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플러스에서 개최하는 성적소수자들을 위한 특별전 '연분홍치마'

인디플러스에서 개최하는 성적소수자들을 위한 특별전 '연분홍치마' ⓒ 인디플러스

<오월애> <무산일기> <파수꾼> 등 상반기 주요 흥행작들을 다룬 '개관 100일전', 두근두근 성호월드로 이름 붙인 독립영화의 기대주 '윤성호 감독 특별전', 독립영화 흥행 기준 1만인 관객을 돌파한 음악영화 <플레이>를 연출한 '남다정 감독 특별전'.

최근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직영 독립영화관 인디플러스에서 개최됐던 기획전들이다.

인디플러스의 기획전이 독립영화 관객들의 호응을 얻으며 눈길을 끌고 있다. 독특한 기획을 통해 독립영화 저변 확대에 애쓰는 한편으로 끊임없이 감독과 배우들을 불러들여 관객들과의 소통에도 정성을 쏟고 있기 때문이다.

인디플러스가 영진위가 직영하는 제1독립영화관이란 점에서 마땅히 제 역할을 하는 것이라 평가할 수도 있지만, 이명박 정권 등장 이후 독립영화 진영이 독립영화관 운영과 관련된 문제 등으로 영진위와 치열한 대립 관계를 형성해 왔다는 점에서 격세지감이다. 

8월 11일~13일까지 이어지는 '연분홍 치마전'도 주목되는 기획전이다. 공중파 방송에서 동성애를 소재로 한 드라마를 한다고 한쪽에서 야단법석을 떠는 판에 '인디플러스'는 성적 소수자들을 위한 다큐멘터리들을 모아 특별전을 준비했다.

'연분홍치마'는 성적소수문화환경을 위한 모임의 이름이기도 한데, 이번 기획전에는 최근 개봉돼 화제가 된 <종로의 기적>과 <3xFTM>, <레즈비언 정치도전기> 등 세 편의 영화가 상영된다.

이혁상 감독이 연출한 <종로의 기적>은 네 명이 남자 동성애자들을 다루고 있고, 김일란 감독의 <3xFTM>은 세 명의 성전환 남자들을 통해 성전환자의 인권을 다루고 있다. 룬 (2008, 연출 김일란), 홍지유·한영희 감독이 공동 연출한 <레즈비언 정치도전기>는 2008년 총선 때 종로구에 출마했던 레즈비언 국회의원 후보 최현숙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영화 상영 후에는 감독 배우들과의 대화도 예정돼 있다.

"통제 간섭 우려되지만 관객층 개발할 수 있는 의미있는 공간"

 지난 6월 열린 인디플러스 개관 100일전에서 관객들을 기다리고 있는  영진위 관계자들

지난 6월 열린 인디플러스 개관 100일전에서 관객들을 기다리고 있는 영진위 관계자들 ⓒ 성하훈


인디플러스의 눈에 띄는 행보는 지난 6월 개관 100일 전이 시작이었다. 올해 개봉된 독립영화 대표작들을 선보이며, 시선을 끌더니 젊은 감독들의 특별전으로 확대됐다. '독립영화가 무겁다는 선입견을 유쾌하게 깨뜨려주겠다'는 의도가 관객들에게 전달되는 모습이다. 이제는 한발 더 나아가 성적 소수자들을 위한 기획전으로 확장되고 있다.

관객 수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3월 개관 당시 398명에 불과했던 전체 관객 수는 7월에는 2000명에 근접할 만큼 급증했다. 개관 후 첫 매진상영이 나온 것도 이례적이다. 지난해 불공정 공모 논란 속에 1년 간 운영됐던 독립영화관 '시네마루'와는 완전 딴판이다. '시네마루'는 감독들이 상영을 거부하며 1인 시위를 벌이면서 작품 수급도 원활치 않았는데, 적어도 인디플러스에서 이런 고민은 안 보인다.

독립영화진영의 협력도 활발해졌다. 인디플러스를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도 엿보인다. 개관 당시에는 눈을 날카롭게 부릅떴다면 이제는 조금 누그러진 시선으로 바라본다. 물론 '영진위 직영'이 갖고 있는 핸디캡을 지적하고 있지만 예전보다는 비판의 강도가 많이 수그러들었다.

