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된 사나이, 그는 행복할까? 사람은 누구나 능력을 원한다. 자신의 능력을 맘껏 뽐내려고 하는 것도 실은 능력이 없어서 그렇다. 그런데 그런 신적 능력이 주어진다면 어떨까? 누구나 한번쯤 이런 상상을 하게 될 것이다. 영화 <화이트 노이즈2> 속에는 그야말로 이런 발칙한 상상이 들어 있다.

죽음, 살아있는 그 누구에게도 미지의 세계다. 그래서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무한한 상상력을 동원한다. 때로는 무섭게, 때로는 신비하게 다가오는 죽음, 아니 죽음에 대한 상상력. 이 영화는 바로 그런 것에 대한 이야기다. 현실세계와 사후세계가 어떻게 다를까?

단란한 가족 외식 자리가 한 순간에 아내와 아들을 잃는 현장으로 탈바꿈한다. 누구도 내 일일 것이란 생각을 하지 못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그리고 범인은 남편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자신의 턱 밑에 총을 쏘고 쓰러진다. 자신의 눈앞에서 잔인하게 가족이 살해되는 것을 보고 막지 못한 자신을 비탄해 하는 남편 에이브 데일(나단 필리온)은 자책감에 자살한다.

신의 영역에 뛰어든 사람

 단란한 가족 외식 자리가 한 순간에 아내와 아들을 잃는 현장으로 탈바꿈한다. 누구도 내 일일 것이란 생각을 하지 못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단란한 가족 외식 자리가 한 순간에 아내와 아들을 잃는 현장으로 탈바꿈한다. 누구도 내 일일 것이란 생각을 하지 못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 ㈜ 코리아스크린


그러나 그는 살아난다. 에이브는 죽음에 이르는 하얀 빛의 터널을 지나고, 자신에게 손짓하는 죽은 아내와 아들에게로 가지만 의료진의 노력으로 되살아난다. 이후 에이브는 '화이트 노이즈'(전도체 내부의 전자들의 열에 따른 불규칙한 움직임으로 가청주파수대 내에 존재하는 모든 주파수에서 동일한 음력으로 소리가 날 경우 들리는 잡음, 영화에서는 'EVP'라고 한다)를 듣고 보게 된다.

그는 죽은 사람들의 세계를 보는 것은 물론, 빛을 발산한 사람들이 죽게 된다는 것을 안다. 누가 언제 죽을지를 아니, 살려내는 것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에이브는 빛이 비치는 사람을 살려내려고 온갖 노력을 한다. 실제로 몇 명을 살려낸다. 죽은 자를 살리는 신의 영역까지 침범하게 된 것이다.

신의 영역을 침범한 그에게 무슨 일이 전개될까. 영화는 죽을 자들을 살려내는 멋진 이야기로 끝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게 아니다. 살려낸 사람들이 관련된 사고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이 죽는 사건이 곳곳에서 벌어진다. 그것도 죽을 자를 살려 놓은 지 정확히 3일 만에 그런 일들이 일어난다.

그의 가족을 살해하고, 정신병원에 갇혀 있는 헨리 케인(크레이그 페어브라스)을 찾아간 에이브는 더 많은 사람의 목숨을 구하면 구할수록 그 대가를 치러야 함을 알게 된다. 그러니까 한 명을 살리면 10명 20명이 죽게 되는 것이다. 감독은 신의 영역은 도전하는 게 아니라고 말한다.

영화를 본 후 한 마디 스친 생각은 이렇다. '어쩔 수 없이 이 영화는 종교적이다. 그러나 신의 영역은 침범할 수 없다'. 그렇다. 삶과 죽음이 무엇이 다른가. 영화는 무던히 그것의 다름을 말하려 하지만 결국 다르지 않음을 증명하고 만다. 임사체험이라는 독특한 체험을 영상화하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는 한계에 부닥친 것으로 보인다.

'666'이라는 숫자와 3일

 <화이트 노이즈2> 포스터

<화이트 노이즈2> 포스터 ⓒ ㈜ 코리아스크린

얼마든지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는 두 주제가 '임사체험'과 성경의 '666'이란 숫자다. 임사체험은 그야말로 죽음을 경험한다는 말이다. 죽음을 경험한 사람이 무엇인가를 한다는 게 얼마나 상상을 자극하는가. 영화는 그런 상상력으로 꽉 차 있다.

임사체험과 이와 견줄만한 기독교적 종교경험(입신 등)은 물론 다르다. 그러나 두 가지 모두 남이 경험하지 못하는 종교적 현상이란 점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페트릭 루시에 감독은 이런 종교적 상상력에 살과 뼈대를 붙여 영화적 도발을 감행한다.

성경에는 '666'이란 숫자가 네 번 나온다. 솔로몬이 성전을 위해 거둔 세금의 금 달란트 중량의 값으로 두 번 사용되고(왕상 10:14, 대하 9:13), 아도니감 자손의 숫자로 한 번 사용되며(스 2:13), 말세의 환난 때 매매를 하려면 필요한 숫자인 짐승의 표 '666'이 그것이다.

