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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같은 아들, 이제야 바보 같은 엄마의 손을 잡고 길을 나섭니다. 가만가만, 엄마의 마음속으로 여행을 떠납니다."

 

아들과 엄마의 관계는 딸과 엄마의 관계보다 소원하다. 딸들은 자라면서 엄마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갖기 마련인데, 아들은 그런 마음을 가졌어도 겉으로 무뚝뚝하다. 어릴 때부터 감정을 절제하도록 교육받아온 우리나라 아들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엄마, 우리 여행 가자>는 감정 표현이 부족한 이 땅의 아들들을 위한 책이다. 엄마와 함께 여행을 떠나고 싶어도 쑥스러워 못하는 아들, 여행 작가 박상준 씨는 과감하게 엄마와의 여행을 시작한다.

 

처음 시작은 '나는 운전을 못하나 엄마는 운전을 할 줄 알고 차가 있다'는 명분 덕분이었다. 여행 작가라는 직업으로 어딘가 떠나야 하는 운명의 아들에게 엄마는 기사 노릇을 자청한다.

 

엄마도 일상이 있고 직업이 있는지라 가끔 시간을 낼 수 있을 때만 가능한 여행이지만, 이 작은 여행들이 모여 엄마와 아들 사이에 소통의 장을 만든다. 늙어가는 엄마를 느끼고 소녀 같은 감성의 한 여성으로서 엄마를 만날 때 아들은 남모르는 눈물이 찔끔 나기도 한다.

 

어느 날 문득 엄마가 뭘 좋아할까 떠올려 보지만 저자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엄마는 뭘 좋아하지?"라는 바보 같은 저자의 질문에 여동생은 "글쎄, 엄마는 오빠를 좋아하지 않나?"라는 대답을 한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엄마들은 아들을 위해 헌신하고 아들을 믿으며 사랑하고 산다. 힘들고 고달픈 생활을 견디게 하는 것도 든든한 아들의 등짝 덕분이다. 오죽하면 20대 여성들의 이상형은 잘 생긴 남자, 30대 여성은 돈 잘 버는 남자, 40대 여성은 힘 좋은 남자, 50대 여성은 '내 아들'이라는 농담이 나왔을까?

 

저자는 동생의 말에 '그래, 엄마는 나를 좋아하지'라는 생각과 함께 지친 엄마의 삶을 위로하고 싶어진다. 엄마 마음의 고향을 찾아 떠나는 여행은 집 근처 천변을 시작으로 하여 부석사, 죽령옛길, 제천의 청풍명월 등 참 다양하다.

 

거창한 해외여행을 효도 관광이랍시고 모시고 가는 아들보다 저자처럼 친근한 곳을 부모님과 함께 찾아가는 여행이 더 와 닿는 건 왜일까? 가까운 곳을 함께 걷고 푸근한 한국 음식을 맛보면서 우리네 마음속에 자리 잡은 '정'을 나눌 수 있어서가 아닐까.

 

여행 작가라는 직업 때문에 좋은 카메라를 갖고 다니는 저자에 반해 엄마의 카메라는 해상도가 무척 떨어지는 핸드폰 카메라다. 작은 카메라라도 사드리겠다는 아들의 말에 엄마는 극구 사양하며 핸드폰에 담아 두어야 가끔 들여다보며 추억을 떠올릴 수 있다고 말한다.

 

여행은 항상 추억의 연속이다. 아들과 엄마는 엄마의 어린 시절이 담긴 고향땅을 걷기고 하고, 아들의 어린 시절이 담긴 작은 도시를 방문하기도 한다. 이들의 여행에는 살아온 이야기가 담겨 있기에 더욱 따스하다.

 

"엄마는 말없이 산 아래 동네를 내려다본다. 당신이 태어나 자라고 평생 살아온 동네. 먼저 죽음을 맞이한 오빠와 티격태격 싸우며 자랐을 땅. 아들과 함께 그 길을 오르며 어떤 회환에 젖었을까.

 

괜스레 가슴 한쪽이 뭉클하다. 엄마의 60년 삶의 조각들이 저만치 곳곳에 숨어 있겠구나. 아직도 고향 땅에 대해, 엄마에 대해 난 모르는 게 참 많구나. 나는, 경상도에서 자라 무뚝뚝한 나는, 가만히 마음으로 엄마를 안아본다."

 

그래도 엄마와의 여행을 시작한 그의 노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흔히들 부모님과의 여행을 꿈꾸지만, 시간이 없다, 바쁘다, 부모님께서 안 좋아하신다, 돈이 없다는 등의 핑계로 미루기 마련이지 않은가.

 

둘이 여행을 하다 보면 평소 모르던 엄마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어느 날은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종이와 펜이 있으면 좋겠다'고 엄마가 말한다. 엄마가 뭘 제대로 글다운 글을 적는 걸 본 적이 없는 저자는 '자주 글을 적어?'라고 엄마에게 물어본다.

 

"어, 지하철이나 버스 탈 때 사람들 보면 재밌는 일들이 많아. 그런 걸 적어뒀다가 나중에 읽어보면 그때 사람들이 그랬지 하는 게 떠올라서 기분이 좋아져."

 

엄마의 대답에 저자는 두서없을 엄마의 메모를 떠올린다. 맞춤법과 띄어쓰기가 적당히 무시되는, 묘사라기보다 기록에 가까울 엄마의 메모. 세련되거나 멋지지 않지만 당신만이 읽어낼 수 있는 언어들.

 

자신의 기억에 엄마는 글보다는 말이, 책상보다는 계산대가 익숙한 사람이었다고 말하며, 얼마나 엄마를 모른 채 삼십 대가 되었나 생각해본다. 저자만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아들들은 그럴 것이다.

 

나도 나이를 먹고 보니 70대가 다 되어가는 부모님의 평소 알지 못하던 모습에 깜짝 놀랄 때가 많다. 청소년기에는 반항하느라 바빴는데, 지나고 보니 나의 부모도 무척이나 낭만적이고 사랑스러운 분이라는 생각.

 

책의 저자는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표현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나라의 아들딸들이여, 이제 그만 무뚝뚝함을 버리고 늙으신 부모님께 다가가 보자. 소년 소녀 같은 부모님의 마음속에 우리는 언제나 귀여운 자식으로 남아 있으니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엄마, 우리 여행 가자> / 박상준 / 앨리스 / 2010-08-13 / 1만3000원 


태그:#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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