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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판 수비수의 퇴장과 곧바로 나온 실점, 그리고 그들에게 남은 시간은 30분 정도밖에 없었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끝내 일본 선수들은 뜻을 이뤘다. 1993년 도하에서 벌어진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 예선에서 당한 아픈 기억을 씻어낼 수 있을 정도로 극적인 역전 드라마를 만든 것이었다. 그들은 '비극'의 역사를 18년만에 씻어내며 '기적'을 이룬 셈이다.

알베르토 자케로니 감독이 이끌고 있는 일본 축구대표팀은 우리 시각으로 21일 오후 10시 25분 카타르에 있는 알 가라파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2011 AFC(아시아축구연맹) 아시안컵 8강 토너먼트에서 카가와 신지의 결정적인 활약에 힘입어 개최국 카타르를 3-2 펠레스코어로 물리치고 4강에 올랐다.

수비수 요시다, 또 한 번의 '불운'

일본은 지난 9일 밤 카타르 스포츠 클럽에서 벌어진 요르단과의 B그룹 첫 경기에서 수비수 요시다 덕분에 울다가 웃으며 경기장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전반 종료 직전 요시다의 발에 맞은 공이 실점으로 연결되면서 무척 어려운 첫 경기를 펼치다가, 후반전 추가 시간에 요시다가 거짓말같은 동점골을 만들어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번 카타르와의 8강전에서도 승부의 갈림길 한복판에 선 채로 비운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카타르 골잡이 유세프 아메드를 계속 따라다니며 거칠게 수비하던 요시다는 1-1로 팽팽한 맞대결을 펼치던 61분경, 그를 막으려다가 살레(말레이시아) 주심으로부터 두 번째 노란딱지를 받고 쫓겨나고 말았다.

일본으로서는 후반전 시작하자마자 요시다가 받은 노란딱지가 이렇게 나쁜 결과로 돌아올지 몰랐기에 충격이 매우 컸다. 더구나 여기서 나온 카타르 미드필더 세자르의 왼발 프리킥이 이상하게도 일본 골문 안으로 빨려들어가는 바람에 1-2로 끌려가게 되었다. 강 펀치 두 방을 연타로 얻어맞은 일본이었다.

그후 일본은 앞으로 남은 30분 정도를 열 명으로 버텨야 했다. 벤치에 있는 자케로니 감독으로서는 골잡이 마에다를 불러들이고 가운데 수비수 이와마사를 들여보내는 고육지책을 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축구장의 신은 벼랑끝에 내몰린 일본 선수들의 손을 잡아주기 시작했다. 분명히 일본 미드필더들의 침착한 찔러주기가 위력을 발휘했지만 어느 정도 운이 따랐기에 귀중한 골맛을 보면서 환호성을 지를 수 있었다.

그 중심에 일본이 자랑하는 공격형 미드필더 카가와 신지가 있었다. 28분에 그가 넣은 첫 번째 동점골도 오카자키가 90% 이상을 만들어준 것이나 다름없었고 70분부터 시작된 일본의 역전 드라마에도 카가와 신지의 발끝이 주역 노릇을 톡톡히 해냈다.

일본의 두 번째 동점골(70분)은 카타르 수비수 몸에 맞고 흐른 공이 카가와 신지의 왼발 앞으로 흘렀고 89분에 나온 극적인 역전 결승골도 카가와 신지의 슛을 막기 위한 카타르 수비수들의 온몸 방어 끝에 흐른 공이 마침 수비수 이노하의 왼발에 걸린 것이었다.

일본 축구, 역시 '미드필드'가 영리했다

특히, 일본이 터뜨린 마지막 골은 미드필더 하세베 마코토의 그림같은 찔러주기가 카가와 신지에게 정확하게 이어졌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전반전의 첫 골도 '하세베-혼다-오카자키-카가와 신지'로 이어진 연결 과정이 매끄러웠기 때문에 비교적 쉽게 얻어낼 수 있었다.

이처럼 이번 대회 참가국 중 처음으로 4강에 오른 일본은 잘 알려진 것처럼 '카가와 신지-엔도-하세베-혼다-오카자키'로 이루어진 미드필드가 매우 영리하게 움직이고 있는 팀이기에 어려운 상황에 처했어도 크게 흔들리지 않는 저력을 자랑하고 있다.

더구나 이란과의 8강 맞수 대결에서 한국이 승리할 경우 오는 25일 밤에 같은 장소에서 만나게 될 일본이기에 그들의 경기력에 대해 보다 면밀한 분석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4강에 올라간 덕분에 다음 아시안컵(2015년 호주 대회) 본선 진출권까지 얻어내기도 했지만 일본으로서는 또 하나의 걱정 거리가 생겼다. 다름 아닌 간판 수비수 요시다의 결장 소식이다.