서울독립영화제 김동현 사무국장은 "인디플러스가 운영은 나름대로 애쓰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강남권에 새로운 관객층을 개발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공간인 것 같다"고 말했다. "영진위에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관객과 감독, 배급사 등의 입장에선 단 하나의 전용관도 소중하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직영 하에서 정부정책에 반하는 작품이 검열될 수 있다는 것과, 위탁에 비해서 더 직접적 통제와 간섭이 이루어 질 수 있다는 건 직영의 약한 고리"라고 지적했다. 한계성을 극복하기 어렵다는 의미였다.

'독립영화인'과 '독립영화관' 간격 좁혀 놓은 프로그래머 

 상영시간표 작성에 고민하고 있는 인디플러스 허경 프로그래머. 눈병으로 인해 부득이하게 선그라스를 끼고 일하는 중이라고 했다.

상영시간표 작성에 고민하고 있는 인디플러스 허경 프로그래머. 눈병으로 인해 부득이하게 선그라스를 끼고 일하는 중이라고 했다. ⓒ 성하훈



이렇듯 독립영화진영과 영진위 직영 독립영화관 사이의 간극에도 독립영화인들이 이 인디플러스를 보는 시선을 완화한 데는 그만한 까닭이 있다. 프로그래머에 대한 신뢰 때문이다. 지난 5월부터 인디플러스 프로그램을 책임진 허경 프로그래머는 짧은 시간 안에 독립영화관을 안착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독립영화인들의 참여와 협력이 늘어난 것도 그의 노력 덕분이다. 허 프로그래머는 "프로그램으로 결합하길 원하는 단체들이 생긴 게 변화라면 변화"라며 "(독립영화진영으로부터)프로그램 기획이나 작품 수급에서도 도움을 많이 받고 있지만, 아직도 인디플러스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져야 할지 조심스레 물어보는 분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영진위 직영이 갖는 한계성에 대해 "현재까지는 운영에 전혀 간섭을 받고 있지 않고 있고, 절차에 따라 보고만 할 뿐"이라면서 독립성과 자율성이 보장되고 있음을 강조했다. 민간독립영화관 설립 추진 움직임과 관련해서는 "인디플러스에서 하던 프로그램이 그쪽으로 빠져나가면 어떻게 하나 불안감이 있지만 잘 됐으면 좋겠고 진심으로 응원한다"고 말했다.

9일 오후 허경 프로그래머를 만나 인디플러스에 대해 들어봤다. 눈병 때문에 고생하고 있다는 그는 짙은 선그라스를 끼고 업무에 열중하던 중이었다.

"영진위 간섭없고 자율 독립성 보장되고 있다"

- 기획전이 돋보인다. 감독들과 배우들의 GV도 자주 있는 것 같다. 관객들의 반응은 어떤가?
"감독·배우와의 대화 등 이벤트가 있을 때는 아무래도 평소보다 관객이 조금 더 오시는 편이다. 영화 관람 외에 다른 것도 함께 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 되는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극장 인지도가 아직 높지 않다 보니 객석이 가득 찰 정도는 아니다."

-그래도 월별 관객 수 집계를 보니 관객들이 늘어난 것 같다.
"대관행사가 있으면 차이를 보이기는 하지만 전보다는 많이 늘어난 것은 맞다."

- '연분홍치마 기획전'은 특별해 보이는 데, 준비하게 된 계기는?
"개봉 작품인 <종로의 기적>과 연계된 프로그램이다. <종로의 기적> 개봉 2~3주차 즈음 GV를 진행하면서 5천 관객을 돌파하면 이혁상 감독이 활동중인 '성적소수문화 환경을 위한 모임 연분홍치마'의 다른 작품들도 볼 수 있는 특별전을 진행하겠다고 장담했었는데 그게 실현된 셈이다."

- 처음 개관할 때의 우려와는 달리 독립영화 진영의 참여가 적극적이다. 프로그래머를 맡게 되면서 독립영화계 인사들을 많이 찾아다녔다고 들었다. 그때와 지금 반응은 어떤 것 같나?
"더 많이 다니면서 더 많은 분들을 만났어야 하는데 실은 그렇지 못했다. 아직도 독립영화 진영 안에서는 인디플러스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져야 할지 조심스레 물어보는 분들이 있다고 하더라. 처음에는 아직 한 번도 못 가 봤다며 미안해하는 분들도 있었는데 이제는 프로그램으로 결합하길 원하는 단체들이 생긴 게 변화라면 변화다.

