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와 비서의 로맨스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둘의 사랑이 결실을 맺는 것이야말로 로맨틱코미디로서의 숙명이겠지만, <보스를 지켜라>를 사랑스럽게 만드는 요소들은 연애 외에서도 찾을 수 있다.

덜 떨어진 보스 차지헌(지성 분)과 한때 놀았지만 똘똘한 비서 노은설(최강희 분)이 보스-비서 간 수직관계나 남자가 여자를 지켜주는 일방적인 관계를 전복시킨 것이 신선함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극이 진행될수록 두 사람의 사랑 싸움 외에 주변 인물들의 활약이 더 눈에 들어온다. 사실 지헌과 은설간 사랑으로 이야기가 집중되면서 재미가 떨어진 느낌이 없지 않았다. 그 때문인지, 최근 <보스를 지켜라>의 시청률은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그래서 곱씹어 봤다. <보스를 지켜라>가 꼭 지켜야 하는 소중한 아이템들!

# 어딘지 모자란 사람들

'철'이라는 게 돈 주고 살 수 있는 거라면 이 사람들은 진작 성인군자가 됐을 것이다. <보스를 지켜라>의 등장인물 가운데 노은설을 제외한 대부분의 주요인물, 그러니까 차지헌 아버지 차 회장(박영규 분)이 경영하는 그룹과 관련된 사람들은 남부럽지 않은 재벌이건만 딱 하나, 철이 없다. 그래서 어딘지 모르게 모자라 보인다.

지긋한 나이에도 집에 가면 "엄마" 찾는 차봉만 회장(박영규 분)이나 몸집만 어른인 어린이 차지헌, '완벽녀'임에도 늘 혼자 밥 먹게 되는 '찌질이' 서나윤(왕지혜 분)이 요주의 인물이다. 특히 서나윤은 자신이 짝사랑하는 사람의 연인에게 의지하는 믿을 수 없는 순박함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모자라서 덜 떨어져 보이기보다 너무 아이 같아서 호감이 간다. 이 점이 <보스를 지켜라>의 철 없는 사람들이 주는 매력이다. 가진 게 없는 인물이 비로소 성공했을 때 카타르시스를 얻듯, 모자란 게 없는 인물이 빈틈을 보일 때도 비슷한 재미가 느껴진다.   


# '동네' 차별 않는 차 회장

재벌과 재벌이 아닌 여성, <보스를 지켜라> 식의 화법으로 이쪽 동네와 저쪽 동네의 연애는 현실이든 드라마든 늘 불가능한 일이었다. 우리는 그래서 '동네'라고 쓰고 '계급'이라고 읽는다. 이를 거스르는 연애의 대항마 역할을 하는 이들은 대개 부모다.

초인종 소리에 그녀가 온 줄 알고 반갑게 문을 열자 도끼눈을 뜨고 노려보는 아버지와 돈 봉투를 슥 내밀며 "얼마면 헤어지겠냐"는 어머니는 우리 드라마들 속에서 꽤 익숙한 풍경. 이런 상황에서 재벌이 아닌 여성은 주로 '그런 여자' '따위' '저거 치워' 등, 사물 취급을 당하기 일쑤다.

물론 노은설 역시 처음에는 주주들이 기함할 조건은 다 갖춘 '날라리' 전력 때문에 차봉만 회장에게 '까'였다. 하지만 공황장애를 앓는 아들 차지헌을 돕는 모습에 탄복한 차 회장은 둘의 사랑을 허락하기에 이른다. 엘리베이터에서 포옹 중인 둘을 발견하고 "하던 일 계속하라"며 자리를 피해주는 차 회장의 배려는 어색하지만 흐뭇한 광경이다.    

# "키메라 같은 여편네" 숙희

마치 현대가의 며느리와 시아주버님과의 격돌을 보는 것 같다. 하지만 <보스를 지켜라>의 차봉만·신숙희 회장, 이 커플은 늘 앙숙처럼 으르렁대도 사랑스럽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서로를 존중하는 것처럼 '쇼'를 하는 두 사람은 돌아서기 무섭게 "키메라 같은 여편네", "너구리 같은 영감"이라고 욕설을 퍼붓는다.

형수와 시동생의 관계로 만나 경영권 싸움을 하기 전에 친구였던 두 사람의 싸움은 본인들끼리는 살벌하지만, <보스를 지켜라>에서 그 주거니 받거니만큼 재밌는 것도 없다. 특히 차화연은 MBC에서 현재 방영 중인 <천번의 입맞춤>에서 이순재와 노년의 순애보를 보여주고 있는 모습과 판이하게 달라 더 재밌다.

# '사실상' 실화 같은 패러디

아들을 대신해 보복폭행을 한 차 회장부터 그룹 계열사를 맡고 있는 차 회장의 형수 신숙희와의 집안싸움은 모두가 알 만한 국내 대기업의 일화를 떠올리게 한다. 그런가 하면, 나이 지긋한 기업 회장님들이 검찰 조사를 받거나 법정에 출두할 때 즐겨 타는 휠체어 퍼포먼스는 차 회장의 연기를 통해 개그로 승화됐다.

14일 방송은 얼마 전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안철수 지지율'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민감하게 응수했던 명언, "병 걸리셨어요?"를 절묘하게 응용했다. 극 중, 신숙희 회장의 스파이로 활동하고 있는 박 상무가 "차봉만 회장이 눈치 챈 것 같다, 내 머릿속에 도청기는 없는지 그러고 살고 있다"는 말에 신숙희 회장이 짜증을 내며 그 대사를 써먹은 것. 재벌이나 정치인사 등 소위 기득권층의 허물이 <보스를 지켜라>에서는 깨알 같은 패러디로 숨어 있다. 시류를 읽을수록 찾는 재미도 쏠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