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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영국 정원 이야기>

성냥갑 같은 아파트에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 꿈꿔 봤을 집에 대한 환상이 있다. 으리으리한 대저택은 아닐지라도 조그만 텃밭에 예쁜 정원을 꾸미고 사는 꿈. 대한민국 수도권 소시민에게는 그저 꿈에 불과한 일이지만 영국에서는 누구나 가능한 이야기다.

 

십 여 년 전 영국의 중소도시에 일 년 넘게 거주하면서 그네들의 삶 중 가장 부러웠던 것이 바로 정원 문화다. 큰 집이건 작은 집이건 영국의 대부분 사람들은 주택에 살고 이들의 또 대부분은 예쁜 정원을 꾸미며 즐거워한다. 물론 거대도시 런던은 조금 예외지만 그래도 서울보단 낫다.

 

서울의 아파트와 다세대 건물에 익숙한 나에게 정원을 가꾸는 영국인들은 참 여유로워 보였다. 그래서일까? 영국은 식물학이 참 발달한 나라다. 우리처럼 '농업'이라고 하면 괜히 천하게 여기는 사회와 다르다. 함께 산업화를 일구었는데도 어쩜 이리 문화가 다를까.

 

윤상준의 <영국 정원 이야기>는 그야말로 '정원에 대한, 정원을 위한, 정원에 의한' 책이다. 자칫 지루하기 쉽고 낯선 다른 나라의 정원 문화를 아름답고 섬세한 시각으로 전달하는 게 특징이다.

 

책의 첫 장은 '대지의 크기에 상관없이 그 대지에서 가장 긴 거리를 이용하여 가능한 한 많은 조망점을 두는 것이 좋다'는 퍼시 케인의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저자가 소개하는 12명의 유명 정원사 모두 독특한 자기 색을 갖고 있지만, 공통점은 모두 세계에서 손꼽힐 만큼 유명하고 아름다운 정원을 설계했다는 것이다.

 

평범한 주부에서 정원 가꾸기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정원 디자이너가 된 로즈메리 비어리는 엘튼 존의 정원,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정원인 시싱허스트 정원을 디자인했다. 80세 백발 할머니가 되어서까지 정원을 가꾸고 다듬었다고 하니, 그 아름다운 열정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시인이면서도 조각과 시를 융화시켜 녹여낸 독특한 정원 양식을 만든 이안 해밀턴 핀레이의 정원 또한 매우 특색이 있으면서도 개성 있는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핀레이는 숲과 그 사이의 공터, 연못으로 구성된 드넓은 대지 위에 9개의 주제를 가지고 정원을 구성한다.

 

그리고 그 안에 자신의 글이나 타인의 유명한 말을 새겨 넣은 200여 개의 조각품들을 전시하여 시적인 무대를 창조했다. 그는 미학적 아름다움도 좋지만 무엇보다도 철학적이고 시적인 공간으로써의 정원을 추구했다. 그래서 그의 정원에는 일반적인 다른 정원들과 차별되는 묘한 분위기가 존재한다.

 

영국이나 프랑스 등지에서 잡초가 우거진 듯 보이지만 나름의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풍기는 정원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깎아 놓은 것 같은 아름다움보다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느낌의 정원을 만든 사람은 바로 피에트 오돌프다. 그의 정원 스타일은 퍼레니얼과 초본이 마치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다.

 

오돌피언 스타일이라고 하여 1990년대 이후 영국을 비롯한 유럽 등지에서 대유행을 하게 된 정원 양식이 바로 그에게서 비롯되었다. 꼭 뭔가 다듬어야 하는 정원 스타일에서 탈피한 것이 특징이고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내추럴 풍 정원이라고 하여 유행하고 있다.

 

그럼 현재 영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정원 디자이너는 누구일까? 바로 톰 스튜어트스미스다. 영국의 가장 유명한 정원 박람회인 첼시 플라워 쇼에서 매해 수상을 할 정도로 그 실력을 인정받았는데, 재미있는 건 그가 영국의 명문 케임브리지에서 동물학을 전공했다는 사실.

 

실험실에서 동물의 얼굴뼈를 맞추며 평생을 살아가는 것에 대한 답답함을 느낀 그는 맨체스터 대학의 조경학과 석사 과정에 입학하면서 정원 디자이너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그의 정원 스타일은 자연스러움과 규칙, 단조로움과 풍부함의 조화라고 할 수 있다.

 

톰 스튜어트스미스의 정원을 보고 있노라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떠올랐다. 앨리스가 방황하는 이상한 나라에는 토끼가 시계를 갖고 뛰어가는 정원이 있다.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클라이브 스테이플스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 존 로널드 루엘 톨킨의 <반지의 제왕>, 그리고 조앤 롤링의 <해리 포터> 시리즈 등 영국 판타지 소설에는 영국의 경관과 정원이 배경으로 등장한다.

 

그래서인지 땅거미가 지거나, 비바람이 몰아치는 영국의 풍경식 정원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거대한 오크나무가 금방이라도 뿌리를 이겨내고 움직일 듯한 환상에 사로잡힌다. 또 그 깊이를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어두컴컴한 숲 속에서는 항상 현실과는 다른 어떤 신비로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을 것만 같다." - 본문 269쪽에서

 

영국인들의 뛰어난 상상력이 바로 그들이 가꾸는 정원과 자연 그대로의 경관에서 비롯되었음을 이 책을 통해 절실히 느끼게 된다. 중국의 <서유기>나 <삼국지>처럼 유명한 소설들도 중국 특유의 웅장한 경관과 정원 문화에서 비롯되지 않았던가.

 

산업화와 도시화로 시골스러운 것은 낡고 없어져야 할 것으로 치부하는 현대 사회에서 우리도 우리 고유의 정원 문화를 찾아보면 어떨까? 크게는 궁중의 정원이었던 비원에서 시작하여 작게는 양반 향유 문화의 중심이었던 소쇄원까지, 우리에게도 아름다운 정원이 많지 않았던가.


윤상준의 영국 정원 이야기 1 - 12인의 정원 디자이너를 만나다

윤상준 지음, 나무도시(2011)


태그:#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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