어쨌든 열심히 하고 있구나 생각들 하시는 것 같다. 큰 틀의 방향 설정에서부터 아주 사소한 부분들에까지 이런저런 조언이나 의견들 많이 주시고, 프로그램 기획이나 작품 수급에서도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 영진위 직영이라 간섭을 걱정하는 시선이 많다. 영진위로부터 지침 같은 게 내려오거나 하지는 않나?
"아직까지 그런 일은 없다. 프로그래밍을 존중해 준다. 절차에 따라 보고는 하지만 지시가 내려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첫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 노력, 제대로 평가돼야"

 <종로의 기적> 감독 배우와의 대화를 진행하고 있는 인디플러스 허경 프로그래머(왼쪽)

<종로의 기적> 감독 배우와의 대화를 진행하고 있는 인디플러스 허경 프로그래머(왼쪽) ⓒ 인디플러스


- 독립영화 제작 편수에 비해 상영관은 한정돼 있는데, 프로그램 선정 기준은?
"모두 다섯 가지다. 주류 영화와 다른 시각적 경험을 줄 수 있고 형식과 내용이 새로운 영화와 노골적으로 상업적이지 않아 상업적 마케팅이 곤란한 영화, 사회적 이슈를 문화적으로 표현한 영화들을 우선적으로 고려한다. 외국어 영화 중 주류를 겨냥하지 않은 작품들과 영화 문화의 다양성 확대에 기여할 수 있다고 판단되는 영화들도 대상이다. 

시간표 짜는 일도 고민인데, 작품이 많다보니 교차 상영을 안 할 수가 없다. 모든 작품이 하루에 한 번은 상영되도록 짜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어느 작품에게도 만족스럽지 않아 작품들에게 죄짓는 기분이다."

- 독립영화 지원 프로그램도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다?
"홍보·마케팅을 지원하려고 한다. 2~3편 정도 지원하려고 하고 있고 올해 내에 개봉할 수 있도록 도울 예정이다. 독립영화 관객층 개발을 위해 교육 프로그램도 준비하고 있는데 '독립영화 입문강좌'가 콘셉트다. 독립영화를 매개로 하는 청소년 토론 수업 개발도 구상중이다."

- 독립영화계 인사들이 신뢰를 보내고 있던데 특별한 비결이라도 있는지.
"글쎄… 한국독립영화협회 사무국에서 2년쯤 일하고 부산국제영화제에서 5년을 있었는데, 그냥 조용히 실무자로서 눈에 띄지 않고 지내서 그런 것 같다. (웃음) 크게 드러나는 일을 하지 않았으니 욕먹을 일도 못 믿을 일도 만들지 않았던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신뢰는 이제부터 쌓아야 할 일이다."

- 독립영화관이 위탁체제로 가다 직영체제로 바뀌었다. 어떤 방식이 나은 것 같은가?
"위탁이냐 직영이냐, 더 낫다 나쁘다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위탁 체제로 정말 알차게 잘 운영되던 시기도 있고 전혀 그렇지 못한 시기도 있었다. 직영은 이제 겨우 시작된 지 5개월이 되었을 뿐이니 평가할 단계는 아닌 것 같고. 중요한 것은 얼마나 치밀하게 준비하여 시작하느냐 일 것이다.

일 시작하면서 (최초 독립영화관으로 위탁 운영됐던) '인디스페이스' 개관 전 1년여 간의 준비기간의 문서들을 구해서 봤는데, 굉장히 구체적인 상황들을 놓고 토론하고 안을 마련해 나간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 준비기간을 함께 한 멤버들이 대부분 극장에서도 함께 일했고. 그렇게 해서 개관했어도 자리 잡는 데에는 1년이 넘게 걸렸다. 인디스페이스 이후 시네마루나 지금의 인디플러스는 모두 그 긴 준비과정 덕을 보고 있는 것이다. 이 점은 나중에라도 분명히 평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민간독립영화관 설립 운동이 한창이다. 영진위 직영 독립영화관의 한계를 예상하기 때문이기도 한데 프로그래머로서 이를 어떻게 보고 있나?
"잘 되었으면 좋겠고 진심으로 응원하고 있다. 독립영화전용관이어서가 아니라 기본적으로 극장이라는 게 공공기관에서 직접 운영하기에는 여러모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독립영화가 상영되는 공간은 많을수록 좋다. 물론 프로그래머로서 인디플러스가 하던 프로그램이 민간독립영화전용관 설립 이후 그쪽으로 빠져나가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은 있지만. 그거야 뭐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독립영화 인디플러스 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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