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쓰바라가 한국어에 대한 일화를 설명하면서 미소를 짓고 있다.

마쓰바라가 한국어에 대한 일화를 설명하면서 미소를 짓고 있다. ⓒ 윤서한


일본인 유학생 마쓰바라 히로키(21·일본명 松原弘樹)는 한국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아무런 연고도 없는 한국으로 건너왔다. 고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한 마디도 못했던 한국어도 빠른 시간 안에 배웠다. 반년이 지나자 말이 조금씩 들리기 시작했다. 한국에 온 지 2년이 다 되가는 지금은 한국사람 못지 않은 한국어 실력을 갖추게 됐다.

마쓰바라는 운동을 하면서 공부를 하는 대학 생활을 기대했다. 일본에서 고교 시절까지 야구 선수로 뛴 적이 있기 때문이다. 마쓰바라는 키 178cm·몸무게 80kg의 몸집에 오른손으로 타격을 하고 강한 오른쪽 어깨로 공을 던지는 포수였다. 당장 프로 무대에 나설 정도는 아니지만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야구를 했기에, 운동에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경기에 나서지는 못하고 있다. 대한야구협회 초·중·고 및 대학 선수등록규정에는 외국인 선수에 대한 규정이 없다. 즉 마쓰바라는 대한야구협회가 특별 논의를 거쳐 선수등록을 허용하지 않는 한 한국에서 선수로서 경기에 나설 수 없다.

결국 2009년 9월 경희대 체육학과에 입학한 마쓰바라는 예외를 두지 않는 한 야구선수로서 한국에서 뛰겠다는 꿈을 사실상 접어야 할 처지다. 방학을 맞아 쉬고 있는 그를 지난 2일 오후 경기도 용인 경희대 국제캠퍼스 인근 카페에서 만났다.

"수학여행으로 첫 한국 방문, 야구를 계속하고 싶은데..."

- 요즘 방학이어서 그런지 학교 주변이 한산하다. 어떻게 지내고 있나.
"학기 때보다는 확실히 여유가 느껴진다. 학교 기숙사인 우정원에서 지내면서 가끔씩 친구들과 만나고 영화나 책을 보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일본어 과외로 용돈을 조금씩 벌고 있기도 하다. 일본에는 갈까 말까 고민 중인데 이번에 부모님과 누나, 남동생이 한국으로 오기로 해 당분간은 갈 일이 없을 것 같다."

- 학기를 마친 대학생이라면 성적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 결과가 어떤가.
"괜찮았다(웃음). 7과목을 수강해 6과목은 A+, 1과목은 A-가 나왔다. 나름대로 노력은 했지만 교수님들이 배려해 주셔서 좋은 성적이 나온 것 같다. 감사한 마음이다. 부모님이 어렵게 뒷바라지를 하시는데 앞으로도 열심히 배울 생각이다."

- 이번이 몇 학기 째였나.
"대학교에 와선 첫 학기였다. 지난해 9월 외국인 유학생 자격으로 경희대 체육학과에 입학했다."

- 한국에는 2009년에 온 걸로 알고 있는데.
"정확히는 2009년 5월에 왔다. 당시는 한국어를 거의 할 줄 몰라 애를 많이 먹었다. 경희대 어학원을 다니면서 한국어를 익히기 시작했다. 처음엔 초급반에서 한 번 유급을 해야 했다. 의사 표현이 쉽지 않아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해 몸무게가 10kg나 빠져 70kg가 되는 일도 겪었다. 몸무게는 아직까지도 회복이 되지 않고 있다. 반년이 지나고 중급반으로 올라오니 그제야 한국어가 조금씩 익숙해지더라."

- 지금은 한국어가 정말 유창하다. 한국사람보다 더 한국사람 같은데.
"그렇지 않아도 요즘 그런 말을 가끔 듣는다. 친구들이 일본어에 대해서 물어보면 한참 생각을 하고 나서야 대답을 할 정도다. 그러면 주변에선 '한국사람 다 됐다'고 한다. 며칠 전에는 어학원 초급반 강의를 하시던 선생님을 만났는데 '요즘 정말 (한국어)실력이 많이 늘었다'면서 초급반일 때는 상상도 못하겠다고 하시더라. 하긴 그때는 선생님이 일본어를 조금 할 줄 아셔서 답답하면 일본어로 질문하기도 했다(웃음)."

- 한국어가 외국인에게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 가끔은 한국사람도 제대로 못하는 게 한국어다.
"글쎄, 어렵지만은 않았다. 한자를 일일이 외워야 하는 일어가 오히려 어렵다면 어렵지 않을까. 물론 말을 빨리 배우기 위해 실천한 게 있긴 하다."

- 비결이라면 입소문을 내야겠다. 어떤 노력을 했는지 궁금한데.
"가장 말이 잘 통하는 일본인과는 가급적이면 어울리지 않으려 했다. 그렇게 되면 한국어가 빨리 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외국까지 유학을 와서 같은 나라 사람들끼리 어울리면 얻어갈 게 없을 것 같았다. 지금은 주변에 한국인 친구도 있고 미국이나 사우디아라비아 국적의 친구도 있다. 가끔 영어 카페에서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며 틈틈이 영어도 익히고 있다."