가뜩이나 대회 직전까지 간판 수비수들(나카자와, 툴리우)의 부상 소식이 자케로니 감독과 일본 축구팬들을 우울하게 만들었고, 또 다른 가운데 수비수 이와마사까지 소속팀 가시마 앤틀러스의 일왕배 일정 중에 다치는 바람에 그들의 골문 앞은 항상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요시다까지 퇴장 징계를 받게 되었으니 그 자리에 초비상이 걸린 셈이다.

사우디 아라비아와의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 후반전부터 이와마사가 뛰고 있지만 곤노와의 호흡이 얼마나 이루어질 수 있는가가 숙제다.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노련한 엔도 야스히토가 그 앞에서 버텨주고 있는 것이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개최국과 맞붙은 이번 경기를 통해서도 드러났지만 엔도가 중심을 잡고 있는 일본의 미드필더들은 결승행 길목에서 만날 가능성이 있는 한국을 가장 위협할 만한 인물들이다. 그 중에서도 물이 오르고 있는 '카가와 신지, 혼다 케이스케'는 두말할 것 없이 가장 주의해야 할 인물들이다.

2010 남아공월드컵과 한일전(친선 경기)을 통해서도 우리 축구팬들에게 잘 알려진 혼다 케이스케는 이번 대회 일본의 득점 중 대부분을 자신의 발끝에서 만들어낸 중심 인물이다. 실질적인 플레이메이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공간을 찾아 움직이면 어김없이 침투 패스가 발끝에 배달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카가와 신지는 이번 대회를 통해 최고의 몸 상태는 아닌 듯해도 결정적인 순간에 유연한 드리블 실력을 맘껏 자랑하며 상대 수비수들을 곤경에 빠뜨리고 있다. 함부로 그에게 달려들었다가는 위험 지역에서 프리킥을 내주거나 노란딱지가 돌아온다는 것도 명심해야 할 일이다.

혼다나 카가와를 빛내기까지 뒤에서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는 숨은 플레이 메이커가 바로 주장 하세베 마코토다. 엔도와 함께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를 맡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인 일본 공격의 줄기는 거의 대부분 하세베의 발끝에서 시작된다고 봐야 한다. 중거리슛 능력도 뛰어나지만 상대 선수들의 빈틈을 찌르는 눈썰미는 최고 수준이라고 해야 한다.

또한, 이번 대회를 치르는 과정에서 부상을 당한 마츠이 대신 들어와 훌륭한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는 오카자키는 일본 공격의 보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동료 미드필더들이 공을 잘 돌릴 때에는 마에다와 나란히 서서 투 톱으로서의 역할도 수행하며 상대팀과 허리에서 힘겨루기가 한창일 때에는 왼쪽 오른쪽 가리지 않고 측면으로 폭넓게 움직이며 거친 몸싸움도 마다 않는 인물이다.

그런데, 일본은 이들 베스트 멤버들의 조직력이 매우 훌륭하지만 막상 그들을 대체할 후보 선수들의 경기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것이 단점으로 보인다. 더이상 물러설 곳 없는 토너먼트에서 이 부분은 결정적인 순간에 발목을 잡을 수 있는 것이기에 자케로니 감독의 수심이 눈에 선하다.

덧붙이는 글 ※ 2011 AFC 아시안컵 8강 토너먼트 결과, 21일 밤 10시 25분 알 가라파 스타디움

★ 일본 3-2 카타르 [득점 : 카가와 신지(28분,도움-오카자키), 카가와 신지(70분), 이노하(89분) / 세바스티안(12분), 세자르(62분)]

◎ 일본 선수들
FW : 마에다(64분↔이와마사)
MF : 카가와 신지(90+3분↔나가타 미츠루), 엔도(32분-경고), 하세베, 혼다, 오카자키
DF : 나카토모, 곤노, 요시다(46분-경고,61분-퇴장), 이노하
GK : 가와시마

◎ 카타르 선수들
FW : 유세프 아메드, 세바스티안 수리아
MF : 엘 사예드(59분↔파비우 세자르), 웨삼 리지크, 로렌스, 메사드 알리(90+2분↔알 마리)
DF : 이브라힘 마제드(13분↔칼리드 무프타), 이브라힘 알 가님(49분-경고), 비랄 모하메드, 하미드 이스마엘
GK : 카셈 부르한

◇ 준결승 일정
일본 vs 한국-이란 승리 팀(25일 밤 10시 25분, 알 가라파 스타디움)
아시안컵 축구 일본 카타르 카가와 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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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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