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조제,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포스터 .

▲ 영화<조제,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포스터 . ⓒ 영화<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이 영화는 한 장애인과 정상인 간의 사랑이야기이다. 다소 무거울 수도 있는 주제를 소소한 일상의 한 부분을 포착하여 담아낸 센스가 돋보이는 수작으로서, 2004년 부천 영화제에서 큰 호응을 얻은 이후 현재도 수많은 매니아 층을 확보한 작품이다. 사회적 이슈를 색다른 방식으로 차분히 담아낸 이 영화는 차가운 바람이 부는 이 계절에 마음을 따뜻하게 녹여줄 감성 영화이다.

 

영화 줄거리

어느 새벽, 마작방에서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귀가하던 대학생 츠테오는 길모퉁이에서 유모차가 난간에 충돌하는 것을 보게 된다. 유모차를 끌고 가던 할머니는 나뒹굴어지고, 놀란 츠테오가 다가간 순간 그 안에서 칼을 휘두르며 여자가 얼굴을 내민다. 여자의 이름은 구미코. 프랑소와즈 사강의 소설 '1년 후'를 너무나 좋아하는 그녀는 그 소설의 주인공 이름을 따서 조제라고 불리길 원하는 장애인이다. 조제는 매일 새벽 사람들의 눈을 피해 유모차에 몸을 숨긴 채 바깥 구경을 하던 중이었고, 그 와중에 츠테오와의 황당한 만남을 겪게 된 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조제의 집에서 따뜻한 밥을 대접받는 츠테오. 그에게는 사회복지를 전공하는 여자 친구가 있고 성관계를 위해 따로 만나는 애인도 있다. 하지만 기막히게 계란말이를 잘하고, 성치 않은 다리로 높은 씽크대 위에서 요리를 척척 해내고, 높은 의자에서 다이빙 하듯 바닥으로 뛰어내리며 일상을 씩씩하게 살아가는 조제에게 묘한 이끌림을 받게 된다.

 

그간 조제는 할머니가 동네 쓰레기장을 뒤져서 가져온 책을 읽으며 세상과 교감하고 살았다. 그 덕에 대학생인 츠테오에게도 뒤지지 않는 지식과 당당함을 갖출 수 있었지만 세상을 향한 마음은 열지 못하던 중이었다. 한편 시골에서 올라와 대학에 다니는 츠테오는 조제네 집에서 먹은 밥이 그리워 또 찾아오고, 이를 계기로 둘은 어느덧 가까워지게 된다. 하지만 할머니의 간곡한 부탁으로 둘은 싹트려던 마음을 접고 일상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게 된다.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조제네 집에서 슬로푸드의 진수를 맛보는 츠테오. 이 영화에서 음식은  서로의 마음을 여는 중요 매개체로 작용한다.

▲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조제네 집에서 슬로푸드의 진수를 맛보는 츠테오. 이 영화에서 음식은 서로의 마음을 여는 중요 매개체로 작용한다. ⓒ 영화<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조제의 유일한 의지처였던 할머니가 돌아가시게 된다. 이를 계기로 다시 조제에게 돌아온 츠테오는 그녀를 밖으로 데려간다. 조제는 그간 할머니가 주워 놓았던 옷과 모자로 멋을 부리고 츠테오와 함께 데이트를 한다. 이제는 좁은 벽장에서 나와서 대낮에도 유모차를 타고 산책을 할 만큼 마음의 여유가 생긴 것이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 지금, 그간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존재라고 여겼던 호랑이를 보러가자고 한다. 그리고 자신이 만들어낸 환상에 스스로를 투영시킨 매개체라 할 물고기를 보러 바다에도 간다. 이때 조제는 주위 사람들이 장애인인 자신의 존재가 힘들어져 다들 떠날 수도 있으리란 생각을 간접적으로 내비친다. 만약 그러고 나면 자신은 홀로 바다 밑에 가라앉은 조개처럼 떼굴떼굴 구르며 삶의 바다를 힘겹게 살아가겠지만, 그것도 나쁘지는 않을 거라고 그녀는 말한다.