 마쓰바라는 한국에 오면서 포수 글러브를 새로 맞췄지만 아직까지 쓰지 못하고 있다.

마쓰바라는 한국에 오면서 포수 글러브를 새로 맞췄지만 아직까지 쓰지 못하고 있다. ⓒ 윤서한

- 유학을 할 수 있는 나라는 많다. 굳이 한국에 와서 대학교에 다니는 이유라도 있나.
"중·고교 때 수학여행을 한국으로 왔다. 원래부터 관심이 많았는데 한국 땅을 밟게 되니 더욱 흥미가 생겼다. 고교 졸업을 앞두고 우연히 인연이 닿아 한국으로 오게 됐다. 부모님께 한국에 가겠다고 말씀드렸더니 견문을 넓히라며 앞장서서 권유하셨다. 지금은 일본보다 한국에 있는 게 더욱 재미있다. 일본에 있는 친구들은 한국보다 미국·중국·러시아·캐나다 등을 선호하는 것 같다."

- 우연한 인연이라면 야구를 통해 맺어진 인연인가."그렇다. 말하기 조금 복잡하긴 한데 친구 아버지의 친구가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야구용품 사업을 하셨다. 그러다 우연히 경희대 야구부가 후쿠오카에서 훈련을 한다는 소식을 듣게 됐고, 소개를 받아 같이 뛰면서 한국에서 대학교를 다녀야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그때가 고교 졸업을 앞둔 2009년 2월쯤이었다."



- 야구는 언제부터 시작하게 됐나.

"초등학교 2학년 때 선배의 권유로 시작했다. 중학교 때 투수와 포수, 내야수를 모두 해본 적도 있었지만 고교 때까지 주로 포수를 봤다. 특히 3루수와 유격수로는 내가 생각해봐도 자질이 부족했던 것 같다(웃음). 고교 시절에는 투수가 아니었지만 구속이 시속 130km까지 나오기도 했다."

- 구속이 그렇게 나온다면 어깨가 꽤 강한 포수인 것 같은데.
"송구 능력은 자신이 있다. 다른 선수들과 비교해서 장점이 될 수 있다. 대신 타격 능력은 썩 뛰어나진 않다. 고교 시절 3할대 타율을 기록하긴 했지만 발이 빠르지 않은 단거리 타자였다. 타순은 주로 6번 이후였다. 지금은 더 느려졌겠지만 100m를 12초대 후반대에 달리는 등 운동선수 치고는 그다지 빠른 편이 아니다."

- 포수는 힘든 위치다. 요즘은 국적을 가리지 않고 피하는 분위기인데.
"힘들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늘 앉아만 있는데 뭐가 힘드나(웃음). 야구에서 포수는 정말 중요하다. 수비를 할 때 포수가 감독 노릇을 대신하기 때문이다. 타자, 주자와 대결하고 때로는 심판과도 대결을 하는 게 포수다. 그래서 매력이 있다. 예전에 가끔 외야수로 나갔을 때는 정말 지루했다."

"대회 못 나간다는 말 듣고 머리가 텅 빈 느낌"

- 일본 고교야구는 '고시엔 대회'로 상당히 유명한데.
"고시엔 대회 지역 예선을 지역 방송에서 생중계할 정도로 인기가 대단하다. 고교·대학 야구에서 관중석이 늘 비어있는 한국과는 다르다. 고시엔 대회는 나름의 추억도 있다."

- 본선에 진출하기라도 했나.
"문턱에서 좌절했다. 2008년 야나기가우라 고교 3학년 재학 시절 고시엔 대회 지역예선 결승에서 5-3 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5-6으로 패한 적이 있다. 9회말 2아웃에 역전 결승타를 맞아 아쉽게 경기를 내줬는데 타구가 1루수 앞에서 갑자기 튀어올라 어쩔 수 없었다. 가족이 '본선 보러갈 준비 다했는데 (포수를 봤던) 너 때문에 못 가게 됐다'고 농담 섞어 말했던 기억이 생생하다(웃음)."

 마쓰바라가 야나기가우라 고교 재학 시절 경기에 출전해 주자로 뛰고 있다. 지금 그는 경희대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나서고 싶어 한다.

마쓰바라가 야나기가우라 고교 재학 시절 경기에 출전해 주자로 뛰고 있다. 지금 그는 경희대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나서고 싶어 한다. ⓒ 야마사키 무쓰미


- 한국에서는 경기 결과가 나쁘면 벌을 받을 때도 있다. 일본은 클럽 활동 위주라서 결과에 그렇게 민감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꼭 그렇지도 않다. 일단 경기에 나서면 이겨야 한다는 생각은 누구나 한다. 하지만 늘 이길 수는 없다. 실력이 부족하면 지는 것이다. 약한 팀에게 지면 모자란 부분을 채우기 위해 훈련을 더 열심히 하게 된다. 졌다고 벌을 받는 경우는 없다."

