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2시 만세' 강제하차에 항의하며 여의도 MBC본사앞에서 1인 시위를 벌여왔던 가수 김흥국씨가 17일 낮 1인 시위를 마무리하며 삭발을 한 뒤 자신의 심정을 밝히고 있다.

라디오 '2시 만세' 강제하차에 항의하며 여의도 MBC본사앞에서 1인 시위를 벌여왔던 가수 김흥국씨가 17일 낮 1인 시위를 마무리하며 삭발을 한 뒤 자신의 심정을 밝히고 있다. ⓒ 권우성

"방송인은 소모품이 아닙니다. 맘대로 갖다 쓰고 맘대로 버리는 거 아닙니다."

 

1인 시위 5일째를 맞은 17일 오전 11시 30분. 강한 햇빛에 김흥국은 지친 모습이 역력했다. 트레이드 마크였던 너털웃음은 사라지고, 그에게 인사를 건네는 이들에게 희미한 미소만 간간이 짓고 있었다.

 

이날은 김흥국이 삭발을 하겠다고 예고한 날이기도 했다. 많은 취재진들이 몰려들었고, 전국가수노동조합에서도 조합원 30여 명 가량이 김흥국의 뒤를 지켰다.

 

삭발을 하기로 한 낮 12시 전 김흥국은 취재진들과의 질의응답을 통해 자신을 '퇴출'시킨 MBC 측에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누가 잘릴지, 누구에게 화살이 갈지 전혀 모르는 상황"이라며 "내가 희생할 테니 (동료 연예인들은) 두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김흥국은 작심한 듯 말을 이어갔다.

 

"이우용 라디오 본부장의 임기는 1년이면 끝난다. 그런데 청취자를 얼마나 우습게 보는 건지… 천벌을 받을 것이다."

 

말을 마친 김흥국은 "더 이상 희생당하는 예술인이 나와선 안 된다"는 내용이 담긴 성명서를 낭독했고, 낮 12시가 되자 예정대로 삭발식을 진행했다. 백령도 몽은사 주지 해철 스님, 대구 남지장사 주지 각운 스님 등 5명이 참석해 이를 도왔다.

 

불교식 '삭발'한 김흥국 MBC 라디오 '2시 만세' 강제하차에 항의하며 여의도 MBC본사앞에서 1인 시위를 벌여왔던 가수 김흥국씨가 17일 낮 1인 시위를 마무리하며 삭발을 했다. 시위 현장에서 벌어지는 '삭발'이 바리캉을 이용해서 머리카락을 짧게 남겨두던 '반삭(반삭발)'인 것과는 달리, 독실한 불교신자인 김흥국씨는 승려들의 도움을 받아 불교식으로 '삭발'의식을 진행했다. 바리캉으로 머리카락을 모두 잘라낸 뒤 면도기로 남아 있는 것까지 완전히 밀어내 버린 것이다. 김흥국씨는 '삭발' 의식을 모두 마친 뒤 합장을 하며 마음을 정리하는 모습을 보였다.

▲ 불교식 '삭발'한 김흥국 ⓒ 권우성

삭발식이 진행되는 10여 분간, 도로를 오가는 차 소리와 김흥국의 머리카락을 미는 이발기 소리, 그리고 카메라 플래시 소리만이 들릴 뿐 모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김흥국의 뒤에서 손팻말을 들고 서 있던 대한가수노동조합 조합원들은 참담한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삭발식이 끝난 뒤 해철 스님은 "김흥국의 삭발은 부당함에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싸워) 쟁취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며 "대한민국에 정의가 살아있음을 증명하기 위한 재도약의 의미이자 김흥국을 격려하고자 하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김흥국은 삭발 후 "홀가분하다"며 "당분간 절에서 참선하며 지낼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앞으로 노래도 열심히 할 것이고, 기회가 된다면 방송도 열심히 하겠다"며 "좋은 방송인의 모습으로 찾아뵙겠다"고 깊이 고개를 숙였다. 자신의 가족에게는 "집사람에게 부끄러운 남편이 됐다"며 "아들에게도 좋은 아빠의 모습을 보이고 싶다"고 미안함을 전했다.

 

한편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는 이날 삭발식에 참석해 김흥국을 위로하기도 했다. 정 전 대표는 15분간 이 자리에 머무르며 김흥국을 지지하는 발언을 한 후 "어떻게든 방법을 생각해 보겠다"고 밝혔다. 또 강석호 대한가수노동조합 부위원장은 이날 시위 전 "오후 2시쯤 성명서를 발표할 것"이라며 "본인이 너무 힘들어 해 우리도 조심스럽다"라고 침통한 심경을 드러내기도 했다.

 

 MBC 라디오 '2시 만세' 강제하차에 항의하며 여의도 MBC본사앞에서 1인 시위를 벌여왔던 가수 김흥국씨가 17일 낮 1인 시위를 마무리하며 삭발을 하고 있다.

