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오나라는 1996년 서울예술단에 입단해 뮤지컬을 시작했다. <명성황후>, <페임>, <브로드웨이 42번가>, <올댓재즈> 등의 굵직한 작품에서 얼굴을 알리고 2001년 <사랑은 비를 타고>에서 주연 윤미리 역을 맡았다.

배우 오나라는 1996년 서울예술단에 입단해 뮤지컬을 시작했다. <명성황후>, <페임>, <브로드웨이 42번가>, <올댓재즈> 등의 굵직한 작품에서 얼굴을 알리고 2001년 <사랑은 비를 타고>에서 주연 윤미리 역을 맡았다. ⓒ 마스크엔터테인먼트


7년 전 인도에서 만난 운명의 남자를 첫사랑이라 믿고 찾아 나선 스물아홉의 '나라'(<김종욱 찾기>)와 3년째 사귀던 애인에게 이별을 통보받고 다니던 직장에서 좌천당한 스물아홉의 '나난'(<싱글즈>). 주로 서른을 앞둔 청춘을 연기해서인지 뮤지컬 배우 오나라는 경력 10년을 훌쩍 넘은 지금도 여전히 스물아홉 같았다. 서른이 오기 전에 20대를 하얗게 불태울 것처럼, 쉬지 않고 에너지를 발산하는 그런 사람.

막연히 무대에서 춤을 추고 싶어 전공으로 발레를 선택한 오나라는 대학교 때 TV에서 뮤지컬을 처음 접하고 "세상에 저런 것이 있나" 싶었단다. 21살의 당찬 대학생은 무작정 뮤지컬배우 남경읍(남경주의 친형)을 찾아가 말했다.

"뮤지컬이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나요?"

이 연으로 오나라는 최정원과 남경주가 초연하고 있는 <사랑은 비를 타고> 공연장에서 청소, 티켓 판매 등 잔심부름과 배우들의 기쁨조를 도맡아 하게 됐다. 5년 후, 어깨너머로 바라본 이 무대에서 주인공 윤미리 역을 하게 되기까지 오나라는 <명성황후>, <페임>, <브로드웨이 42번가> 등의 무대에서 경력을 쌓았다.

1996년 서울예술단에 입단, 뮤지컬계의 신성으로 시작해 일본 사계 극단의 배우로 활약하고, 한국에 돌아와 로맨틱 코미디의 여신으로, 최근에는 SBS 아침드라마 <미쓰 아줌마>에서 천연덕스러운 아줌마로 변신을 거듭하고 있는 배우 오나라를 지난 23일 논현동 소속사 사무실에서 만났다.

12명의 김종욱을 사랑한 로맨틱 코미디의 여신

 발레를 전공해 한국에서는 주로 댄서였던 오나라는 일본 사계 극단에서 싱어로 활동했다. 사계 배우들이 주로 가성이나 두성으로 목소리를 변화시켰기 때문에 오나라의 허스키하고 성량이 큰 진성은 독특한 목소리로 주목받았다.

발레를 전공해 한국에서는 주로 댄서였던 오나라는 일본 사계 극단에서 싱어로 활동했다. 사계 배우들이 주로 가성이나 두성으로 목소리를 변화시켰기 때문에 오나라의 허스키하고 성량이 큰 진성은 독특한 목소리로 주목받았다. ⓒ 마스크엔터테인먼트


- 한창 뮤지컬계에서 신인으로 이름을 알리던 2001년에 일본 극단에서의 활동을 택한 계기가 궁금해요.
"일본 최고의 극단 '사계'는 전 세계 디즈니 뮤지컬의 70%를 소화하는 곳으로 기업이나 마찬가지예요. 마침 한국 배우들을 뽑는다는 소식을 듣고 오디션을 봤는데 <콘택트>라는 작품 1막의 주인공으로 합격했어요. 그것만으로도 이슈가 됐죠.

