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프로농구 서울 삼성의 안준호 감독이 성적부진을 이유로 사퇴하면서 관심을 모은 것은 지난해 은퇴한 프로농구 최고의 인기스타 이상민 '깜짝 감독 복귀' 가능성이었다. 이상민은 프로농구 최고의 스타플레이어였던 지난 2010년 삼성에서 은퇴한 이후 지도자 수업을 받기 위해 미국 유학 중이다. 현실성 여부를 떠나 프로농구 최고의 스타플레이어가 은퇴 1년 만에 지도자로 현장에 복귀할 수 있다는 가능성만으로도 팬들의 관심을 모으기에 충분하다.

 지난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를 선언한 이상민

지난 2010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를 선언한 이상민. ⓒ 삼성썬더스 홈페이지


이상민은 아마추어 시절부터 삼성의 최대 라이벌이었던 전주 KCC 출신이지만 2007년 삼성 이적 후로는 3년이라는 짧은 기간에도 역대 삼성 출신 어떤 프랜차이즈 스타도 누리지 못한 열광적인 인기와 화제를 한몸에 받았다. 현역시절 프로농구 최고의 스타였다는 상징성, 선수와 팬들에 미치는 인지도와 영향력, 상품성 등을 두루 감안할 때 이상민은 굳이 삼성이 아니더라도 향후 지도자가 공석인 팀이라면 누구라도 탐 낼 만큼 매력적인 차기 감독 후보군으로 올리기에 충분하다.

이상민이 언젠가는 지도자가 되겠지만 문제는 시기와 방식의 적절성이다. 현재 이상민은 선수생활을 마치고 은퇴한 지 아직 1년도 되지 않았다. 당연히 감독은 고사하고 코치경력조차 전무하다. KCC와 삼성에서의 말년 시절에 실질적인 '플레잉코치' 역할을 맡았다고 하지만 선수와 지도자의 역할에는 엄연한 차이가 있다. 제아무리 위대한 스타라도 정식 지도자 수업도 받지 않은 상황에서 현장에 뛰어든다는 것은 엄청난 부담이 따르는 일이다.

현역에서 은퇴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선수가 바로 감독으로 입문하는 것은 파격적이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프로무대에서 코치수업을 받지 않고 감독으로 직행한 사례로는 KCC 허재 감독을 꼽을 수 있다. 허재 감독은 03~04시즌을 마치고 현역 은퇴 후 1년여 만에 미국 유학을 거쳐 전격적으로 현역시절의 라이벌팀이던 KCC의 지휘봉을 잡았다. 허재 감독은 현재 6년간 KCC를 이끌고 1회의 우승과 준우승을 기록하는 등 나름 성공적으로 팀을 이끌고 있다.

하지만 허재 감독과 이상민을 동일 선상에 놓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다. 허재 감독이 코치 경력도 거치지 않고 감독으로 곧장 데뷔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에는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허재 감독의 용산고 선배인 KCC의 정몽익 구단주는또 다른 용산고 인맥인 최형길 단장을 TG에서 데려오는 등 허재 체제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최근 허재 감독은 주전 뿐 아니라 벤치자원들에게도 자신감을 강조하고 있다. 스타플레이어 출신답지않게 전선수들에게 평등한 기회를 제공하는 그의 농구스타일은 팬들사이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모습이다.

허재 감독은 주전 뿐 아니라 벤치자원들에게도 자신감을 강조하고 있다. 스타플레이어 출신답지않게 전선수들에게 평등한 기회를 제공하는 그의 농구스타일은 팬들사이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모습이다. ⓒ 전주 KCC


또한 허재 감독이 처음 KCC를 맡을 당시 팀에는 이상민, 추승균, 조성원 같은 베테랑 선수들이 든든하게 팀을 지키고 있었다. 경험이 부족한 허재 감독을 경험 많은 코치진이 보좌하고 이들 베테랑 선수들은 사실상 플레잉코치 역할을 담당했다. 나이 차이로 감독-선수와 사제 관계라기보다는 형 동생 뻘인 이들은 허재 감독이 초짜 감독 시절에 겪던 시행착오를 상당 부분 메워준 것으로 알려졌다. 허재 감독도 선수와 감독의 관계로 지시하는 것을 떠나 이들 베테랑의 역할과 팀 내 위상을 존중했다.

