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기자의 사진 요청에 김흥국은 "웃고 찍을 수는 없겠죠?"라고 물었다. 인터뷰 도중 그에게 근황을 묻는 전화가 오기도 했다.

취재기자의 사진 요청에 김흥국은 "웃고 찍을 수는 없겠죠?"라고 물었다. 인터뷰 도중 그에게 근황을 묻는 전화가 오기도 했다. ⓒ 이선필


"이우용 본부장(MBC 라디오 본부장)이 나랑 친한 것도 아니고 갑자기 나를 언급해서 일이 이렇게 된 겁니다. 그는 살생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에요. 지금 MBC 디제이들이 다 떨고 있어요. 본부장이 오래된 디제이도 갈겠다고 하고 3년 이상 게스트 한 사람도 정리한다는 말도 돌고 있어요."

가수 김흥국이 속내를 털어놓았다. 최근 MBC라디오 프로인 <두시만세>의 하차에 대해서다. 8일 오후 자택 부근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일련의 상황들로 매우 피로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는 "(방송은) 이번 주 일요일까진데 퇴출 소식을 듣고 방송할 맛이 나겠느냐?"며 안타까움을 전했다. 김흥국은 "지난 3일 책임피디로부터 하차에 대한 통보를 받았다"고 했다.

"생방송인데 제가 무슨 소리 할지 제작진들도 조마조마할 겁니다. MBC 라디오에서 89년도에 제 노래 '호랑나비'를 띄워 줬습니다. 음악피디들 덕분이었죠. 친정집에 온 기분으로 1년 넘게 방송 청취율 높이려고 했는데 갑자기 퇴출 얘기가 나오니까..."

MBC는 지난 3일 보도자료를 통해 "<두시만세>의 공동 진행자 김흥국씨가 일신상의 문제로 프로그램을 하차하게 됐다"면서 "김씨는 오는 12일까지 <두시만세>를 진행할 예정이며, 가능한 한 빠른 시간 안에 후임자를 확정한다는 방침이다"라고 밝혔다. 여러 언론에서도 이 내용을 언급하며 해당 사건을 김씨의 자진하차 쪽으로 다뤘다.

"지난주 금요일에 김애나 부장(<두시만세> 책임피디)이 와서 '일이 너무 커져서 그냥 갈 수 없다'는 말을 들었어요. 이후 라디오 본부장과 둘이 만났는데 '어떻게 막아보려고 했는데 일이 커졌고 제가 선거 운동했다는 것에 대한 자료도 많다'고 했어요."

책임피디와 본부장의 발언은 사실상 하차 압박인 셈이다. 그는 "담당피디(김용관 국장)가 회사 내의 일인데 가을 개편까지 가자는 의견을 제시했지만 (상부에선) 전혀 듣질 않는다"고 했다. 이어 "교통방송에서 프로그램 잘 진행하던 날 데리고 와서 이게 뭐하는 건가?"라면서 "노사연과 지상렬도 불만이 많을 거고 친했던 그들을 난 편하게 보지를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전 진행자였던 두 사람 역시 급작스럽게 하차를 했기 때문이다.

정당한 인사인가 무분별한 퇴출인가..."왜 이제야?"

 김흥국의 방송 활동 모습.

김흥국의 방송 활동 모습. ⓒ MBC


MBC 본사 강령에는 선거방송의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해 선거일 90일 전부터 출연자를 엄격히 통제하는 선거방송 준칙 조항이 명시되어 있다. 김씨는 지난 해 6·2 지방선거와 올해 4·27 재보선과 관련해 특정 정당 지지활동을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퇴출 여부를 결정할 만한 판단 기준은 있는 것이다.

MBC 노조는 김흥국이 "2010년 6월엔 정몽준 의원의 지역구인 동작구청장 선거에 출마한 한나라당 이재정 후보의 지지유세를 벌였고 올해 4월 17일엔 정몽준 의원과 함께 재보궐 선거 격전지였던 분당을 선거구 내 모 중학교에서 경기 중이던 조기축구회 회원들을 찾았다"며 성명과 노보를 통해 주장해왔다.

