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 보면 우리 부부도 늙어가나 보다. 확실히 예전보다 은퇴 후의 이야기를 많이 하고, 아이들 다 기르고 나면…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선배들의 평균 은퇴 연령을 생각하면 쉰둘, 쉰하나라는 나이가 그런 이야기를 하기에 결코 이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두 사람 모두 잘 알고 있다.

 

그러니 영화 <세상의 모든 계절> 속 '톰'과 '제리' 부부는 부럽기 그지없는 사람들이다. 남편은 지질학자, 아내는 심리상담사로 60대 초반인데도 둘 다 아직 일을 하고 있고, 함께 텃밭을 가꾸는 게 취미이고, 독립해 살고 있는 변호사 외아들은 부모에게 다정하고, 거기다가 부부 사이가 좋기까지 하다. 부러워라!

 

영화 <세상의 모든 계절> 포스터  영화 <세상의 모든 계절> 포스터

▲ 영화 <세상의 모든 계절> 포스터 영화 <세상의 모든 계절> 포스터 ⓒ 영화사 진진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각기 다른 텃밭 풍경과 함께 영화는 톰과 제리 부부를 포함한 주위의 노년들이 겪는 인생의 사계절을 보여준다. 사랑과 위로가 있는가 하면, 아픔과 외로움과 상처가 있다. 한없는 받아들임이 있는가 하면 냉정한 판단도 존재한다. 웃음과 소통도 있지만, 서로에 대한 서운함과 아쉬움도 결코 놓치지 않는다.

 

제리의 20년 지기 직장 동료인 '메리', 사랑이 떠난 후 늘 혼자 남겨졌기에 외롭고 불안정하다. 자신도 어쩌지 못하는 감정의 기복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실망시키기도 한다. 그의 흔들리는 눈동자는 보는 사람의 가슴을 아프게 만든다. 홀로 견뎌내야만 하는 앞으로의 긴긴 시간들이 무겁게 다가온다. 

 

톰의 친구인 '켄', 젊었을 때는 멋있었다지만 세월은 그를 가만 놔두지 않았다. 늘 입에 달고 사는 맥주와 의욕상실은 그의 몸을 놀라울 정도로 살찌게 만들었지만, 변화 가능성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동네 술집에 가도 눈치가 보이는 나이, 시끄러운 젊은이들 속에서 홀로 견디기 힘들다. 그러면서 자기 젊었을 때는 어땠는지 돌아보기도 한다.

 

톰의 형인 '로니', 아내가 세상을 떠났다. 가족들 사이에 어떤 사연이 있는지 모르지만 그다지 편편치 않았다는 짐작이 가능하다. 동생네 식구들을 빼고는 조문객이 단 세 명뿐인 장례식, 뒤늦게 나타난 아들은 아버지를 공격하고 비난하기 바쁘다. 마르고 텅빈 눈의 70세 노인 로니는 또 어떻게 혼자 삶을 꾸려나가게 될까.

 

영화 <세상의 모든 계절> 의 한 장면  행복한 노년 부부 톰(오른쪽)과 제리

▲ 영화 <세상의 모든 계절> 의 한 장면 행복한 노년 부부 톰(오른쪽)과 제리 ⓒ 영화사 진진

부부가 건강하게 각자의 일을 하면서 함께 소일하고 나란히 침대에 누워 잠자리에 드는 일이 유난히 보기 좋았던 것은 역시 좀 더 나이 든 다음의 우리 부부 모습을 머리에 담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다 가진 부부 옆에서 외롭고 힘들게 삶을 꾸려가는 메리나 켄이나 로니 역시 엄연한 우리의 모습이기에 결코 눈을 돌릴 수 없었다. 결국은 누군가 홀로 남게 될 것이므로.

 

영화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은 텃밭의 풍경이기도 하지만 어린시절, 청년기, 중년기, 노년기를 뜻하는 인생의 사계절이기도 하고, 노년에 경험하는 희로애락(喜怒哀樂)이기도 하다. 

 

살아 있는 한 계절이 바뀌는 것을 변함없이 볼 것이며, 역시 살아 있는 한 기쁘고 노엽고 슬프고 즐거운 일은 수시로 자리를 바꾸며 우리 마음에 머물 것이다. 10년쯤 지나 영화 속 노년의 모습을 하게 될 때, 나는 그리고 우리 부부는 삶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이며, 어떻게 만들어 나갈 것인지 궁금하고 기대되며 두렵기도 하고 설레기도 한다.

 

아무쪼록 또 다른 날들이 우리 앞에 주어진다는 것이 지겹거나 두렵지 않기를. '때론 삶이 참 잔인'하다는 제리의 말에 동의하면서도, 내게 다가오는 시간들을 있는 그대로 정성껏 살아내는 것 또한 이 땅에 살면서 감당해야 할 몫이라 믿기 때문이다. 외로움을 잘 감당해낼 수 있을까, 하는 질문에는 여전히 답하지 못하고 있지만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세상의 모든 계절 , Another Year / 영국, 2010 > (감독 : 마이크 리 / 출연 : 짐 브로드벤트, 레슬리 맨빌, 루쓰 쉰 등)  

2011.03.24 21:09 ⓒ 2011 OhmyNews
덧붙이는 글 <세상의 모든 계절 , Another Year / 영국, 2010 > (감독 : 마이크 리 / 출연 : 짐 브로드벤트, 레슬리 맨빌, 루쓰 쉰 등)  
세상의 모든 계절 노인 노년 노부부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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