- 한국의 아마추어야구는 프로야구 진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2년간 훈련하면서 일본과 다른 점이 느껴지던가.
"한국에서 고교 팀이 대학 팀을 꺾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던 적이 있다. 대학 투수의 공을 고교 타자가 홈런을 치기도 하더라. 고교 투수들이 시속 140km의 공을 던지는 것도 놀라웠다. 일본은 고교에서 그렇게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가 많지 않다."

- 한국과 일본의 신체적인 특징도 무시할 수 없을 텐데.
"한국 프로야구에서 거구의 타자가 날카롭고 유연한 스윙을 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일본에서는 보기 힘든 경우였다. 전체적으로 한국 선수들이 일본 선수들에 비해 몸집이 크고 힘도 좋다. 웨이트트레이닝 시간이 정해진 것도 다른 점이다. 일본은 웨이트트레이닝을 선수에게 맡기는 편이다. 대신 수비 훈련은 한국이 덜 하는 것 같다."

- 일본 야구는 수비 기본기를 중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차이가 큰가.
"작진 않았다. 야수의 경우에 일본이 수비 위주라면 한국은 타격 위주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은 타격보다 수비 훈련에 더 많은 시간을 쓴다. 점수를 내주지 않고 지지 않으려는 야구를 목표로 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한국은 점수를 더 내 이기려는 야구를 하려는 것 같았다. 수비 훈련 시간이 생각보다 많지 않아 놀랐다. 일본에선 수비 훈련이 가장 힘들다."

- 한국과 일본은 비슷하면서도 다른 점이 많다. 운동선수들 간에도 적잖은 문화 차이가 느껴졌을 것 같은데.
"한 가지를 꼽자면 형·동생이라는 호칭인데 상당한 친밀감이 느껴진다. 선배라는 호칭을 반드시 붙여야 하는 일본보다 훨씬 자유롭다. 투수와 포수 사이에 의사소통도 일본과는 조금 다르다. 일본에서는 투수가 적극적으로 사인을 내기보다 일단 포수의 의사를 먼저 듣고 나중에 공격과 수비가 바뀌면 더그아웃이나 불펜에서 서로 의견을 나눈다. 하지만 한국은 투수가 포수의 사인을 거부하기도 하는 등 조금 더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현하는 것 같다."

- 야구를 떠나서는 어떤가.
"(곰곰이 생각하더니) 일본은 개성을 인정하는 문화가 강하다. 예를 들어 윗옷과 바지, 신발을 모두 분홍색으로 하고 다녀도 일본에서는 전혀 문제가 안 되는데 한국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옷차림이 되고 만다. 같은 그림을 보고도 다른데서 감동을 느끼는 등 관점의 차이도 있다."

- 한국과 일본은 가깝고도 먼 나라다. 부모님이 한국에 관심이 많지 않았다면 추천하지 않았을 텐데. 
"한국과 일본 사이에 불편한 과거가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한국에 오지 않았다면 듣지 못했을 얘기가 많았다. 뭐라 말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지만 사실은 사실대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모님은 한국과 특별한 인연이 없다. 아마도 외국에 나가서 견문을 넓히길 바라셨던 것 같다. 한국은 일본에 비해 생활비도 덜 드는 편이다."

 마쓰바라가 경기에 나서지 못했던 기억을 떠올리고 있다.

마쓰바라가 경기에 나서지 못했던 기억을 떠올리고 있다. ⓒ 윤서한


- 요즘도 야구는 꾸준히 하고 있나.
"경희대 야구부에 소속돼 있는 건 아니지만 한국에 건너온 뒤 선수들과 같이 훈련한 건 사실이다. 경희대 야구부 유니폼도 받았고 입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경기에 나설 수는 없었다. 정식 등록 선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 대학교에 입학하고도 달라진 건 없었다."

- 한국어를 배우며 2년을 기다렸고 적응도 훌륭히 했다. 뛰지 못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규정이 그렇다고 들었다. 4년 내내 선수로 등록되지 못할 것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이 텅 빈 느낌이 들었다. 그때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입학과 동시에 그 얘기를 들으니 충격이 더욱 컸다. 그래도 연습할 때는 뛸 수 있다는 희망이라도 가졌었는데."

- 지금이라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정식 선수로 뛰고 싶나.
"지금은 약간 체념한 상태지만 등록이 된다면 마음이 달라질 것 같다. 훈련만 했기에 경기에 나서고 싶은 욕심은 여전하다. 그렇다고 운동만 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공부를 소홀히 하지 않고 많은 친구를 통해 견문도 넓히면서 운동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 졸업을 하고 나면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
"아직 어린 나이라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진 않았다. 지금부터 조금씩 생각해 봐야겠다. 일단 학과 공부를 충실히 하고 한국어와 영어를 더 잘하고 싶다. 요즘은 졸업을 하더라도 한국에 계속 남아있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만큼 한국이 좋다."

마쓰바라 히로키 일본 경희대 야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정의당 동작구위원장. 전 스포츠2.0 프로야구 담당기자. 잡다한 것들에 관심이 많습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