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에서 시즌 10승은 수준급 투수의 기준으로 꼽힌다. 하지만 '수준급 투수'를 넘어 '특급 투수'의 대접을 받기 위해서는 시즌 15승을 돌파해야 한다.

올 시즌 15승 이상을 거두고 있는 투수는 '트리플 크라운'(다승, 평균자책점, 탈삼진 1위)이 유력한 KIA 타이거즈의 윤석민(16승)뿐이다. 매년 15승을 꾸준히 찍어주던 ''괴물 듀오' 류현진(한화 이글스, 10승)과 김광현(SK와이번스, 4승)은 올해 크고 작은 부상으로 승수 쌓기가 여의치 않다.

이렇게 15승 투수의 기근이 계속되는 올해 두산 베어스의 '써니' 김선우가 23일 한화전에서 6이닝 2실점의 호투로 시즌 15승을 채우며 해외파 출신 투수로는 최초로 시즌 15승의 주인공이 됐다.

해외파에게 유난히 높았던 15승의 벽

 만약 봉중근이 타선과 불펜이 강한 팀에서 뛰었다면 해외파 중 가장 먼저 15승 투수가 됐을 것이다.

만약 봉중근이 타선과 불펜이 강한 팀에서 뛰었다면 해외파 중 가장 먼저 15승 투수가 됐을 것이다. ⓒ LG 트윈스


박찬호(오릭스 버팔로스)가 LA다저스에서 성공 시대를 연 90년대 후반부터 유망주, 특히 투수들 사이에서 해외 진출붐이 일어났다. 하지만 박찬호에 버금가는 성공을 거둔 투수는 두 번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경험한 김병현(라쿠덴 골든이글스)뿐이다.

나머지 선수들은 기대한 것만큼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다시 국내 무대로 복귀했다. 박찬호에 이어 두 번째 코리안 빅리거였던 조진호는 2003년 SK로 복귀해 2009년까지 현역 생활을 했지만 통산 5승 밖에 거두지 못했다.

뉴욕 메츠 시절 시즌 9승을 거두며 '컨트롤 아티스트'라는 별명을 얻었던 서재응(KIA) 역시 지난 4년 동안 15승은커녕 10승 고지도 한 번 밟아 보지 못했다. 오히려 메이저리그를 경험하지 못한 송승준(롯데 자이언츠)이 4년 연속 두 자리 승수를 올렸다. 하지만 송승준 역시 작년에 거둔 14승이 생애 최다 승수다.

해외파 투수 중 가장 크게 성공을 거둔 투수는 LG 트윈스의 에이스 봉중근이다, 국내 복귀 첫 해에는 단 6승에 그치며 '봉미미'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을 얻기도 했지만, 2008년부터는 작년까지는 해마다 170이닝 이상을 던지며 특급 좌완으로 거듭났다.

봉중근은 2008 베이징 올림픽 퍼펙트 금메달의 일원이었고, 2009년 제2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에서는 대표팀의 에이스로 맹활약하며 야구팬들로부터 '의사 봉중근'이라는 새로운 별명을 얻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구위를 가지고 있는 투수도 타선의 도움 없이는 결코 승리 투수가 될 수 없다. 봉중근이 많은 승수를 챙기기에 LG는 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가을야구를 경험하지 못한 약팀이었다.

결국 봉중근은 매년 많은 이닝을 던지고도 15승 고지는 넘보지 못한 채 3년 연속 10승 투수라는 타이틀에 만족해야 했고 지난 6월 '토미존 수술'이라 불리는 팔꿈치 인대접합 수술을 받으며 일찌감치 시즌을 마감했다.

최근 7연승으로 해외파 첫 15승 고지를 점령한 김선우

 김선우는 1995년 김상진(17승), 권명철(15승) 이후 16년 만에 15승을 기록한 토종 선발 투수가 됐다.

김선우는 1995년 김상진(17승), 권명철(15승) 이후 16년 만에 15승을 기록한 토종 선발 투수가 됐다. ⓒ 두산 베어스

김선우 역시 국내 복귀 초반은 만만치 않았다. 김선우는 몬트리올 엑스포스(현 워싱턴 내셔널스) 시절이던 2005년 9월 '타자들의 무덤'이라는 쿠어스 필드에서 한국인 두 번째 완봉승을 기록했을 정도로 위력적인 공을 던지는 투수다.

하지만 힘에만 의존한 투구로는 국내 타자들을 당해낼 수 없었고, 김선우는 두산에서의 첫 해 6승 7패 평균자책점 4.25로 다소 실망스런 시즌을 보냈다.

2009년에는 강타선과 막강 불펜의 도움을 받아 11승을 올리긴 했지만 5.11의 평균자책점은 '메이저리그 출신' 김선우 답지 않은 성적이었다.

하지만 수확이 있었다. 김선우가 드디어 30세를 훌쩍 넘긴 자신의 나이를 인지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동안 상체 위주로 던지던 딱딱한 투구폼을 과감히 버리고 하체를 이용한 부드러운 투구폼으로 변신하며 2010 시즌 13승을 따냈다.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는 진리를 깨우친 것이다.

김선우의 부드러운 투구는 올 시즌 한 층 더 빛나고 있다. 비록 두산의 팀 성적은 6위로 떨어졌지만 김선우는 외국인 투수 더스틴 니퍼트와 함께 한 번도 쉼없이 로테이션을 지키며 해외파 투수로는 최초로 시즌 15승 고지를 밟았다.

김선우는 올 시즌 윤석민에 이어 두 번째로 15승 투수가 되며 박현준(LG), 장원준(롯데, 이상 13승) 등 3위 그룹과의 차이를 2승으로 벌렸다. 김선우는 최근 7경기에서 7승을 따냈을 정도로 무서운 기세로 질주하고 있어 남은 경기 결과에 따라서는 다승왕 도전도 꿈이 아니다.

두산 팀으로서도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던 2007년 다니엘 리오스가 기록했던 22승 이후 4년 만에 나온 15승 투수다. 토종 선발 투수로는 1995년의 '원투펀치' 김상진(17승)과 권명철(15승) 이후 무려 16년 만에 나온 대기록이다.

하지만 김선우는 자신의 생애 첫 15승을 기뻐하기 보다는 올 시즌 팀의 부진을 더 안타까워 했다. 비록 두산은 5년 만에 포스트 시즌을 구경만 하는 신세가 됐지만, 김선우라는 최고 연봉 투수가 믿음직한 에이스로 성장한 것은 실망스런 시즌을 보낸 두산이 2011 시즌에 얻은 커다란 수확이다.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 김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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