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군단의 역사는 히딩크호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할만큼, 한국축구에 있어서 거스 히딩크 감독과 2002 한일월드컵이 남긴 의미는 각별하다.

히딩크 감독이 한국축구에 남겨준 선물은 단순히 월드컵 4강 신화를 넘어서, '한국축구가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제시해줬다는 데 의미가 있다.

이전까지 한국축구는 아시아의 맹주를 자부했지만 정작 아시아 이외의 무대에서는 전혀 주목 받지 못하는 세계축구계의 비주류에 불과했다. 히딩크 감독은 강한 압박과 체력을 바탕으로 한 파워축구로 한국축구가 세계무대에 대항할 수 있는 길을 찾았고, 박지성-이영표같은 미완의 대기들이 월드클래스급 선수로 성장하기까지 멘토 역할을 해줬다.

또한 히딩크 감독이 남긴 업적은 이전이나 이후의 외국인 감독들처럼 단지 눈앞의 성적을 올리는데만 급급한 것을 넘어서 한국축구의 시스템을 혁신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남아공월드컵에서 사상 첫 원정 16강을 이끌었던 허정무 감독은 MBC <무릎팍도사> 출연 당시, 히딩크 감독의 업적에 대하여 "정말 대표팀이 대표팀답게 돌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준 분"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선수 선발에 있어서 학연과 지연에 의존한 선수 선발에 대한 탈피, 당장의 결과에 연연하지 않은 강팀들과의 지속적인 트레이닝, 축구협회의 체계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대표팀 스케줄과 인력 관리의 전문화. 장기간에 걸친 지속적이고 일관성 있는 운영 계획 수립 등은 이후의 대표팀에게도 영향을 끼치며 한국축구와 대표팀의 '선진화'를 앞당겼다는 평가를 받았다.

히딩크 감독은 2002년 한국을 떠나면서 팬들에게 굿바이가 아닌 'So long'이라는 인사말을 남기고 고국인 네덜란드로 돌아갔다. 하지만 이후로도 한국과의 인연은 계속됐다. 히딩크 감독이 호주와 러시아, 첼시를 거치면서 끊임없는 성공신화를 만들어내는 동안, 한국팬들은 히딩크의 성공을 곧 자신들의 성공과 동일시하며 열광했다. 히딩크 역시 이후 한국축구가 두 번의 월드컵을 거치며 세계축구의 다크호스로 성장하는 동안 후원자를 자처하며 변함없는 애정을 잃지 않았다.

 거스 히딩크 감독과의 계약을 발표하는 터키축구협회 공식 홈페이지

거스 히딩크 감독과의 계약을 발표하는 터키축구협회 공식 홈페이지 ⓒ TFF


8년의 시간이 흘러 이제 히딩크와 한국축구는 경쟁자로서 새롭게 만나게 됐다. 터키에서 또 한 번의 부활을 꿈꾸는 히딩크 감독은 8년 전 바로 자신이 세계축구의 주류로 끌어올린 그 팀을 적으로 맞이하게 되었고, 한국축구는 옛 스승을 상대로 청출어람이라는 고사를 입증해야 하는 상황이다.

비록 박지성과 이영표가 떠났고 세대교체가 본격화된 대표팀은 이제 2002년 당시 히딩크와 함께했던 선수들 중에는 차두리 정도 밖에 남지 않은 새로운 팀이 되었지만, 그렇다고 히딩크와의 연결고리가 줄어든 것은 아니다. 지금 태극마크를 달고 자랑스럽게 세계무대를 누비한 태극전사들은 모두 직간적접으로 히딩크와 2002년의 수혜를 입은 선수들이기 때문이다. 히딩크가 구축해 놓은 한국축구의 미래는 8년의 세월이 흘러 이제는 당당히 '현재'가 되어 있다.

 한국 축구대표팀 조광래 감독이 12일 저녁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일본과의 친선경기에서 선수들에게 지시를 하고 있다.

한국 축구대표팀 조광래 감독이 지난해 10월 12일 저녁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일본과의 친선경기에서 선수들에게 지시를 하고 있다. ⓒ 유성호


한국축구는 새로운 과도기에 직면해 있다. 허정무 감독에 이어 새롭게 지휘봉을 잡은 조광래 감독은 2014년 브라질월드컵을 앞두고 또한 과감한 세대교체와 전술변화를 통하여 한국축구의 체질 개선을 추구하고 있다. 2002년 당시 히딩크가 추구했던 한국축구의 롤모델이 압박과 체력을 바탕으로 한 네덜란드식 토털싸커였다면, 조광래호는 탈압박과 빠른 템포를 추국하는 스페인식 패싱게임과 공격축구에서 새로운 길을 찾고 있다.

비록 지난해 러시아의 월드컵 본선행에 실패하며 체면을 구기기는 했지만, 히딩크 감독은 여전히 유럽무대에서 가장 핫한 지도자다. 한국축구의 미래는 과연 옛날의 마스터를 뛰어넘을 수 있을까? 히딩크 감독은 유로 2008 8강전에서 조국 네덜란드를 상대하며 "네덜란드를 이기는 것이 조국에 대한 반역이라면 나는 기꺼이 반역자가 되겠다"라는 어록을 남기며 화제를 남겼다. 같은 어록을 이제 태극전사들에게 기대해도 될까. "옛날의 스승을 넘어서는 것이 스승에 대한 무례라면, 기꺼이 버르장머리없는 제자들이 되는 길을 택할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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