 

장애인 조제 .

▲ 장애인 조제 . ⓒ 영화<조제,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몇 달을 함께 살고 둘은 담백한 이별을 맞는다. 하지만 조제는 전과 다르게 울며 붙잡지 않는다. 반면에 츠테오는 조제와 헤어진 직후 곧장 옛 여자 친구와 데이트 하러 가며 자신의 삶으로 바삐 들어간다. 하지만 당당해 보이던 그는 길가에 서서 참았던 눈물을 쏟으며 어린애처럼 통곡한다. 조제의 장애를 감당할 길이 없어 그녀에게서 도망친 자신이 부끄러워서라도 이젠 그녀를 만날 일은 절대 없으리란 사실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별 후에 친구로 남는 여자도 있지만 조제와는 절대 그렇게 될 수 없으리란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와 달리 조제는 혼자 먹을 음식을 만들며 평소와 다름없이 열심히 살아간다. 하지만 그녀에게도 변화는 생겼다. 예전엔 유모차로 산책을 하다 동네 사람들이 나타나면 조개껍질을 닫듯 담요를 뒤집어쓰던 그녀였지만, 이제는 깊고 깊은 바다 속을 혼자서 떼굴떼굴 구르는 조개처럼 당당히 전동차를 타고 세상을 누비며 살게 된다.

 

호랑이에 대적하고 싶은 소망, 물고기 같은 자유의 삶

 

사람은 누구나 두려워하는 존재를 하나씩 가지고 있다. 그것은 사람, 사회와의 관계, 사회적 제약이 될 수도 있다. 조제는 집안에서는 항상 당당했고, 자신만의 꿈을 가진 아가씨지만 밖에 나오면 주눅이 드는 걸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자신의 그 약한 면을 누군가가 보완해 준다면 이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을 것만 같았다. 그러기에 막연하게 '호랑이'에 대적하고 싶은 욕망을 키울 수가 있었고, 이것은 장애인이기에 불합리를 겪어야했던 그녀가 강해지는 자극제가 되었다.

 

호랑이를 보러 간 조제와 츠테오 .

▲ 호랑이를 보러 간 조제와 츠테오 . ⓒ 영화<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결국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조제는 세상의 어두운 면을 만나게 된다. 그건 그녀가 가장 무서워했던 '호랑이'를 현실적인 상황에서 이미지화 한 것으로서, 대적하기 보다는 타협으로 일관하는 편이 낫다고 강요되어지는 사회적 편견을 의미한다. 이를테면 집 근처를 맴돌던 변태 男이 조제의 가슴을 만지게 해주면 매일 쓰레기를 버려주겠다고 하자, 쓰레기 버리는 곳이 멀어서 힘들던 조제는 스스럼없이 그의 요구를 들어주고 자신에게 힘든 문젯거리를 해결하는 식이다. 그때까지는 그녀도 주어진 현실을 적극적으로 개진할 여력이 없이 상황 안에서 처지에 맞추어 살아가는 소극적 자세를 보였다.

 

이후 물고기를 보러 간 바닷가에서도 조제의 생각은 변함이 없다. 그녀를 업고 있던 츠테오가 이제 전동차를 구해서 타자고 했지만 '너가 평생 업어 달라'는 식의, '나는 장애인이니 주위에서 누군가가 나를 위해 희생해야 한다'는 생각이 아직은 배어있었고, 결국 츠테오와의 이별을 통해 '혼자서 헤쳐가지 않으면 살수 없다'는 진리를 어쩔 수 없이 깨닫게 된다. 그리고 난 후에야 비로소 물고기처럼 자유로운 삶을 맞이하게 된다.

