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힘을 다해 달리는 유지성

온 힘을 다해 달리는 유지성 ⓒ 유지성


전체 코스를 놓고볼 때 사실 개인적으로 대회 3일째가 제일 힘들었다. 첫날 30km, 둘째 날 40km이던 코스가 갑자기 60km 이상으로 늘어난 데다 제한시간이 10시간으로 촉박해 몇 명 남지 않은 참가자들을 극도의 긴장상태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3일째 아침, 출발선에서 호주의 피터와 이야기를 나눠보니 그 수다쟁이가 극도로 말이 없어지고 눈빛도 이전과 다른 생존감 넘치는 야생의 눈빛으로 바뀌어 있었다. 전반전인 선수들의 분위기도 마찬가지였는데 모두 살아남아야 한다는 긴장의 빛이 역력했다. 나 역시 이를 악물고 젖 먹던 힘까지 쏟아부었던 것 같다.

미친 듯이 달려서 제한시간 내에 통과해 기진맥진해 쉬고 있는데, 신기한 것은 그렇게 3일간 총 130km를 주파하고 나니 몸이 아웃백 코스에 적응이 되어버린 느낌이었다. 가장 힘들었던 날이지만 처음으로 완주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호주 대륙이라는 워낙 드넓은 대지를 달리다보니 별별 진귀한 현상도 목격했다. 우리가 지나가는 코스에 자연적으로 불이 나서 활활  타오르는 날이 있었다. 자연 발화로 인해 며칠간, 몇 달간 산불이 이어지고 있다는 소식을 예전에 가끔 뉴스에서 보았던 것 같다. 그런데 그런 일이 바로 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으니 그저 놀랍기만 했다.

 불길을 뚫고 가야 하는 일도 생겼다.

불길을 뚫고 가야 하는 일도 생겼다. ⓒ 유지성



 나무 위에 까마귀들이 앉아서 지켜보고 있다.

나무 위에 까마귀들이 앉아서 지켜보고 있다. ⓒ 유지성


 달리다보니 한쪽에서는 태양이 한쪽에서는 달이 떠있다.

달리다보니 한쪽에서는 태양이 한쪽에서는 달이 떠있다. ⓒ 유지성


목초지에는 야생 상태로 방목된 소와 말들이 있었는데 각 무리의 우두머리는 낯선 사람을 보면 상당히 공격적으로 변했다. 한번은 말이 덤벼들어서 기겁을 하고 달아난 적이 있었는데, 이럴 때 발휘되는 질주 본능은 '전문 육상 선수로 전업을 할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내 자신이 대단함을 느끼게 했다.

대회 마지막 날, 호주 사람들이 말하는 '세상의 중심'인 울룰루(적색의 커다란 단일 바위산)는 정말로 묘한 신비감을 불러일으킨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완만한 오르막길 130km를 달린 후 만나게 된 울룰루는 창조주의 세상 설계 능력은 어디까지인지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이번 호주 아웃백 대회의 의미를 한마디로 말하라면 '하루, 24시간을 단 몇 초의 낭비 없이 치열하게 보낸 대회'라고 말하고 싶다. 피 말리는 제한시간과의 싸움은 나의 상식을 뛰어 넘는 본능적인 달리기 능력을 발견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물론 기복 심한 날씨에 9박 10일이라는 살인적인 코스에서 느껴지는 피로의 강도는 급이 달랐다. 그래서 극도로 피곤하거나 몸에 이상이 오는 것 같으면 틈틈이 5분에서 10분 정도 토막잠을 잤다. 물론 텐트나 침낭 같은 것이 있을 리는 만무하고, 수풀에서 모래 위에서 길바닥에서 때와 장소를 안 가리고 그냥 누워 잤다. 그런데 그헣게 단 몇 분을 잤을 뿐인데, 깨고 나면 몇 시간을 쉬지 않고 달릴 수 있는 커다란 힘이 되었다.

이처럼 단지 하루를 살아남기 위해 벌인 치열한 삶의 투쟁이 하루하루 모이다 보니 세계 최장거리 레이스 완주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망가진 프랑스 참가자의 발

망가진 프랑스 참가자의 발 ⓒ 유지성


 멀리 울룰루가 보인다.

멀리 울룰루가 보인다. ⓒ 유지성



대회 시상식 날 주최 측 대표인 제롬이 눈물 한 바가지를 쏟았다. 사연인즉, 시상식 날 호주의 앤드류가 모든 참가자의 사인을 받은 티셔츠를 제롬에게 전달을 했다. 그러면서 그가 이야기 하길, 자기가 호주 사람이지만 아웃백에서 세계 최장 거리 레이스가 성공적으로 열릴 수 있을지 의문을 품었다고 했다.

대부분의 호주 참가자들이 그와 같은 생각을 했는데 현실적으로 아웃백 일대가 국립공원이며 여러가지 제약과 지원 시스템의 미비로 대회 성사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그래서 어려운 환경을 이겨내고 대회를 마무리한 노고에 감사를 표한다고 마무리했다.

이야기를 듣던 제롬의 눈가에 눈물이 가득 맺혔다. 누군가 그의 어깨를 가볍게 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사나이 대 사나이로 깊은 포옹을 해줬다. 누구보다 이 대회의 성공을 위해서 고생한 걸 알기에 나도 감동의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제롬도 이야기 한다. 모두의 도움과 참가자 전체가 하나로 되었기에 불가능에서 가능으로 바뀐 대회를 만들 수 있었다고, 그래서 자신은 우리와 함께한 시간을 영원히 잊을 수 없고 행복하다고.

 9박 10일간 함께한 친구들.

9박 10일간 함께한 친구들. ⓒ 유지성


대회를 마치고 9박 10일을 '서바이벌'한 참가자들이 모였다. 각자 살아남은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역시 계획과 현실은 차이가 많았다고 했다. 결국 현장에 얼마나 잘 적응하고 그때그때 현명한 상황 판단을 하느냐가 중요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살아남았음에 감사하며 절대로 다시는 참가 안 한다고 했다.

나도 지금은 마찬가지다. 그저 아름다운 경치를 즐기며 편안한 여행을 하고 싶기만 하다. 하지만 언제나 그러하듯이 조금의 시간이 흐르면 다시금 그리워하고 또 다시 그곳을 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앞으로 첫 대회 참가자들은 다음 참가자들의 전설로 남을 것이고, 그들에게 우리는 '하루 1분 1초에 집중하라'는 짧은 한마디를 남겨줄 수 있다. 우리는 항상 미래를 생각하지만, 그래서 가장 중요한 현재, 바로 이 순간의 소중함을 모를 때가 있다. 하지만 오지레이스를 달리다 보면 저절로 알게 된다.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중요하고 의미 있는 순간인지 말이다.

마지막으로, 세계 최장거리 오지레이스에 참가할 수 있게 해주고 대회가 성공리에 끝날 수 있도록 많은 후원을 해준 호주정부관광청(www.australia.com)에 감사를 드린다.

 완주 메달 뒤로 울룰루가 보인다.

완주 메달 뒤로 울룰루가 보인다. ⓒ 유지성


덧붙이는 글 월간 아웃도어 연재물
호주 아웃백 유지성 오지레이스 어드벤처레이스 세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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