그럼에도 허재 체제가 마냥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데뷔시즌 4강은 전임 신선우 감독이 물려놓은 시스템으로 이룩했다. 이 때 팀 장악 등에서 이상민 등 베테랑 선수들의 역할이 컸다. 그러나 2년 차에 이상민과 추승균이 동시에 부상으로 쓰러지면서 팀은 창단 이후 첫꼴찌라는 굴욕을 당하기도 했다.

이후 서장훈의 FA 영입과정에서 벌어진 이상민의 이적 파동, 08~09시즌 서장훈과 하승진의 공존 실패로 인한 서장훈 트레이드 과정과 우승후보로 꼽히는 팀의 하위권 추락 등 몇 차례 고비가 있었으나 위기상황에도 구단주를 비롯한 프런트와 고위층은 허재 감독을 신뢰했다. 허재 감독은 08~09시즌 위기를 수습하고 KCC에서 마침내 첫 우승을 따냈고 이후에도 팀의 세대교체를 성공적으로 이끌며 리빌딩을 완수했다.

어린 이상민이 감독으로 데뷔할 경우의 문제점
이상민의 경우, 프로선수로서의 스타성이나 인지도는 허재에 뒤지지 않지만 아쉽게도 삼성에서는 허재가 KCC에서 데뷔할 때와는 상황이 다르다. KCC 데뷔 당시의 허재에 비견할만한 파격적인 지원과 인맥 등을 삼성에 기대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이상민은 삼성에서 마지막 3년을 보내기는 했지만 정통 삼성맨 출신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삼성의 팀분위기상, KCC 시절 말년의 이상민이나 지금의 추승균 같이 초보감독을 보좌할 구심점이 되어줄 선수들도 찾기 힘들다. 경험이 부족하고 나이도 어린 이상민이 감독으로 데뷔할 경우, 그를 받쳐줄 코치진 인선부터가 문제가 된다.

또한 프로감독은 단지 선수들에게 이런저런 지시를 내리고 전술을 짜는 일만 하지 않는다. 팬-미디어-구단과의 관계 등, 대인관계나 여러 가지 상황을 종합적으로 컨트롤할 수 있는 '정치적인' 능력을 고려해아 한다. 유재학이나 전창진 같은 감독도 일류 감독으로 인정받기까지는 수년의 시간이 걸렸다. 농구선수로서의 리더십은 몰라도 이상민에게는 아직 그러한 능력이 검증되지 않았다.

서울 삼성은 아마 시절부터 한국농구 최고의 명문구단 중 하나다. 당연히 감독직에 대한 기대치와 무게감도 높을 수밖에 없다. 안준호 감독 사임 이후, 이상민과 함께 현재 삼성 감독 물망에 오르고 있는 인물은 여러 후보가 있다. 최근에는 서울 SK를 이끌었던 김진 감독도 물망에 오르고 있다. 대구 오리온스 시절과 국가대표팀에서 우승도 경험해봤고, 현역 시절 삼성전자에서 활약한 삼성맨 출신이기도 하다.

일각에서는 베테랑 감독체제하에서, 이상민이 코치수업을 거쳐 차기감독으로 승격하는 것을 대안으로 거론하기도 하는데, 솔직히 이것도 정상 수순은 아니다. 보통 감독을 선임하면, 감독이 자신과 손발을 맞출 수 있는 코치를 인선하는 게 당연한 수순이다. 코치 선정을 감독이 직접 하는 것이 아니라 구단이 선정하는 것이라면 언제든 문제가 될 소지가 많기 때문이다. 이상민처럼 감독보다 더 인지도가 높은 코치, 그것도 언제든 차기감독 후보가 되어 현 감독의 등에 비수를 꽂을 수 있는 스타 코치라면 희생양이 되어 호랑이새끼를 키우고 싶어할 감독은 없다.

어차피 이상민은 꼭 지금이 아니더라도 언젠가 충분히 감독을 맡을 수 있다. 단지 시기의 차이일 뿐이다. 이상민이나 허재 같은 현역 선수 이상의 인지도와 상품성을 갖춘 스타플레이어 감독들이 늘어나는 것은 한국농구 흥행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젊은 감독들이 능력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나 준비 없이 단지 현역시절의 스타성만 가지고 감독 후보로 거론되거나 덜컥 낙하산 인사를 단행하는 일도 당사자 본인의 경력이나, 인사 절차면에서 모두 바람직하지 않다. 이상민은 한국농구가 앞으로 시간을 두고 키워야 할 스타급 지도자다. 그가 감독으로 돌아오든, 코치로 돌아오든 적절한 준비를 마치고 시기를 기다리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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