일본어를 전혀 못했지만 춤으로만 되어 있는 작품이라 큰 문제는 없었어요. 3개월간의 혹독한 트레이닝 끝에 무대에 서는 날을 일주일 남겨두고 단기 비자를 연장하기 위해 한국으로 들어왔어요.

그런데 일본 사무실에서 비자 연장 서류를 보내주지 않아 결국 무대에 오르지 못했어요. 모든 것을 정리하고 일본행을 택했던지라 친구 집을 전전하면서 근근이 버텼죠. 화가 나고 억울해 8개월 만에 일본에 찾아갔더니 오히려 '네가 도망간 줄 알았다'고 하더군요.

알고 보니, 사무실 직원이 '한국 배우가 오는 게 싫어서' 일부러 서류를 안 보낸 모양이더라고요."

- 좋은 기회였을 텐데 너무 아쉬웠겠어요. 다시 일본에 가서 어떤 작품을 했나요?
"다행히 사계에서 저를 좋게 봤던지라 <맘마미아>라는 작품에 설 수 있었어요. 주인공으로 캐스팅됐지만 일본어가 완벽하지 않아서 앙상블로 2년 하다가 돌아왔어요. 실패하고 돌아왔다는 말도 간혹 하는데 저는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해요. 사계의 선진 시스템도 배웠고. 일본어도 5년 동안 배울 것을 2년 안에 다 배웠죠. 그런데 너무 급하게 배워서 회화는 되는데 못 읽고 못 써요.(웃음) 참 치열하게 살았죠. 일본 배우들에게 안 지려고 바득바득 이를 갈았어요. 내 스스로 한국 대표라고 생각했으니까 내가 못하면 한국 배우들 다 저런다고 할까 봐."

- 다행히 한국에 와서 좋은 작품을 많이 만났어요. 그 중 큰 인기를 얻은 <김종욱 찾기>가 오나라씨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수많은 김종욱과 함께 했는데 모두 매력이 다를 것 같아요.
"<김종욱 찾기>로 많이 알아봐주시죠. 같이 무대에 선 '김종욱'들만 12명인데 오만석, 엄기준, 신성록, 원기준씨 등 공교롭게 모두 방송에서 잘 됐어요. 오만석씨가 옆집 오빠 같이 푸근하고 따뜻한 김종욱이었다면, 엄기준씨는 로맨틱하고 설레게 하는, 신성록씨는 깜찍하고 귀여운 김종욱이었어요.

다 매력이 있었기 때문에 할 때마다 사랑에 빠졌던 것 같아요. 그 작품으로 한국뮤지컬대상 여우주연상을 받았을 때 스포츠신문에 크게 났는데, 축하공연 때 엄기준씨와의 키스 장면을 절묘하게 캡처해놓는 바람에 엄마가 마음껏 자랑도 못하고.(웃음)"

- 팬클럽 이름이 '장금이 나라사랑 이야기'네요. 혹시 <대장금>의 주제곡 '오나라' 때문인가요?
"맞아요. 제 이름과 같은 그 주제곡에서 따온 거예요. 제 팬클럽은 무시무시한 곳이에요. 팬클럽 회원 수가 많지 않은데 아무나 회원으로 받아들이지 않아서 그래요. '이 사람이 진짜 오나라의 팬인가' 운영진들이 일주일간 선별하죠.

제발 회원 수 좀 늘리자고 해도 안 된대요. 골수팬 중에는 제 공연을 300번씩 본 사람도 있어요. 특히 여성 팬이 많아요. 달콤한 작품의 여주인공들은 새침하고 연약한 캐릭터가 대부분이었는데 저부터 당돌한 로맨틱 코미디 캐릭터가 구축됐다는 기사를 봤어요. 저의 편안하고 털털한 모습, 남자 배우들과 거침없이 러브신을 하는 모습에 대리만족 같은 걸 느끼는 것 같아요."

