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기 머독이 통쾌하게 던진다.
"원하는 게 섹스 맞죠?"

제이미 랜들이 받는다.
"난 속물이야. 100%"

뻔한 작업 멘트로 느물거리며 다가오는 남자에게 가장 쿨한 질문을 매기 머독(앤 헤서웨이 분)이 던진다. 이 질문에 대한 제이미 랜들(제이크 질렌할 분)의 대답 또한 그런 질펀한 상황에 아주 잘 어울린다. 이때만 해도 그저 그런 코미디 포르노물(좀 심한 표현이긴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랑이야기로만 보기에는 좀 느글거린다)인 줄만 알았다.

'어? 이런 영화 보러 비싼 돈 내고 극장 들어온 게 아닌데….' 그런 후회로 영화를 들여다보며 식상과 나른함과 거짓 웃음과 지루한 하품을 토해내고 있었다. 적어도 내겐 그랬다. 중반이 지나기까지는. 그래서 영화를 보는 도중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냥 잠시 저들이 이야기하는 육신적 쾌락의 담론에 내 생각을 맡기고 가지 뭐, 하고.

영화, 섹스 담론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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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하고 쌀쌀한 날에 그것만이라도 어딘가. 이 뒤엉킨 세상에서 이런 거추장스러움이 전혀 없는 벗어젖힌 에로물을 보는 것도 흔치 않지 않는가, 그리고 저들의 대화들 좀 봐, 얼마나 쿨한가. 이런 생각이 참 많이 위로가 되었다. 애드워즈 즈윅 감독은 그렇게 영화를 쉽고 편하게 풀어나가는 것 같았다.

잘생기고 쭉 빠진 남자와 미려한 아름다움에 S라인 섹시함까지 겸비한 여자, 이들 주인공들을 내세워 섹스 마케팅으로 다 큰 선남선녀의 마음을 짜릿하게 해주려나 보다, 생각했다. 영화의 중반까지만 해도 말이다. 하긴 중반이 아니라 종반이라는 말이 더 맞을 것이다.

조금은 특출함이 있는, 아주 특출함이 많다고는 할 수 없는, 식상한 작업멘트를 무럭무럭 날리며 매기에게 치근대는 제이미, 결단코 의사와 결혼하고 말리라는 당찬 포부를 가진, 담당 의사들에게 노골적으로 추파를 던지는 여자, 그 여자는 그 남자가 속물이라는 걸 분명히 알면서도 호반응을 보이며 접근을 막지 않는다. 의사도 아닌 약품 외판원에게 말이다.

이들은 에로물에, 좀 심하게 표현하면 포르노물에. 얼마나 잘 어울리는 한 쌍인지 모른다. 그러니 감독이 품고 있는 사랑의 깊은 숨소리는 이 남녀의 거친 숨소리에 묻힐 수밖에. 그렇게 딴전을 피우며 영화는 중반을 흘리고 종반으로 밀고 나간다.

근데 미심쩍긴 했다. 에드워드 즈윅 감독이 누군가. 서사성 강한 작품으로 우리네 가슴팍을 후벼 놓는 이가 아닌가. <라스트 사무라이>를 통하여 신념 하나에 목숨 건 사나이의 집념을 그리지 않았던가. <가을의 전설>을 통하여 박진감 넘치는 시리도록 아픈 역사를 다루지 않았던가. 또, <영광의 깃발>을 통해서는 잔혹하도록 아름다운 흑인 역사의 투쟁사를 풀어 놓았다.

영화, 참 사랑의 담론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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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그가 에로틱 코미디라? 분명 맞지 않는 대목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섹스 담론으로도 충분하다. 완성도가 넘친다. 오락영화로 보면 중반까지도 성공적이다. 내가 보고자 한 영화가 아니라서 그렇지 <러브&드러그>는 충분히 섹스 담론만으로도 성공적이다. 그냥 쉽게 보고 웃고 즐기면 되는 거니까.

근데 에드워드 즈윅은 그렇게 영화를 끝내기는 싫었나 보다. 역시 에드워드 즈윅이 특별하게 구상한 이야기들이 등장하고야 만다. 미치도록 시린 눈물을 자아내고야 만다. 물론 그 장면이 섹스 담론에 비하면 턱없이 짧아 관객들의 머리에 잔영으로 남는 것은 에로티시즘 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잔잔하고 포근한 이야기를 쓰려는 감독의 의도가 팔팔하게 스며있다.

2011년 골든 글로브에 제이크 질렌할과 앤 헤서웨이가 나란히 남·녀주연상을 거머쥔 것만 봐도, 그리 단순히 처리될 이야기는 아닌 듯. 이들은 이미 두 번째 커플 연기였다. <브로크백 마운틴>(리안 감독, 2006)에서도 커플로 나왔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들의 과감한 노출 연기가 너무 스스럼없다.

서사시의 명장 이드워드 즈윅은 이 영화 역시 실제 이야기를 토대로 만들었다고 한다. 화이자가 '비아그라'를 출시했을 때 의약품 판매원으로 활약했던 한 외판원이 바로 제이미 랜들의 모델인 것이다. 근데 그 남자가 그리도 시린 사랑을 한 것이다. 아프지만 진정한 사랑, 사랑은 모든 아픔을 감싸는 것이라고, 영화 속 제이미가 크게 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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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킨슨씨병에 대한 고찰을 이야기하지 않으면서도 고칠 수 없는 질병에 치를 떠는 이들의 통쾌한 삶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아픈 만큼 성숙한 삶에의 진지성이 보인다. 자신의 아픔을 남에게 전가하지 않으려는 사랑, 그것도 일종의 희생적 사랑이라 할 수 있다. 아픔까지도 사랑하는 사랑과 다른 이에게 아픔을 주지 않으려는 사랑의 긴장한 줄다리기, 그래서 사랑이 더 묘미가 짙다.

하마터면 섹스 담론에 빠져 허우적대는 것으로 끝나버릴 영화를 사랑의 묘약으로 처방하여 진하고 감동적인 사랑의 담론으로 이끄는 애드워드 즈윅의 기교가 재미있고 감동적이며 튼실한 열매로 가슴속에 자리하는 능력이 쏠쏠하다. 에로틱 코미디 발상으로도 이리 진한 사랑을 담을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아파서 더 아름다운 사랑, 병들어서 더 진한 사랑, 영원하지 않아서 더 그리운 사랑, 나와 네가 달라서 더 향기 나는 사랑, 건강한 자가 불치병 환자를 집념 어리게 보듬어서 더 짙은 사랑, 감독이 말하지 않아도 더 많은 사랑의 담론을 전개할 수 있어 좋은 영화, <러브&드러그>다. 근데 그 사랑이 철학적이지 않고 너무 쉬워 저리도록 그리워진다.

 <러브&드러그> 감독 에드워드 즈윅/ 제이크 질렌할, 앤 헤서웨이 주연/ 이십세기 폭스 제작/ 상영시간 112분/ 2011. 01. 13 개봉

러브&드러그 개봉영화 앤 헤서웨이 제이크 질렌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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