이에 대해 이우용 라디오 본부장은 최근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작년 6월 김흥국의 지지유세는 그가 <두시만세> MC를 맡기 전 일"이라고 답했다. 이 발언이 사실과 다르다는 비판(김흥국은 2010년 4월 26일부터 방송진행자로 활동)을 받았고 다시 이 본부장은 4·27 재보선 관련 활동에 대해서 '사실인지 확인되면 즉시 교체하겠지만 패널티를 주기엔 근거가 모호하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김흥국의 하차는 과연 그의 특정 정당 홍보·지지 활동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을까? 선거관련 활동 여부에 대해 김흥국은 "인정한다"면서 "본부장은 내게 '4월 재보선 관련 사진들도 올라왔다'고 했는데 문제가 될 수 있다면 개편 때 나를 쓰지 말았어야 하는 거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지난 5월 9일에 있었던 봄 개편  당시 김흥국은 논의 대상 자체가 아니었다.

 힘 없어 보이는 표정의 김흥국. 전날까지 과음을 했다고 한 그는 "최근 계속 술을 마시게 된다"고 말했다.

힘 없어 보이는 표정의 김흥국. 전날까지 과음을 했다고 한 그는 "최근 계속 술을 마시게 된다"고 말했다. ⓒ 이선필


"1년 넘게 나를 진행자로 썼는데 '한 6개월 써보니 말이 많더라', '1년 써보니 문제가 있더라' 그런 말들이 나왔다면 그때 하차를 시켰어야지 왜 지금에서야 이럽니까? 본부장이 지금 보니까 밀실에서 개편 구상을 혼자 다 하고 있던데 대놓고 말했습니다. '방송은 혼자 만드는 거냐'고 말입니다. 때마다 이러니 연예인들이 불안해서 오겠습니까?

김미화씨나 그 평론가 분과 달리 전 예능 오락프로 진행잡니다. 청취자들이 저보고 능력 없다고 했다면 수긍하고 나갔을 겁니다. 이번에 나를 하차시키는 것으로 큰 싸움 만드는 거 아닌가요? 청와대나 한나라당에서 논평이라도 내주길 바라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고 있어요. 내가 타깃이라면 다 받아주겠는데 이건 그게 아닌 것 같습니다."

김흥국은 한층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우용씨가 밀실에서 혼자 작성해서 가지고 있는 명단이 있다"고 주장하며 "그래서 (노조원들이) 투쟁하는 거 아닌가"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연예인이 무슨 소모품인가?"라며 긴탄식을 내뱉은 김흥국은 "8년 동안 기러기 아빠로 살고 있는데 무엇보다도 가족들에게 그리고 청취자들에게도 죄송할 따름이다"라고 말했다.

잇따른 연예인 하차, MBC 내부에선 어떻게 보고 있나?
복수의 MBC 노조 관계자는 "(김흥국씨) 본인이 한 말이 맞다고 보면 된다"고 답했다. 한 노조원은 "김흥국씨의 하차는 경영진 혹은 본부장 차원에서 일어난 일이며 공식적으론 자진 사퇴라고 했지만 거기에 대한 특별한 사유가 없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연예인이라면 방송사에서 무엇을 하자고 할 때 거부하기가 힘들다"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김흥국의 하차에 관해 "선거 운동 부분은 처음 평 노조원이 사내 게시판을 통해 글을 올린 게 발단이 되었다"고 알렸다. 그는 "그것은 이우용 본부장의 정치적 편향성을 문제 삼고 견제하기 위한 것이었다"면서 "피디들을 비롯한 노조원들은 김흥국씨는 예능 오락 분야기에 프로그램에서 (해당 사건이) 퇴출까지 당할 만한 사유는 아니라고 보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노조 관계자는 "김흥국 본인의 부적절한 행동도 문제였겠지만 김미화, 김종배 퇴출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희생당한 경우로 보는 게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공론화 된 사례 말고 다른 사례들도 있다"고 운을 뗀 그는 오상진 아나운서나 옹달샘(유세윤, 장동민, 유상무)을 언급했다. 지난 5월 개편이라는 정상 절차를 거쳐 하차했지만 당시 담당 PD와 제작진들은 이에 동의하지 않은 상황이었다고 한다.

이 노조 관계자는 "김흥국씨는 기러기 아빠고 맡은 프로그램도 그게 유일했는데..."라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우용 본부장은 앞으로 대대적인 물갈이가 있을 것이라고 공언하고 다닌다"라고 말했다. 김흥국과 같은 피해자가 계속 나올 것을 암시한 것이다. '블랙리스트가 존재하는가'라고 물으니 그는 "본부장 혼자만 알고 있든 문서화가 됐든 알 수는 없지만 앞으로 어떤 조치들은 분명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김흥국 블랙리스트 김미화 김종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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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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