달콤한 여주인공에서 아줌마, 개똥벌레까지 OK

 오나라의 팬클럽 사이트 '장금이 나라사랑 이야기'는 골수팬만 가입 허가를 내어줄 정도로 엄격한 기준을 갖고 있다.

오나라의 팬클럽 사이트 '장금이 나라사랑 이야기'는 골수팬만 가입 허가를 내어줄 정도로 엄격한 기준을 갖고 있다. ⓒ 마스크엔터테인먼트


- 뮤지컬에서는 '로맨틱 코미디의 여왕'이라고 불릴 만큼 좋은 배역을 도맡아 했는데 왜 굳이 방송 드라마를 하게 된 건가요?
"앞을 내다 본 거죠. 방송 쪽을 선택할 즈음 연예인들이 뮤지컬을 하기 시작했어요. 내 위치만 잘 지키면 되니까 위기감을 느끼지 않았는데, 정말 하고 싶었던 작품 <금발이 너무해>는 오디션 최종까지 올라가 결국 하지 못했어요. 나중에 보니 연예인들이 캐스팅 됐더라고요. 하고자 했던 작품을 못한 건 처음이었어요.

자연스럽게 내 위치를 돌아보게 됐죠. 연기생활을 오래하고 싶었으니까 살아남기 위해서는 영역을 넓혀야겠다고 생각했고요. 뮤지컬 쪽에서는 나이보다 어린 역할을 많이 해서 방송에서도 그 이미지에 맞는 배역이 주어질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드라마 <엄마도 예쁘다>에서 아줌마, <미쓰 아줌마>에서도 아줌마. 그런데 드라마에서 배역 하나를 맡는 것 자체가 큰 기회니까 '아줌마고 뭐고 무조건 감사하게 여기자'고 한 거죠."

- TV의 힘이 대단하잖아요. 뮤지컬 할 때보다 많이들 알아보시죠?
"<미쓰 아줌마>의 김현숙은 친구를 위해 물불을 안 가리는 역할이니까 '잘 한다', '속이 시원하다' 칭찬 많이 받았죠. 다만 로맨틱 코미디 할 때는 대학로에서 '언니, 예뻐요!'라는 말을 들었다면 지금은 아주머니들이 아는 척을 많이 해주세요. '남편한테 잘해~'하고.

근데 TV는 드라마가 끝나면 금방 잊히는 것 같아요. <엄마도 예쁘다> 종영한 뒤에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는데 어떤 아줌마가 다가오길래 알아보시는 줄 알고 수줍게 인사했더니 그러시더라고요. '누구 집 딸이더라?'(웃음)"

- 뮤지컬을 오래 해서 드라마 연기가 힘들지 않나요?
"<김종욱 찾기>, <싱글즈>, <점점> 모두 소극장 뮤지컬이었는데 바로 앞에 있는 사람들에게 자연스러운 연기를 보여줘야 하니까 지금까지의 발성을 버리고 자연스러운 내 말투로 연기를 하게 됐죠. 뮤지컬, 드라마, 영화의 연기는 다르지 않아요. 관객이냐 카메라냐의 차이죠. 제 꿈이 일 년에 드라마 2편, 영화 1편, 뮤지컬 1편 하는 거예요. 지금 <댄싱퀸>이라는 영화를 촬영하고 있는데 댄스그룹의 멤버 역할이에요.

뮤지컬 할 때는 주요 배역으로 연기하고 싶어서 춤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제 당당하게 춰보려고요. 오랜만에 춤을 추려니까 엄청 고생하고 있어요. 제가 뮤지컬에서 활약한 걸 감독님이 아시니까 대본에는 '180도로 다리를 벌리는 라리', '세 바퀴 턴을 한꺼번에 도는 라리'라고 쓰여 있어서 밤에 잠이 안 와요. 극중 제 이름이 라리거든요."

