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가 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유종의 미를 거뒀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이끄는 맨유는 23일(이하 한국시각) 영국 맨체스터의 올드 트래포드에서 열린 2010-2011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 최종전에서 1골 1도움을 기록한 박지성의 맹활약에 힘입어 블랙풀FC(이하 블랙풀)을 4-2로 제압했다.

맨유는 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우승을 자축하는 승리를 따냈고, 39년 만에 프리미어리그로 승격했던 블랙풀은 단 한 시즌 만에 다시 2부리그로 강등되고 말았다.

여유만만 맨유와 벼랑 끝에 선 블랙풀

 베르바토프는 이번 시즌 한 경기를 앞두고 테베스에게 추격을 허용했다.

베르바토프는 이번 시즌 한 경기를 앞두고 테베스에게 추격을 허용했다. ⓒ SBS ESPN 화면 캡쳐


프리미어리그는 생중계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 각 구장마다 다른 시간에 경기가 열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시즌 마지막 경기 만큼은 무려 10경기가 같은 시간에 시작된다. 혹시나 있을지 모를 승부조작 의혹을 사전에 차단하고 마지막 경기의 흥미를 극대화하기 위한 조치다.

하지만 이번 시즌 맨유에 이런 일정은 전혀 상관이 없다. 맨유는 이미 지난 14일 블랙번로버스 FC와의 원정경기(1-1 무승부)를 통해 통산 19번째 우승을 확정지었기 때문이다.

맨유로서는 블랙풀과의 최종전에서 웨인 루니에게 골키퍼를 시키고 에드윈 판데르사르 골키퍼를 원톱으로 기용해 0-10으로 패한다 해도 경기가 끝난 후 예정대로 우승 뒤풀이를 할 수 있다.

하지만 블랙풀은 사정이 다르다. 강등권인 리그 18위에 올라 있는 블랙풀은 최종전 결과에 따라 2부리그 강등과 프리미어리그 잔류가 결정된다.

맨유는 오는 29일 FC바르셀로나와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사력을 다해 덤비는 상대에게는 진지하게 싸워 주는 것이 강자로서 지켜야 할 예의다.

블랙풀과의 최종전이 중요한 또 한 명의 선수는 바로 '백작' 디미타르 베르바토프다. 베르바토프는 시즌 후반 주전 경쟁에서 밀려 났음에도 꾸준한 '양민학살(약팀을 상대로 대량득점)'로 21골을 기록해 득점왕이 유력했다.

하지만 부상에서 복귀한 맨체스터시티의 카를로스 테베스가 18일 스토크시티전에서 2골을 폭발시키며 득점 부문 공동 1위로 뛰어 올랐다. 결국 최종전의 결과에 따라 2010-2011 시즌 EPL 득점왕이 결정된다.

전반 20분에 터진 박지성의 시즌 8호골

실제로 블랙풀전 명단은 진정한 맨유의 주전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투톱 루니와 하비에르 '치차리토' 에르난데스를 비롯해 안토니오 발렌시아, 마이클 캐릭, 라이언 긱스, 리오 퍼디나드 등이 선발 명단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판데르사르 골키퍼가 주장 완장을 차고 리그 은퇴 경기에 출전한 것을 비롯해 파트리스 에브라, 네마냐 비디치, 박지성 등 '빅경기용' 선수들이 대거 선발 출장했다.

체력이 떨어진 선수들에게는 휴식을 주고 경기 출장이 뜸했던 선수들의 경기 감각 회복에도 신경을 쓰겠다는 퍼거슨 감독의 전략이었다. 원톱은 당연히(!) 베르바토프였고, 다행히(?) 베베나 오베르탕이 선발 명단에 포함되는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다.

사활을 걸고 경기에 나선 블랙풀은 경기 시작 20초 만에 케이스 사던이 결정적인 득점 기회를 맞으며 승리에 대한 열망을 숨기지 않았다. 반면에 승리에 대한 동기부여가 부족한 맨유는 상대에 간단히 돌파를 허용했다.

하지만 경기가 열리는 장소는 이번 시즌 단 한 번의 패배도 허락하지 않았던 올드 트래포드. 맨유는 전반 3분 수비수 하파엘 다 실바가 유효슈팅을 날리며 응수했다.

 박지성은 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1골 1도움으로 맹활약했다.

박지성은 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1골 1도움으로 맹활약했다.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하파엘의 슛을 기점으로 맨유는 경기를 완벽히 주도해 나갔고, 전반 20분 드디어 선제골이 나왔다. 주인공은 한국 축구의 자랑 박지성이었다.