MBC 라디오 '2시 만세' 강제하차에 항의하며 여의도 MBC본사앞에서 1인 시위를 벌여왔던 가수 김흥국씨가 17일 낮 1인 시위를 마무리하며 삭발을 하고 있다. ⓒ 권우성

 

 김흥국 성명서 전문 

1인 시위를 끝내면서...

 

MBC를 사랑하는 청취자 여러분! 그리고 국민 여러분! 감사합니다.

 

저는 지난 6월 4일 MBC 문화방송 측의 일방적 퇴출 통보 후 고통의 시간을 보내며 숙고한 결과 일방적으로 희생당하는 연예인 진행자 퇴출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6월 13일부터 오늘까지 5일간 국민 여러분들과 MBC를 사랑하는 팬 여러분들께 사죄하는 마음으로 1인 시위를 하고 오늘 삭발식으로 정리를 하고자 합니다.

 

그동안 제가 1인 시위를 한 이유는 MBC 프로그램 복직이라는 개인적인 욕심이 아닌 이 땅에 다시는 정치적 논리로 희생당하는 대중예술인이 나와서는 안 되기 때문에 1인 시위를 한 것입니다.

 

MBC는 지금까지 저에게 '호랑나비'를 히트시켜주고 무명시절인 1989년 MBC라디오가 '호랑나비'로 절 키워주고 10대가수를 만들어준 친정같이 고마운 곳입니다. 그리고 프로그램 진행자로서 MBC 팬 여러분의 사랑을 받기 위해 각별하게 많은 노력을 해왔습니다.

 

2002년 한일월드컵 때 정몽준 전 축구협회장을 돕기 위해 라디오를 잠시 떠난 것을 늘 마음 아프게 생각했었습니다. 그 후 10여년 만에 친정집으로 다시 돌아와 <2시 만세>를 진행하면서 정말 가족이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방송을 진행해 왔습니다. 이제 친정집을 떠나는 마음이 너무나 아픕니다.

 

그리고 그동안 저를 아끼고 사랑하는 청취자여러분께 사죄하는 마음으로 오늘 삭발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진행한 프로그램은 시사프로그램 진행자도 아니고 예능프로그램 진행자로서 이런 일이 발생한 것에 대해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방송에서 하차하다 보니까 그동안 잠도 못이루고 하루하루가 너무 괴로웠습니다.

 

이제 방송을 어떻게 해야할 지도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우리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한사람의 가수로서 떳떳하게 살아 왔다고 자부합니다. 그런데 이번 사태로 인해 제 아내와 자식들이 받은 충격은 상상 이상입니다. 아내에게 혼도 많이 나고 한 가정을 이끌어 나가는 가장으로서 아버지로서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가정이 파탄지경에 와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동안 저는 순수하게 방송을 해왔습니다. 어떠한 정치적 목적을 위해 어느 특정 정당을 위해 일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방송에서도 정치적 견해를 표명하는 등 방송을 이용한 사실 또한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정몽준 회장님과 저의 친분관계는 이미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친형제 이상으로 친하게 지내는 가까운 사이임은 대한민국 천하가 다 알고 있습니다.

 

지금에 와서 MBC 측의 일방적 퇴출 통보 후 발표를 통해 '제 일신상의 이유로 하차했다'라는 말을 듣고 전 너무나 놀랐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저에게는 생계가 달려있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왜 그만 두겠습니까. 진정으로 억울합니다. 전 하루 빨리 방송을 하고 싶습니다.

 

저를 비롯한 모든 연예인들은 대중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 연예인이라는 이유로 시민으로서 자신의 양심과 신념에 따라 행동할 권리를 제약받은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연예인들이 생존권과 개인적 인권이 불합리적으로 침해 받지 않고 국민들에게 기쁨을 주고 대중예술인의 삶을 천직으로 살아가고 싶은 것이 저희들이 원하는 것입니다.

 

저 또한,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축구를 사랑하는 축구인으로서 살아왔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이번 계기를 통해 올바른 사회를 향해 행동하는 공인의 자세로 열심히 살아가고 싶습니다.

 

MBC라디오를 정말 사랑합니다. PD, 작가, MC 동료 선후배들과 빨리 만나고 싶습니다.

 

다시 한 번 저를 키워주고 방송인으로 만들어준 MBC를 사랑합니다. 그리고 청취자 여러분께 죄송합니다.

 

끝으로 제가 정말로 존경하고 친 형님같은 정몽준 회장님께서 큰일을 하시는데 저 때문에 누가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동안 짧은 시간동안 고마운 분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제게 많은 충고를 해주신 분도 계시고, 따뜻한 용기를 주신 분들도 많이 계셨습니다. 많은 관심과 사랑을 주신 국민 여러분, 팬 여러분, 동료 연예인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저를 아껴주시고 사랑해주신 팬 여러분들께 정말 좋은 모습으로 찾아뵙겠습니다.  여러분 사랑합니다.

 

2011년 6월 17일

김 흥 국

2011.06.17 13:47 ⓒ 2011 OhmyNews
김흥국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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