- 독특한 이력이 눈에 띄는데 어린이 프로그램 의 MC '샤랑'은 어떻게 하게 되신 거예요?
"<파니파니> MC를 5년 가까이 했어요. 뮤지컬 배우로 한창 전성기를 누리던 때라 '어린이 프로그램하면 성인물 못 한다'고 뜯어말리는 사람들도 있었죠. 근데 나중에는 오히려 부러워들 했어요. 방송 메커니즘을 배웠고, 카메라에 대한 두려움도 없앴고, 아이들 팬도 생겼고요. 정말 다양한 역할을 해봤는데, 솔직히 어떤 여배우가 '매미'를 해보고 '개똥벌레'를 해보겠어요. 할머니가 돼서 더 이상 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할 때까지 하고 싶었는데 미니시리즈 <역전의 여왕>에 출연하게 되면서 일주일 중 3일이 필요한 <파니파니>를 포기하게 됐어요."

"아저씨지만 '아가'인 내 동생, 눈 마주치면 감격스러워"

 오나라는 2008년 MBC드라마 <달콤한 나의 도시>를 시작으로 방송으로 영역을 넓혀 2010년 KBS 아침드라마 <엄마도 예쁘다>, MBC 미니시리즈 <역전의 여왕>에 출연했으며, 최근 SBS 아침드라마 <미쓰 아줌마>를 촬영 중이다.

오나라는 2008년 MBC드라마 <달콤한 나의 도시>를 시작으로 방송으로 영역을 넓혀 2010년 KBS 아침드라마 <엄마도 예쁘다>, MBC 미니시리즈 <역전의 여왕>에 출연했으며, 최근 SBS 아침드라마 <미쓰 아줌마>를 촬영 중이다. ⓒ 마스크엔터테인먼트

-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단 몇 개월 빼고 일을 쉰 적이 없는데 힘든 적은 없었나요?
"저는 힘든 적이 없어요. 지나고 나면 다 해결되는 일이니까요. 부모님이 저를 밝게 키워주셔서 긍정적일 수 있는 것 같아요. 저한테는 선천성 대사지능장애를 앓고 있어서 지능이 2살 정도 되는 2살 터울의 동생이 있는데 어렸을 때부터 봐왔으니까 그게 이상하거나 마음 아프지 않아요.

오히려 부모님이 '바보 동생' 둔 '바보 누나'라는 말 안 듣게 하려고 해보고 싶은 거 다 하면서 밝게 자라게끔 너무나 많은 사랑을 주셨어요. 다만 부모님이 동생을 돌보느라 큰 맘 먹고 공연 보러 오시는 게 마음이 아프죠."

- 동생에게 누나가 춤추고 노래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을 것 같아요.
"에이~ 그런 것보다 눈을 맞추고 서로의 진심을 통해봤으면 좋겠어요. 자폐증까지 있는 동생은 자기만의 세계에 살아요. 가끔씩 눈을 맞출 때가 있는데 되게 감격스러워요.

나를 누나로 알아보는 건지 모르겠지만. 제가 부르는 '살짝이 옵서예'라는 노래를 좋아해요. 특히 '바람이 불거나~' 부분만 부르면 배시시 웃어요. 그게 나름의 감정표현인 것 같아요."

그때 오나라의 휴대폰이 울렸다. "오나라~"라고 마치 그의 이름을 부르는 듯 한 벨소리.
<대장금> '오나라' 말고 또 주제곡이 있는 걸까? 오나라는 "일본에서 유행하고 있는 '방귀는 부끄러운 게 아니야'라는 캠페인송인데 지인이 벨소리를 보내줬어요. 제 이름이 일본어로 '방귀'라는 뜻이거든요."라며 깔깔 웃는다.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 싶어 로맨틱 코미디만 고집하게 됐다는 그의 신조를 확인시켜주는 유쾌한 웃음, 오나라를 영원히 스물아홉에 머무르게 하는 동안비결임이 틀림없다.

오나라 김종욱 찾기 미쓰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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