박지성은 전반 20분 베르바토프의 패스를 이어 받아 이안 에바트를 제치고 골키퍼 매튜 길크스의 키를 살짝 넘기는 재치있는 슛으로 리그 5호골이자 시즌 8호골을 성공시켰다.

리그 경기로 따지면 작년 12월 14일 아스널전 이후 5개월 만에 맛본 골맛이다. 시즌 13번째 공격포인트(8골 5어시스트)를 기록한 박지성은 지난 시즌 이청용이 기록한 한국인 최다 공격포인트와 타이를 이뤘다.

선취골을 내준 블랙풀은 더욱 적극적으로 공격을 펼쳤지만, 노련한 맨유의 수비진에 번번이 막혔고, 박지성은 활발한 움직임으로 끊임 없이 블랙풀의 수비진을 괴롭혔다. 전반 29분에는 패널티킥을 유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강등의 위기에 처한 블랙풀의 절박함은 만만치 않았다. 블랙풀은 전반 39분에 얻어낸 프리킥을 찰리 아담이 강력한 왼발슛으로 넣었다. 아담은 이번 시즌 올드 트래포드에서 전반전에 골을 기록한 유일한 원정 선수가 됐다.

블랙풀의 강등을 결정지은 에바트의 자책골

전반을 1-1로 끝낸 맨유는 후반 시작과 함께 하파엘 대신 194cm의 장신 수비수 크리스 스몰링을 투입했다. 동점골을 내주긴 했지만, 크게 무리하지 않겠다는 의도가 엿보이는 선수교체였다.

블랙풀은 후반 2분 전반의 골 장면과 매우 비슷한 위치에서 다시 한 번 프리킥 기회를 얻었다. 아담이 또 다시 직접 슛을 때렸지만, 이번엔 판 데르사르 골키퍼의 선방에 막혔다.

이후 경기는 다소 소강상태로 접어 드는 듯 했지만, 후반 11분 블랙풀에서 역전골이 터져 나왔다. 블랙풀은 데이빗 본의 낮은 크로스를 게리 테일러-플레쳐가 감각적인 슛으로 넣어 맨유의 왼쪽 골망을 흔들었다.

하지만 맨유에는 박지성이 있었다. 박지성은 후반 17분 왼쪽 코너에서 낮게 크로스를 올렸고, 안데르손이 논스톱 왼발슛으로 동점골을 성공시켰다. 시즌 6번째 어시스트이자 14번째 공격포인트(한국인 최다)였다.

박지성은 동점골을 어시스트한 이후 곧바로 마이클 오언과 교체됐다. 6일 후 FC바르셀로나와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 남아 있는 맨유로서는 예정된 교체였다. 박지성은 교체 신호가 떨어진 직후에 공격포인트를 기록했다.

 에바트는 강등을 결정하는 치명적인 자책골을 기록하고 말았다.

에바트는 강등을 결정하는 치명적인 자책골을 기록하고 말았다. ⓒ 블랙풀FC


박지성이 나간 후 꾸준히 블랙풀의 골문을 두드린 맨유는 후반 28분 재역전골을 성공시켰는데, 안타깝게도 그 골은 블랙풀의 자책골이었다. 블랙풀의 중앙 수비수 에바트가 스몰링의 크로스를 걷어 내려고 차낸 공이 그대로 블랙풀의 골문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졸지에 블랙풀의 역적이 된 에바트는 후반 32분 공격에 가담해 결정적인 슈팅 기회를 잡았지만, 판데르사르 골키퍼의 빠른 판단에 막혔고, 에바트는 머리를 감싸 쥐며 안타까워했다.

최후의 희망을 위해 적극적으로 공격에 가담하던 블랙풀의 호흡기를 떼어 버린 선수는 박지성과 교체된 '원더보이' 오언이었다. 오언은 후반 35분 안데르손의 패스를 받아 패널티 지역 오른쪽에서 오른발로 가볍게 차 넣으며 블랙풀의 잔류 희망을 꺾어 버렸다.

맨유는 후반 38분 비디치를 빼고 루니를 기용하며 홈팬들에게 맨유의 슈퍼스타가 리그의 마지막을 함께할 기회를 마련해 줬다. 블랙풀은 한 골이라도 더 만회하기 위해 공격 일변도로 나갔지만, 별다른 성과를 얻어내지 못했고 결국 경기는 4-2로 마무리됐다.

맨유는 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기분 좋은 역전승을 거두며 승점 80점을 채웠고, 맨유 원정에서 승점을 챙기지 못한 블랙풀은 결국 2부리그 강등을 피하지 못했다.

한편 EPL 득점왕 경쟁을 벌이던 베르바토프와 테베스는 나란히 풀타임으로 활약했지만, 골을 기록하지 못해 공동 득점왕에 올랐다.

EPL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박지성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