을" 이란 상스러운 말도 거침없이 사용한다. 그 때마다 신하들은 전하로서 체통을 지키시라면서 말리지만, 도무지 이도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다.

이도의 파격적인 행보는 단순히 방정맞은 언어생활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도는 직접 궁 안에 농원을 만들어 본인이 직접 인분(똥)지게를 짊어지고 농사를 지었다. 실제 역사상의 기록에도 세종은 손수 똥지게를 짊어지고 김포에 있는 농부로부터 농사를 배울 정도로 농경국가의 군주로서 친히 모범을 보였다고 한다. 분명 태어날 때부터 왕자로 태어난 고귀하신 몸이 냄새나는 인분을 거름으로 주며 "빌어먹을"을 외치는 모습이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직접 똥지게를 짊어지고 농사를 챙기는 왕이기 때문에 평소에도 신분을 위장하고 수시로 백성들과 서스럼없이 어울리면서 민심을 챙겼을 것이다. 단순히 백성들이 많이 모여 있는 저잣거리에 가서 막걸리나 마시고 일일이 악수하는 쇼로만 그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왕이란 신분을 벗어 던지고 백성들과 마음을 터놓고 부대끼고 이야기도 나누면서 진심으로 그들을 이해하고자한 이도였다. 그러던 차, 백성들 대다수가 글을 읽지 못하는 사실을 안 순간, 그 어느 누구보다도 까막눈인 백성들이 안타까웠을 것이다. 그래서 본인이 직접 새로운 문자를 만들어야겠다는 결심이 굳혔는지도 모른다.

안타깝게도 세종대왕에 숨겨진 인간 이도에 대한 역사적인 기록은 많이 남아있지 않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군주로 평가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애민정신으로 똘똘 뭉친. 한글을 창제하신 왕' 정도로만 알려져 있을 뿐이다. 그러나 '한글' 이외에 세종이 남긴 업적만 봐도 그가 어떤 지도자였는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천민이자 관노비인 장영실을 발탁하여 측우기 등 여러 가지 창조적인 과학발명품을 발명하기도 한 세종이다. 천한 관노를 궁 안의 기술자로 천거하는 것은 당시로서는 파격에 가까웠다. 물론 장영실은 국가적으로 중요한 일을 맡았음에도 불구하고 천민이라는 신분에 맞게 그의 관직이 조절되었지만, 신분에 구애받지 않고 능력으로 적임자를 선발했다는 것만으로도 당시 성리학 질서에 구애받지 않았던 세종의 인재등용이 놀라울 따름이다.

그 외에도 세종은 매일 밤낮없이 집현전에서 '한글'을 연구하는 학사들을 직접 챙길 정도로 자상한 면모를 보였고, 백성들의 세금 부담을 덜기 위하여 조세제도를 백성의 편의에 맞게 개혁하기도 하였다. 물론 세종이 승하하고 세월이 갈수록 다시 조세제도의 투명성이 무너지기는 하였지만, 지배층의 이익을 감소시키면서 국가 수입을 증대시키면서, 백성들의 생활 안정을 도모를 꽤하였다는 점이 높이 평가할 만하다.

게다가 이도는 그 자신이 기득권층에 속해있음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지도층을 달래고 싸우면서 그들이 가진 기득권을 일부 뺏기도 하였다. 대표적으로 새로운 문자 '한글 창제'가 그랬고, 매일 열리던 경연을 통해 구태의연한 도덕과 허례의식에만 빠져있었던 정승들을 따끔히 혼내기도 하였다.

이처럼 역사 속에서도 상당히 훌륭한 군주로 기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뿌리깊은 나무> 이도와 비교해봤을 때 실제 세종이 그랬을까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다. 하지만 <뿌리깊은 나무>에서 그려진 이도 자체를 보자면 지도자로 보나, 인간적으로 보나 한없이 매력적이다. 왕으로서 근엄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신하와 궁녀들에게 짓궂은 농담을 건네며 친근하게 대하는 이도를 보자면, 조선시대 군주가 아니라 흡사 21c가 가장 원하는 지도자의 실사판을 보는 듯도 하다.

그러나 이도 또한 1400년대 "내가 전하다" 한 마디로 모든 것이 통하는 조선시대가 아니라 21c 대한민국 대통령이었다면, 매번 품위가 떨어지는 언행으로 주류 언론에게 지적당했을 법도 하다. 아마 어떤 이는 일국의 지도자의 자질이 의심된다고 탄핵까지 도모했을 지도 모른다. 겉모습만 보면 제아무리 업적을 많이 남긴 이도라고 할지라도 형식과 겉치레를 중시하는 사회에서는 부족하기 짝이 없는 지도자임일 뿐이다.

 <뿌리깊은 나무>에서 연이은 집현전 학사들의 죽음을 책망하면서 "내 잘못이다"면서 눈물을 흘리는 세종 이도

<뿌리깊은 나무>에서 연이은 집현전 학사들의 죽음을 책망하면서 "내 잘못이다"면서 눈물을 흘리는 세종 이도 ⓒ sbs 뿌리깊은 나무


또한 그는 태어날 때부터 귀하게 태어나 백성들의 생활을 잘 모르고 살아왔던 온실 속의 화초로 자랐다. 거기에다가 무고한 이들의 피를 흘리고 떳떳하지 못하게 왕위에 오른 이방원의 아들이라는 지도자로서는 다소 치명적인 핸디캡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세종 이도는 타고난 권위가 결함되어있는 자신의 부족한 점을 극복하기 위해 더욱 민초들의 마음을 헤아리고자 하였고, 분명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궁녀 소이의 위로에도 불구하고 "조선의 모든 잘못은 다 과인의 책임"이라면서 괴로워하였다. 다 모든 것을 자신이 부족한 탓으로 돌리면서 자책하는 왕의 모습이 도리어 그 장면을 지켜본 2010년대 대한민국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농경이 중심이 되는 나라에서 농사의 모범을 보이기 위해 손수 똥지게를 짊어지고, 자신과 나라를 위해 대업을 수행하다가 억울하게 비명횡사한 영혼들의 죽음에 "내 탓이다"면서 절규하는 군주 이도. 선거철에만 보여 지기 위한 정치쇼와 "네 탓이다", "오해다"라는 변명만 판치는 대한민국에서 엄청난 충격을 일으키는 인물임이 틀림없다.

조선시대 군주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당대에 출연한 어떤 지도자보다 백성들이 가려워하는 것을 시원하게 긁어주면서 한편으로 자신의 목을 노리는 정적마저 따뜻하게 포옹할 수 있는 부드러운 지도자로 비춰진 세종 이도는 <뿌리깊은 나무> 안에서만 살아 숨 쉬고 있게 내려버려둬서는 안 된다. 실제 우리가 살고 있는 21C 대한민국으로 뛰쳐나오게 해야 한다. 현재 대한민국에도 세종 이도처럼 자신이 가진 리더로서의 치명적인 콤플렉스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만인에게 진심으로 존경받는 지도자가 출연할 수 있을 지는 국민들의 현명한 선택에 달려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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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지금 여기에서 여성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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