 

현실에서의 장애문제

 

1970년대 이후 서서히 고조되던 미국 장애운동은 1980년대 후반에서 미국장애인법(ADA) 제정 운동 등을 계기로 1990년대 초반에 정점에 다다랐다. 10여년의 시차를 두고 한국에서도 장애운동이 들불처럼 일었고, 마침내 지난 2007년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됐다.

 

지금까지 우리사회의 장애인들은 분리되고 차별 받으며 교육현장과 노동현장에서도 소외된 삶을 살아왔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등장하는 장애인의 자립생활, 성추행 문제 역시 우리 사회 장애운동의 쟁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아직도 소외된 삶을 살아가는 현실 사회의 장애인들과 비교했을 때 이 영화는 분명히 이상적이고 건설적인 내용이다. 그 예로서 조제가 가진 당당함을 들 수 있다. '몸도 성치 않은 것이 남이랑 똑같이 행동하면 벌을 받는다'는 할머니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조제는 일반적인 여자처럼 사랑도 하고 이별도 한다.

 

츠테오의 여자친구는 조제가 장애인이기 때문에 그의 동정심을 받을 수 있었다는 의미로 '너의 무기가 부럽다' 고 하자 조제는 '그럼 너도 다리를 잘라'하며 강하게 응수한다. 그리고 조제는 그녀에게 따귀를 맞은 만큼 자신도 지지 않고 퍼부으며, 장애인이라서 당하고 살진 않겠다는 신념도 내비치며 자신의 권리를 주장 할 줄도 안다.

 

또한 장애인과 비장애인간의 바람직한 가치관을 제시하기도 한다. 복지를 전공하기에 장애인을 특별히 더 가엾게 여기던 츠테오의 여자 친구는 조제가 그저 장애인으로 비춰졌을 때는 두둔하고 가여워하지만 보잘 것 없는 장애인에게 자신의 남자를 뺏겼다고 느끼자 격분하는 사실을 인과응보격으로 처리하여 그녀가 1년 간 취직도 못하고 길거리에서 나레이터 모델로 생계를 이어가는 상황으로 설정해 놓았다.

 

결국 츠테오와 이 여자 친구가 다시 만나고 조제는 홀로 세상의 바다로 나아가는 것이 끝이지만 그 뒷이야기는 현실의 우리가 만나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문제를 통해 '제 2의 조제 이야기'를 엮어갈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시작과 끝부분의 일러스트 프랑소와즈 사강의 작품을 좋아하는 조제와 그녀가 이상향으로 그리고 있는 프랑스 파리를 모티브로 표현한 영화 속 일러스트

▲ 영화 시작과 끝부분의 일러스트 프랑소와즈 사강의 작품을 좋아하는 조제와 그녀가 이상향으로 그리고 있는 프랑스 파리를 모티브로 표현한 영화 속 일러스트 ⓒ 영화<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그간 현실의 장애인들은 기본 권리조차 박탈당한 채 차별을 받는 가혹한 현실을 겪어왔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일부에서는 끝없이 싸워왔지만 완전하면서도 평등한 참여의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고, 이 같은 편향된 인식을 '장애인의 인권'이라는 명제로 바꿔나가는 일은 분명 고통스러운 작업임에 분명하다. 어쩌면 장애인문제는 '동정'의 맥락이 아니라 '당연히 권리가 있다' 는 식으로 의식의 전환이 이뤄져야 할 문제이며, 신체적 한계를 바탕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저울질 할 수 없다는 생각부터 다져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결국 조제는 사랑이라는 잠깐의 행복 끝에 이별이란 아픔을 겪게 되었지만 잘 들여다보면 그 사랑은 장애인의 한계를 극복하게 만든 매개체였다. 그리고 그 사랑의 아픔이 장애인들에게 가장 절실했던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넘어서서, 이제는 그들 스스로가 삶의 질에 대한 문제에도 스스로 눈을 돌려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은 아닐까?

2011.01.05 10:27 ⓒ 2011 OhmyNews
조제, 호랑이, 물고기들 부천 영화제 겨울 영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