앞의 두 번의 사용은 그리 문제 될 게 없다. 다른 해석을 할 여지가 없는 경우의 수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 번째 용도가 항상 많은 추측과 해석을 낳는다. 아직도 '666'이란 숫자는 기독교계 내에서도 해석의 여러 가능성을 열어놓고 논란의 여지 사이를 갈팡질팡하고 있다.

요한계시록을 푼다고 자처하는 이들에 의해 여러 가지 해석들이 난무하지만 아직도 미지와 무지의 세계 그대로다. 그러다 보니 문학과 영화 등에서 이 '666'이란 숫자가 애매하게 시달림을 받는다. <화이트 노이즈2> 역시 이런 '666'이란 마력 넘치는 숫자를 역으로 우려먹는다.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 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한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것은 사람의 수니 그의 수는 육백육십육이니라"(요한계시록 13:17-18)

<화이트 노이즈2>는 이 '666'이라는 숫자를 교묘하게 연결하여 'Tria Mera'라는 단어를 만들어 낸다. 죽는 자마다 'Tria Mera'라는 단어를 외치고 죽는다. 에이브의 아내도 그랬다. 그 말이 단서다. 에이브는 열심히 그 단서를 추적한다. 그것은 '3일'이란 말이었다.

그리하여 죽은 자를 살려낸 지 세 번째 날이 되면 어떻게 해서든 사고가 일어나야 하며 그때는 대형사고로 여러 명이 죽게 된다. '세 번째 날', 'Third Day', 그리스어로는 'Tria Mera', 각 알파벳은 숫자로 풀 수 있다. T- 400, R- 100, I- 9, A- 1, M- 50, E- 5, R- 100, A- 1, 이것들의 합은 '666'이다.

그러나 이 숫자가 의미하는 3일은 3일 후에 어떤 사건이 일어나리라는 것은 말해 주지만, 그 불행한 사건에 대하여 어떻게 대처할 수 있는지는 말해 주지 못한다. 그것이 인간의 한계다. 아무리 신적 경험과 능력을 갖춘다 해도 인간은 유한할 뿐이다.

인간의 신 됨, 그 유용성과 한계

 어쩔 수 없이 이 영화는 종교적이다. 그러나 신의 영역은 침범할 수 없다.

어쩔 수 없이 이 영화는 종교적이다. 그러나 신의 영역은 침범할 수 없다. ⓒ ㈜ 코리아스크린


<화이트 노이즈2>는 전편이 '소리'가 제재였다면 이번에는 '빛'이 제재다. 죽음을 부르는 소리, 죽음을 부르는 빛, 그렇다. 임사체험을 한 주인공 에이브 데일이 본 빛은 바로 죽음의 빛이다. 대부분 '빛'은 죽음보다는 생명을 상징하다. 그런데 이 영화는 역으로 빛이 죽음을 의미한다.

어느 평론가는 "중반을 지나 이상현상들을 종교와 결부시키면서 스스로의 매력을 저버린다."고 했다. 하지만 난 그 반대다. 이 영화에서 종교와 결부되지 않은 그 무엇으로만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 그저 진부한 괴기공포물로 끝나지 않은 것은 이 영화가 종교적 의미부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죽음을 다스리는 인간이 되지만 여전히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죽을 자를 살리지만 여전히 더 많은 자들을 죽음에 빠뜨리고 만다. 인간 능력이 한계가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고 우린 착각한다. 그리고 바벨탑을 더 높이, 더 멋지게 쌓아가고 있다. 사람들이 보기에 그럴 듯하게. 요즘 교회의 양적 물적 겉모습도 예외가 아니다.

'666'이란 숫자를 풀어 3일만 되면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캐내지만 어떻게 죽음의 대형 사건들에 대처해야 하는지 모른다. 인간 지식의 한계가 없는 것 같다. 달나라는 옛날이야기고 이젠 우주천체 그 어느 곳 하나 인간의 지식 안에 안 들어 온 게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자기 머리카락 숫자 조차도 모른다. 그게 인간이다.

죽음에 대한 미스터리를 맘껏 풀어헤치는 듯하더니 결국 죽음의 문제의 뚜껑을 닫아 버린다. '물음표(?)'속에 담긴 뜻을 밝히려고 한다. 그러나 결국 이 영화도 '물음표(?)'를 그대로 남기고 막을 내린다. 삶과 죽음의 문제에 접근은 하나 실마리를 내놓지는 못한다. 신이 된 사나이, 과연 그는 행복할까? 결코 아니다. 인간은 사람일 때가 가장 행복하다.

덧붙이는 글 <화이트 노이즈2> 감독 패트릭 루시에/ 나단 필리언, 케이티 색호프 출연/ ㈜ 코리아스크린 배급/ 상영시간 99분
화이트 노이즈2 하나님 개봉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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