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소금> 영화 포스터

<푸른 소금> 영화 포스터

요리의 기본은 간이다. 아무리 좋은 재료를 가지고 먹음직스럽게 데코레이션을 잘 했다 해도 간이 맞지 않으면 그 요리는 잘 되었다 할 수 없다. 짜지도 싱겁지도 않게 딱 맞게 간 된 음식을 먹으면 흐뭇하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간 잘된 영화는 보는 이를 흐뭇하게 한다. 탄탄한 서사구조에 적절한 긴장미, 거기에 아름다운 영상미까지 가미된다면 금상첨화다.

<그대안의 블루>(1992), <네온 속으로 노을지다>(1995), <시월애>(2000) 등을 통해 독특한 영상미학을 선보여온 이현승 감독의 최근작 <푸른 소금>은 좋은 재료를 가지고 먹음직스럽게 데코레이션 되었다. 이현승 감독 특유의 세련되고 화려한 영상미를 자랑한다. 그런데 숟가락을 들고 맛을 본 순간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이 맛은 뭐지?

개봉 첫 주 관객 수 36만 명의 박스 오피스 성적을 거둔 <푸른 소금>은 500개가 넘는 스크린에서 거둔 성적치고는 다소 저조하다. 송강호라는 걸출한 배우와 떠오르는 샛별 신세경이 주연하고 천정명, 김민준을 비롯하여 이경영, 윤여정, 이종혁, 오달수, 김뢰하 등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양념으로 간을 맞추었지만 영화는 어쩐지 심심하고 맛이 없다.

서사가 사라진 화려한 영상미의 잔치

<그대안의 블루>를 시작으로 이현승 감독은 매 영화마다 푸른색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드러내고 있다. 푸른색은 우울하고 쓸쓸하다. 짙푸른 인디고와 코발트 블루는 우울을 넘어 불안하고 슬프고 처연하기까지 하다. 피카소는 <압생트를 마시는 사람>을 비롯한 청색시대 작품들을 통해 짙은 인디고와 코발트 블루로 불안감과 슬픔을 표현하였다.

전직 조폭과 그를 죽이기 위해 고용된 암살자라는 남녀 주인공의 관계는 우울하다. 더구나 사랑이든 우정이든 연민이든 그들 사이에 서로를 향한 감정이 생긴다면 그것은 우울함을 넘어 처연한 슬픔이 된다. 그러나 치고이네르바이젠의 바이올린처럼 처절하고 긴박해야 할 긴장감이 푸르른 영상에 멜랑콜리하게 녹아 버렸다.

아름다운 영상에 잠식되어 이야기가 사라진 영화는 간이 안 된 요리 같다. 전설적인 조폭으로 이름을 떨쳤던 두헌(송강호)과 그를 감시하다 결국 죽여야 하는 운명에 놓인 세빈(신세경). 그리고 그들 사이에 싹튼 애매모호한 정체불명의 감정이 영화를 끌고 가는 이야기의 전부다.

폭력조직의 연합체인 칠각계의 후계자로 지목될 만큼 전설적인 조폭이었던 두헌이 어떤 사연으로 폭력계에서 손을 씻고 부산으로 내려와 요리를 배우고 식당을 하려고 하는지, 한때 비공인 아시아신기록까지 세운 사격선수였던 세빈은 왜 가족도 없이 혼자서 조폭에게 시달림을 당하며 청부살인까지 해야 하는지 영화는 말이 없다.

다채로운 사랑의 빛깔

 <푸른 소금> 영화의 한 장면

<푸른 소금> 영화의 한 장면


사랑과 사람은 받침 하나 차이다. 사랑이란 서로 다른 사람이 만나 네모진 미음 받침을 둥근 이응으로 바꾸듯 자신의 각진 마음을 둥글게 다듬어 상대를 끌어안는 일과 같다고 누군가는 말한다. 자신의 일부를 떼어내어 상대를 위해 맞추어 가는 것, 그것이 사랑이라 한다. 그렇다면 두헌과 세빈의 마음은 뭘까? 

"인간관계란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아. 니가 생각하는 사랑이 붉은 색이라면 자주색도 있고, 푸른색도 있고, 흰색도 있고, 검은색도 있고... 엄청나게 많은 색깔이 있어."

원조교제를 하느냐는 애꾸(천정명)의 물음에 두헌은 이렇게 답한다. 두헌은 자신의 감정이 붉은색인지 푸른색인지 밝히지 않는다. 대신 행동한다. 그녀를 위해 촌스러운 파란색 원피스와 덧신을 쇼핑하고, 생전 먹지 않던 달달한 카라멜 마끼아또를 함께 마시고, 그녀가 행복해지기를 바라며, 자신의 죽음을 담보로 세빈의 친구 은정을 찾아 나선다.

노을이 지는 코발트빛 하늘과 염전. 멈춰선 남자와 남자를 향해 총구를 겨누는 여자. 두 사람의 실루엣과 물 위에 비쳐진 그림자. 마치 데칼코마니를 보는 듯하다. 접었다 펴면 똑같아지는 미술작품처럼 두헌과 세빈은 서로에게 데칼코마니 같은 존재는 아닐까? 붉음과 푸름이 공존하는 공간에서 그들은 서로의 존재를 확인한다.

때늦은 깨달음

 <푸른 소금> 영화의 한 장면

<푸른 소금> 영화의 한 장면


세상에는 세 가지 금이 있다. 황금, 소금, 그리고 지금... 사람들은 황금을 가장 좋아하지만 황금은 혼자서만 빛이 난다. 그러나 소금은 혼자서 빛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녹여 다른 재료의 맛을 살린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지금 두헌과 세빈은 소중한 이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는 <푸른 소금>이 되었다.

<푸른 소금>의 영문제목인 hindsight는 foresight와 반대로 지나고 나서 뒤늦게 깨닫는 것, 즉 때늦은 지혜를 말한다. 자신의 감정은 붉은색이 아니라고 하지만 세빈을 바라보던 두헌의 쓸쓸한 눈빛 속에 숨어있던 사랑을 때늦게 확인하는 것. 그것이 <푸른 소금>이 말하고 싶었던 hindsight는 아니었을까.

이현승 감독은 인터뷰에서 "생명을 유지하는데 꼭 필요하지만, 너무 많거나 적으면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는 소금처럼, 푸른 색 역시 밝음과 어두움을 동시에 담고 있는 이중적인 색깔이다. <푸른 소금>은 한 가지로 규정되지 않는 중층적이고 복합적인 사랑의 감정을 의미한다." 라고  말한다.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감독의 이력이 말해주듯 빼어난 영상미는 뮤직비디오를 방불케 하고 장면 장면은 스틸사진을 찍어놓은 것 같다. 하지만 아무리 영상미가 아름답다 해도 두시간 동안 뮤직비디오를 보기란 쉽지 않다. 결국 조밀하지 못한 서사구조는 캐스팅에 한껏 공을 들인 화려한 조연들의 개성도 살리지 못한 채 푸르른 소금밭에서 헤매다 길을 잃었다.

소금 이현승 HINDS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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